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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의 화원(花園) : 주군께 바치는 마지막 숨결

작성자화랑|작성시간26.06.09|조회수29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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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의 화원(花園) : 주군께 바치는 마지막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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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조차 구름 뒤로 숨어버린 칠흑 같은 밤이었다. 성곽의 기와는 낮 동안 머금었던 열기를 뱉어내며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 매끄럽고 가파른 어둠의 지붕 위를, 한 줄기 그림자가 소리 없이 가로질렀다.

‘렌’은 자신의 발소리를 지웠다. 아니, 발소리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를 지웠다. 그는 이제 이름이 없었다. 한때는 어느 가문의 장남이었고, 누군가의 다정한 벗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연모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군을 위해 그림자가 되기로 맹세한 그날, 그는 자신의 이름을 버렸다. 이제 그의 등 뒤에 남은 것은 오직 단 하나, 주군을 향한 꺾이지 않는 서약뿐이었다.

렌은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골랐다. 폐부 깊숙이 차가운 밤공기가 스며들었다. 그는 달을 등진 채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겼다. 빛을 마주하는 것은 사치였다. 어둠 속에 침잠할수록 그의 감각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몸 곳곳에 새겨진 흉터들이 욱신거렸다. 그 흉터의 수만큼 그는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고, 그 깊이만큼이나 깊은 각오가 그의 심장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주여, 보고 계십니까.’

렌은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옷감 너머로 느껴지는 혈관의 박동은 차분했다. 죽음을 앞둔 자의 떨림 따위는 없었다. 오직 주군을 향한 뜨거운 피만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흐르고 있었다.

‘주여, 듣고 계십니까. 이 흔들림 없는 고동을.’

그는 허리춤에 매달린 단검의 자루를 꽉 쥐었다. 오늘 밤, 이 칼날이 주군의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베어 넘길 것이다. 그것이 설령 자신의 목숨을 깎아 먹는 일이라 할지라도.

성채의 가장 깊은 곳, 붉은 칠을 한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저 문을 넘어서면 더 이상 돌아올 길은 없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자, 충성과 배신이 갈리는 지점이었다. 렌은 망설임 없이 문을 통과했다.

성 안은 고요했다. 세상 사람들은 평온한 잠에 빠져 내일의 태양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평화로운 잠자리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피 냄새 진동하는 어둠 속을 걸어야 한다. 렌은 그것이 자신의 숙명임을 받아들였다.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마지막 망설임은 침을 삼키듯 조용히 녹아 없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주군을 향한 절대적인 충성심뿐이었다.

복도 끝에서 경비병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렌은 벽면의 장식 뒤로 몸을 날렸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연기와 같았다.

‘내 손은 이미 차갑게 식어버렸으나, 기도는 그 어느 때보다 깊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그림자에 잠긴 전사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언어는 칼날의 부딪침뿐이었다. 이름을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는 이미 기억 저편으로 멀어졌다. 오직 차가운 강철만이 그의 물음에 답할 것이다.

갑자기 사방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매복해 있던 적의 자객들이었다. 그들 역시 어둠 속에서 길러진 자들이었으나, 렌의 눈에는 그들의 조급함이 보였다.

“주를 위해 생을 바치고, 주를 위해 사(死)를 바친다.”

렌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것은 주문이자, 그들 조직의 유일한 교리였다. 렌의 신형이 번개처럼 튀어 나갔다. 첫 번째 자객의 목줄기를 단검이 스치고 지나갔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적이 쓰러졌다. 렌의 옷자락에 붉은 선혈이 튀었지만, 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는 그림자 속을 유영하는 사신이었다. 적들의 칼날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렌의 칼날은 정확히 급소를 파고들었다. 이것은 전투라기보다 차라리 정교하게 짜인 제의(祭儀)에 가까웠다. 주군이라는 신에게 바치는 산 제물들의 행렬.

‘만약 내일 아침이 온다면, 그 아침은 누구의 것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이내 지워버렸다. 그림자에게 아침은 허락되지 않는다. 만약 이 몸이 여기서 흩어진다면, 그것 또한 주군이 정해주신 길일뿐이다. 침묵의 심연 속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등불 하나가 그의 영혼을 태우고 있었다.

마침내 주군의 침소 앞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예상치 못한 거대한 적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군을 배신하고 반란을 일으킨 자의 최측근, 한때 렌과 함께 훈련받았던 동료였다.

“결국 왔군, 이름 없는 자여.”

상대방의 검이 매섭게 날아들었다. 렌은 자신의 어깨가 베여 나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뼈가 깎이는 고통이 전신을 엄습했지만, 그의 눈빛은 오히려 더욱 맑아졌다.

‘이 몸은 단 한 번, 주군을 위해 피어날 뿐.’

렌은 자신의 심장을 내어주는 대신, 적의 가슴에 깊숙이 단검을 박아넣었다. 뜨거운 피가 렌의 손등을 적셨다. 적의 눈동자에서 생기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렌 역시 무릎을 꿇었다. 치명상이었다.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멀리서 동이 터 오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렌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맞이할 것은 태양이 아니라 영원한 안식이라는 것을. 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주군의 침소 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주여… 생을 바쳤고… 이제 죽음을 바칩니다….”

그의 마지막 숨결이 허공에 흩어졌다. 렌의 가슴팍, 피로 물든 옷자락 위로 주군의 이름이 새겨진 문장이 희미하게 빛났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았다. 오직 주군의 이름만을 영혼에 각인한 채, 그림자의 전사는 고요히 눈을 감았다.

어둠이 걷히고 새벽빛이 성벽을 비추었을 때,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차가운 돌바닥 위에 떨어진 붉은 핏방울만이, 밤새 누군가가 이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피어났음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세상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사람들은 어젯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주군은 여전히 옥좌에 앉아 계시고, 나라는 평화롭다. 역사는 승리한 자들의 이름을 기록하겠지만, 그 승리를 위해 어둠 속에서 스러져간 그림자들의 이름은 어디에도 남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바람이 부는 밤이면, 성곽의 지붕 위에서 아주 미세한 발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그것은 이름을 버리고 오직 충성만을 남긴 채 떠나간 전사들이 여전히 주군을 지키고 있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주여, 보고 계십니까. 이 피의 온도를. 주여, 듣고 계십니까.
마지막 숨결에 새긴 당신의 이름을."

https://youtu.be/zbGdEyy9FvI

니키 - Ninja Assassin#NINJA#ToMyLordIGiveMyLife#ToMyLordIGiveMyDeath#TheOathWillNever...www.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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