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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리듬과 연대의 연대기

작성자화랑|작성시간26.06.11|조회수43 목록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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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리듬과 연대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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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6월 11일, 텍사스주 프랭크스톤의 공기는 건조한 흙먼지와 여름의 열기로 가득했다. 목화밭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낡은 픽업트럭이 뱉어내는 엔진 소리만이 간간이 정적을 깨뜨리는 그런 날이었다. 그날, 프랭크 비어드라는 사내아이가 세상에 첫 울음을 터뜨렸다. 그의 울음소리는 마치 앞으로 그가 평생을 바쳐 만들어낼 강력한 드럼 비트의 첫 박자처럼, 단단하고 힘찼다.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 작은 아이가 훗날 텍사스 블루스 록의 거대한 산맥, ZZ TOP의 심장 박동을 책임질 드러머가 되리라는 것을. 그의 성은 '수염(Beard)'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덥수룩한 수염이 트레이드마크인 밴드에서 유일하게 말끔한 턱을 유지하게 될 운명이라는 것도. 그저 텍사스의 뜨거운 태양 아래, 또 하나의 생명이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시간은 흘러 1966년 6월 11일, 세상은 변화의 열기로 들끓고 있었다. 텍사스의 먼지 바람과는 전혀 다른, 자유와 사랑, 그리고 저항의 기운이 샌프란시스코의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히피 문화의 성지, 아발론 볼룸의 몽환적인 조명 아래, 한 여인이 마이크를 잡고 섰다. 그녀의 이름은 재니스 조플린. 허스키하면서도 폭발적인, 영혼을 긁어내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가 빅 브러더 앤 더 홀딩 컴퍼니의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와 처음으로 뒤섞이는 순간이었다.

관객석에 있던 스무 살의 청년, 리오도 그 순간을 목격하고 있었다. 그는 텍사스의 보수적인 집을 뛰쳐나와 '사랑의 여름'이 피어오르던 샌프란시스코로 무작정 상경한 참이었다. 재니스의 노래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었다. 그것은 억압된 모든 것들로부터의 해방을 외치는 절규였고, 상처받은 영혼들을 향한 위로였다. 리오는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자유의 소리다.' 그는 재니스의 목소리에서 낡은 시대를 부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히는 거대한 힘을 보았다.

같은 시각, 대서양 건너 유럽의 라디오 전파는 전혀 다른 소식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영국의 록 밴드 '더 후(The Who)'의 보컬, 로저 달트리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이 충격적인 뉴스는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런던의 한 허름한 아파트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던 열여덟 살 소녀, 클로이는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녀에게 더 후는 단순한 밴드가 아니었다.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과 청춘의 불안을 폭발적인 에너지로 노래하는 그들은 클로이 자신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청춘의 상징이 허무하게 사라졌다는 사실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끔찍한 오보였다. 로저 달트리는 멀쩡히 살아있었다. 누군가의 악의적인 장난이었는지, 정보 전달 과정의 오류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몇 시간 뒤 정정 보도가 나왔지만, 클로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진짜 상실의 고통을 맛보았다. 그녀는 깨달았다. 음악과 아티스트는 누군가에게 이토록 절실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존재가 얼마나 쉽게 거짓된 소문 속에 휘청일 수 있는지도.

그날 밤, 리오와 클로이는 서로 다른 대륙에서 같은 음악을 들었다.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롤링 스톤즈의 'Paint It Black'. 시타르의 이국적인 선율과 재거의 냉소적인 목소리가 어우러진 이 노래는 세상의 다채로운 색을 모두 검게 칠해버리고 싶다는 절망을 담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리오는 재니스의 공연이 준 희열 뒤에 숨은 청춘의 혼란을 이 노래에서 발견했고, 런던의 클로이는 거짓된 죽음이 안겨준 충격과 슬픔을 이 노래에 실어 보냈다. 1966년 6월 11일은 그렇게,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알리는 함성과 어이없는 오보가 주는 침묵,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는 록 음악의 검은 선율이 교차하는 하루였다.

22년의 세월이 흘렀다. 샌프란시스코의 히피 청년 리오는 이제 중년의 음반 프로듀서가 되어 있었다. 그는 수많은 밴드의 성공과 실패를 지켜보며 음악 산업의 냉혹함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지만, 가슴속에는 여전히 1966년 아발론 볼룸에서 느꼈던 그 뜨거운 열정을 간직하고 있었다.

1988년 6월 11일, 그는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 와 있었다. 그의 앞에는 7만 2천 명의 관중이 파도처럼 넘실거렸고, 무대 위에서는 에릭 클랩튼, 조지 마이클, 스팅, 유리스믹스 등 시대의 아이콘들이 차례로 올라와 연주하고 노래했다. 이것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악명 높은 인종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싸우다 26년째 감옥에 갇혀 있는 한 남자, 넬슨 만델라의 70번째 생일을 축하하고 그의 석방을 촉구하기 위한 거대한 외침이었다.

리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스크린에 비친 만델라의 젊은 시절 사진과, 어느새 70대 노인이 되어버린 그의 현재 모습을 번갈아 보았다. 한 인간의 삶을 통째로 앗아간 부당한 권력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그 순간, 스티비 원더의 노랫소리가 스타디움을 가득 채웠다.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사랑한다는 그 단순한 말이, 인종과 국경을 넘어 수십억 명의 마음을 하나로 묶고 있었다.

"이것 봐, 클로이. 음악은 정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몰라."

리오의 옆에는 런던에서 활동하는 베테랑 음악 저널리스트가 된 클로이가 함께 있었다. 22년 전, 로저 달트리의 사망 오보에 눈물 흘리던 소녀는 이제 펜으로 음악의 역사를 기록하는 단단한 여성이 되어 있었다.

"22년 전, 'Paint It Black'을 들으며 세상이 온통 검은색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오늘 이곳의 음악은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색이 필요한지를, 그 모든 색이 어우러져야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고 있어."

클로이는 수첩에 빠르게 메모하며 말했다. 그녀의 눈은 무대 위 아티스트들과 그들의 음악에 열광하는 관중,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만델라'라는 이름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 콘서트는 전 세계 67개국,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생중계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자선 공연을 넘어, 음악이라는 보편적인 언어가 어떻게 정치적 억압의 두꺼운 벽을 허물고 인간의 존엄성을 외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리오는 생각했다. 1966년 재니스 조플린의 노래가 개인의 해방을 위한 외침이었다면, 1988년 웸블리의 노래는 인류 전체의 해방을 위한 연대의 함성이었다. 음악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자, 시대를 이끌어가는 깃발이 될 수 있음을 그는 다시 한번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 거대한 함성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었다. 2년 뒤, 넬슨 만델라는 정말로 석방되었고,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어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했다. 1988년 6월 11일은 음악이 이룬 가장 위대한 승리의 날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시간은 다시 흐르고, 세상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갔다.

1991년 6월 11일, 리오는 LA의 한 녹음 스튜디오에서 스키드 로우의 2집 앨범 'Slave to the Grind'가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전까지 헤비메탈 앨범이 발매 첫 주에 1위를 차지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세상은 더 빠르고, 더 강하고, 더 시끄러운 사운드를 원하고 있었다. 리오는 세바스찬 바흐의 날카로운 고음과 육중한 기타 리프를 들으며 생각했다. 웸블리의 연대와 희망의 메시지는 어디로 가고, 이제 세상은 다시 분노와 저항의 소음으로 가득 차는 것일까. 음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다른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2002년 6월 11일, 클로이는 아일랜드의 한 고성에서 열린 폴 매카트니의 결혼식 기사를 쓰고 있었다. 비틀즈라는 전설, 그리고 그의 영원한 동반자였던 린다 매카트니와의 사별. 그 모든 서사를 뒤로하고 모델 출신의 헤더 밀스와 재혼하는 그의 모습은 전 세계의 가십거리가 되었다. 클로이는 씁쓸함을 느꼈다. 한때 세상을 바꾸려 했던 위대한 아티스트의 삶이 이제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가십으로 소비되고 있었다. 그녀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생각했다. 위대한 음악도, 음악가의 삶도 결국 시간의 흐름 속에서 평범한 인간의 희로애락으로 귀결되는 것일까.

그리고 2013년 6월 11일, 리오는 자신의 텍사스 농장 베란다에 앉아 조니 스미스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향년 90세. 'Walk, Don't Run'의 원곡자로 유명한 재즈 기타의 거장. 그의 부고 기사는 인터넷 뉴스 한구석에 작게 실려 있을 뿐이었다. 리오는 눈을 감고 조니 스미스의 유려하고 섬세한 기타 연주를 떠올렸다. 세상의 소음과는 거리가 먼, 고요하고 깊은 울림을 주는 음악이었다.

그는 문득 1949년 6월 11일, 텍사스 프랭크스톤에서 태어난 한 아이를 생각했다. ZZ TOP의 드러머, 프랭크 비어드. 그는 1969년 밴드에 합류한 이후 단 한 번도 멤버 교체 없이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언제나 긴 수염의 두 기타리스트에게 향했지만, 프랭크는 그들 뒤에서 변함없이 단단한 리듬으로 밴드의 중심을 잡았다. 그는 이제 텍사스 리치몬드에서 거대한 농장을 운영하며, 1982년에 결혼한 아내와 세 자녀와 함께 평온한 삶을 살고 있었다.

리오는 깨달았다. 세상은 재니스 조플린의 절규로, 롤링 스톤즈의 냉소로, 웸블리의 함성으로, 스키드 로우의 분노로 채워지며 격변해왔다. 하지만 그 모든 소용돌이 속에서도, 어떤 이들은 프랭크 비어드처럼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꾸준한 박동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조니 스미스가 평생에 걸쳐 자신만의 기타 선율을 다듬었듯이.

그것이 바로 음악의 진짜 힘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함성이 되는 동시에, 한 개인의 삶을 묵묵히 지탱하는 심장 박동이 되어주는 것.

리오와 클로이는 이제 은퇴한 노인이 되어 가끔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그들은 6월 11일이 되면 어김없이 그날 있었던 음악의 역사들을 떠올린다. 재니스의 첫 무대, 로저 달트리의 사망 오보, 웸블리의 감동, 그리고 그 모든 사건의 시작점에 있었던 텍사스의 한 드러머.

리오는 가끔 ZZ TOP의 라이브 영상을 찾아본다.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으로 무대 뒤에서 드럼을 치는 프랭크 비어드를 보며 미소 짓는다. 그의 드럼 비트는 1949년 텍사스의 먼지 속에서 시작된 첫 울음처럼 여전히 힘차고 정직하다.

음악은 그렇게 흐른다. 어떤 날은 역사를 바꾸는 거대한 강물이 되고, 어떤 날은 한 사람의 인생을 적시는 잔잔한 시냇물이 된다. 6월 11일이라는 하루의 단편들 속에, 우리는 그 모든 흐름을 본다. 자유와 저항, 사랑과 연대, 분노와 상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꾸준한 리듬. 그 리듬이 계속되는 한, 음악의 이야기는,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쿵, 쿵, 쿵, 쿵. 텍사스의 심장 박동이 여전히 세상 어딘가에서 울리고 있다.

https://youtu.be/5wCUlPNlQuA?list=RD5wCUlPNlQuA

Rolling Stones Paint It Black HDPor Favor Seguime en Twitterhttps://twitter.com/AguusVidesPor Fa...www.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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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Bastard | 작성시간 26.06.12 음악이 개인의 해방을 넘어 인류의 연대로 나아가는 과정을 한 편의 소설처럼 아름답게 그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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