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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彼岸)의 메아리: 존 웨튼을 위한 야상곡 (확장판)
창밖으로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번져오고 있었다. 2026년 6월 12일. 달력을 바라보던 '바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창틀에 기대앉았다. 이제 그의 나이도 어느덧 쉰여섯. 거울 속에는 화려했던 무대 위 보컬리스트의 모습 대신, 세월의 흔적을 묵묵히 받아들인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협탁 위에는 어젯밤 마시다 남은 위스키 잔이 옅은 갈색 빛을 띠며 놓여 있었고, 방 안은 차가운 새벽 공기로 가득 찼다.
오늘은 그에게 특별한 날이다. 바로 그의 영원한 음악적 영웅, 존 웨튼(John Wetton)이 태어난 지 77주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2017년 그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 강산이 변할 만큼의 간극을 만들었지만, 바하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존 웨튼의 자리는 단 1밀리미터도 좁아지지 않았다.
바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오래된 LP 장으로 향했다. 손끝에 닿는 수많은 레코드판의 질감은 그가 살아온 인생의 궤적과도 같았다. 그중에서도 유독 모서리가 닳아 있는 앨범 하나를 꺼냈다.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의 정점이라 불렸던 슈퍼그룹 'UK'의 데뷔 앨범이었다. 턴테이블의 바늘이 조심스럽게 레코드의 골을 타기 시작하자, 지직거리는 미세한 소음 뒤로 강렬한 신디사이저의 서막이 열렸다.
"In the Dead of the Night..."
바하의 입술이 가볍게 떨렸다. 40년 전, 그 소년이었던 시절로 기억의 시계추가 빠르게 되감기 시작했다.
40년 전인 1986년, 바하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학교에 들어간 고등학교 1학년 소년이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격동의 시기였고, 교실은 입시라는 거대한 압박감으로 숨이 막힐 듯했다. 그 숨 막히는 일상 속에서 소년 바하가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었던 통로는 낡은 카세트 라디오뿐이었다.
당시 그의 밤을 지배했던 것은 수학 공식이나 영어 단어가 아니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록 음악이었다. 밤 1시, 전영혁의 '음악세계'는 음악에 굶주린 소년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방송이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볼륨을 최대한 낮춘 채, 전파 방해로 인한 노이즈를 견디며 듣던 그 방송은 소년에게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유일한 창구였다.
어느 날 밤, 지직거리는 전파를 뚫고 신세계가 열렸다. 복잡한 변박자 위로 쏟아지는 에디 잡슨의 일렉트릭 바이올린, 알란 호스워쓰의 유려한 기타 리프, 그리고 무엇보다 바하의 심장을 꿰뚫은 것은 존 웨튼의 보컬이었다. 묵직하면서도 지적인, 그러면서도 한없이 서정적인 그 목소리. 그것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영혼의 울림이었다.
'In the Dead of the Night'.
그 곡은 바하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캄캄한 밤의 정적 속에서 들려오는 그 노래는, 마치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 소년의 내면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한밤중에(In the dead of the night), 너는 혼자라는 걸 알게 될 거야..."라는 가사는 사춘기 소년의 고독과 맞닿아 있었다. 그날 이후 바하는 존 웨튼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바다에 빠져들었다. 그는 용돈을 아껴 레코드 가게를 뒤졌고, 존 웨튼의 이름이 적힌 앨범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집하기 시작했다.
소년 바하는 존 웨튼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 그 과정은 마치 인류의 위대한 유산을 탐험하는 고고학자의 여정과도 같았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음악 잡지의 낡은 기사와 앨범 뒷면의 깨알 같은 크레딧을 대조하며 그는 존 웨튼이라는 거장의 지도를 그려나갔다.
1949년 영국 더비셔의 윌링턴에서 태어나 본머스에서 성장한 존 웨튼. 그는 단지 노래 잘하는 보컬리스트가 아니었다. 1971년 'Mogul Thrash'로 시작된 그의 경력은 당대 최고의 밴드들을 관통하고 있었다. 바하는 도서관에서 팝 백과사전을 뒤지며 그의 족적을 추적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 모든 밴드를 거칠 수 있었을까?"
바하는 감탄했다. 킹 크림슨(King Crimson)의 그 난해하고도 아름다운 세 장의 명반—'Larks' Tongues in Aspic', 'Starless and Bible Black', 'Red'—에서 보여준 그의 베이스 연주와 보컬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특히 'Starless'에서 들려준 그 처연한 목소리는 바하의 밤을 눈물로 적시게 했다. 고교 시절 친구였던 리처드 팔머 제임스와 재회하여 만들어낸 그 주옥같은 가사들은 사춘기 소년 바하의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킹 크림슨의 해체 이후, 빌 브루포드와 함께 결성했던 UK 시절은 존 웨튼의 음악적 역량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다. 그리고 80년대, 그는 또 다른 변신을 시도했다. 예스(Yes)의 스티브 하우, 제프리 다운스, 그리고 ELP의 칼 파머와 함께 결성한 '아시아(ASIA)'는 록 음악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상업적 성취 중 하나였다.
'Heat of the Moment'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 바하는 자신의 영웅이 대중의 사랑까지 독차지하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다. 데뷔 앨범이 미국에서만 400만 장, 전 세계적으로 800만 장 이상 팔려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그는 음악이 가진 힘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실감했다. 유라이어 힙, 위시 본 에쉬, 르네상스, 그리고 스티브 해킷과의 협업까지... 존 웨튼은 록의 역사 그 자체였고, 바하에게는 살아있는 신화였다.
시간이 흘러 바하가 청년이 되었을 때, 그는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90년대 중반, 그의 기타 히어로였던 잉베이 맘스틴이 존 웨튼의 'In the Dead of the Night'을 커버한 것이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바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그 화려하고 빠른 잉베이의 스타일이 존 웨튼의 그 묵직한 서정성을 담아낼 수 있을까?" 하지만 앨범을 재생하는 순간, 의구심은 경탄으로 바뀌었다. 화려한 속주 기타와 더욱 헤비해진 편곡 속에서도, 바하가 발견한 것은 존 웨튼이 남긴 멜로디의 위대함이었다. 잉베이의 기타 선율 위로 겹쳐지는 존 웨튼의 원곡 이미지는 바하를 다시금 전율케 했다.
"시간이 흘러도, 연주자가 바뀌어도, 이 곡의 영혼은 변하지 않는구나."
그때 바하는 깨달았다. 좋은 음악이란 시대를 관통하고, 세대를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는 것을. 존 웨튼이 1970년대에 뿌린 씨앗은 1980년대 소년 바하의 가슴에서 싹을 틔웠고, 1990년대의 청년 바하를 거쳐, 2026년의 중년 바하에게까지 여전히 푸른 잎을 틔우고 있었다. 음악은 육체를 넘어선 영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바하 자신도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공연 때마다 존 웨튼의 곡을 한 곡씩 리스트에 넣었다. 관객들은 생소해하기도 했지만, 바하가 부르는 'The Smile Has Left Your Eyes'를 들으며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도 있었다. 그는 존 웨튼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것은 관객들에게 또 다른 위로가 되었다.
음악이 끝나고 턴테이블의 바늘이 멈췄다. 방 안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 정적은 공허함이 아니라, 음악이 남기고 간 여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하는 2017년 1월 31일의 뉴스를 기억한다. 대장암과 싸우던 노(老) 거장이 수면 중에 조용히 피안(彼岸)의 그늘로 떠났다는 소식. 향년 67세. 록의 거성 하나가 하늘로 돌아간 날, 바하는 밤새도록 그의 음반들을 들으며 울었다. 마치 자신의 청춘 한 조각이 영영 떨어져 나간 것 같은 상실감이었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새로운 목소리를 들을 수 없구나"라는 절망감이 그를 짓눌렀다.
하지만 오늘, 2026년 6월 12일의 바하는 울지 않는다. 대신 그는 자신의 기타를 집어 들었다. 낡은 펜더 베이스의 줄을 튕기자 묵직한 저음이 방 안을 울렸다. 존 웨튼이 연주하던 그 방식대로, 그는 베이스를 가슴 높이까지 끌어올려 잡았다.
"존, 당신은 떠났지만 당신의 목소리는 여전히 이곳에 살아있습니다. 40년 전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던 소년의 가슴 속에, 그리고 56세가 된 지금의 내 목소리 속에 말이죠."
바하는 창밖의 새벽하늘을 향해 나직하게 노래를 시작했다.
"In the Dead of the Night..."
그의 목소리는 이제 존 웨튼의 그것처럼 깊고 두터워져 있었다. 세월이 준 선물이었다. 존 웨튼이 태어난 오늘, 바하는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이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사실(Fact)로 기록된 그의 삶은 끝났을지 몰라도, 음악이라는 픽션(Fiction)보다 더 환상적인 팩션(Faction)의 역사는 계속해서 연주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하는 창문을 열었다. 새벽 공기가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피안으로 떠난 거장은 그곳에서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아마도 그는 여전히 베이스를 메고, 특유의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우주의 선율을 연주하고 있을 것이다.
청소년기 꿈꾸게 했던 그 목소리는, 이제 바하 자신의 목소리가 되어 다음 세대에게 전달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하는 자신의 아들이 거실로 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이제 막 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열다섯 살 소년. 바하는 아들에게 헤드폰을 건네며 말했다.
"들어보렴. 이게 바로 아빠의 영혼을 깨웠던 목소리란다."
그것이 바로 록 스피릿의 진정한 계승이자, 피안으로 떠난 거장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예우였다. 2026년의 새벽, 존 웨튼의 메아리는 그렇게 또 다른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바하는 기타를 내려놓고 책상 앞에 앉았다. 그는 오늘 느낀 감정들을 악보 위에 옮기기 시작했다. 곡의 제목은 '피안의 메아리'. 존 웨튼에게 헌정하는 그만의 야상곡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죽고 난 뒤에도, 누군가는 또다시 6월 12일의 새벽에 존 웨튼의 음악을 틀 것이라는 사실을. 음악은 죽음을 이기는 유일한 마법이었다. 존 웨튼이 남긴 수많은 앨범들은 단순한 플라스틱 조각이 아니라, 영원을 향해 쏘아 올린 신호탄이었다.
"고맙습니다, 존. 당신 덕분에 나의 밤은 결코 외롭지 않았습니다."
바하의 혼잣말이 새벽바람을 타고 창밖으로 흩어졌다. 멀리서 들려오는 도시의 소음조차도 이 순간만큼은 완벽한 오케스트라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존 웨튼의 77번째 생일, 세상은 여전히 그의 노래로 숨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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