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어록 창고

북방의 잿더미 위에서 - 카운트의 유산

작성자화랑|작성시간26.06.07|조회수94 목록 댓글 0

#숲이들려준이야기
#피오르드의밤
#잿더미위의노래
#불꽃과그림자
#북방의어둠
#차가운영혼
#검은성냥불
#끝나지않은잔향

북방의 잿더미 위에서 - 카운트의 유산

  •  

     

노르웨이의 밤은 깊고도 차가웠다. 피오르드 사이를 흐르는 강물은 수정처럼 맑았으나, 그 물결 아래에는 태고의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다. 베르겐의 외곽, 홀멘콜렌(Holmenkollen) 교회의 첨탑이 달빛을 받아 창백하게 빛나고 있었다. 12세기에 세워진 이 목조 성당은 노르웨이의 자부심이자 기독교가 이 땅의 고대 신들을 몰아내고 세운 승전비와도 같았다.

어둠 속에서 한 그림자가 움직였다. 그는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있었으며, 눈동자에는 증오보다 더 깊은 확신이 서려 있었다. 그의 가방 안에는 휘발유 통과 몇 권의 고대 북유럽 신화 서적, 그리고 '반지의 제왕' 문고판이 들어 있었다.

"오딘의 이름으로, 이 이방인의 제단을 정화하리라."

성냥불이 켜졌다. 작은 불꽃은 순식간에 마른 목재를 타고 올라갔다. 1992년 6월 6일. 숫자의 조합마저 불길한 그 밤, 노르웨이의 하늘은 붉게 타올랐다. 그것은 단순한 방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천 년간 억눌려온 북방의 분노가 블랙 메탈이라는 기괴한 선율을 타고 터져 나온 광기의 시작이었다.

불길은 하늘을 핥으며 올라갔고, 오래된 목재가 타들어 가는 소리는 마치 고대 거인들의 포효처럼 들렸다. 그는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춤추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서, 자신의 조상들이 믿었던 신들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는 환상을 보았다. 기독교라는 외래 종교가 덮어버린 북방의 순수한 야만성이 불꽃과 함께 부활하고 있었다.

1995년 4월, 나는 베르겐 근교의 한 건물을 찾았다. 겉보기엔 평화로운 유스호스텔 같았으나, 그곳은 노르웨이에서 가장 악명 높은 범죄자들이 수용된 감옥이었다. 빨간 지붕 위로 비치는 파란 하늘은 이곳이 지옥이라는 사실을 잊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철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나타났다. 크리스티안 비케르네스. 하지만 세상은 그를 '카운트 그리쉬나크(Count Grishnackh)'라 불렀다. 짧게 깎은 머리, 깨끗한 티셔츠, 그리고 기묘하게 반짝이는 구두. 그는 나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은 불과 2년 전,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유로니무스의 몸에 23번의 칼날을 박아넣었던 바로 그 손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곳은 생각보다 아늑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일정했다. 마치 잘 녹음된 테이프를 재생하는 것처럼 감정의 고저가 없었다. 창밖으로는 감시탑의 서치라이트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그 빛을 마치 무대 조명처럼 즐기는 듯했다.

"사람들은 나를 살인자라 부르지만, 나는 청소부였을 뿐입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자연의 섭리죠. 민주주의라는 허울 좋은 껍데기가 늙고 병든 자들을 보호하려 하지만, 진정한 스칸디나비아의 정신은 전쟁과 투쟁 속에 있습니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말을 이어갔다. 그의 눈은 나를 보고 있었지만, 동시에 수백 년 전의 숲과 전장을 보고 있는 듯했다. 그는 자신을 범죄자가 아닌, 타락한 현대를 정화하러 온 전사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 논리는 서늘할 정도로 정교했고, 그 확신은 광기보다 더 깊은 곳에 뿌리박고 있었다.

카운트의 유년 시절은 이라크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시작되었다. 전기 기사였던 아버지 라르스의 폭력은 어린 크리스티안을 내면의 동굴로 몰아넣었다. 그는 현실 대신 비디오 게임과 톨킨의 세계관에 침잠했다. 특히 그는 고귀한 엘프보다 추악하지만 강력한 '오크'에게 매료되었다.

"숲으로 가보십시오. 한겨울의 노르웨이 숲은 인간의 언어가 아닌 다른 것을 말해줍니다."

1987년, 어머니가 사준 기타는 그에게 칼보다 더 날카로운 무기가 되었다. 그는 하루에 수십 시간씩 기타를 쳤다. 그 선율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었고, 대지가 긁히는 소리였다. 그는 '우르크하이'라는 원맨 밴드를 만들었고, 곧 오슬로의 어둠 속에서 유로니무스라는 남자를 만났다.

유로니무스는 '헬베테(Helvete, 지옥)'라는 레코드숍을 운영하며 '사타닉 서클'의 수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는 공산주의자였고, 악마 숭배자였으며, 죽음을 찬양했다. 하지만 카운트가 보기에 유로니무스는 '말'만 하는 자였다.

"그는 쇼맨이었습니다. 데드가 자살했을 때 그의 뇌 조각으로 목걸이를 만든 것도, 시체 사진을 찍어 앨범 표지로 쓴 것도 모두 비즈니스였죠. 하지만 나는 달랐습니다. 나는 행동을 원했습니다."

카운트에게 블랙 메탈은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독교 문명에 대한 선전포고였고, 북유럽의 잃어버린 영혼을 되찾기 위한 주술적 의식이었다. 그는 유로니무스의 가식적인 악마주의를 경멸했다. 진짜 어둠은 지옥의 악마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원시적인 잔혹함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993년, 두 사람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사상적 차이, 돈 문제, 그리고 한 여자에 대한 소유욕까지. 카운트는 유로니무스가 자신을 고문하고 살해하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기다리지 않았다. 그것은 그에게 운명적 결단이었다.

8월 10일 새벽 3시. 카운트는 유로니무스의 아파트 문을 두드렸다. 속옷 차림으로 나온 유로니무스의 눈에 비친 것은 공포였다. 카운트는 서류를 흔들며 계약 이야기를 꺼냈지만, 곧 칼을 뽑아 들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습니다. 이웃들은 여자의 비명인 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가련한 일이죠."

복도와 계단을 따라 이어진 추격전 끝에 유로니무스는 차가운 바닥에 고꾸라졌다. 카운트는 그의 머리에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23군데의 자상. 그것은 증오의 기록이자, 블랙 메탈 씬의 왕좌가 바뀌었음을 알리는 피의 인장이었다.

경찰이 그의 집을 덮쳤을 때 발견된 것은 150kg의 다이나마이트였다. 그는 노르웨이의 심장인 니다로스 대성당을 날려버릴 계획이었다. 그는 체포되는 순간에도 웃고 있었다. 법정에서 21년형을 선고받을 때도 그의 입가에는 기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미소는 마치 "너희의 법은 나를 가둘 수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다시 1995년의 감옥. 인터뷰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후회하냐고요? 아니요. 나는 그 공산주의 돼지를 죽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는 겁쟁이였고, 나는 전사였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서도 음악을 멈추지 않았다. 금지된 기타 대신 키보드를 사용해 'Filosofem'과 'Balder's Död'를 녹음했다. 그 음악은 이전보다 더 차갑고, 더 미니멀하며, 더 영적인 울림을 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경멸하면서도 그의 앨범을 샀다. 악명은 가장 강력한 마케팅이었고, 감옥은 그의 신비감을 완성하는 성소가 되었다.

"나는 여기서 나갈 것입니다. 12년이든 21년이든 시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밖으로 나가는 날, 진정한 남자가 누구인지 세상이 다시 알게 될 것입니다. 나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놈들? 그들은 입으로만 떠듭니다. 진짜 남자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법이죠."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베르겐의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다. 멀리서 불타버린 판토프트 교회의 잔해가 보이는 듯했다. 카운트 그리쉬나크, 혹은 크리스티안 비케르네스. 그는 노르웨이의 평화로운 풍경 뒤에 숨겨진 원시적인 광기를 끄집어낸 괴물인가, 아니면 잃어버린 고대 정신을 되찾으려 했던 광기 어린 선지자인가.

확실한 것은 하나였다. 그가 지핀 불길은 교회만을 태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대 문명의 도덕과 윤리를 태웠고, 그 잿더미 위에서 블랙 메탈이라는 가장 어둡고 순수한 예술의 꽃을 피워냈다.

나는 차에 올라타 버줌의 'A Lost Forgotten Sad Spirit'을 틀었다. 찢어지는 듯한 카운트의 스크리밍이 피오르드의 정적을 깨뜨렸다. 그것은 숲이 들려주는 이야기였고, 동시에 지옥에서 온 초대장이었다. 노르웨이의 밤은 다시 깊어갔다. 어딘가에서 또 다른 성냥불이 켜질 것만 같은, 그런 불길한 밤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는 가석방되었고, 프랑스의 어느 시골 마을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여전히 북방의 차가운 바람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수많은 밴드가 그의 로우-파이(Lo-fi) 사운드를 추종했고, 그의 극단적인 사상은 여전히 인터넷의 어두운 구석에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단순한 음악가가 아니었다. 그는 하나의 현상이었고,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인 파괴 본능의 상징이었다. 잿더미 위에서 피어난 그의 음악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내면에는 어떤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그 어둠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피오르드의 물결은 오늘도 변함없이 흐른다. 하지만 그 깊은 바닥에는 여전히 1992년의 그 불꽃이, 그리고 유로니무스의 피가 섞여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블랙 메탈의 전설은 그렇게 잿더미 속에서 영원히 타오르고 있다.

https://youtu.be/vfBmYfnjLho?list=RDvfBmYfnjLho

Jesus' TodProvided to YouTube by The Orchard EnterprisesJesus' Tod · Burzum...www.youtube.com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