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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소리: 1992년의 폭풍
1992년 6월의 도쿄는 습했다. 레코드 샵 '디스크 유니온'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에어컨 바람보다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매장 가득 울려 퍼지는 낯선 굉음이었다. 나는 입구 근처에 멈춰 서서 귀를 기울였다.
낮게 깔리는 육중한 저음, 그리고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기괴하면서도 리드미컬한 기타 리프. 그것은 판테라(Pantera)의 다임백 대럴을 연상시키는 그루브였고, 동시에 익스트림(Extreme)의 누노 베텐커트가 보여주던 날카로운 펑키 커팅이 뒤섞인 기묘한 사운드였다.
"이게 누구 노래지? 신인인가?"
나는 매대 앞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요코오 타다노리가 디자인한, 강렬하고도 전위적인 아트워크가 그려진 CD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앨범 타이틀은 간결했다. 《Loudness》.
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라우드니스? 내가 알던 그 라우드니스라고? 80년대 일본 메탈의 자존심이자, 'Crazy Nights'의 명쾌한 멜로디와 화려한 태핑으로 전 세계를 호령하던 그 오소독스한 메탈 밴드?
당혹감이 밀려왔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내가 알던 아키라 타카사키의 정갈한 속주가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더 공격적이었고, 훨씬 더 지저분했으며, 무엇보다도 '그루브'했다. 80년대의 화려한 글램 메탈 사운드는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홀린 듯 한정판 박스 세트를 집어 들었다. 묵직한 CD 케이스 안에는 기타 피크와 스티커, 그리고 멤버들의 사인이 담긴 티셔츠가 들어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내 관심은 그런 부록에 있지 않았다. 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문 가판대에는 너바나(Nirvana)의 커트 코베인 사진이 대대적으로 걸려 있었다. 90년대 초반, 음악계의 지각변동은 잔인했다. 시애틀에서 불어온 '그런지'라는 이름의 폭풍은 80년대를 지배했던 화려한 메탈 영웅들을 단숨에 구시대의 유물로 만들어버렸다.
라우드니스 역시 그 폭풍을 피할 수 없었다. 미국 레이블과의 계약은 종료되었고, 밴드는 존립의 기로에 서 있었다. 아키라 타카사키는 결단을 내렸다. 기존의 베이시스트 야마시타 마사요시가 떠난 자리에는 전 X Japan의 카리스마, 사와다 타이지가 합류했다. 그리고 미국인 보컬 마이크 베세라가 떠난 빈자리에는 EZO 출신의 야마다 마사키가 들어왔다.
나는 방 안의 오디오에 CD를 밀어 넣었다. 첫 곡 'Pray for the Dead'가 흘러나오는 순간, 나는 다시 한번 얼어붙었다.
"이건... 배신이다."
입술 사이로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키라 타카사키가 커트 코베인에게 무릎을 꿇은 것처럼 보였다. 80년대의 그 고결한 메탈 정신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유행을 쫓아 그루브 메탈과 훵크를 뒤섞어놓은 이 사운드는, 골수 팬인 나에게는 일종의 윤리적 타락처럼 느껴졌다. 아키라의 기타는 더 이상 하늘을 찌르는 고음의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대신 땅바닥을 긁어대는 둔탁하고 헤비한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타이지의 베이스는 또 어떤가. 그는 엑스 재팬 시절의 화려한 라인 대신, 펑키한 슬랩 연주로 곡의 밑바닥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하지만 앨범이 중반부로 넘어갈수록, 나의 불쾌감은 묘한 경외감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Firestorm'이 터져 나왔을 때, 나는 깨달았다. 그들은 정통 메탈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80년대라는 감옥에 갇혀 있던 자신들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었다. 아키라 타카사키는 미국 시장에서 활동하며 제작자들로부터 끊임없이 '더 상업적으로, 더 멜로디컬하게' 만들라는 강요를 받아왔다. 이 앨범의 공격성은 그 억눌렸던 창작욕의 폭발이었다.
"그래, 이건 타협이 아니라 반격이야."
나는 볼륨을 높였다. 야마다 마사키의 보컬은 전임자들처럼 초고음역대를 내지르지는 않았지만, 그에게는 독보적인 '아우라'가 있었다. 그는 아키라가 설계한 이 복잡하고 무거운 미로 속을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유영하고 있었다. 그는 1992년이라는 시대가 요구하는 보컬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음악적으로 보았을 때, 이 앨범은 완벽했다. 기존 라우드니스가 가졌던 '일본 밴드로서의 한계'—어딘가 정형화되어 있고 보수적이었던 틀—를 완전히 깨부수고 있었다. 그들은 메인스트림의 흐름을 수용하면서도, 그 안에 자신들만의 동양적인 색채와 서슬 퍼런 메탈의 정체성을 녹여냈다.
앨범은 일본 오리콘 차트 2위에 올랐다. 라우드니스 역사상 가장 높은 순위였다. 대중은 이들의 변신에 열광했다. 나카노 선플라자에서 열린 공연은 그야말로 도살장(Slaughter House)을 방불케 하는 열기로 가득 찼다.
나는 그 라이브 현장에 있었다. 무대 위에서 타이지와 아키라가 만들어내는 리듬의 파도는 관객들을 집어삼켰다. 야마다 마사키가 마이크를 잡고 포효할 때,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라우드니스를 그리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진화했다. 시대의 흐름에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을 타고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한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다시 한번 앨범을 들었다. 처음에 느꼈던 그 당혹감은 이제 '감칠맛'으로 변해 있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새로운 소리가 들렸고, 아키라의 기타 연주 속에 숨겨진 치밀한 계산과 열정이 느껴졌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은 1992년의 이 앨범을 라우드니스의 '가장 이질적인 명반'으로 기억한다. 누군가는 여전히 변절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최고의 진보라 말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해 여름 라우드니스가 보여준 그 뜨거운 불꽃이 없었다면 일본 헤비메탈의 역사는 훨씬 더 단조로웠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커트 코베인의 시대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생존을 증명했다.
나는 지금도 가끔 요코오 타다노리의 그 기괴한 앨범 커버를 꺼내 본다. 그리고 'Firestorm'의 첫 소절을 듣는다. 그러면 1992년의 그 습한 공기와, 낡은 가죽 재킷을 입고 레코드 샵 앞에 서 있던 나의 당혹감이 떠오른다. 그리고 곧이어 확신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라우드니스였다고.
https://youtu.be/QCwAtrQmNlM?list=RDQCwAtrQmNlM
LOUDNESS - FireStorm -Welcome to the Slaughter house (1992)www.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