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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창고

12년 전, 6월 14일의 기억

작성자화랑|작성시간26.06.15|조회수49 목록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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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6월 14일의 기억

그날의 공기는 유난히 끈적였다. 12년 전 6월 14일, 토요일. 달력의 숫자는 무심했지만, 내게는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날이었다. 내가 활동하던, 이제는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연령 카페’에서 나는 ‘콘서트 벙개’라는 것을 주최했다.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그저 내가 사랑하는 밴드 ‘크라티아’와 ‘더 클럽’의 공연을 누군가와 함께 보고 싶다는 소박한 욕망의 발현이었다.

카페 회원들 대부분에게 크라티아와 더 클럽은 낯선 이름이었다. 80년대 하드록의 영광과 90년대 초반의 감성을 논하기에 그들은 너무 젊거나, 혹은 너무 다른 세상에 살았다. 그 밴드들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나를 제외하면 고작 한두 명.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벙개였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내게는 나름의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 벙개 치면 갈게.”

“진짜? 크라티아 모르잖아.”

“오빠가 그렇게 좋아하는데 궁금하잖아. 그리고 오빠랑 놀면 재밌고.”

나와 유독 친하게 지내던 몇몇 ‘여친’들. 물론 여기서 ‘여친’이란 ‘여자친구’가 아닌 ‘여자 회원’을 지칭하는 우리만의 은어였다. 그녀들의 가벼운 약속을 나는 굳게 믿었다. 그녀들과 함께라면, 낡은 록 밴드의 공연도 활기 넘치는 파티가 될 것 같았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벙개 공지를 올렸다.

예상대로 댓글은 더디게 달렸다. 하지만 그 내용은 충실했다. 내가 기대했던 두 명의 여친이 나란히 참석 의사를 밝혔다. 둘 다 카페 내에서 꽤 인기가 좋은, 소위 ‘미중녀’라 불리는 친구들이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내 사람들은 의리가 있다니까. 공연장에서 준일이 형과 동호 형에게 그녀들을 소개하며 으쓱할 내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공연 당일, 예상치 못한 인물이 등판했다. 댓글 창에 새로운 이름이 떴다. 그는 크라티아는커녕 더 클럽의 ‘더’자도 모르는 친구였다. 음악 자체에 조예가 깊다기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인싸’ 스타일이었다. 그의 관심사가 음악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했다. 그의 레이더는 오직 그날 나오기로 한 두 명의 ‘여친’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지만, 뭐 어떠랴. 사람이 많으면 좋은 거지.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내 계획대로만 움직여주지 않는 법이다.

공연 시간이 다가올수록 내 휴대폰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먼저 전화벨이 울렸다. 익숙한 여친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힘없이 흘러나왔다.

“오빠, 미안. 어제 술을 너무 마셔서… 나 지금 쓰러졌어. 오늘 공연 못 갈 것 같아.”

한숨을 채 돌리기도 전에, 이번엔 카카오톡 알림이 울렸다. 또 다른 여친이었다.

“미안한데, 시간대가 너무 안 맞아서 못 가겠다.”

네, 네. 그렇군요. 전화와 카톡의 발신자는 모두 내가 굳게 믿었던 그 ‘여친’들이었다.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결국, 이 웃지 못할 촌극의 무대에는 두 명의 남자만이 남게 되었다. 전설적인 밴드의 음악을 공유하기 위해 벙개를 친 나와, 오직 여자들을 만나기 위해 나온 그 녀석.

공연장 앞에서 만난 그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벙찐 표정은 거울처럼 내 뻘쭘한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뭐? 걔네들 안 온다고? 야, 근데 왜 벙개 폭파 안 했어?”

그의 원망 섞인 질문에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러게. 나도 내가 왜 이 벙개를 폭파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혼자 느긋하게 음악을 즐기는 편이 백배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벙주’라는 감투가 내 발목을 잡았다. 일단 시작된 벙개는, 단 한 명의 참석자가 있더라도 완수해야 한다는 이상한 책임감이 나를 짓눌렀다.

“일단 왔으니까… 표는 끊어야지. 술이나 한잔할까?”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그를 근처 술집 ‘맛 좀 볼래?’로 이끌었다. 사실 나는 이미 오후부터 강기현 님과 거나하게 술을 마신 상태였다. 기현 님과 나눌 때는 음악이라는 명확한 공통분모가 있어 술이 물처럼 들어갔다. 하지만 눈앞의 이 친구와는 달랐다. 우리는 서로 다른 주파수를 가진 라디오 같았다. 아무리 다이얼을 돌려도 의미 있는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술잔은 더디게 비워졌고, 침묵은 길어졌다.

‘역시 난 음악을 모르는 남자와는 친구가 될 수 없는 몸인가 봐.’

스스로 내린 결론에 피식 웃음이 났다. 다행히 그는 생각보다 착하고 재미있는 친구였다.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했는지, 그는 먼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주로 그가 말하고 내가 듣는 구도였다. 그의 레퍼토리는 대부분 카페 여친들에게 작업을 걸다가 망신을 당한 무용담들이었다. 처절하고 유치했지만, 이상하게 듣다 보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의 실패담은 오늘 내가 겪은 배신감과 뻘쭘함을 희석시켜주는 묘한 위로가 되었다.

소주 몇 병을 비우고 공연장인 ‘쓰리썸’에 도착했을 때, 이미 무대 위에서는 익숙한 사운드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크라티아였다. 아, 이런. 나는 그들이 마지막 순서일 거라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존경하는 형님들의 오프닝을 놓치다니. 죄스러운 마음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우리는 쿵쾅거리는 비트와 날카로운 기타 리프가 휘몰아치는 공연장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무대 위에서 준일이 형은 전성기 시절보다 더욱 강력해진 오른손 피킹으로 현을 찢고 있었고, 그의 특기인 태핑 연주는 현란한 빛줄기처럼 허공을 갈랐다. 동호 형의 베이스는 심장을 직접 때리는 듯 묵직했다. 그의 괴력 넘치는 슬랩 연주는 그 자체로 하나의 퍼포먼스였다.

그들은 ‘레트로 펀치’ 앨범의 수록곡들과 새로운 라인업으로 만든 신곡들을 연주했다. 신곡들은 여전히 80년대 하드록의 뼈대를 유지하면서도, 한층 더 펑키하고 그루브한 리듬이 가미되어 있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새로운 드러머와 보컬리스트는 젊은 피답게 정확하고 절도 있는 연주를 선보였다. 성공적인 세대교체였다. 크라티아는 낡은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숨 쉬는 현재진행형 밴드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마지막 곡으로 ‘Hard headed woman’의 전주가 흘러나오자, 나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명불허전. 그들의 연주는 내 안의 모든 실망과 허탈함을 날려버릴 만큼 강력했다.

크라티아가 무대에서 내려간 후, 잠시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더 클럽’이 등장했다. 내 스쿨밴드 ‘광개토’의 전설적인 1기 보컬, 민치영 형님이 이끄는 밴드. 내게는 단순한 선배를 넘어,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첫 곡은 그들의 데뷔 앨범에 수록되었던 ‘Don't make jack a dull boy’였다. 24년 만에 라이브로 듣는 그 곡은 내 모든 세포를 깨우는 듯했다. 치영이 형의 목소리는 세월의 흐름을 비웃기라도 하듯, 20여 년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톤과 감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때는 없었던 중후한 원숙미까지 더해져 더욱 깊은 울림을 만들어냈다.

이후 이어진 신곡들은 일렉트로닉한 사운드와 펑키한 리듬이 결합된, 실험적이면서도 세련된 스타일이었다. 신곡을 부르는 치영이 형의 목소리는 또 다른 매력을 뽐냈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보컬처럼 몽환적이면서도 사색적인 분위기. 그 독특하고 심미적인 느낌은 낯설었지만,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음악에 문외한이던 내 옆의 친구조차 “와, 이 밴드 뭐냐? 노래 진짜 좋다”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치영이 형이 마이크를 잡고 나지막이 말했다.

“오랜만에… 이 노래 한번 해볼까요.”

그리고 흘러나온 멜로디. ‘May be’였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내가 이 곡의 라이브를 마지막으로 들었던 것은 1991년, 정동 방송국에서 진행된 ‘배철수의 음악캠프’ 공개방송에서였다. 더 클럽이 해체되기 직전의 마지막 불꽃과도 같았던 연주. 그 후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내 기억 속에 박제되어 있던 그 멜로디가 지금, 바로 내 눈앞에서 생생하게 연주되고 있었다.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눈앞이 흐려지며 뜨거운 것이 핑 돌았다. 아름다운 선율과 치영이 형의 애절한 목소리가 심장을 관통했다. 이토록 완벽한 순간을, 하필이면 오늘 처음 만난 남정네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거시기했지만, 그런 사소한 감정은 곧 음악이 주는 거대한 감동에 휩쓸려 사라졌다. 치영이 형은 대한민국에서 내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보컬리스트다. 그는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영혼을 울리는 소리를 낼 줄 아는 진짜 ‘아티스트’였다. 그의 후배라는 사실이 이토록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공연이 모두 끝나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잦아들자 현실이 돌아왔다. 나는 무대 뒤로 가서 크라티아의 준일이 형과 동호 형에게 꾸벅 인사를 드렸다. 하지만 치영이 형에게는 차마 다가가지 못했다. 원래대로라면 가장 먼저 달려가 인사를 드렸어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오늘 하루 종일 나를 괴롭혔던 실망감과 배신감, 그리고 그로 인한 삐딱한 마음이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며느리가 시댁에서 소박맞으면 친정 식구들을 그리워하는 심보랄까.’

학교 서클 선배보다는, 내 음악적 뿌리와도 같은 ‘친정 밴드’ 형님들에게 더 위로받고 싶은 날이었다. 치영이 형의 완벽한 무대는 오히려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자랑스러운 후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고작 음악도 모르는 남자애 하나 데리고 와 뻘쭘하게 서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공연장을 나서자 친구 녀석이 말했다.

“야, 공연 진짜 멋있다. 우리 어디 가서 소주나 한잔 더 할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그냥 들어갈래.”

미안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나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그와 더 이상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남자 둘이서, 그것도 아무런 공감대도 없는 사이끼리 마시는 술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만약 오늘 내 옆에 있었던 사람이 그 녀석이 아니라, 오기로 했던 ‘여친’들이었다면? 아마 나는 밤새도록 술을 마시자고 졸랐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마음속으로 외쳤다.
‘꺼져!’
그리고는 홀린 듯 단골 바(Bar)로 향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잭 대니얼스 한 병을 통째로 시켰다. 시끄러운 음악도, 사람들의 대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음악의 여운과 지독한 고독감만이 존재했다. 나는 잔도 없이 병째로 위스키를 들이켰다. 뜨거운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갈 때마다, 억눌렀던 감정들이 폭발할 듯 들끓었다.

다음 날, 나는 지독한 숙취와 함께 눈을 떴다.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바지사장의 말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어제 완전 삘 받으셨던데요. 잭 대니얼스 나발 불면서 ‘난 남자야!’ 소리 지르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 말을 떠올리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쌩쇼. 그래, 완벽한 쌩쇼였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배신감으로 시작해, 어색함과 실망감을 거쳐, 최고의 음악적 황홀경을 맛본 뒤, 지독한 고독 속에서 마무리된 그날 밤. 그것은 분명 내 인생에서 가장 기묘하고도, 끝내주는 밤이었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기타 리프와 내 위장을 태우던 잭 대니얼스의 맛은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https://youtu.be/i6B-Qr3T4fo?list=RDi6B-Qr3T4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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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타키 | 작성시간 2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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