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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컬 포스(Chemical Force): 야만인의 유산

작성자화랑|작성시간26.01.15|조회수55 목록 댓글 2

케미컬 포스(Chemical Force): 야만인의 유산

1. 뉴캐슬의 역병

1982년, 영국 타인위어주의 뉴캐슬어폰타인.
하늘은 언제나처럼 납빛이었고, 공기 중에는 석탄 가루와 눅눅한 바다 안개가 뒤섞여 있었다. 그곳은 신사들의 도시가 아니었다.
거친 노동자들의 고함과 녹슨 기계 소리가 지배하는 곳, 그 밑바닥에서 '역병'이 창궐하기 시작했다.

  •  

나, 크로노스는 베이스 기타를 움켜잡았다.
내 손에 들린 베이스는 악기라기보다는 둔기에 가까웠다.
우리는 깔끔한 정장을 입고 사랑을 노래하는 멍청이들이 아니었다.
우리는 사탄, 지옥, 죽음, 피, 그리고 여자와 메탈에 미쳐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았고, 그게 바로 우리의 음악이 되었으니까.

"준비됐나, 맨타스? 아바돈?"

나의 부름에 기타리스트 맨타스가 씩 웃으며 디스토션을 끝까지 올렸다.
드럼 스틱을 쥔 아반돈의 눈빛은 이미 짐승의 그것이었다.
우리는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그것은 스튜디오라기보다는 지옥으로 통하는 입구였다.

2. 하이에나의 포효

  •  

우리가 녹음하려는 앨범의 이름은 [Black Metal]이었다.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이건 훗날 노르웨이 숲속에서 얼굴에 하얀 칠을 하고 나타난 녀석들의 음악과는 달랐다.
우리의 뿌리는 록큰롤이었고, 펑크였으며, 심지어는 블루스의 끈적함까지 품고 있었다.

"모터헤드보다 더 빠르게, 더 지저분하게 가자고!!!"

내가 소리쳤다.
레미(Lemmy) 형님은 사자였다.
위엄 있고 강력한 백수의 왕.
하지만 우리는 사자가 될 수 없었다.
우리는 굶주린 하이에나였다.
사자가 남긴 뼈를 씹어 돌리고, 어둠 속에서 낄낄거리며 미친 듯이 달려드는 야만적인 존재들.
녹음 버튼이 눌리자마자 맨타스의 기타가 비명을 질렀다.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사운드.
누군가는 '못생긴 소리'라고 비난했지만, 우리에게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음이었다.
나는 베이스를 기타 앰프에 연결했다.
레미 형님이 그랬던 것처럼, 저음의 묵직함보다는 고막을 찢는 듯한 타격감을 원했다.
트리오 체제의 한계?
기타 솔로가 나올 때 사운드가 빈다고?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디스토션을 '이빠이' 먹인 베이스로 그 빈틈을 메울 때, 그곳에는 기술적인 완벽함 대신 '광기'가 들어찼다.
우리는 완벽한 연주를 하러 온 게 아니라, 폭동을 일으키러 온 것이었으니까.

3. 위대한 야만인의 성정

  •  

가사는 거침없었다.
신성 모독은 기본이었고, 사도 마조히즘적인 가죽 옷과 징 박힌 팔찌는 우리의 피부나 다름없었다.
당시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진상'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우리는 연기하지 않았다.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 악마의 가면을 쓴 게 아니란 말이다.

  •  

우리는 태생 자체가 야만인이었다.
낮에는 공장에서 기름때를 묻히고, 밤에는 맥주를 들이켜며 세상의 모든 질서에 침을 뱉었다. 우리의 리프와 리듬에는 그 지저분하고 자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의도적으로 '블랙'이나 '데쓰'를 추구한 게 아니다.
그냥 우리 안의 똘기를 솔직하게 배설했을 뿐인데, 세상은 그것을 새로운 장르의 탄생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크로노스, 이 가사는 너무 심한 거 아냐? 지옥에서 온 희생양이라니?"

엔지니어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그를 비웃으며 마이크에 대고 짐승처럼 포효했다.

"이게 바로 우리야.
가식 떨지 말라고!!!"

4. 화학적 광기의 유산

세월이 흘렀다.
베놈이라는 역병은 두 번이나 재발하며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15장의 풀 렝쓰 앨범이 세상에 나왔고, 우리는 메탈의 레전설이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보다 훨씬 연주도 잘하고, 훨씬 더 사악한 척하는 후배 밴드들이 우리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왜일까?
그들은 우리의 테크닉을 존경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 음악 속에 흐르는 '화학적 광기(Chemical Force)'를 본 것이다.

  •  

억지로 꾸며낸 공포는 금방 들통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베놈의 음악에는 의도치 않은 본연의 광기가 서려 있었다.
무한대의 자유를 갈망하며 쓰레기 같은 삶을 당당하게 살아냈던 그 태도.
범인(凡人)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그 모든 '개짓거리'가 사실은 가장 순수한 예술적 폭발이었다는 것을, 진짜 또라이들은 알아본 것이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고, 또라이는 또라이를 알아본다.
우리는 멸시받았지만, 결국 수많은 짐승과 악마들의 우상이 되었다.

5. 영원히 유영하는 암흑의 광명

  •  

지금도 내 혈액 속에는 그날의 뉴캐슬 안개와 디스토션의 잔향이 흐르고 있다.
[Black Metal] 앨범은 야만성과 야수성, 그리고 악마성이 가장 생생하게 담긴 위대한 유산이다.
오늘날 익스트림 메탈을 한다는 수많은 후배의 피를 자극하는 것은, 정교한 기타 리프가 아니다.
바로 우리가 내뿜었던 그 '케미컬 포스'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음악 속에 흐르는 그 미친 기운 말이다.
나는 오늘도 베이스를 메고 무대 위에 선다.

  •  

내 나이 예순을 넘겼지만, 내 안의 하이에나는 여전히 굶주려 있다.
어둠의 광명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의 혈액 속에도 우리의 역병이 흐르고 있는가?

"Lay down your souls to the gods rock 'n' roll!"

지옥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고, 베놈의 음악은 영원히 그대들의 영혼을 유영할 것이다.
자, 이제 볼륨을 끝까지 높여라.
진짜 블랙 메탈의 시작을 알리는 그 원시적인 소음에 몸을 맡겨라!!

에필로그

  •  

뉴캐슬의 낡은 펍, 한 노인이 맥주잔을 들이키며 낡은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오는 'Black Metal'을 듣고 있다.
사람들은 그를 미친 노인이라 부르지만,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이 세상에 퍼뜨린 그 역병이 얼마나 아름다운 파괴였는지를.
그는 크로노스, 영원한 야만인의 왕이다.

https://youtu.be/1kbon057vPk?list=RD1kbon057v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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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našo | 작성시간 26.01.15 그 특유의 케미컬 포스는 진짜 '레전설' 그 자체입니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화랑!! | 작성시간 26.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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