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칼럼 창고

6월 22일, 그 남자의 베이스 기타

작성자화랑|작성시간26.06.22|조회수50 목록 댓글 0

6월 22일, 그 남자의 베이스 기타

  •  

     

2015년 5월 5일, 한 사내가 플로리다의 자택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의 이름은 크렉 그루버. 향년 63세, 사인은 전립선암이었다. 그의 부고 기사는 록 음악계의 작은 단신으로 처리되었다. ‘레인보우(Rainbow)의 초대 베이시스트, 크렉 그루버 별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는 그저 전설적인 밴드를 잠시 거쳐 간 수많은 뮤지션 중 한 명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삶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본 이들에게, 크렉 그루버라는 이름은 단순한 이력 이상의 복잡하고 서글픈 선율을 떠올리게 했다. 그의 인생은 마치 제대로 조율되지 않은 베이스 기타처럼, 묵직했지만 어딘가 불안하고 외로운 저음을 평생토록 연주하다 멈춘 것과 같았다.

이야기는 1951년 6월 22일, 그가 태어난 날로부터 시작된다. 그날은 훗날 수많은 록 스타들이 태어나고, 역사적인 앨범이 발매되고, 전설적인 공연이 펼쳐질 ‘6월 22일’이라는 연대기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 태어난 아기 크렉에게 세상은 아직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았다.

그의 손에 베이스 기타가 들린 것은 필연과도 같았다. 블루스와 로큰롤이 태동하던 시대, 네 개의 굵은 현이 만들어내는 심장 박동 같은 리듬은 젊은 크렉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그는 곧 로니 제임스 디오라는 걸출한 보컬리스트를 만나 밴드 ‘엘프(Elf)’를 결성한다. 디오의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 데이빗 페인스타인의 날카로운 기타, 게리 드리스콜의 R&B 풍 드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크렉의 베이스. 그들의 블루지한 하드록은 작지만 단단했고, 운명은 그들을 거물 밴드 ‘딥 퍼플(Deep Purple)’의 오프닝 무대로 이끌었다.

매일 밤, 거대한 무대 위에서 딥 퍼플의 광기에 찬 연주를 지켜보던 엘프의 멤버들. 특히 크렉의 시선은 딥 퍼플의 그림자 군주,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에게 향했다. 그의 예측 불가능한 프레이즈와 무대를 압도하는 존재감은 경외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경외의 시선은, 반대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리치 블랙모어는 오프닝 밴드의 작은 거인, 로니 제임스 디오의 목소리에 매료되었고, 밴드 전체가 뿜어내는 견고한 에너지에 주목했다.

결국 딥 퍼플을 탈퇴한 리치 블랙모어가 새로운 밴드를 구상했을 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바로 ‘엘프’였다. 그는 디오에게 손을 내밀었고, 디오는 그 손을 잡았다. 리치는 엘프의 멤버 대부분을 그대로 흡수해 자신의 왕국을 건설했다. 밴드의 이름은 ‘레인보우’. 크렉 그루버는 꿈에 그리던 거대한 무지개의 일원이 되었다.

하지만 무지개는 아름답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와도 같았다. 리치 블랙모어라는 태양은 너무나도 강렬했고, 그의 변덕스러운 그림자는 밴드 전체를 뒤덮었다. 1975년, 데뷔 앨범 <Ritchie Blackmore's Rainbow>가 발매되었다. 크렉의 베이스는 ‘Man on the Silver Mountain’, ‘Catch the Rainbow’ 같은 명곡들 속에서 묵직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의 연주가 역사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그러나 그 감격은 오래가지 못했다.

앨범 녹음이 끝나자마자 리치의 칼날이 번뜩였다. 그는 드러머 게리 드리스콜의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너무 미국적이고, R&B 냄새가 난다는 것이 이유였다. 리치는 처음엔 게리만 교체하고 싶어 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코지 파웰’이라는 막강한 후임이 있었다. 하지만 엘프 시절부터 동고동락해온 멤버들의 의리는 리치의 계산보다 강했다.

“게리가 나간다면, 나도 나가겠어.”

크렉이 먼저 입을 열었다. 키보디스트 미키 리 소울도 그 뒤를 따랐다. 오랜 친구를 버리고 영광을 택할 수는 없다는, 풋내 나는 의리였다. 어쩌면 그것은 리치 블랙모어라는 거대한 독재자에 대한 소심한 반항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리치는 기다렸다는 듯, 디오를 제외한 모든 엘프의 멤버들을 해고해 버렸다. 크렉은 그렇게 자신의 손으로 무지개에서 걸어 나왔다. 홀로 남은 디오의 뒷모습을 보며 그는 배신감과 연민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디오는 우리를 배신한 걸까, 아니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걸까.’ 이 질문은 평생 그를 따라다니는 루머의 시작이 되었다.

레인보우를 나온 크렉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뛰어난 연주자였지만, ‘레인보우의 전 멤버’라는 꼬리표는 영광인 동시에 족쇄였다. 사람들은 그의 연주가 아닌, 그가 왜 밴드에서 쫓겨났는지, 리치 블랙모어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디오와는 정말 사이가 틀어졌는지에 대해서만 궁금해했다.

그러던 중, 또 다른 거대한 그림자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였다. 오지 오스본이 떠난 자리를 그의 옛 동료 로니 제임스 디오가 채웠고, 밴드의 터줏대감이었던 베이시스트 기저 버틀러가 개인적인 문제로 잠시 밴드를 떠나게 된 것이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투입된 것이 바로 크렉이었다.

그는 토니 아이오미의 육중한 기타 리프에 맞춰 베이스 라인을 만들어나갔다. 디오와의 재회는 어색했지만, 음악 안에서 그들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곡들이 훗날 명반으로 칭송받는 <Heaven and Hell>의 기초가 되었다. 하지만 역사는 또다시 그를 주연으로 기록하지 않았다. 기저 버틀러가 밴드로 복귀했고, 크렉은 앨범 크레딧 어디에도 자신의 이름을 올리지 못한 채 조용히 물러나야 했다. 훗날 “<Heaven and Hell>의 베이스는 사실 내가 다 연주했고, 곡도 내가 썼다”는 루머가 끈질기게 그를 따라다녔지만, 그것은 패자의 공허한 외침처럼 들릴 뿐이었다.

그의 저니맨 생활은 계속되었다. 80년대에는 비운의 기타 히어로, 게리 무어의 밴드에 합류해 <Victims of the Future>와 라이브 앨범 <We Want Moore!>에 참여했다. 게리 무어의 불꽃같은 기타 솔로 뒤에서 그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그곳 역시 그의 종착역은 아니었다. 한 앨범에 베이시스트가 네 명이나 이름을 올리는 기이한 상황 속에서,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자리가 온전하지 않음을 깨달아야 했다.

음악적 방황 속에서 그의 사생활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아름다운 여인 제니퍼 브룩스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지만, 안정적인 수입도, 보장된 미래도 없는 록 뮤지션의 삶은 위태로웠다. 그의 곁을 맴도는 실패의 그림자는 아내 제니퍼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새로운 남자가 들어왔다. 화려한 금발과 눈부신 기타 실력을 가진 남자, 존 사이크스였다.

존 사이크스는 당시 씬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타리스트였다. 그의 노래 ‘Please Don't Leave Me’는 애절한 멜로디로 수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노래는 크렉의 아내를 향한 존의 세레나데였다. 노래 속에서 존이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는 그녀를 빼앗아간 ‘the other guy’가 바로 크렉 그루버 자신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노래와 정반대였다. 결국 제니퍼는 크렉을 떠나 존 사이크스에게로 갔고, 크렉과 자신 사이에서 낳은 아들마저 데려갔다. 크렉은 한순간에 아내와 아들, 그리고 한 남자의 노래 속 악당이라는 역할까지 모두 떠안게 되었다.

모든 것을 잃은 크렉은 옛 동료들을 찾아 나섰다. 레인보우에서 함께 쫓겨났던 드러머 게리 드리스콜과 함께 ‘바이블 블랙(Bible Black)’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제프 펜홀트라는 뛰어난 보컬리스트까지 영입하며 재기를 꿈꿨다. 하지만 불행의 신은 여전히 그의 곁을 맴돌았다. 1987년, 게리 드리스콜이 친구의 집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범인은 잡혔지만 이송 중 탈주해 사건은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았다. 가장 가까운 친구의 허망한 죽음은 크렉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90년대에 들어서자, 세상은 크렉 그루버라는 이름을 완전히 잊어버린 듯했다. 그는 간간이 발매되는 엘프의 컴필레이션 앨범에서 저작권료를 받으며 생계를 유지했다.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연주하던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은퇴했다고, 혹은 술에 절어 폐인이 되었다고 수군거렸다. 아내를 빼앗아간 존 사이크스가 화려한 성공을 이어가는 동안, 그는 세상의 뒤편에서 조용히 잊혀 갔다.

시간이 흘러 2009년, 그의 이름이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엘프의 재결성을 추진한다는 소식이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이제 거물이 된 로니 제임스 디오가 있었다. 사람들은 크렉의 의도를 의심했다. 순수한 음악적 열정이라기보다는, 디오의 명성에 기대어 마지막 불꽃을 태워보려는 시도로 보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2010년, 로니 제임스 디오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엘프 재결성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ED3N’, ‘Raven Lord’ 같은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며 마지막까지 음악의 끈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 하지만 시대는 이미 변했고, 그의 클래식한 하드록은 더 이상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언제나 ‘왕년의’, ‘전설적인 밴드의 전 멤버’ 같은 과거형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몸에 암세포가 자라기 시작했다. 전립선암. 병마는 그의 남은 열정마저 조용히 갉아먹었다.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리치 블랙모어의 변덕이 아니었다면, 그 의리를 지키지 않았다면 자신의 삶은 달라졌을까. 기저 버틀러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Heaven and Hell>은 자신의 대표작이 되었을까. 제니퍼가 떠나지 않았다면, 그는 평범한 가장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수많은 ‘만약’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2015년 5월 5일, 길고 길었던 그의 연주는 마침내 끝났다. 그의 삶은 성공보다는 실패에, 영광보다는 좌절에, 환희보다는 루머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그는 단 한 순간도 베이스 기타를 놓지 않았다. 비록 세상은 그의 이름을 변두리에 기록했지만, 그가 남긴 묵직한 저음은 록의 역사 어딘가에 분명히 새겨져 있다.

오늘도 누군가는 레인보우의 ‘Catch the Rainbow’를 들으며 감상에 젖고, 블랙 사바스의 ‘Heaven and Hell’을 들으며 헤드뱅잉을 하고, 게리 무어의 ‘Victims of the Future’를 들으며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 화려한 멜로디와 보컬의 밑바닥에서, 묵묵히 모든 것을 떠받치고 있는 네 개의 현이 울리는 소리. 그것이 바로 한 많은 인생을 살다 간 베이시스트, 크렉 그루버가 세상에 남긴 유일하고도 진실한 목소리다. 그의 생일인 6월 22일이 돌아올 때마다, 세상의 모든 베이시스트들은 잠시 그를 위해 네 개의 현을 낮게 울려줄지도 모른다. 스포트라이트 뒤편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한 남자의 한 많은 인생을 기리며.

https://youtu.be/B7nKzCRL_oo?list=RDB7nKzCRL_oo

The Temple Of The KingProvided to YouTube by Universal Music GroupThe Temple Of The Kin...www.youtube.com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