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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공기가 제법 쌀쌀해진 10월의 어느 목요일 밤, 나는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손가락 끝은 습관적으로 화면을 쓸어 올리며 내가 가입한 몇 안 되는 친목 밴드 중 하나인 ‘세상의 모든 소리(세모소)’의 타임라인을 훑었다. 이곳은 원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장르 불문하고 명곡을 공유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나는 며칠 전부터 LP장에서 유독 눈에 띄던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의 'Blizzard of Ozz' 앨범 재킷을 찍어 올리기로 했다. 랜디 로즈의 불꽃 같은 리프가 살아있는 'Crazy Train', 그리고 그 전설적인 'Mr. Crowley'가 담긴 명반 중의 명반.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 올리며 짧은 멘트를 덧붙였다.
[오늘 밤은 암흑의 왕(Prince of Darkness)과 함께.
오지 행님의 보컬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네요.]
글을 올리고 5분도 지나지 않아 알림이 울리기 시작했다. '좋아요'가 몇 개 달리고, "와, 옛날 생각 나네요", "박쥐 뜯어먹던 아저씨 아닌가요? ㅋㅋ" 같은 가벼운 댓글들이 달렸다. 여기까지는 평화로웠다. 나도 일일이 대댓글을 달며 훈훈한 분위기를 이어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내 시신경을 강타하고 뇌세포를 마비시키는 전대미문의 댓글 하나가 올라왔다.
**[김철수(강남/79): 어후... 전 메탈리카 이상은 못 듣겠더라고요 ㅋㅋㅋ 이건 좀 너무 시끄러운 듯!]**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스마트폰 화면을 가까이 들이대고 다시 읽어보았다. 오타인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고차원적인 반어법인가? 하지만 뒤에 붙은 'ㅋㅋㅋ'와 '시끄러운 듯'이라는 표현은 명백한 진심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튀어나왔다. 이건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락과 메탈의 계보를 뿌리째 흔드는 모욕이자, 장르의 연대기를 일그러뜨리는 시공간의 왜곡이었다.
비유를 하자면 이렇다. 누군가 비틀즈 노래를 올렸는데, "어후, 저는 방탄소년단 이상은 너무 시끄러워서 못 듣겠더라고요"라고 말하는 꼴이다. 아니, 그보다 더 심하다. 메탈리카(Metallica)가 누구인가. 스래쉬 메탈의 제왕들이며, 묵직한 리프와 터질 듯한 드럼 비트로 세상을 평정한 형님들이다. 반면 오지 오스본은 어떤가. 블랙 사바스 시절부터 메탈의 원형을 정립했지만, 그의 솔로 곡들은 기본적으로 멜로딕하고 서정적인 하드 록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런데 메탈리카는 듣겠는데 오지 오스본은 시끄러워서 못 듣겠다니? 이건 오지 오스본이 카니발 콥스(Cannibal Corpse)나 메이헴(Mayhem) 같은 익스트림 메탈 밴드보다 더 시끄럽다는 소리 아닌가? 세상을 향해 '데스 메탈'을 외치는 괴물들보다 우리 귀여운(?) 오지 할아버지가 더 감당하기 힘들다는 저 논리는 대체 어느 행성의 음악 이론인가.
나는 뒷목이 뻐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짜증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단순히 무식해서라면 가르쳐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댓글 밑바닥에 깔린 저급한 '스노비즘(Snobbism)'이 나를 더 미치게 했다.
언제부턴가 메탈리카는 '메알못(메탈을 알지도 못하면서 깝치는 사람)'들의 최후의 보루이자 보험이 되어버렸다.
요즘 소위 '남자다움'을 어필하고 싶은 중년 남성들이나, 뭔가 힙(Hip)해 보이고 싶은 애송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수작질이 있다. 술자리에서 혹은 이런 커뮤니티에서 "아, 전 메탈 좀 듣습니다"라고 운을 뗀다. 그러면 여자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와, 멋있네요. 어떤 밴드 좋아하세요?"라고 묻기 마련이다.
그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건 십중팔구 '메탈리카'다. 왜냐? 아는 게 그것뿐이니까. 유튜브에서 'Enter Sandman' 뮤직비디오 하나 보고, 그 육중한 리프에 고개 몇 번 흔들어본 게 그들이 가진 메탈 지식의 전부다. 'Master of Puppets'의 가사가 무엇인지, 'One'이 가진 반전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따위엔 관심도 없다. 그저 "나 메탈리카 듣는 남자야"라는 문장이 주는 마초적인 이미지만을 탐닉한다.
그들에게 메탈리카는 음악이 아니라 액세서리다. 마치 명품 시계나 외제차 카키(Car-key)처럼,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러니 정작 메탈의 시조새 격인 오지 오스본의 음악을 들려주면, 그 멜로딕한 선율조차 '내가 아는 메탈리카보다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시끄럽다'고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아 이 그랜드캐년 같은 놈들..."
나는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댓글창을 노려보았다. 속이 텅 비어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광활한 무식의 협곡들. 한때 우리 메탈러들의 신성한 우상이었던 메탈리카가, 이제는 저런 메알못들의 무식함을 덮어주는 방패막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피눈물이 났다. 제임스 헷필드가 이 사실을 알면 기타를 때려 부술 일이다.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참으려 했지만, 이건 락의 자존심 문제였다.
[철수님, 실례지만 오지 오스본이 메탈리카보다 시끄럽다는 건 좀 의외네요. 메탈리카의 스래쉬 비트보다 'Mama, I'm Coming Home' 같은 곡이 더 자극적이신가요?]
최대한 예의를 갖추려 했지만 뼈가 섞인 질문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가관이었다.
[김철수(강남/79): 아, 뭐 장르 이름은 잘 모르겠고요. 암튼 그 아저씨 목소리가 좀 기괴하잖아요. 메탈리카는 좀 시원시원한데 ㅋㅋㅋ 암튼 전 정통 메탈만 맞나 봐요.]
'정통 메탈'?
기가 찼다.
오지 오스본을 빼놓고 '정통 메탈'을 논하는 자라니.
나는 화를 삭이기 위해 냉장고에서 캔맥주 하나를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차가운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지만 가슴속 화마는 꺼지지 않았다.
이건 비단 이 밴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이 변했다. 음악이 영혼의 대화가 아니라 소비재가 된 시대. 깊이 있는 고찰보다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취향의 전시'가 우선인 시대. 그 안에서 진짜들이 설 자리는 점차 좁아지고 있었다.
나는 다시 밴드 화면을 보았다. 김철수의 댓글 밑으로 "저도 메탈리카 좋아해요!", "역시 상남자시네요" 같은 영혼 없는 댓글들이 줄줄이 달리고 있었다. 메탈리카를 방패 삼아 자신의 무지를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저 무리 사이에서, 오지 오스본의 앨범 재킷은 외로워 보였다.
나는 조용히 글을 삭제했다. 저들에게 랜디 로즈의 찬란한 솔로를 설명하는 건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걸어주는 격이었다. 나는 대신 낡은 턴테이블에 바늘을 올렸다. 치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Mr. Crowley'의 오르간 인트로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래, 오지 형님. 형님은 시끄러운 게 아니에요. 당신은 단지 저들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깊고 푸른 어둠이었을 뿐이지.
나는 맥주를 들이키며 생각했다. 내일은 메탈리카의 1집 'Kill 'Em All'을 올려볼까. 과연 저 '정통 메탈러' 김철수 씨가 초기 스래쉬의 날 것 그대로의 소음을 견뎌낼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아마 그때쯤이면 그는 "어후, 전 이매진 드래곤스 이상은 못 듣겠더라고요"라며 또 다른 보험을 찾아 떠나지 않을까.
세상은 넓고, 메알못은 많으며, 진짜 메탈은 여전히 고독하다. 하지만 이 방 안에서만큼은, 오지의 목소리가 세상 그 어떤 가식보다 정직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볼륨을 더 높였다. 진짜 시끄러운 게 뭔지 보여주고 싶다는 유치한 복수심을 담아,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https://youtu.be/Z6TLqGRsPTk
돼철이 - 어후 전 메탈리카 이상은 못듣겠드라구요 ㅋㅋㅋ#HeavyMetal#TraditionalMetal#MetalGod#TwinGuitars#MetalAnthem#...www.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