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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스 두미쿠스 메탈리쿠스: 심연의 서곡

작성자화랑|작성시간26.06.11|조회수34 목록 댓글 2

이 글은 캔들매스와 《Epicus Doomicus Metallicus》의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음악 서사입니다. 일부 장면과 대사는 당시 정황을 토대로 문학적으로 각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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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스 두미쿠스 메탈리쿠스: 심연의 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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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11월은 태양이 일찍 자취를 감추는 계절이다. 웁플란스 베스뷔(Upplands Väsby)의 낡은 지하 연습실, 레이프 에들링(Leif Edling)은 담배 연기 사이로 자신의 베이스 기타를 응시하고 있었다.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낮은 웅성거림은 마치 거대한 짐승의 신음 같았다.

당시 유럽의 메탈 씬은 광기 어린 속도에 열광하고 있었다. 스피드 메탈과 초기 스래시 메탈이 청춘들의 심박수를 높이며 비명을 지를 때, 레이프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더 느리고, 더 무겁고, 더 절망적인 것을 원했다.

"너무 느린 거 아냐?"

드럼 스틱을 만지작거리던 멤버가 물었다. 레이프는 대답 대신 리프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중에 "Under the Oak"라 불릴 선율이었다. 한 음 한 음이 마치 늪 바닥으로 가라앉는 돌덩이처럼 묵직했다. "Crystal Ball", "Demons Gate"... 그들이 써 내려가는 곡들은 찬란한 북유럽의 빛보다는 깊은 숲속 버려진 성당의 어둠을 닮아 있었다.

레이프는 직접 마이크 앞에 섰다. 정식 보컬이 없었기에 그는 데모 녹음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O.A.L 스튜디오의 차가운 콘크리트 벽을 타고 흐르는 "Black Stone Wielder"의 선율은 기괴했다. 이 데모 테이프는 바다를 건너 프랑스 파리의 '블랙 드래곤 레코드'로 향했다. 그들에게 돌아온 대답은 단돈 1,800달러의 예산과 단 한 장의 앨범 계약이었다. 그것은 기회이자 동시에 가혹한 시험이었다.

스톡홀름에 위치한 썬더로드 스튜디오(Thunderload Studios)는 전설적인 밴드 '헤비 로드(Heavy Load)'의 성지였다. 프로듀서 랑네 발크비스트(Ragne Wahlquist)는 캔들매스가 가져온 악보를 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음악이라기보다 장례식 행진곡 같군."

녹음은 시작되었지만, 결정적인 조각이 빠져 있었다. 밴드의 정체성을 완성할 '목소리'가 없었던 것이다. 레이프의 보컬은 처절했지만, 그가 머릿속에 그리는 '에픽(Epic)'한 서사시를 담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때 나타난 인물이 바로 요한 렝크비스트(Johan Längqvist)였다.

요한은 둠 메탈이 무엇인지, 캔들매스가 어떤 음악을 지향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그는 그저 부르라는 대로 불렀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어 첫 소절을 내뱉는 순간, 스튜디오의 공기가 바뀌었다.

"Solitude(고독)..."

그의 목소리는 바리톤의 중후함과 오페라의 비극적인 색채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캔들매스의 느릿한 기타 리프 위에 요한의 보컬이 얹어지자, 그것은 단순한 음악을 넘어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죽음과 우울, 자살과 고통을 노래하는 가사는 요한의 목소리를 빌려 신화적인 무게감을 얻었다. 요한은 자신이 이 장르의 초석을 다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단 몇 시간 만에 녹음을 끝내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객원일 뿐이었고, 이 앨범이 자신의 인생에 어떤 낙인을 찍을지 알지 못했다.

앨범 제목을 정하는 날, 레이프는 종이에 몇 글자를 적었다.

'Epic Doom Metal.'

그는 자신들이 개척한 이 기이한 장르에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하지만 평범한 영어로는 이 웅장한 비극을 설명하기 부족했다. 그는 엉터리 라틴어, 이른바 '도그 라틴'을 사용해 장난스럽지만 엄숙한 제목을 지어냈다.

**『Epicus Doomicus Metallicus』**

그것은 선언이었다.

"우리는 가장 느리고, 가장 장엄하며, 가장 메탈적인 파멸을 노래하겠다"는 맹세였다.

1986년 6월 10일, 검은 해골의 인장이 찍힌 바이닐이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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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참담했다. 시장은 이 '지나치게 느린' 음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라디오에서는 너무 길고 우울하다며 외면했고, 음반 매장 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갔다. 블랙 드래곤 레코드는 가차 없었다. 판매량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캔들매스를 레이블에서 방출했다.

"우리가 틀린 걸까?"

레이프는 빈 주머니를 뒤적이며 스톡홀름의 거리를 걸었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사이, 변화의 물결은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영국의 어느 마을에서는 아론 에이디라는 청년이 이 앨범을 들으며 전율하고 있었고(그는 훗날 파라다이스 로스트의 멤버가 된다), 수많은 메탈헤드들이 "Solitude"의 첫 리프를 들으며 자신의 내면 속에 있던 어둠과 마주하고 있었다.

앨범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거대한 유령처럼 몸집을 불려 나갔다. 사람들은 메시아 마콜린의 화려한 퍼포먼스에 열광하면서도, 늘 이 데뷔 앨범의 순수한 절망을 그리워했다. 요한 렝크비스트의 무심한 듯 서글픈 보컬은 둠 메탈의 성경이 되었다.

2018년, 어느덧 중년이 된 요한 렝크비스트가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32년 전, 아무것도 모른 채 단 한 번의 녹음으로 전설을 만들고 떠났던 그가 정식 멤버로 돌아온 것이다.

『Epicus Doomicus Metallicus』는 이제 단순한 앨범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장르를 정의하는 문법이며, 슬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자들의 성전이다. 1986년의 그 차갑고 느린 리프는 지금도 전 세계 곳곳의 스피커를 통해 흐르며, 고독한 영혼들에게 속삭인다.

"나의 절망 속에 머물러라. 이곳이 바로 당신의 안식처다."

마지막 곡 "A Sorcerer’s Pledge"의 신시사이저 선율과 여성 보컬의 아련한 외침이 잦아들 때쯤, 청자는 깨닫게 된다. 캔들매스가 1,800달러로 산 것은 저렴한 녹음 시간이 아니라, 영원히 바래지 않을 '파멸의 왕관'이었다는 것을.

https://youtu.be/04QO_kcB0iY?list=OLAK5uy_ncSHOKdrNT2uCSKbmxHOnp3a-iXhiVAM4

A Sorcerer's PledgeProvided to YouTube by The Orchard EnterprisesA Sorcerer's Pledge...www.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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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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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Bastard | 작성시간 26.06.12 느리고, 무겁고, 장엄한 파멸의 서사시~!!
  • 작성자영혼의 폭풍 | 작성시간 26.06.12 Metal will never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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