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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의 백비트
20대 중반, 나는 낡은 비디오 가게 구석에서 먼지 쌓인 테이프 하나를 발견했다. 제목은 '백비트(Backbeat)'. '파워 오브 원'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 스티븐 도프가 주연이라는 사실에 이끌려 무심코 집어 들었다. 비틀즈 영화였지만, 주인공은 존 레논도, 폴 매카트니도 아니었다. 영화는 비틀즈라는 거대한 신화의 여명기에 잠시 머물다 사라진 한 청년, 스튜어트 서트클리프(Stuart Sutcliffe)의 짧고 강렬했던 삶을 비추고 있었다.
1940년 6월 23일, 스튜어트 서트클리프가 태어났다. 비틀즈의 원년 멤버이자 베이시스트. 하지만 그는 폴 매카트니에게 자리를 내주고 밴드를 떠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62년, 뇌출혈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겨우 스물둘이었다. 영화는 그의 짧은 생애를 담담하게 따라갔고, 나는 그날 밤, 세상이 기억하는 비틀즈가 아닌, 스튜어트가 보았던 비틀즈의 시작을, 그리고 그의 고독한 예술혼을 엿볼 수 있었다.
그의 생일인 6월 23일은 음악사에서 유독 많은 이름이 오르내리는 날이다. 1948년에는 에이프릴 와인의 마일스 굿윈이, 1962년에는 소닉 유스의 스티브 셸리가 태어났다. 1984년에는 듀란듀란의 'The Reflex'가 빌보드 정상에 올랐고, 2012년에는 칼리 레이 젭슨의 'Call Me Maybe'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수많은 탄생과 성공, 사건들이 이 날짜 위에 켜켜이 쌓여있다. 하지만 내게 6월 23일은 언제나 스튜어트 서트클리프라는 이름으로 시작된다. 세상의 가장 밝은 빛이 터져 나오기 직전, 그 빛의 뒤편에서 조용히 스러져간 한 청년의 이야기로 말이다.
1960년, 독일 함부르크의 공기는 리버풀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퀴퀴한 담배 연기와 값싼 맥주 거품, 그리고 밤을 잊은 젊은이들의 땀 냄새가 뒤섞인 카이저켈러 클럽의 지하. 스튜어트 서트클리프는 낡은 호프너 베이스 기타를 어색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그의 손은 붓과 물감을 쥘 때 가장 자연스러웠지만, 지금은 두꺼운 기타 줄 위를 서투르게 헤매고 있었다.
"스튜, 이쪽이야! 정신 차려!"
무대 건너편에서 존 레논이 소리쳤다. 조명 아래 그의 얼굴은 장난기 넘치는 악마처럼 보였다. 존의 외침은 단순한 신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명령이었고, 애정이었으며, 때로는 스튜어트의 영혼을 꿰뚫는 날카로운 채찍질이었다. 스튜어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존이 만들어내는 거친 로큰롤 리듬에 몸을 맡기려 애썼다. 폴은 현란하게 베이스 라인을 연주하는 척하며 곁눈질로 스튜어트의 엉성한 운지를 지적했고, 조지는 묵묵히 자신의 기타에만 집중했다. 드러머 피트 베스트는 이 모든 소란을 하나의 비트로 묶어내고 있었다.
그들은 '실버 비틀즈'였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그저 리버풀에서 온 시끄러운 밴드일 뿐이었다. 스튜어트는 자신이 이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매일 밤 느꼈다. 그는 화가였다. 리버풀 예술학교에서 가장 촉망받는 재능이었고, 그의 그림은 이미 지역 미술계에서 소소한 명성을 얻고 있었다. 존이 그의 그림을 75파운드라는 거금에 사주며 "이 돈으로 베이스 기타를 사. 그리고 우리 밴드에 들어와."라고 말했을 때, 스튜어트는 거절할 수 없었다. 존의 눈에는 거부할 수 없는 광기와 매력이 있었다. 존은 스튜어트의 예술적 감각과 고뇌에 찬 눈빛을 사랑했다. 밴드에 '제임스 딘' 같은 이미지를 더해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스튜어트는 길 잃은 영혼이었다. 연주 실력은 형편없었고, 관객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종종 등을 돌리고 연주했다. 그 모습이 오히려 신비롭게 비춰지기도 했지만, 스튜어트 자신은 속으로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그의 세상은 소리가 아닌 색과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시끄러운 앰프 소음 속에서 그는 캔버스 위에 펼쳐지던 고요한 폭풍을 그리워했다.
그날 밤도 공연은 광란의 도가니였다. 술에 취한 독일 선원들과 젊은이들이 뒤엉켜 춤을 췄다. 공연이 끝나고 녹초가 된 멤버들이 대기실로 돌아왔을 때, 폴이 불쑥 말을 던졌다.
"스튜, 오늘 또 박자를 놓쳤어. 'Long Tall Sally'에서 네 베이스 소리가 완전히 따로 놀았다고."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스튜어트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해, 폴."
존이 스튜어트의 어깨를 감싸며 폴을 쏘아붙였다.
"스튜는 우리 멤버야. 그게 중요한 거지. 안 그래?"
"음악을 제대로 못하는데 어떻게 멤버야? 우린 최고가 될 거라고. 리버풀로 돌아가면 모두 우리에게 열광할 거야. 그러려면 연습해야지, 그림 그릴 시간이 어디 있어?"
폴의 말은 비수처럼 날아와 스튜어트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찔렀다. 그림. 그것은 그의 정체성이자 도피처였다. 함부르크의 작은 숙소 한쪽 구석에 몰래 숨겨둔 작은 스케치북만이 그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는 멤버들 몰래 밤을 새워 함부르크의 어두운 풍경과 무대 위 멤버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크로키로 남기곤 했다.
그 순간, 대기실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짧은 금발에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강렬하고 지적인 눈빛의 여자. 아스트리드 커처(Astrid Kirchherr)였다. 그녀는 사진작가였고, 이 리버풀 촌뜨기들의 원초적인 에너지에 매료되어 매일 밤 클럽을 찾았다.
"사진 몇 장 찍어도 될까요?"
그녀의 시선은 다른 멤버들을 스쳐 지나 스튜어트에게 머물렀다. 그의 고독하고 우수에 찬 얼굴에서 다른 멤버들에게는 없는 깊이를 발견한 것이다. 그날 이후, 스튜어트의 세상은 두 개로 나뉘었다. 밤에는 아스트리드와 함께였고, 새벽에는 비틀즈와 함께였다.
아스트리드는 스튜어트의 예술적 갈증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의 서툰 연주가 아닌, 그의 스케치북에 담긴 거친 선과 추상적인 형태들을 사랑했다. 그녀의 스튜디오에서 스튜어트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물감 냄새와 렌즈 오일 냄새가 뒤섞인 그곳에서 그는 더 이상 '연주 못하는 베이시스트'가 아닌, '화가 스튜어트 서트클리프'가 되었다.
"넌 여기에 속한 사람이 아니야, 스튜."
어느 날 아스트리드가 그의 그림을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네 영혼은 캔버스 위에 있어. 저 시끄러운 무대 위가 아니라."
그녀는 스튜어트의 머리를 자신처럼 앞으로 빗어내린 독특한 스타일로 만들어주었다. 곧 다른 멤버들도 그 스타일을 따라 하기 시작했고, 이는 훗날 '비틀즈 헤어컷'의 원형이 되었다. 그는 밴드의 외적인 스타일에 영향을 주었지만, 음악적으로는 점점 더 고립되어 갔다.
존은 스튜어트의 변화를 불안하게 지켜보았다. 자신과 가장 깊은 예술적 교감을 나누던 친구가 낯선 여자에게, 그리고 낯선 예술의 세계로 떠나가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질투와 우정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었다.
"그 독일 여자랑 놀더니 변했어. 넌 우리와 함께 별이 되어야지, 고작 그림쪼가리나 그리면서 썩을 셈이야?"
존의 비난에도 스튜어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이미 자신의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함부르크 미술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은 날, 그는 결심을 굳혔다.
1961년 여름, 스튜어트는 멤버들을 불러 모았다.
"나, 밴드를 그만두겠어."
침묵이 흘렀다. 폴은 내심 안도하는 표정이었지만 애써 감췄다. 조지는 말이 없었다.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존이었다.
"뭐라고? 배신하는 거야?"
존의 목소리가 떨렸다.
"배신이 아니야, 존. 이건 내 길이야. 난 뮤지션이 아니라 화가야. 너희는... 너희는 정말 대단해. 분명 세상 최고의 밴드가 될 거야. 하지만 난 아니야. 내 자리는 여기가 아니라고."
스튜어트는 자신의 낡은 베이스 기타를 폴에게 건넸다.
"이건 네가 맡아줘. 너라면 이걸로 진짜 음악을 만들 수 있을 테니."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스튜어트는 아스트리드와 함부르크에 남았고, 비틀즈는 리버풀로 돌아갔다. 그는 비틀즈라는 거대한 로켓이 발사되기 직전, 스스로 분리되어 나온 1단 추진체와 같았다.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로켓을 궤도에 올려놓고, 자신은 대기권 밖으로 조용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함부르크에서의 삶은 행복했다. 아스트리드와 약혼했고,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그의 그림은 점점 더 대담해지고 추상적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끔찍한 두통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함부르크 시절, 클럽에서 싸움에 휘말려 머리를 다친 후유증이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때로는 시야가 흐려지며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들은 원인을 찾지 못했다.
1962년 4월, 비틀즈는 다시 함부르크를 찾았다. 스타 클럽에서의 공연을 위해서였다. 그들은 이제 예전의 풋내기 밴드가 아니었다.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을 만났고, 음반 계약을 앞두고 있었다. 그들은 옛 친구를 만나러 아스트리드의 집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고 나타난 스튜어트의 모습에 멤버들은 말을 잃었다. 불과 1년 전의 그가 아니었다.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 퀭한 눈, 앙상하게 마른 몸. 그는 간신히 미소를 지으며 친구들을 맞았다.
"왔구나, 존."
존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친구를 끌어안았다. 너무나 가볍고 연약했다. 그날 밤, 그들은 오랜만에 함께 웃고 떠들었지만, 그 웃음 뒤에는 짙은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스튜어트는 자신의 새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격렬하고 어두운 색채가 뒤엉킨, 마치 고통의 비명처럼 보이는 추상화들이었다.
"곧 너희들의 시대가 올 거야. 난 여기서 다 지켜볼게."
스튜어트가 힘겹게 말했다.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며칠 후인 4월 10일, 스튜어트는 아스트리드의 품에서 쓰러졌다. 구급차가 달려왔지만, 병원으로 가는 길에 그는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사인은 뇌출혈. 그의 머릿속에서 조용히 자라던 종양이 마침내 그의 젊은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비틀즈가 함부르크에 도착한 지 불과 사흘 만의 일이었다.
존은 친구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장례식에도 가지 못하고, 숙소에 틀어박혀 히스테릭하게 웃고 울기를 반복했다. 가장 친한 친구, 자신의 예술적 동반자를 잃은 상실감은 그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훗날 비틀즈가 발표한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커버에는 수많은 유명인의 얼굴들 사이에, 젊은 날의 스튜어트 서트클리프의 사진이 조용히 자리하게 된다. 그것은 세상이 잊어버린 멤버를 향한 존의 마지막 인사였다.
나는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되감으며 생각한다. 만약 스튜어트가 살아남았다면, 그는 어떤 화가가 되었을까. 그의 그림은 비틀즈의 음악처럼 세상을 뒤흔들었을까. 어쩌면 그는 비틀즈의 성공을 멀리서 지켜보며, 자신만의 고독한 예술 세계 속에서 더 큰 행복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6월 23일. 수많은 별이 태어나고 빛나는 이 날, 나는 세상의 가장 밝은 스포트라이트가 터지기 직전, 그 빛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했던 한 청년의 '백비트'를 떠올린다. 심장의 박동처럼 조용하지만, 모든 리듬의 근원이 되는 그 소리를. 스튜어트 서트클리프. 그는 비틀즈라는 거대한 교향곡의 서막을 열어준, 짧고 슬픈 전주곡이었다. 그리고 그의 스물두 해의 삶은, 그 어떤 로큰롤보다 더 강렬하고 아픈 울림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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