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복수 교향곡 (A Symphony of Blood and Vengeance)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CD장 구석, 그곳은 내 청춘의 무덤이자 성소였다. 수백 장의 앨범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그곳에서 유독 한 장의 앨범은 오랜 시간 외면당해왔다. 붉은 해골, 빅 래틀헤드(Vic Rattlehead)가 섬뜩하게 노려보는 커버. 메가데쓰(Megadeth)의 데뷔작, Killing Is My Business... And Business Is Good!
실로 오랜만이었다. 턴테이블에 LP를 올리는 대신 스트리밍 앱을 켜는 시대가 되었지만, 나는 굳이 낡은 CD 플레이어의 트레이를 열었다. 대학 신입생 시절, 세상의 모든 저항과 분노를 내 것인 양 짊어지고 다니던 그때 처음 들었던 앨범. 하지만 그 후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청한 기억은 내 인생을 통틀어 채 열 번이 되지 않았다. 메가데쓰의 그 어떤 앨범보다도 손이 가지 않았던, 버림받은 자식 같은 존재였다.
이유는 명확했다. 첫째, 귀를 찢을 듯 시끄러웠다. 둘째, 마치 녹슨 쇠붙이를 긁어대는 듯 사운드가 지저분했다. 셋째, 그 혼돈 속에서 귀에 감기는 인상적인 멜로디를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였다. 나는 언제나 그들의 세련된 후기작이나, 스래쉬 메탈의 교과서라 불리는 2집과 4집을 더 사랑했다. 이 앨범은 그저 치기 어린 과도기의 산물, 혹은 데이브 머스테인이라는 한 남자의 주체 못 할 분노가 아무런 정제 없이 폭발한 날것의 파편일 뿐이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오늘, 나는 마치 오래된 유물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처럼 경건하게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어쩌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과거에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기회를 얻는 것인지도 모른다.
첫 곡, ‘Last Rites/Loved to Deth’의 인트로가 흘러나왔다. 바흐의 토카타를 차용한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 이 격렬한 분노의 제전이 이토록 아름다운 선율로 시작된다는 것은 언제 들어도 아이러니하다.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함처럼, 혹은 광기의 서막을 알리는 비극적인 서곡처럼. 어찌 들으면 앨리스 쿠퍼의 명곡 ‘Steven’의 그 서늘한 피아노 연주와도 닮아있다. 건반음이 끝나기 무섭게, 공간을 찢는 기타 리프와 함께 지옥의 문이 활짝 열렸다. 시종일관 부수고 조져대는 광란의 질주. 그리고 중반부, 스피커를 뚫고 나오는 데이브 머스테인의 사악한 웃음소리.
“하하하하하하하!”
그것은 연출된 웃음이 아니었다. 작사, 작곡, 연주, 심지어 프로듀싱을 하는 순간까지도 마약에 쩔어 지냈다는 그의 미친 정신 상태가 고스란히 녹아든, 섬뜩하고 리얼한 광기 그 자체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1983년, 뉴욕의 어느 버스 터미널. 밴드 ‘메탈리카’에서 쫓겨난 젊은 데이브 머스테인이 4일간의 버스 여정 끝에 LA로 돌아오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배신감과 모멸감, 그리고 세상을 향한 불타는 증오만이 이글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 웃음소리는 바로 그 지옥의 한복판에서 터져 나온 절규이자, 복수를 향한 선전포고였다.
타이틀 트랙 ‘Killing Is My Business... And Business Is Good!’가 이어졌다. 마블 코믹스의 반영웅, 퍼니셔(The Punisher)를 소재로 한 이 곡은 본격적으로 달리기 전, 당김음을 활용한 그루브한 리프로 듣는 이의 심장을 쥐락펴락한다. 여기서 나는 과거에 놓쳤던 것을 발견했다. 재즈 드러머 출신인 가 사무엘슨과 크리스 폴랜드의 유연하고 복잡한 리듬감. 그것은 두 데이브(머스테인과 엘렙슨)의 직선적인 강행 돌파와 기묘하게 맞물리며, 단순한 속도 경쟁을 넘어선 독특한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특히 빠르면서도 쫄깃하게 조여주는 데이비드 엘렙슨의 베이스 라인은, 이 혼돈의 사운드 속에서 유일하게 상큼한 청량감을 선사하는 오아시스 같았다.
‘Skull Beneath the Skin’은 메가데쓰의 마스코트, 빅 래틀헤드의 탄생 신화를 다룬 곡이다. 흑마술과 저주. 전형적인 80년대 베이 에이리어 스래쉬의 공식을 따르면서도, 그 구조는 아무 생각 없이 막 연주하는 것처럼 들리면서도 의외로 정교하고 복잡했다. 마치 분노에 찬 천재가 밑그림도 없이 즉흥적으로 그려낸 거대한 벽화 같았다. 이 곡을 들으며 나는 깨달았다. 이 앨범이 단지 ‘시끄럽고 지저분한’ 것이 아니라, ‘제어되지 않은 에너지’ 그 자체라는 것을. 머스테인은 자신의 분노를 음악적 공식에 끼워 맞추려 하지 않았다. 그는 분노가 이끄는 대로 손가락을 움직였고, 그 결과물은 예측 불가능하고 위험하며,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괴물이 되었다.
A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These Boots’. 낸시 시나트라의 명곡을 악마적으로 재해석한 이 커버곡은 언제 들어도 기묘하다. 원작자 리 헤이즐우드에게 온갖 욕을 먹고 앨범에서 삭제되었다가, 가사를 바꿔 다시 수록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문제의 트랙. 황소 불알처럼 축축 늘어지는 기타 연주는 원곡의 상큼함을 능욕하듯 비웃고, 하드코어 펑크처럼 몰아치는 리듬은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듯 달려든다. 이 곡은 마치 머스테인이 기존의 모든 권위와 질서를 향해 날리는 거대한 가운뎃손가락처럼 느껴졌다. “너희들의 아름다운 노래? 이렇게 망가뜨려 주지. 너희들의 규칙? 엿이나 먹어라.”
LP였다면 판을 뒤집었을 시간. 잠시 숨을 고르고 B면으로 넘어갔다. 40년 가까이 묵은 잡음 대신, 디지털의 깔끔함으로 시작된 ‘Rattlehead’. 메가데쓰 공연장의 생생한 열기를 묘사한 이 곡은, 눈과 입과 귀가 모두 봉인된 마스코트 빅 래틀헤드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해방의 찬가다. 존나게 휘몰아치는 속도감 속에서, 나는 억압되었던 모든 것들이 터져 나오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것이 바로 머스테인이 원했던 것일까? 메탈리카라는 족쇄에서 풀려나, 자신만의 마스코트를 앞세워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려는 야망의 포효.
그리고 이어지는 ‘Chosen Ones’. 코미디 영화 <몬티 파이튼의 성배>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 곡의 가사를 곱씹으며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식인 토끼와 혈투를 벌이는 아서왕과 기사들.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대하고 위협적인 식인 토끼는 ‘메탈리카’를, 자신을 아서왕으로, 그리고 다른 메가데쓰 멤버들을 원탁의 기사들로 은유한 듯한 느낌이 역력했다. 유치하지만, 그만큼 절박했던 그의 심정이 느껴져 왠지 모르게 마음이 짠해졌다. 그는 이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설령 그 상대가 세상이 모두 떠받드는 거인일지라도.
앨범의 대미를 향해 가는 ‘Looking Down the Cross’.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최후를 그린 이 곡에서, 머스테인의 분노는 신성모독적인 은유를 통해 절정에 달한다. 마약에 취한 그는 스스로 예수가 되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을 내려다본다. 그는 노래한다. 만약 내가 예수였다면, 나를 몰라보는 저들을 원망하며 복수를 갈망했을 것이라고. 표면적으로는 용서를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서슬 퍼런 증오가 들끓고 있다.
‘메탈리카에서 해고된 후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단 하나뿐이었다. Blood! 피!! 나는 메탈리카에 대한 복수심으로 그들보다 더욱 빠르고 헤비한 음악을 갈구했다.’
과거 인터뷰에서 그가 뱉었던 말이 귓가에 생생하게 울리는 듯했다. 이 곡에서 예수는 머스테인 자신이며,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병사들은 바로 메탈리카였다. 이 얼마나 처절하고 자기 파괴적인 비유인가. 과거의 나는 이 곡이 드라마틱하긴 하지만 구성이 조잡하고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나는 이 곡이 음악적 완성도를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것은 음악이 아니라, 한 남자가 자신의 심장을 꺼내어 제단에 바치는 피의 제의였다. 설득이 아닌, 오직 표출을 위한 절규였다.
마지막 곡, ‘Mechanix’.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처음부터 흥미롭게 들었던 트랙. 이유는 간단했다. 메탈리카의 명곡 ‘The Four Horsemen’과 사실상 같은 곡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머스테인이 만들었던 이 곡을, 메탈리카는 그를 해고한 뒤 가사를 수정하고 속도를 늦춰 발표했다. 하지만 머스테인은 보란 듯이 원곡의 스피드와 공격성을 그대로 살려, 아니, 두 배로 증폭시켜 앨범의 마지막에 꽂아 넣었다.
메탈리카의 곡보다 2분 30초나 짧지만, 스피드는 2배나 빠른 이 곡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선언이었다. “이게 원조다. 너희들이 거세해버린 진짜 스피드와 광기가 바로 이것이다!” 곡 중간에 터져 나오는 “Fuck yeah!!!”라는 외침은 명백히 메탈리카를 겨냥한 분노의 포효였다. 베스트 앨범에서는 삭제된 그 외침을 들으며, 나는 통쾌함과 함께 씁쓸함을 느꼈다. 이 위대한 재능이 얼마나 깊은 상처를 받았으면, 자신의 데뷔 앨범 전체를 이런 거대한 복수극으로 채워야만 했을까.
단돈 8천 달러에 제작된 이 거칠고 조악한 사운드의 앨범. 40년 만에 정신을 집중하고, 각 곡에 담긴 배경과 가사를 연구하며 들어본 지금도, 나는 이 앨범이 ‘좋다’고 선뜻 말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시끄럽고, 여전히 지저분하며, 여전히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는 부족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이 앨범은 ‘좋고 나쁨’의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이것은 한 천재 뮤지션이 배신감과 분노라는 용광로 속에서 자신을 벼려내 만든, 날카롭게 벼려진 복수의 칼날 그 자체다. 모든 트랙은 메탈리카를 향한 저주이자, 세상을 향한 선전포고이며,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데이브 머스테인이 메탈리카에 대한 복수심을 접고, 조금 더 차분한 마음으로 이 앨범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기술적으로 더 완벽하고, 사운드도 깔끔하며, 대중적으로도 성공한 ‘더 좋은’ 앨범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면, 우리는 이토록 순도 높은 분노와 날것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 처절한 데뷔 앨범을 결코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조용히 플레이어를 껐다. 귓가에는 여전히 쇳소리 같은 기타 리프와 악마의 웃음소리가 맴돌고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상처 입은 영혼이 토해낸 핏빛 교향곡, 그 어떤 명반보다도 솔직하고 강렬한, 한 시대의 증언이었다. 나는 비로소, 40년 만에 이 앨범과 화해했다.
https://youtu.be/enBaOPl9NhU?list=RDenBaOPl9NhU
Megadeth - Looking Down the Cross (Lyrics)Released: 1985Album: Killing Is My Business... and Business Is Good!www.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