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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의 계시록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스톡홀름의 새벽. 낡은 레코드 가게 ‘그라모폰’의 문틈으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가게 안, 먼지와 오래된 종이 냄새, 그리고 희미한 곰팡이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에릭은 홀로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턴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서는 검은 바이닐 한 장이 숭고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염소 머리가 그려진 앨범 재킷.
BATHORY
에릭은 이 도시의 밤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였다. 낮에는 그저 뚱한 표정의 레코드 가게 점원이지만, 해가 지면 그는 칠흑 같은 음악의 심연을 탐험하는 순례자로 변했다. 그는 수많은 밴드들의 음악을 들었다. 과도한 트레몰로 피킹으로 소음의 장벽을 쌓는 밴드, 의미 없이 길기만 한 곡으로 인내심을 시험하는 밴드, 실력 없는 연주를 ‘날것’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밴드들. 그 험난하고 혼탁한 세계 속에서 길을 잃어가던 그에게, 이 앨범은 등대와도 같았다.
“이거야…”
에릭은 나지막이 읊조렸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사운드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었다. 그것은 1984년, 아직 세상이 ‘블랙 메탈’이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제대로 정립하지 못했던 태초의 시절에 터져 나온 혼돈의 계시였다. 이 레코드는 마치 구약성서와 같았다. 이후 등장할 수많은 예언자(밴드)들이 따라야 할, 거역할 수 없는 최초의 율법. 에릭은 이 앨범을 ‘구약성서 시절만큼 위대한 순간’이라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앨범은 단 8개의 트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곡들은 놀라울 정도로 짧았다. 하지만 그 간결함 속에 응축된 긴장감은 마치 폭발 직전의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현란한 기교나 복잡한 구성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잘 벼려진 단검처럼 단순하고 치명적인 구조가 뼈대를 이루고 있었다.
“위대한 리프는 결코 현란하지 않아.”
에릭은 허공에 대고 말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설교하듯. 그는 최근 유행하는 메탈 밴드들의 리프를 떠올렸다. 속주와 태핑, 스윕 피킹으로 화려하게 수놓아진 리프들. 하지만 그것들은 휘발성이 강했다. 마치 소셜 미디어 피드에 잠시 떴다가 사라지는 포스팅처럼, 듣는 순간에는 ‘훅’하고 타오르지만 이내 기름처럼 날아가 버렸다. 기억에 남는 것은 공허함뿐.
하지만 지금 듣고 있는 이 앨범의 리프는 달랐다. 짧고, 굵고, 강렬했다. 망치로 머리를 내려치듯, 심장에 그대로 박혀버리는 원초적인 힘. 아직 후기 앨범에서 보여줄 마성의 멜로디나 섬뜩한 훅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여기에는 그 모든 것의 뿌리가 되는 원시적인 에너지가 있었다. 사비 부분은 극도로 왜곡된 디스토션 속에서도 일관된 모티브를 유지하며 어둡고 매혹적인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그때, 에릭의 귓전을 파고드는 목소리. 바로 이 앨범의 창조주, ‘쿼쏜’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독특함을 넘어 유일무이했다. 기분 나쁘게 낮은 저음으로 악마 흉내를 내며 읊조리지도 않았고, 박쥐처럼 찢어지는 고음으로 비명을 질러대지도 않았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차갑고 날카로운 고음의 그로울링. 그것은 시끄럽다기보다는, 듣는 이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주술과도 같았다. 처음에는 멍했고, 듣고 나면 귀가 아니라 영혼이 먹먹해졌다.
사운드 전체가 매우 로우-파이(Lo-fi)했지만, 결코 조잡하지 않았다. 일부러 뭉개버린 ‘개 같은 사운드’가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잘 관리된 야생의 들짐승 같았다. 날것 그대로의 질감을 유지하면서도, 댐핑감이 확실히 살아있는 거칠고 차가운 사운드. 모든 악기 파트가 하나의 거대한 냉기 덩어리처럼 에릭을 덮쳐왔다.
가게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리나였다. 검은 가죽 재킷에 밴드 티셔츠, 찢어진 청바지. 그녀는 이 가게의 단골이자, 에릭이 유일하게 음악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였다.
“또 그 앨범이야?”
리나는 익숙하다는 듯 웃으며 턴테이블을 가리켰다.
“이건 그냥 앨범이 아니야, 리나. 이건 성서야.”
에릭의 대답에 리나는 카운터에 걸터앉았다. 그녀의 시선 역시 회전하는 바이닐에 고정되었다. 바로 그때, 앨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기타 솔로가 터져 나왔다.
쿼쏜의 기타 연주. 그것은 에릭에게 있어 암흑 속에서 발견한 광명과도 같았다. 늪 속의 진주처럼, 혼탁하고 거친 사운드의 바다에서 홀로 영롱하게 빛나는 선율. 그의 솔로는 혼돈과 질서의 완벽한 결합체였다. 얼핏 들으면 되는대로 후려갈기는 ‘마구리’ 연주 같았지만, 그 속에는 치밀하게 계산된 서사가 있었다. 선율적인 듯하다가도 갑자기 불협화음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다시 처절하게 기어 올라와 비극적인 멜로디를 완성했다.
“이 솔로를 들으면… 이상한 기분이 들어.”
리나가 입을 열었다.
“마치… 아름다운 마녀와 사랑에 빠지는 기분이야.”
에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현은 정확했다. 청초한 미녀의 형상을 한 마녀. 그녀의 아름다움에 홀려 사랑을 나누는 동안, 나의 모든 정기를 남김없이 빨려나가는 느낌. 죽어가면서도 생애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그런 모순적인 쾌감. 에릭은 속으로 ‘개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이보다 더 완벽한 표현이 있을까.
“내가 평생 갈구해온 메탈의 이상이 바로 이거야.”
에릭의 목소리는 열기로 가득 찼다.
“지독하게 사악하면서도, 동시에… 한없이 청순한 소녀의 힘없는 미소가 떠오르는 연주. 이 양립할 수 없는 감정의 공존. 이게 바로 진정한 예술이야.”
그들의 대화는 음악이 잦아들 때까지 이어졌다. 앨범의 마지막 음이 스피커에서 사라지자, 가게 안에는 깊은 정적이 흘렀다. 마치 위대한 의식이 끝난 뒤의 성스러운 침묵 같았다.
“이 앨범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듣는 블랙 메탈의 절반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야.” 리나가 조용히 말했다.
그녀의 말은 진실이었다. 이 앨범은 이후 지구상에 나타난 수많은 블랙 메탈 밴드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노르웨이의 차가운 숲에서, 핀란드의 얼어붙은 호수에서, 그리스의 고대 유적지에서, 그들은 모두 이 앨범을 들으며 자신들의 사악한 음악을 잉태했다. 수많은 팬들이 이 앨범을 경전처럼 떠받들고, 그 안에 담긴 정신을 추앙했다.
에릭은 앨범 재킷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염소의 눈이 그를 똑바로 쳐다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이게 단지 처녀작이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말하지. 하지만 틀렸어.”
그는 재킷을 가슴에 품었다.
“이 앨범이 영원불멸의 바이블로 군림하는 이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전염성과 중독성, 그리고 누구도 파헤칠 수 없는 신비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야. 이건 최초의 외침이자, 최후의 계시록이다.”
에릭은 턴테이블의 바늘을 다시 첫 트랙 위로 옮겼다. 다시 한번, 태초의 혼돈이 가게 안을 가득 채웠다. 그 사운드는 단순한 소리의 집합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였고, 종교였으며, 에릭과 리나 같은 이들에게는 삶 그 자체였다. 스톡홀름의 새벽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그들의 영혼은 쿼쏜이 창조한 칠흑의 불꽃으로 환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 위대한 유산은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결코 빛이 바래지 않을 것이었다. 영원히.
https://youtu.be/dJGQzaywbKM?list=RDdJGQzaywbKM
Bathory - In Conspiracy with SatanBathory Official ChannelSpotify: https://open.spotify.com/artist/6...www.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