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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에서 터져 나온 첫 음이 공연장의 공기를 가르는 순간, 나는 지천명을 코앞에 둔 중년의 꼰대가 아니라, 낡은 워크맨으로 메탈리카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던 열일곱 소년으로 돌아갔다. 조명이 터지고 다섯 명의 사내가 무대 위에 섰다. 왼쪽부터 누노, 잭, 스티브, 잉베이, 그리고 토신 아바시. 전설, 영웅, 외계인, 그리고 신. 그들이 함께 연주하는 보스톤의 ‘Foreplay’는 단순한 오프닝이 아니었다. 그것은 각기 다른 우주를 지배하던 다섯 신들이 하나의 성소에 모여 울리는, 장대한 서사시의 서곡이었다.
첫 번째 독주자는 토신 아바시. 83년생, 젊은 피. 그의 여덟 줄 기타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는 내가 알던 메탈과는 궤가 달랐다. 수학 공식처럼 정교하게 계산된 변박과 불협화음의 미로 속에서, 그는 홀로 스윕 피킹과 태핑의 불꽃을 터뜨렸다. 특히 베이스와 함께 ‘초퍼’라 불렸던 슬랩 주법으로 유니즌을 맞출 땐, 낯설지만 경이로운 독창성에 잠시 숨을 멈췄다. 기타로 저런 소리를 낼 생각을 하다니. 하지만 그의 음악은 내 심장을 뛰게 하기엔 너무 이질적이었다. 아이언 메이든 내한 때 봤던 브루스 디킨슨 아들 밴드처럼, 그저 ‘잘한다’는 감상만 남긴 채 무심하게 흘러갔다. 무대 위에서 그는 연주하는 기계처럼 보였다. 어떤 퍼포먼스도, 감정의 교류도 없이 오직 테크닉의 성을 쌓아 올릴 뿐이었다. 누노가 무대에 올라 그와 합을 맞췄지만, 화학작용은 일어나지 않았다. 차가운 얼음과 뜨거운 용암이 만났지만, 그저 서로의 영역을 겉돌다 스러질 뿐이었다.
아바시가 퇴장하자, 무대의 공기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용암, 누노 베텐커트가 무대를 집어삼켰다. 그는 익스트림 시절의 명곡들을 꺼내 들었다. ‘Get the Funk out’의 첫 리프가 터져 나오자, 객석은 펑키(funky)한 그루브의 용광로로 변했다. ‘Midnight Express’의 질주, ‘왕벌의 비행’의 현란함, 그리고 ‘Rest in Peace’의 서정성까지. 그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메들리는 단순한 연주가 아니었다. 그것은 쇼였고, 축제였다.
누노는 기타만 잘 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관객과 호흡하는 법을, 무대를 즐기는 법을 아는 진정한 엔터테이너였다. 천재에는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평범한 이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재능을 세상과 나누는 사회적 천재, 다른 하나는 범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성에 갇혀 스스로 고립되는 고독한 천재. 누노는 명백히 전자였다. 그는 음악이 무엇인지, 인생을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아는 자였다. 장난스럽게 바지를 내리는 시늉을 하며 관객을 웃기고, 온몸으로 리듬을 타며 펑키 그루브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그의 마지막 곡에, 거대한 산맥 같은 사내가 무대로 걸어 나왔다. 바이킹의 후예, 잭 와일드. 그가 누노와 함께 ‘Sideways’를 연주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숨을 삼켰다. 펑키하고 리드미컬한 누노와 육중하고 블루지한 잭의 조합. 물과 기름, 제갈공명과 장비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두 에너지는 놀랍게도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누노의 기타가 경쾌한 춤이라면, 잭의 기타는 대지의 울음이었다. 그 울음에 홀린 듯, 나는 나도 모르게 무대 앞으로 파고들었다. 나의 발길은 무대 오른쪽, 잭 와일드가 버티고 선 우심방을 향하고 있었다.
잭 와일드! 2002년 오지 오스본 내한공연 이후 무려 16년 만의 재회였다. 서른 즈음의 젊은 직장인이었던 나는 이제 흰머리를 걱정하는 중년이 되었지만, 그는 변함이 없었다. 덥수룩한 수염, 강렬한 눈빛, 압도적인 존재감. 그는 단순한 기타리스트가 아니었다. 내 젊은 날의 ‘영웅’ 그 자체였다. 누노의 스캣과 주고받는 잭의 솔로는 그야말로 필생의 명연이었다.
누노가 퇴장하고, 무대는 온전히 잭의 차지가 되었다. 그는 판테라의 ‘I'm Broken’ 인트로로 광란의 서막을 열었다. 그리고 이어진 블랙 사바스의 ‘Into the Void’와 ‘War Pigs’. 공연장은 순식간에 헤비메탈의 지옥으로 변했다. 원곡보다 더 무겁고, 오지 오스본보다 더 처절한 그의 보컬은 내 심장을 움켜쥐고 뒤흔들었다. 미친놈처럼 솔로를 휘갈기던 그는, 돌연 무대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성큼성큼, 나를 향해 걸어왔다.
“우와!”
내 바로 앞에서, 잭 와일드가 기타를 울부짖게 만들고 있었다. 땀방울이 튀고, 그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2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보디가드가 철벽 방어를 하는 탓에 악수는커녕 손끝 하나 댈 수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황홀했다. 그의 광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관객석을 가로질러 2층 객석으로 기어 올라가더니, 거기서 또 한바탕 폭풍 같은 솔로를 펼쳐 보였다. 연주자가 2층까지 올라가 솔로를 하는 건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지축이 흔들리고, 내 심장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그는 기타 히어로 이전에, 헤비메탈 그 자체인 진정한 락커였다.
광란이 끝나고, 그는 마지막 곡으로 게리 무어의 ‘Still Got the Blues’를 연주했다. 황소의 똥처럼 거칠고 더티한 그의 목소리에는, 먼저 떠나간 영웅을 향한 진심 어린 애도가 묻어 있었다. 그의 기타 솔로 한 음 한 음에는 게리 무어를 향한 그리움과 존경이 애틋하게 담겨 있었다.
그때였다. 곡의 후반부, 무대 한쪽에서 모자를 쓴 누노가 다시 등장했다. 그는 잭의 옆에 서서 함께 듀엣 솔로를 펼쳤다. 영화 <리틀 빗 오브 헤븐>에서 죽음을 앞두고도 해맑게 웃던 케이트 허드슨과, 그녀를 우수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던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잭의 솔로는 케이트의 미소처럼 강렬하고 순수했고, 누노의 솔로는 가엘의 눈빛처럼 아련하고 투명했다. 두 영웅이 만들어내는 애틋하고 아름다운 하모니. 그것은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기타의 신, 게리 무어에게 바치는 가장 완벽한 성배였다.
하지만 모든 완벽한 순간에는 불청객이 있기 마련이다. 갑자기 관객석 한쪽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더니, 스티브 바이가 나타나 연주에 합류했다. 순간, 성배에 금이 갔다. 애절하고 경건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코미디로 변질되었다.
물론, 스티브 바이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한 명이다. 그의 연주는 인간의 것이라기엔 너무나 완벽해서, 외계인의 것이라 불린다. 하지만 그의 연주에는 ‘한(恨)’이 없었다. 게리 무어를 추모하는 이 슬픈 블루스에, 그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하고 행복한 음들을 흩뿌렸다. 뭐가 그리 좋은지 시종일관 미소를 띤 채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피 튀기는 격투기 시합에 난입한 프로레슬러처럼 생경했다. 누노도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의 결은 달랐다. 스티브 바이의 연주는 나에게 민폐를 넘어 ‘적폐’로 느껴졌다.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분노가 치밀었다.
잭이 무대를 떠나고 스티브가 독무대를 시작하자, 나는 참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화장실 옆 스태프용 철문을 발로 뻥 걷어차고(나이 오십 먹고 이게 무슨 짓인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귓가에 스티브 바이의 현란한 솔로가 흘렀지만,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잠시 후, 분을 삭이고 다시 1번 구역으로 파고들었다.
가까이서 본 스티브 바이는, 정말 잘 쳤다. 인간이 아니었다. 외계인이었다. 환갑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외모와 퍼포먼스. 그는 누노처럼,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아는 천재였다. 그의 대표곡 ‘For the Love of God’이 연주될 때, 나는 잠시 다른 차원의 우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환각을 경험했다. 그의 음악은 락도, 메탈도 아니었다. 그저 ‘스티브 바이’라는 이름의 외계 음향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등장했다. 스티브 바이가 “잉베이 맘스틴!”을 외치자, 무대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세 번째로 영접하는 그는, 역시나 ‘갓(God)’이었다. 그의 스트라토캐스터에서 터져 나오는 첫 음부터 차원이 달랐다. 그것은 헤비메탈의 형식을 띠고 있었지만, 이 세상의 어떤 메탈과도 같지 않았다. 바로크 메탈, 네오 클래시컬 같은 속세의 언어로는 규정할 수 없는, 오직 ‘잉베이’라는 이름의 위대한 장르 그 자체였다. 그 장르의 시작과 끝은 모두 잉베이였다.
나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외계인이고 영웅이고 나발이고, 신 앞에서는 모두가 평범한 필멸자에 불과했다. 나를 이 세계로 인도했던 ‘Far Beyond the Sun’의 전주가 흐르자, 감동의 해일이 나를 덮쳤다. 그는 주변의 모든 것을 녹여버리고 오직 자신의 이름만을 새겨 넣는, 불멸의 검은 별이었다. 마지막 곡 ‘Black Star’에서 스티브 바이가 게스트로 등장했을 때,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가 살리에리를 가지고 놀듯, 잉베이는 스티브 바이를 압도적으로 짓뭉개고 있었다. 천하의 외계인도 신 앞에서는 어린애 장난감에 불과했다.
잉베이의 독주회가 끝나자, 나는 내가 오늘 무슨 공연에 왔는지조차 헷갈렸다. 잠시 후, 다섯 명의 연주자가 모두 무대에 올라 마지막 잼 세션을 시작했다. 에드가 윈터 그룹의 ‘Frankenstein’, 퀸의 ‘Bohemian Rhapsody’, 딥 퍼플의 ‘Burn’. 섬세함(누노), 광기(잭), 환상(스티브), 그리고 신(잉베이)이 뒤섞인 환상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오인용 식탁’에서 잉베이는 유독 튀었다. 그는 다른 네 명과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되도 않는 보컬로 ‘Burn’의 가사를 틀리게 부르고, 다른 사람의 솔로 파트에서 불필요한 속주를 끼워 넣으며 분위기를 망쳤다. 그는 명백히, 범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스스로 고립되는 고독한 천재였다. G3 공연에서도 느꼈지만, 그는 협연이라는 것을 할 줄 모르는, 혹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긴, 신이 어찌 필멸의 인간이나 외계인 나부랭이들과 어울릴 수 있겠는가. 누노와 스티브는 함께할 때 더 빛났고, 잭은 자신의 개성을 지키면서도 무리 없이 섞여들었다. 하지만 잉베이는 오직 홀로 있을 때만 완벽한 신이었다. 그의 이런 진상 짓은 그의 명곡 ‘Never Die’처럼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런 잉베이가 좋다. 진상이든 적폐든, 그는 이 세상 누구도 가지지 못한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한 위대한 예술가 아닌가. 베토벤은 음악가가 신에 가장 가까운 인간이라 했지만, 잉베이는 이미 신 그 자체였다. 그런 신이 한낱 지구인들과 함께 무대에 서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공연장을 나서며 밤하늘을 보았다. 제네레이션 엑스를 본 것인지, 잉베이 맘스틴을 본 것인지 아직도 아리송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오늘 밤, 나는 다섯 개의 우주가 충돌하고 폭발하며 새로운 은하계를 만들어내는, 경이로운 순간을 목격했다. 내 늙어가는 심장은, 그날 밤의 울림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정말, 최고의 공연이었다.
https://youtu.be/wXPdJfKw5iU?si=diUWo9x00gcqVixY
(GENERATION AXE IN SEOUL 2019)누노바텐코트. 잭와일드. 스티브바이-STILL GOT THE BLUESYouTube에서 마음에 드는 동영상과 음악을 감상하고, 직접 만든 콘텐츠를 업로드하여 친구, 가족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과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www.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