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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우상의 잔상 : 미야와 조나단의 비가(悲歌)
1992년의 여름은 유난히도 뜨겁고 습했다.
할리우드의 외곽, 마치 요새처럼 고립된 ‘포트 어파치’ 스튜디오 안에서 블래키 로울리스는 스스로를 유폐시켰다. 24마일의 레코딩 테이프가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고, 54세트의 기타줄이 비명 지르듯 끊어져 나갔다. 그는 미쳐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는 ‘조나단 스틸’이라는 가상의 영혼에 빙의되어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앨범 《The Crimson Idol》은 단순히 와스프(W.A.S.P.)의 다섯 번째 결과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업적 논리에 밀려 밴드의 이름을 빌렸을 뿐, 블래키 자신의 뼈를 깎아 만든 솔로 오페라였다. 체인소우 찰리 같은 레코드 사장의 간교한 전술 속에서도 블래키는 리드 보컬, 기타, 베이스, 키보드, 프로듀싱까지 도맡으며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 밥 쿨릭과 프랭크 버넬리 같은 거장들이 지원 사격을 퍼부었지만, 결국 그 거대한 고독의 심연을 채운 건 블래키 혼자였다.
나는 그 앨범을 들으며 스튜디오의 구석에서 흘러나오는 조나단 스틸의 비탄을 목격한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소년, 유일한 안식처였던 형 마이클을 음주운전 사고로 잃고 거리를 헤매던 조나단. 그가 뮤직 샵의 유리창을 깨고 훔친 기타는 구원이자 저주였다. 그리고 이 비극적인 서사는 묘하게도 내가 30년 전 만났던 한 소녀, '미야'의 얼굴 위로 겹쳐진다.
미야를 처음 만난 건 90년대 후반, 담배 연기와 땀 냄새가 찌든 지하 연습실이었다. 그녀는 조나단 스틸이 방황하던 딱 그 나이쯤 되어 보였다. 가냘픈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그녀의 손에는 묵직한 드럼 스틱이 쥐어져 있었다.
“우리 아빠도 뮤지션이었대요.”
미야는 킥 드럼의 페달을 밟으며 무심하게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한때 이름을 날리던 기타리스트였다고 했다. 하지만 그 화려한 명성 뒤에는 지독한 알코올 중독이 도사리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만취한 아버지는 오토바이를 몰고 나갔고, 길을 가던 행인을 치어버렸다. 아버지는 그 길로 가정을 버리고 사라졌다. 남겨진 것은 산더미 같은 치료비와 합의금, 그리고 평생을 일해도 갚지 못할 빚더미였다.
미야의 어머니는 식당 일을 하며 밤낮없이 돈을 벌어야 했다. 딸을 돌볼 여력 따위는 없었다. 미야는 먼 친척 집을 전전하며 자랐다. 그곳은 안식처가 아니라 지옥이었다. 조나단 스틸이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찐따’ 취급을 받으며 고립되었듯, 미야는 친척 집의 어두운 다락방에서 입에 담지 못할 고통과 성추행을 견뎌내야 했다. 그녀의 유년기는 멍 자국과 눈물로 얼룩진 ‘크림슨(진홍빛)’의 시간이었다.
조나단이 깨진 유리창 사이로 기타를 발견했듯, 미야는 어느 날 쓰레기더미 속에서 낡은 드럼 패드와 스틱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 스틱으로 세상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웃기죠? 아빠 때문에 내 인생이 이 모양인데, 나도 결국 아빠가 하던 짓을 하고 있으니까.”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눈은 젖어 있었다. 미야의 몸속에는 아버지를 향한 지독한 증오와, 그 아버지가 사랑했던 음악의 DNA가 동시에 흐르고 있었다. 그녀가 드럼을 치는 이유는 복잡했다. 그것은 지옥 같은 현실을 잊기 위한 도피였고, 동시에 헤어진 아버지를 찾기 위한 신호탄이었다.
“내가 유명해지면, 그래서 텔레비전에 나오면... 아빠가 날 보러 오지 않을까요? ‘네가 내 딸이구나’ 하면서 안아주지 않을까요?”
그녀의 말은 《The Crimson Idol》의 수록곡 〈Hold on to My Heart〉처럼 애절하게 들렸다. 조나단 스틸이 화려한 록스타가 된 후에도 갈구했던 단 한 가지, 부모의 따뜻한 시선. 미야 역시 조나단처럼 허구의 명성이라도 좋으니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는 통로를 원하고 있었다.
우리는 밴드를 결성했다. 미야의 드럼은 폭발적이었다. 그녀는 콘(Korn) 스타일의 무겁고 공격적인 하드코어 사운드에 심취해 있었다. 그녀가 스네어를 때릴 때마다 나는 조나단이 체인소우 찰리의 손아귀에서 고통받으며 내지르던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레코드 사장 찰리는 조나단을 상품으로만 보았다.
“너를 스타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은 결국 “너의 영혼을 팔아라”는 계약이었다. 미야에게도 그런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역의 작은 기획사 사장들은 어린 미야의 외모와 실력을 이용해 자극적인 마케팅을 하려 들었다.
“미야, 이건 네가 원하는 음악이 아니잖아.”
내가 말했을 때, 그녀는 텅 빈 눈으로 대답했다.
“상관없어요. 유명해질 수만 있다면 뭐든 할 거예요.
아빠가 날 찾아낼 수 있게 더 크게 소리 내야 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야는 지쳐갔다. 조나단 스틸이 ‘더 크림슨 아이들’이 되어 수천 명의 환호 속에 서 있을 때 느꼈던 그 공허함이 미야를 잠식했다. 그녀가 연주하는 하드코어 비트는 타인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자신을 파괴하는 자학에 가까워졌다.
어느 날 밤, 연습이 끝난 후 미야는 구석에서 울고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 외국에서 다른 가정을 꾸렸고, 한국에 남겨진 딸의 존재 따위는 기억조차 하지 않는다는 차가운 소식이었다.
그것은 조나단 스틸이 공연 직전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돌아왔던 대답, “우리에겐 아들이 없다(We have no son)”와 똑같은 칼날이었다.
조나단은 그 순간 무대 위에서 자신의 기타줄을 끊어 올가미를 만들었다.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처절한 퍼포먼스이자 마지막 항거였다. 다행히 미야는 조나단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오빠, 난 이제 드럼 못 치겠어요.
이 소리가... 아빠의 심장 소리인 줄 알았는데, 그냥 고철 덩어리 부딪히는 소리였어.”
음악적 취향의 차이였다고 말했지만, 사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밴드를 떠난 건 더 이상 찾아야 할 아버지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신호탄은 목표를 잃고 허공에서 흩어졌다.
30년이 흘렀다.
블래키 로울리스가 《The Crimson Idol》을 통해 조나단 스틸의 비극을 완성했듯, 나 역시 내 기억 속의 미야를 이 소설 속에 박제한다.
그녀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425개의 드럼헤드와 315갤론의 맥주, 그리고 수많은 눈물로 만들어진 그 시절의 노래들은 이제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가끔 비가 내리는 밤, 와스프의 〈The Idol〉을 들으면 드럼 스틱을 꽉 쥐고 세상을 원망하던 미야의 작은 등이 떠오른다.
조나단 스틸은 기타줄에 목을 매고 전설이 되었지만, 미야는 부디 평범한 누군가의 아내로, 혹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남았기를 바란다. 음악이라는 잔인한 거울 앞에서 자신의 상처를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평온한 삶 말이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그녀가 어디에 있든, 가슴 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묵직한 하드코어 비트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증오하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DNA, 그리고 그녀가 그토록 갈구했던 '진정한 사랑'의 리듬이.
조나단 스틸, 그리고 미야자키.
이 이야기는 부모의 그림자 아래에서 길을 잃은 모든 아이들을 위한 진혼곡이다.
"I am the crimson idol, the god of strawberry fields..."
노래는 끝났지만, 그들의 처절한 비명은 여전히 6.1강도의 지진처럼 내 심장을 흔들고 있다.
https://youtu.be/5DECOxH0y_Y?list=RD5DECOxH0y_Y
W.A.S.P. The Idol Official Music VideoJune 6th 2022 marks the 40th Anniversary of one of the most infamou...www.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