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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vy! Heavy! Heavy!’

작성자화랑|작성시간25.12.21|조회수69 목록 댓글 0

#메탈

차가운 겨울 공기가 신촌 골목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던 2006년의 어느 밤이었다.
지하로 향하는 가파른 계단, 눅눅한 담배 연기와 맥주 거품이 뒤섞인 냄새, 그리고 벽을 타고 흐르는 육중한 베이스라인.
그곳은 ‘주혹새’였다.
쇠사슬과 해골 장식, 밴드 포스터로 도배된 벽은 이곳이 서울의 메탈헤드들을 위한 성소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의 사장이자 DJ였다.
수많은 메탈 키드들의 헝클어진 머리와 가죽 재킷, 그리고 술에 취해 붉어진 얼굴들을 매일 같이 마주했다.
그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이곳을 찾아와, 디스토션 걸린 기타 리프와 더블 베이스 드러밍의 폭풍 속에서 잠시나마 현실을 잊곤 했다.
그날도 나는 신청곡 쪽지들을 훑어보며 다음 곡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늘 오던 무리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한국 스래쉬 메탈의 자존심, ‘네크라미쓰’의 멤버들이었다.
그들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유독 키가 크고 마른 체구의 외국인 한 명이 조용히 따라 들어왔다.
데이빗 골드.
바로 그 남자였다.

  •  

캐나다에서 온 메탈 밴드 ‘Woods of Ypres’의 리더.
그의 밴드는 둠과 블랙 메탈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울하고 서정적인, 그러면서도 처절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북미 언더그라운드에서 서서히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런 그가 어째서 머나먼 한국의 메탈 바에 낯선 이방인처럼 서 있는 것일까.
당시에는 그저 네크라미쓰 멤버들과 어울리는 외국인 친구 정도로만 생각했다.
데이빗은 여느 외국인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보통 이곳을 찾는 외국인들은 특유의 활기참과 사교성으로 금세 분위기의 중심이 되곤 했지만, 그는 항상 구석 테이블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긴 팔다리를 어색하게 접고 앉아, 말없이 맥주잔만 만지작거렸다.
누군가 말을 걸면 수줍게 웃으며 짧게 대답할 뿐, 먼저 말을 거는 법이 거의 없었다.
그의 눈빛은 언제나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 공허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토해내는 카리스마 넘치는 프론트맨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내성적인 예술가의 초상이었다.
그는 네크라미쓰 멤버들과 함께 주혹새에 자주 나타났다.
그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맥주잔을 기울이며 메탈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
데이빗은 대부분 듣는 쪽이었지만, 가끔 무언가에 동의할 때면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 순수한 미소는 그의 음악이 담고 있는 깊은 우울함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어,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인상을 남겼다.
어느 날 밤, 가게가 비교적 한산했다.
나는 바 안쪽에서 잔을 닦고 있었고, 데이빗이 혼자 조용히 다가왔다.
그는 쭈뼛거리며 작은 메모지 한 장을 내밀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Woods of Ypres - Allure of the Earth’라고 적혀 있었다.
자신의 밴드 곡이었다.

“이거… 틀어줄 수 있어요?”

어눌하지만 또렷한 한국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앨범을 찾아 플레이리스트에 올렸다.
잠시 후, 비장하고 서정적인 기타 아르페지오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데이빗의 처절한 절규와 같은 목소리가 가게 안을 가득 메웠다.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수줍은 이방인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깎아 만든 음악 속에서 비로소 완전한 존재가 되는 듯했다.
그는 눈을 감고, 자신의 음악에 온전히 몸을 맡긴 채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날 이후, 그는 종종 내게 다가와 자신의 곡을 신청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는 거의 같은 말을, 주문처럼 속삭였다
. 한번은 내가 좀 더 대중적인 메탈 곡을 틀었을 때였다. 그
는 어김없이 다가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눈에는 장난기 대신 진지함이 가득했다.

“Heavy… Heavy… Heavy!!!!”

그 세 마디의 단어에는 그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타협하지 않는 음악에 대한 신념, 세상을 향한 외침, 그리고 메탈이라는 장르에 대한 순수한 열정.
그는 가벼운 위로나 값싼 동정을 원하지 않았다.
오직 가장 무겁고, 가장 진실된 소리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진정한 메탈 순례자였다.

시간이 흘러 2007년, 데이빗은 한국을 떠났다.
그의 빈자리는 주혹새의 한구석에 희미한 잔상처럼 남았다.
그가 떠난 후에도 나는 가끔 그의 음악을 틀었다.
그의 음악을 아는 손님들은 말없이 잔을 부딪쳤고, 모르는 이들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낯설고도 강렬한 사운드에 귀를 기울였다.
2년 뒤인 2009년,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  

네크라미쓰의 새 앨범 ‘Slaughter of the Seoul’의 드럼 세션을 데이빗이 맡았다는 것이다.
앨범 크레딧에 박힌 ‘David Gold’라는 이름은 단순한 참여, 그 이상의 의미였다.
그것은 국경을 넘어선 메탈이라는 이름 아래 맺어진 뜨거운 형제애의 증표였다.
같은 해, Woods of Ypres는 ‘IV: The Green Album’을 발표했다.

  •  

그리고 나는 앨범 커버를 보고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앨범의 한가운데, 마치 성물처럼 놓여 있는 녹색 병.
‘참이슬’이었다.
그가 한국에서 보낸 시간, 네크라미쓰 멤버들과 나누었던 술잔, 주혹새의 끈적한 공기가 그 병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음악 속에 한국에서의 기억을 박제해 놓은 것이다.
그 후로도 데이빗은 멈추지 않았다.
Woods of Ypres를 포함한 여러 밴드를 오가며 미친 듯이 앨범을 쏟아냈다.
그의 음악은 점점 더 깊어졌고, 그의 이름은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하나의 상징이 되어갔다.
나는 멀리서나마 그의 왕성한 활동을 응원하며,
언젠가 주혹새에서 그와 다시 만나 참이슬을 기울일 날을 막연히 기대했다.
그리고 2012년 겨울,
거의 1년이 지난 후에야 나는 그 소식을 접했다.
2011년 12월 21일.
크리스마스를 불과 사흘 앞둔 날, 온타리오의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데이빗 골드는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서른 한 살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멎는 듯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심장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주혹새의 시끄러운 음악도,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눈앞에 그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구석 자리에 어색하게 앉아 있던 커다란 키의 남자.
수줍게 웃던 선한 미소.
그리고 내게 다가와 간절한 눈빛으로 외치던 목소리.

‘Heavy! Heavy! Heavy!’

그것은 삶의 무게(Heavy)를 짊어지고, 그 무게를 다시 음악(Heavy Metal)으로 토해내던 한 예술가의 처절한 외침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연주하는 가장 무거운 리프를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Allure of the Earth’를 틀었다.
그의 목소리가 조용하게 울렸다.

“The allure of the earth, is the end of all things…"

(대지의 유혹, 그것은 모든 것의 끝…)

그의 노래는 언제나 죽음과 상실, 자연으로의 회귀를 노래했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한 듯이.
그의 음악을 들으며, 나는 홀로 참이슬 한 병을 땄다.
그가 앨범 커버에 박아 넣었던 바로 그 술이었다.
차가운 소주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너무나도 안타깝고, 분하고, 착잡했다.
이제 막 자신의 음악 세계를 활짝 펼치려던 천재 뮤지션의 허망한 죽음.
그의 음악을 사랑했던 팬으로서,
그리고 그와 짧은 기억을 공유했던 한 사람으로서 슬픔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흐릿한 기억 속에서, 그가 자신의 뮤직비디오라며 쑥스럽게 보여주던 영상이 떠올랐다. 캐나다의 광활하고 쓸쓸한 숲을 배경으로,
그는 세상의 모든 고뇌를 짊어진 표정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슬픔 속에서도 그의 눈은 꺾이지 않는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오로지 메탈로 시작해서 메탈로 끝을 맺기를 원했던 순수한 영혼.
이제 그는 전설이 되었다. 그의 육신은 차가운 대지로 돌아갔지만,
그의 음악은 남아 우리 곁을 맴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스피커를 찢을 듯 울부짖고, 그의 기타 리프는 심장을 파고든다.
요즘도 나는 가끔 그의 음악을 튼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여전히 그가 보인다.
수줍은 미소를 띤 채 내게 다가와,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표정으로 외치는 그의 모습이.

‘Heavy! Heavy! Heavy!’

그래, 데이빗. 너의 음악은 세상 그 무엇보다 헤비하고, 진실했어.
진정한 메탈맨이었던 그대, 부디 그곳에서는 평안하길.

Rest in Power, David Gold

https://youtu.be/TArBvaoIXpM?list=RDTArBvaoIXpM

Woods Of Ypres - Allure Of The Earth (Official Audio)Woods of Ypres CD/Vinyl/Merch - https://webstore.earache.com/woods-of-ypresSpotify - https://spoti.fi/2FPVL6piTunes - https://apple.co/2VbLOFsDeezer - https:...www.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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