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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버틴다
#라디오에서흐르는별빛
#청춘의사운드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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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하늘은 6월의 열기를 머금은 채 눅눅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낡은 고시원 ‘헤라 하우스’의 원장, 헤라는 관리실 책상 앞에 앉아 낡은 라디오의 다이얼을 맞추고 있었다. 지지직거리는 노이즈 사이로 익숙한 선율이 흘러나왔다. 킹 크림슨(King Crimson)의 'Starless'. 묵직한 베이스 라인이 좁고 어두운 고시원 복도를 따라 낮게 깔렸다.
“오늘은 6월 12일인가….”
헤라는 달력을 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음악을 사랑했던 젊은 시절의 그에게 오늘이라는 날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수많은 음악적 거장들이 태어나고, 역사가 뒤바뀌었던 날. 그는 습관처럼 책상 옆에 놓인 빛바랜 노트를 펼쳤다. 그곳에는 그가 수집해온 음악의 연대기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는 펜을 들어 오늘의 기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1941년 6월 12일.
퓨전 재즈의 혁명가, 칙 코리아(Chick Corea)가 메사추세츠주 첼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건반 위에서 춤추던 그 유연한 리듬처럼, 내 고시원 생활도 좀 경쾌할 순 없을까.
1949년 6월 12일.
그리고 오늘 내가 가장 깊게 추억하는 이름, 존 웨튼(John Wetton)이 영국 더비에서 태어났다. 킹 크림슨, UK, 아시아(ASIA)까지… 그는 내 청춘의 영웅이었다.
기록을 써 내려가던 헤라의 귓가에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꽂혔다. 302호 고시생이 방음 문제를 두고 또 옆방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양이었다. 헤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돋보기안경을 벗었다. 고시원 원장이라는 직업은 음악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0.5평 남짓한 방들이 벌집처럼 늘어선 이곳에서 그는 거장들의 선율 대신 사람들의 비루한 생존의 소음을 관리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복도로 나가 상황을 정리했다. 사과를 하고, 달래고, 때로는 엄하게 꾸짖으며 사람들을 각자의 ‘방’이라는 고립된 섬으로 돌려보냈다. 다시 관리실로 돌아온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1965년의 기록이었다.
1965년 6월 12일.
비틀즈가 MBE 훈장을 받는다는 발표가 있던 날. 영국 귀족들은 '광대'들에게 훈장을 준다며 분노해 훈장을 반납하겠다고 난리를 피웠지. 하지만 여왕은 굽히지 않았어. 결국 비틀즈는 10월에 버킹엄 궁에 입성했지.
“훈장이라….”
헤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 좁은 고시원을 지키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에게도 훈장 하나쯤은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매일 새벽 인력시장으로 나가는 405호 김 씨에게도, 공무원 시험에 열 번도 넘게 떨어진 201호 최 군에게도 말이다.
그는 다시 존 웨튼의 생애를 떠올렸다. 1971년 'Mogul Thrash'로 시작해 킹 크림슨의 명반들에 참여하며 베이스와 보컬로 이름을 떨쳤던 그. 이후 에디 잡슨, 빌 브루포드와 함께 'UK'라는 슈퍼그룹을 결성해 프로그레시브 록의 정점을 찍었던 인물. 그리고 80년대, 스티브 하우와 칼 파머 등과 함께 '아시아(ASIA)'를 결성해 전 세계적으로 800만 장이 넘는 앨범을 팔아치우며 대중적 성공까지 거머쥐었던 그 베테랑 뮤지션.
“존 웨튼도 대장암으로 떠나기 전까지 끊임없이 음악을 했지.”
2017년 1월 31일, 고인이 수면 중에 조용히 피안의 그늘로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헤라는 마치 자신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67세의 나이. 누군가에게는 은퇴의 나이였겠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현역의 시간이었다.
헤라는 먼지가 쌓인 낡은 베이스 기타 케이스를 바라보았다. 고시원 원장이 되기 전, 그 역시 밴드에서 베이스를 쳤다. 존 웨튼처럼 묵직하면서도 멜로디컬한 라인을 뽑아내고 싶어 밤을 새워 연습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굳은살이 다 사라진 부드러운 손가락을 만져보며, 그는 라디오 볼륨을 조금 더 높였다.
마침 라디오에서는 1982년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열린 핵무장 해제 촉구 공연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잭슨 브라운이 수많은 군중 앞에서 평화를 노래하던 그 뜨거웠던 여름날의 기록. 그리고 1966년 오늘, 펫 분이 한국 장충체육관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가졌던 그 역사적인 순간까지.
“세상은 이렇게 뜨겁게 흘러왔는데,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나.”
헤라는 문득 고시원 벽면에 붙은 cctv 화면을 보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 그들은 각자의 'No Limits'(1993년 투 언리미티드의 앨범 제목처럼)를 꿈꾸며 이곳에 들어왔겠지만, 현실은 늘 한계의 연속이었다.
그때, 고시원 입구의 벨이 울렸다. 새로 방을 구하러 온 젊은 청년이었다. 기타 가방을 메고 있는 청년의 모습에서 헤라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방 있어요?”
“있지. 좀 좁긴 하지만… 음악 하나?”
“아, 네. 연습은 밖에서 합니다. 폐 안 끼치게요.”
헤라는 청년에게 열쇠를 건네며 툭 한마디를 던졌다.
“오늘이 존 웨튼 생일인 건 아나? 킹 크림슨의 베이시스트.”
청년은 당황한 듯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 들어본 것 같아요. 대단한 분이라고.”
헤라는 빙그레 웃었다. 그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오늘의 마지막 기록을 정리했다.
1999년 6월 12일.
제니퍼 로페즈의 'If You Had My Love'가 빌보드 1위에 올라 5주간 머물렀던 날. 세상은 늘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내고, 낡은 영웅들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존 웨튼의 그 깊은 목소리와 칙 코리아의 정교한 타건은 누군가의 가슴 속에서 여전히 맥박치고 있다.
헤라는 라디오를 끄고 고시원의 조명을 하나둘 점검하기 시작했다. 비록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무대는 아니지만, 이 좁은 복도가 그에게는 오늘의 무대였다. 2017년 차가운 겨울밤, 수면 중에 조용히 생을 마감했던 존 웨튼처럼, 그 역시 언젠가 평온하게 이 연대기를 끝맺기를 바라며.
그는 어두운 복도를 걸으며 나직이 흥얼거렸다. 'Heat of the Moment'. 아시아의 그 찬란했던 히트곡이 고시원의 눅눅한 공기를 가르고 나직하게 퍼져 나갔다.
“그래, 바로 이 순간이지. 인생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뿐이야.”
중년의 원장 헤라는 낡은 노트를 덮고, 자신의 작은 왕국을 지키기 위해 다시금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6월 12일, 수많은 별이 태어나고 빛났던 그날의 기록이 그의 가슴 속에 훈장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https://youtu.be/OfR6_V91fG8?list=RDOfR6_V91fG8
King Crimson - Starless (OFFICIAL)Robert Fripp guitar & Mellotron, John Wetton bass & vocals, Bill Br...www.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