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려앉은 작업실, 낡은 캔버스 앞에서 그는 붓을 들었다.
눈앞의 현실은 잿빛이지만, 그의 머릿속은 온통 불꽃으로 가득했다.
그의 제약은 바로 ‘색맹’이었다.
그는 색을 볼 수 없었기에, 색이 지닌 감정과 상징을 오직 소리로만 인지했다.
그는 낡은 헤드폰을 썼다.
스피커를 찢을 듯한 거친 디스토션 기타와 한기 서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
Burzum의 음악.
그에게 블랙 메탈은 색의 악보였다.
날카로운 기타 리프는 숲의 차가운 회색과 눈의 섬뜩한 흰색을, 원시적인 드럼 비트는 땅의 깊고 진한 검은색을 의미했다.
그는 음악이 연주하는 색의 풍경을 캔버스 위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 세상은 명도의 차이일 뿐이었으나, 음악은 그에게 색의 본질을 속삭였다.
차가운 노르웨이의 겨울 숲, 불타버린 교회, 고대 북유럽의 신화적 고독.
이 모든 것이 소리를 통해 그의 붓끝에서 재현되었다.
그는 ‘검은색’을 칠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공허와 분노의 심연을 그리고 있었다.
‘흰색’을 칠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얼어붙은 절망과 순수의 냉혹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보고 물었다.
색을 보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토록 강렬한 색채를 만들어내느냐고.
그는 대답 대신 또 다른 캔버스를 펼치고 헤드폰을 썼다.
그의 세상에서 색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혼으로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소리의 파동이 만들어내는 색의 진동을 물감으로 번역하는 유일한 번역가였다.
그의 그림은 소리가 만들어낸 풍경이었다.
https://youtu.be/QeIWpOsLpgw?list=RDQeIWpOsLpg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