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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주혹새

작성자화랑|작성시간26.06.11|조회수38 목록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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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초여름은 유난히도 뜨거웠다.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6월의 어느 날, 나는 비로소 ‘자유’라는 이름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Slave to the Gosiwon’이었다. 운영하던 뮤직바를 접고 고시원 원장이라는 직함을 달았을 때, 나는 그것이 경제적 자유로 가는 지름길인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한 달에 단 두 번의 휴무, 쏟아지는 민원, 자다가도 튀어나가야 하는 야근의 연속. 내 영혼은 메탈의 강렬한 비트 대신 고시생들의 발소리와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에 잠식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다 결단을 내렸다. 총무 두 명을 고용하며 나는 ‘신종 백수’의 길을 택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원에 얼굴을 비추는 것 외에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남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과거의 영광, ‘주혹새(주옥같은 메탈곡을 소개하는 새끼들)’ 카페의 부활로 이어졌다.

“오빠, 아니 선배님! 여기 대박이에요. 3040 동호회 카페인데 메탈러들이 득실거려요!”

나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고등학교 후배인 ‘지윤’이 흥분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는 내 메탈 인생의 산증인이자, 주혹새 부활의 일등 공신이었다. 지윤의 말대로 그곳엔 나와 동갑내기인, 90년대 메탈의 황금기를 온몸으로 겪어낸 메탈러들이 가득했다. 나는 그들을 하나둘씩 꼬셔(?) 나의 플레져 돔, 주혹새 카페로 영입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지윤이 자신의 ‘불알친구’라며 한 명의 여성을 소개해 주었다. 이름은 ‘미경’. 지윤과 마찬가지로 내 고등학교 후배였지만, 그녀는 첫 만남부터 범상치 않았다.

“안녕하세용~ 근데 지윤아, 이분이 왜 선배야? 나이도 우리랑 같은데?”

미경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지윤이 당황하며 “야, 그래도 학교 기수가 있잖아!”라고 수습하려 했지만, 미경은 단호했다.

“에이, 사회 나오면 다 친구지. 그냥 XX씨라고 부를게요. 그게 편하죠?”

결국 우리는 서로 ‘씨’자를 붙이는 묘한 교통정리를 끝내고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녀의 당돌함은 곧 경외심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단순한 리스너가 아니었다. 크림슨 글로리(Crimson Glory)나 페이츠 워닝(Fates Warning) 같은 USPM(미국식 파워 메탈)의 계보를 꿰뚫고 있는 진정한 고수였다.

“혹시 레이지(Rage) 신보 들어봤어용? 6월 10일에 나온 거.”

미경이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며 물었다. 2016년 6월, 레이지의 22번째 스튜디오 음반 《The Devil Strikes Again》이 갓 발매된 시점이었다. 내가 아직 못 들어봤다고 하자,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본격적인 ‘메탈 썰’의 시작이었다.

“이번 앨범은 리셋이에요, 리셋. 피비 바그너가 드디어 결단을 내린 거죠. 15년 넘게 함께했던 기타 천재 빅터 스몰스키와 결별했잖아요. 피비의 선언은 명확해요. ‘내 길을 가든지, 아니면 아예 안 하든지!’”

미경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그녀는 빅터 스몰스키의 진보적이고 화려한 스타일이 레이지의 본질을 가리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스몰스키의 포스는 전작인 LMO(Lingua Mortis Orchestra)를 끝으로 사라졌죠. 사실 그 앨범, 레이지 앨범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지 않아요?”

옆에서 듣고 있던 지윤이 거들었다.

“맞아요. LMO는 매니아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았죠. 빅터가 거의 모든 곡을 작곡하면서 자기 색깔을 너무 많이 입혔거든요. 선배는 어떻게 생각해요?”

나는 잠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글쎄, 난 레이지 정규 앨범이라 보지 않아. 일단 타이틀에 ‘Rage’라는 이름이 전면에 없잖아? 외전 같은 느낌이지.”

내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미경이 눈을 흘겼다.

“어머어머, 왜 또 은근슬쩍 반말이세용? 우리 친구 하기로 했잖아요!”

나는 짐짓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했고, 미경은 만족스러운 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됐고! 레이지 이야기나 계속 하죠. 이번 《The Devil Strikes Again》은 정말 민첩하고 공격적이에요. 거친 레이지의 귀환이죠. 90년대의 명반 《Black in Mind》나 《Missing Link》 시절의 향취가 강하게 나요. 물론 그 전설적인 작품들과 1대 1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방향성만큼은 확실히 회귀했어요.”

지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탰다.

“빅터의 빈자리가 아쉽긴 하죠. 그 매끄러운 속주와 클래식한 화성학은 독보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새로 들어온 마르코스 로드리게스(Marcos Rodriguez)도 물건이에요. 그의 리프 게임을 보세요. 앨범 전체에 메탈의 분노가 가득해요. 그러면서도 멜로딕한 리프를 놓치지 않죠.”

미경이 스마트폰으로 ‘The Final Curtain’의 솔로 부분을 틀어주며 말했다.

“자세히 들어보면 마르코스가 빅터의 영향을 아예 안 받은 건 아니에요. 특히 ‘The Spirits of the Night’ 같은 곡의 솔로를 들어보면, 빅터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느낌을 재현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여요. 피비가 원했던 건 빅터의 기술력에 초기 레이지의 야수성을 더하는 것이었을지도 몰라요.”

음악은 카페 안을 가득 채웠다. 피비 바그너의 보컬은 확실히 예전보다 거칠어져 있었다. 미경은 그 점을 지적했다.

“피비의 보컬이 아주 초창기처럼 악랄하게 들려요. 사실 좀 과하다 싶을 정도죠.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언제부터인가 그로울링과 스크리밍 톤에 너무 의지하더라고요. ‘The Devil Strikes Again’ 같은 거친 곡에는 완벽하게 붙지만, 멜로딕한 트랙에서는 조금 자연스럽지 못한 느낌도 있어요.”

대화가 무르익어갈 무렵, 지윤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참, 선배. 이 앨범 보너스 트랙에 선배가 환장할 만한 곡이 하나 들어있어요. 아마 듣고 깜짝 놀랄걸요?”

지윤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익숙한 리프. 그것은 다름 아닌 스키드 로우(Skid Row)의 불후의 명곡 ‘Slave to the Grind’였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어? 이거 스키드 로우 노래잖아? 레이지가 이걸 커버했다고?”

노래가 흐르기 시작했다. 피비 바그너의 걸걸한 목소리가 세바스찬 바하의 날카로운 고음을 대신하고 있었다. 나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야, 이건 좀 아니지 않냐? 레이지가 스키드 로우보다 한참 선배 아냐? 레이지는 80년대 초반부터 활동했는데, 후배들 노래를 커버하다니. 그것도 세바스찬 바하의 그 미친 보컬을 피비가 따라가기엔 역부족인 것 같은데? ㅋㅋㅋ”

미경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쵸? 피비 형님이 열정은 넘치는데, 확실히 이 곡은 세바스찬 바하의 그 ‘재수 없으면서도 완벽한’ 고음이 없으면 맛이 안 살아요. 커버라기보다는 그냥 레이지 스타일로 짓이겨 놓은 느낌?”

우리는 한참 동안 레이지의 신보와 메탈의 역사, 그리고 고시원 탈출기에 대해 떠들었다. 2016년의 그 여름날, 나는 더 이상 고시원의 노예가 아니었다. 나는 다시 주혹새의 대장이었고, 내 곁에는 나만큼이나 메탈에 미친 동갑내기 후배들이 있었다.

피비 바그너가 “My Way”를 외치며 자신의 길을 다시 찾았듯, 나 역시 ‘주혹새의 부활’이라는 나만의 길을 걷고 있었다. 비록 피비의 ‘Slave to the Grind’ 커버는 조금 안쓰러웠지만, 그 거친 분노만큼은 내 가슴 속에서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메탈의 불꽃과 닮아 있었다.

“자, 다음 곡은 뭐야? 이번엔 진짜 USPM의 정수를 보여줘 봐!”

나의 외침에 미경과 지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헤드뱅잉 시늉을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세계 최고의 헤비메탈 플레져 돔은 그렇게 다시 문을 열고 있었다.

https://youtu.be/30K3Z4L7ALU?si=8jACKCsJozNr1FI9

The Devil Strikes AgainProvided to YouTube by Nuclear BlastThe Devil Strikes Again · Rag...www.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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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Bastard | 작성시간 26.06.12 음악이 누군가의 삶에 다시 불꽃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에 큰 감동과 보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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