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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천일국 2년 3월14일 동부산 예배보고

작성자부산60노기영|작성시간14.04.13|조회수57 목록 댓글 0

이번주 예배는 지종선,지채희 성화의 아버님이자 우리교회 집사님이신 오나부다 집사님께서 말씀을 해주셧습니다.

 

집사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 노래 두곡을 가르쳐주셨는데 성화카페에 있는 노래라는 군요. 저는 전혀 모르겠지만ㅎㅎ..

노래 제목은 "나로부터 시작하리"(이천), "항해자"입니다. 심심하고 멍때릴때 한번 들어보세요! 노래 가사가 아주좋아요ㅎㅎ그리고 항해자는 형진님께서도 부르셨던 노래입니다.

 

이번 예배의 주제는 '참부모님의 생애 노정2' 로써 참부모님이 언제,어디서 태어나시고 , 어떤 활동을 하셨고, 어떠한 큰 업적을 이루셨는지 알게 되는 아주 뜻 깊은 예배였습니다.

집사님께서 직접 ppt를 만드셔서 주로 이미지를 이용한 예배가 진행되었지만, 사진을 못찍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만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예배는 아버님의 탄생, 유년시절의 성품, 어떤 학교를 다니셨는지, 아버님의 시, 아버님의 중요한 말씀, 여러가지 활동 등에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먼저 아버님께서는 192016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시고, 유년시절에는 가난한 이에게 나누지 않곤 못배기는 성격이었답니다. 그 시절, 일제강점기에는 알다시피 모든백성이 피폐하고, 굶주리고, 가난한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님께서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배품을 하셧다는게 정말 존경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후 아버님께서는 학창시절 오산학교를 다니시고, 후에 정주 농업 보통학교에 전학,  문윤국 목사님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순간 16살때 기도를 하다가 예수님을 뵌후 드디어 진리에 대한 탐구를 하기 시작하십니다.

이때 계시를 받고 지으신 시가 바로 <영광의 왕관>입니다. 모두가 한번씩 쯤은 들어봤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이 시를 쓴후 경성상공 실무학교를 다니다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와세다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영광의 왕관>

 

내가 사람을 의심할 때 나는 고통을 느낍니다.

내가 사람을 심판할 때 나는 견디지 못합니다.

내가 사람을 증오할 때 나는 존재의 가치를 잃습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믿으면 나는 분명히 속임을 당합니다.

내가 만일 사랑하면 나는 거역을 당할 것입니다.

오늘 저녁 내 머리와 몸은 고통과 슬픔에 떨고 있습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나는 잘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내가 속임을 당할지라도 나는 역시 믿습니다.

내가 반역을 당할지라도 나는 역시 용서합니다.

나는 나를 증오하는 자를 송두리째 사랑할 것입니다.

 

오, 주여! 사랑한다는 아픔이여.

내 손을 보아주세요.

이 내 가슴에 주의 손을 얹어보소서.

나의 가슴은 말할 수 없는 고뇌속에 터질듯만 하옵니다.

 

그러나 나는 거역한 자들을 내가 사랑할 때

승리를 성취하옵니다.

만일 당신도 나같이 사랑한다면

나는 당신께 영광의 왕관을 드리오리다.

 

이 시를 보면 참아버님의 고뇌, 번민, 자아성찰, 다짐에 대해 알수 있었습니다. 이 시를 보니 참아버님의 내면세계을 알수 있었던 것 같아 정말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 시를 쓴후 경성상공 실무학교를 다니다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와세다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셨던 말씀, 오나부다 집사님이 이 예배중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 "우주 주관 바라기전 자아주관 완성하라!!" 라는 말 이었습니다.

이 말은 자기자신을 먼저 다스리고, 완성하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저 자신조차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저 부터 잘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ㅎㅎ..

 그후 참아버님은 지하 독립활동도 하고, 23·1운동을 계획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경기도 경찰서 수감. 우리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시고, 곤욕을 치르셨다는 것을 알수있었습니다.

해방 후 참아버님께서 김일성을 만나기 위해 북한으로 가신후 남한으로 내려 오셨을때 '북한 스파이'라는 누명도 받았고, 다시 감옥살이를 하게 되셨습니다. 참아버님께서는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쳐 북한을 갔다 오셧는데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했다하니 정말 안타까웠습니다감옥에서 풀려난후, 아버님께서는 19615월에 36쌍을 축복 시키셨습니다. 거기에 참아버님과 참어머님도 축복을 받으셨죠

정말 뜻깊은 사건이었습니다. 그후 계속되어 이렇게 큰 종교, 통일교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서 참아버님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었던 것 같아 정말 의미 있는 예배였던 것 같았습니다. 이것으로 예배보고를 마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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