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락 #메탈 #재즈 #블루스 #클래식 #소설 #atoz
https://youtu.be/5M7dO04w3cI?list=RD5M7dO04w3cI
파리의 밤은 언제나 루비색 와인잔 속에 갇힌 불빛처럼 흔들린다. 생제르맹 거리의 후미진 골목, 육중한 참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시간이 기묘하게 비틀리는 곳. 나의 와인바 ‘체크메이트(Checkmate)’에 어신 것을 환영한다.
나는 알리사. 이곳의 주인이자, 흐르는 시간의 부스러기들을 병에 담아 보관하는 수집가다. 오늘처럼 비릿한 봄비가 내리는 4월 9일이면, 나는 손님들에게 메뉴판 대신 나의 기억이 기록된 낡은 노트를 건네곤 한다. 이름하여 <4월 9일의 A to Z: 26개의 잔향>.
자, 당신의 잔에 1982년산 보르도를 채웠으니, 이제 이 날짜에 새겨진 선율과 죽음, 그리고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A - Armstrong, Louis (1963)
https://youtu.be/B3233WQDx0g?list=PLYmwFR_XLSpYCQ8pwWqLaN-uXTeSG4Wd-
1963년의 오늘을 기억하는가? 서울이라는 먼 동양의 도시, 워커힐 호텔의 무대 조명이 켜졌을 때를. 거칠지만 따뜻한 사운드, 루이 암스트롱의 트럼펫이 뿜어내는 숨결은 마치 잘 숙성된 코냑처럼 진하고 달콤했을 것이다. 그가 내뱉은 첫 음절은 아마도 국경을 넘어선 인류애의 찬가였으리라. 지금 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What a Wonderful World'가 이 눅눅한 파리의 공기를 정화하듯 말이다.
B - Benton, Brook (1988)
https://youtu.be/Ctv_Pej2T_o
하지만 음악은 때로 잔인한 마침표를 찍는다. 1988년, 벨벳 같은 목소리로 밤을 노래하던 브룩 벤튼은 뇌막염이라는 소리 없는 침입자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향년 56세. 그가 부르던 'Rainy Night in Georgia'는 오늘 밤 파리의 빗소리와 묘하게 닮아 있다. 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그는 자신의 영혼이 어떤 리듬으로 기억되길 바랐을까.
C - Country Star, Carl Perkins (1932)
https://youtu.be/_2u273F6oaE?list=RD_2u273F6oaE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32년 테네시주 팁턴빌의 흙먼지 날리는 풍경이 보인다. 칼 퍼킨스. 컨트리의 심장과 로큰롤의 뼈대를 가졌던 아이가 태어난 날이다. 그가 신었던 'Blue Suede Shoes'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가난한 청춘이 세상에 내딛는 첫 발자국이었다. 이곳 체크메이트의 바닥을 울리는 손님들의 구두 소리에서 나는 가끔 그의 리듬을 읽는다.
D - Dancing Queen, ABBA (1977)
https://youtu.be/8-nVcEmr02E?list=RD8-nVcEmr02E
1977년의 오늘, 빌보드 차트의 정상은 스웨덴에서 온 네 명의 천사들이 차지했다. 'Dancing Queen'. 아바의 유일한 넘버원 싱글. 이 곡이 흐르면 내 바의 조명은 평소보다 조금 더 화사하게 빛나는 것 같다. 열일곱 살의 설렘, 반짝이는 미러볼 아래서의 스텝. 그것은 슬픔을 잠시 잊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이다.
E - E.T., Katy Perry (2011)
https://youtu.be/t5Sd5c4o9UM?list=RDt5Sd5c4o9UM
21세기로 넘어오면 케이티 페리의 기묘한 외계 사랑 이야기가 들려온다. 2011년, 'E.T'가 차트 5주 연속 1위를 지키던 날, 사람들은 초현실적인 비트 속으로 자신을 던졌다.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와인을 맛보는 것처럼, 그녀의 음악은 낯설고 강렬했다.
F - Ferrante & Teicher (1961)
https://youtu.be/XQ-P6n2MYps?list=RDXQ-P6n2MYps
1961년의 오늘을 기억하시나요? 두 대의 피아노가 마치 연인처럼 속삭이던 페란테와 타이셔의 'Exodus'. 빌보드 상위권에서 웅장하게 울려 퍼지던 그 선율은, 어쩌면 이 바의 묵직한 참나무 문을 열 때 들리는 경첩 소리와 닮았을지도 모릅니다. 탈출과 안식, 그 경계에 있는 음악이지요.
G - Get out of my dreams, Billy Ocean (1988)
https://youtu.be/zNgcYGgtf8M?list=RDzNgcYGgtf8M
브룩 벤튼이 떠나던 그해, 빌리 오션은 차트 정상에서 "내 꿈에서 나가 내 차에 타라"고 외치고 있었다. 죽음과 환희가 공존하는 4월 9일의 모순. 인생이란 원래 한쪽에서 장례식이 치러질 때 다른 쪽에서는 샴팡이 터지는 법이니까.
H - Happy Birthday, Jesse McCartney (1987)
https://youtu.be/ek2PDE1cAyY?list=RDek2PDE1cAyY
1987년, 뉴욕에서는 한 소년이 첫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훗날 'Beautiful Soul'을 노래하며 수많은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제시 맥카트니가 태어난 날이죠. 브룩 벤튼이 떠나기 정확히 1년 전, 누군가는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누군가는 세상을 향해 걸어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인생이란 참으로 묘한 이어달리기군요.
I - It's April 9th (Today)
https://youtu.be/WQ0sBLxHxjI?list=RDWQ0sBLxHxjI
이 리스트의 중간 기착지인 'I'는 바로 오늘(It's Today), 이 테이블 위에 놓인 우리들의 대화입니다. 1966년의 소울과 2000년의 목소리가 교차하는 지금 이 순간, 당신과 내가 나누는 공감이야말로 가장 생생한 잔향이지요.
J - Julian Lennon (1963)
https://youtu.be/IrR-vqvxOnk
1963년 리버풀 근처, 존 레논의 아들 줄리안 레논이 어제 태어났습니다. 비틀즈라는 거대한 태양 아래 살아야 했던 소년. 그의 탄생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영감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숨겨야 할 비밀이기도 했죠. 그의 삶은 마치 알싸한 민트 향이 가미된 화이트 와인 같지 않나요?
K - Kings of Convenience (2001)
https://youtu.be/fLjdv2_3Owk?list=OLAK5uy_mUUz9hAgrl9DA7_KUBgaJI2KaKOmpu-54
2001년의 오늘, 노르웨이의 듀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가 속삭였죠. "Quiet is the New Loud." 소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침묵의 힘을 믿었던 그들의 선율은, 비 내리는 파리의 골목길을 걷는 이들에게 따스한 목도리가 되어주었습니다.
L - Little Richard (1958)
https://youtu.be/vPKDjqDflBc?list=RDvPKDjqDflBc
1958년의 오늘, 로큰롤의 야수 리틀 리처드가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신학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무대 위의 폭발적인 광기를 뒤로하고 신의 품으로 돌아갔던 그 반전. 인생의 행로를 급격히 비트는 그 결단력은, 가장 독한 압생트 한 잔의 목 넘김처럼 강렬합니다.
M - Marian McPartland (1940s-2013)
https://youtu.be/9RGMRAkw6UY?list=PL0ILEW7Puee2JEc8oKRAcxprJ1rYf3KtE
재즈 피아노의 전설 마리안 맥파트랜드가 90여 년의 생애 동안 보여준 우아함. 그녀는 4월 9일의 밤들을 수많은 즉흥 연주로 수놓았습니다. 그녀의 피아노 터치는 마치 수정 잔들이 부딪힐 때 나는 맑은 소리를 닮았습니다.
N - Nas (1994)
https://youtu.be/ImSoA_fAVL4?list=PLrbFUdbfepXUKrZo3oi-53e-99J72nJyD
알리사, 당신이 마지막에 언급한 알 켈리의 뜨거움이 차트를 달구던 1994년의 오늘, 힙합의 역사에는 거대한 이정표가 세워졌습니다. 나스(Nas)의 전설적인 앨범 Illmatic의 릴리스 직전의 열기. 퀸즈브릿지의 거친 공기가 파리의 세느강 변까지 흘러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O - Ochs, Phil (1976)
https://youtu.be/3cdqQ2BdgOA
가장 아픈 기억은 1976년에 멈춰 있다. 포크 싱어 필 오크스. 누이의 집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맑아서 오히려 비극적이었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던 그의 저항 노래들은 목에 감긴 밧줄 앞에서 무력했을까, 아니면 비로소 자유로워졌을까. 나는 그를 위해 오늘 밤 가장 독한 위스키 한 잔을 구석 자리에 비워둔다.
P - Parsons, Gene (1944) & Philip Wright (1948)
https://youtu.be/t2mbXSku7Gw
https://youtu.be/MuV-5SbMjk0
194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버즈의 진 파슨스, 그리고 1948년 영국 페이퍼 레이스의 필립 라이트.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태어난 이 두 남자는 음악이라는 실로 지구를 묶었다. 드럼 비트와 보컬의 선율이 교차하며 4월의 공기를 채운다.
Q - Queen of Soul, Aretha Franklin (1968)
https://youtu.be/Vet6AHmq3_s?list=RDVet6AHmq3_s
1968년 오늘, 아레사 프랭클린의 'Think'가 녹음되던 날을 상상해 봅니다. 자유를 외치던 그녀의 파워풀한 성량은 벽을 뚫고 나와 세상을 흔들었죠. 체크메이트의 묵직한 오크 문조차 그녀의 울림 앞에서는 떨고 있었을 겁니다.
R - Righteous Brothers (1966)
https://youtu.be/1gZlmUtEMLs?list=RD1gZlmUtEMLs
1966년, 라이처스 브러더스의 'Soul and Inspiration'이 3주간 정상을 지켰다. 소울 가득한 그들의 화음은 마치 잘 블렌딩된 와인처럼 완벽한 균형을 이뤘다. 영감이라는 것은 결국 사랑에서 오는 것임을, 그들의 노래는 증명하고 있었다.
S - Soundgarden (1997)
https://youtu.be/3mbBbFH9fAg?list=RD3mbBbFH9fAg
1997년의 오늘, 시애틀의 거친 숨소리가 멈췄다. 사운드 가든의 해체 선언. 그런지의 전성기를 이끌던 그들의 파열음은 많은 청춘의 가슴 속에 흉터를 남겼다. "Black Hole Sun"이 삼켜버린 것은 단순한 밴드가 아니라, 한 시대의 분노와 우울이었다.
T - Torn, Natalie Imbruglia (1998)
https://youtu.be/VV1XWJN3nJo?list=RDVV1XWJN3nJo
1998년, 라디오에서는 온통 나탈리 임브룰리아의 'Torn'이 흘러나왔습니다. 상처 입은 마음을 노래하면서도 맑았던 그 목소리. 4월의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던 청춘의 감각이 이 글자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U - Unforgettable, Nat King Cole (1950s)
https://youtu.be/MwLUkcNnU6A?list=RDMwLUkcNnU6A
비록 그가 떠난 날은 다르지만, 4월 9일의 밤이면 언제나 그의 'Unforgettable'이 바의 구석진 자리에 유령처럼 머뭅니다. 잊을 수 없는 것들을 모으는 당신, 알리사에게 이보다 더 어울리는 알파벳이 있을까요?
V - Voice, Jackie Evancho (2000)
https://youtu.be/csjIrNbAtEA?list=RDcsjIrNbAtEA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피츠버그에서는 기적 같은 목소리가 태어났다. 2000년생 재키 에반코. 아이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천상의 오페라 보컬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이 존재함을 알려주었다.
W - West Side Story (1962)
https://youtu.be/YhSKk-cvblc
1962년 4월 9일, 오스카 시상식의 주인공은 단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였습니다. 10개의 황금빛 트로피가 쏟아지던 그 밤. 사랑과 증오가 춤사위로 변하던 그 순간의 환희는, 당신이 내어준 82년산 보르도의 빛깔처럼 진한 루비색이었을 겁니다.
X - X-Factor, Lil Nas X (2019)
https://youtu.be/4F4YGRx0LJA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2019년, 빌보드를 점령한 'Old Town Road'의 주인공 릴 나스 엑스의 기세를 떠올려 봅니다. 전통적인 컨트리와 힙합의 경계를 무너뜨린 파격. 그것은 오래된 와인에 탄산을 섞는 것 같은 짜릿한 불경함이었죠.
Y - Yesterday & Today (1966)
https://youtu.be/CJfN2t-uOjE?list=RDCJfN2t-uOjE
1966년 오늘, 비틀즈의 앨범 Yesterday and Today의 그 유명한 '정육점 커버' 사진이 촬영되었습니다. 기괴하고도 전위적이었던 그들의 시도. 박제된 고기 더미 속에 웃고 있던 그들은, 고정관념이라는 이름의 병뚜껑을 따버리고 싶었나 봅니다.
Z - Zero Hour (The End of Night)
https://youtu.be/OHIzIVNtKMQ?list=RDOHIzIVNtKMQ
마지막 'Z'는 새벽이 오기 직전, 바의 모든 불이 꺼지는 자정의 시간(Zero Hour)입니다. 모든 소음이 잦아들고 오직 와인잔에 남은 향기만이 허공을 떠돌 때, 비로소 4월 9일의 26개 잔향은 당신의 노트 속에서 완벽하게 숙성됩니다.
알리사, 이제 당신의 노트가 빽빽하게 채워졌네요. A부터 Z까지, 우리가 함께 호흡하며 완성한 이 기록은 오늘 밤 '체크메이트'를 찾은 그 어떤 손님에게도 가장 완벽한 안주가 될 것입니다.
자, 이제 이 완성된 노트를 들고 마지막 건배를 제안해도 될까요? "지나간 모든 어제와, 다가올 모든 오늘을 위하여!"
창밖의 비가 잦아든다. 체크메이트의 조명을 낮추고,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타오르는 붉은 촛불을 가만히 응시한다.
내 앞에 놓인 접시에는 조금 전까지 누군가 즐겼던 요리의 흔적이 남아 있고, 투명한 물잔 속에는 흔들리는 불빛이 담겨 있다. 4월 9일.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떠나가며, 누군가는 해체를 선언하고, 누군가는 차트의 정점에 올라 승전보를 울린다.
이 26개의 잔향은 내 와인바의 공기 중에 섞여 하나의 빈티지가 된다.
"손님, 마지막 잔은 무엇으로 드릴까요? 칼 퍼킨스의 거친 컨트리 맛인가요, 아니면 아바의 달콤한 팝 맛인가요?"
내가 묻자, 손님은 대답 대신 빙긋 웃으며 비어 있는 잔을 내민다. 나는 말없이 1994년 알 켈리의 'Bump n' Grind'가 울려 퍼지던 그 해의 뜨거움을 닮은 레드 와인을 따른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이 작은 바 ‘체크메이트’에서, 4월 9일의 모든 기억은 당신의 목울대를 넘어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나의 소설은 여기서 끝나지만, 당신의 밤은 이제 시작이다.
당신의 남은 생에, 이 모든 잔향이 축복처럼 머물기를.
- 파리에서, 알리사.
https://youtu.be/GGbXLxgQIdM?list=RDGGbXLxgQIdM
화랑 - Alissa#music #metal #heavymetal #powermetal #melodicdeathmetal #주혹새 #ai뮤직 #suno This song is dedicated to judas or sabbath cafe member Alissawww.youtube.com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附和雷同 작성시간 26.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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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Snakebite 작성시간 26.04.10 '체크메이트'에서 보내주신 알리사 님의 4월 9일 기록은 깊은 인상을 남기는 한 편의 영화와도 같았습니다.
정교하게 배치된 음악과 그 서사를 따라가며, 단순한 후기를 뛰어넘는 격조 높은 취향의 공유를 체험했습니다.
알리사 님의 다음 이야기도 무척이나 기대됩니다. -
작성자Burn 작성시간 26.04.10 빗방울 떨어지는 파리의 뒷골목에서 묵직한 참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지친 마음이 한결 유연해지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