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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주파수 (The December Frequency)
프롤로그
시간은 강처럼 흐르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된 라디오의 다이얼과 같다.
특정 주파수에 맞추면, 과거의 소리가 현재의 공기를 흔들며 되살아난다.
12월 16일.
이 날은 유독 많은 음악의 영혼들이 그들의 주파수를 세상에 송신하기 시작하거나, 혹은 영원히 침묵 속으로 다이얼을 돌린 날이다.
여기, 그 주파수들이 교차하는 한 지점에서 시작되는 이야기가 있다.
1977년 12월 16일, 뉴욕 브루클린
차가운 겨울 공기가 브루클린의 거리를 감쌌지만, ‘오디세이 2001’ 클럽 안은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오늘, 이 동네 출신 배우가 주연한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가 마침내 개봉했다.
클럽의 DJ인 리오는 턴테이블 위에서 비지스의 ‘Stayin' Alive’를 플레이하며 군중을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미러볼 아래,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현란한 스텝을 밟으며 현실의 고단함을 잊고 있었다.
디스코는 시대의 탈출구이자, 평범한 이들이 하룻밤의 왕과 여왕이 될 수 있는 마법이었다.
리오의 DJ 부스 옆에는 낡은 라디오가 하나 놓여 있었다.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가끔 리오는 쉬는 시간에 다이얼을 돌리며 오래된 방송을 듣는 취미가 있었다.
오늘 밤, 그는 무심코 다이얼을 돌리다 섬광 같은 소음을 들었다.
그리고 그 소음 너머로, 기이할 정도로 생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총을 든 그녀가 달려가네.
헤이 조, 그 총을 들고 어디로 가는 건가?”*
목소리는 거칠고 날카로웠지만, 그 안에는 푸른 불꽃 같은 에너지가 있었다.
리오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지미 헨드릭스.
7년 전 세상을 떠난 전설.
마치 유령의 방송처럼, 그의 데뷔 싱글 ‘Hey Joe’가 1966년의 공기를 뚫고 1977년의 클럽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리오는 황급히 다이얼을 돌렸지만, 소리는 사라지고 다시 지직거리는 잡음만이 남았다.
그는 그것이 피로가 만들어낸 환청이라 생각하며 애써 무시했다.
1988년 12월 16일, 샌프란시스코
리오의 삶은 디스코의 흥망과 함께했다.
‘토요일 밤의 열기’가 가져온 열풍은 영원할 것 같았지만, 80년대가 되자 디스코는 촌스러운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리오는 뉴욕을 떠나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바에서 간간이 DJ 일을 하며 살고 있었다.
화려했던 시절은 빛바랜 사진처럼 기억 속에만 남았다.
그날 아침, 리오는 신문 한구석에서 실베스터의 부고 기사를 읽었다.
‘디스코의 여왕(Queen of Disco)’이라 불렸던 남자.
그의 폭발적인 가성과 화려한 무대는 디스코 시대의 상징과도 같았다.
기사는 사인이 ‘에이즈 관련 합병증’이라고 짧게 전했다.
리오는 신문을 접으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한 시대가 또 이렇게 가는군.”
그날 밤,
그는 텅 빈 바에서 홀로 술을 마시며 낡은 라디오의 다이얼을 돌렸다.
또다시 그 기묘한 현상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달콤하고 애절한 목소리가 잡음을 뚫고 흘러나왔다.
*“나와 존스 부인, 우린 뭔가 하고 있죠.
사람들은 우리가 틀렸다고 하지만, 너무 강해서 내버려 둘 수가 없어요...”*
빌리 폴의 ‘Me and Mrs. Jones’.
1972년 겨울, 빌보드 차트를 점령했던 그 노래였다.
리오는 눈을 감았다.
이 노래는 16년 전, 첫사랑과 몰래 만나던 시절의 아릿한 공기, 그녀의 향수 냄새, 심장의 두근거림까지 고스란히 소환해냈다.
마치 시간이 압축된 소리의 캡슐을 연 것 같았다.
라디오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12월 16일이라는 특정 주파수에 맞춰진, 시간의 송신기였다.
2007년 12월 16일, 메인 주
세월은 흘러 리오는 60대에 접어들었다.
그는 이제 DJ가 아닌, 메인 주의 한적한 해변 마을에서 작은 중고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는 노인이 되었다.
그의 가게 ‘시간의 주파수’에는 낡은 라디오가 여전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매년 12월 16일이 되면, 마치 성스러운 의식처럼 라디오 앞에 앉았다.
그날도 리오는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라디오를 켰다.
다이얼을 돌리자, 여러 시대의 소리가 파편처럼 스쳐 지나갔다.
2차 세계대전의 포성이 희미하게 들리는 듯한 1943년 영국 넬슨의 한 산부인과, 전후 복구의 희망이 싹트던 1946년 스톡홀름의 아기 울음소리, 블루스의 열기가 피어오르던 1951년 캘리포니아의 햇살, 그리고 1968년, 또 다른 기타리스트의 탄생을 알리는 축복의 소리까지.
토니 힉스, 베니 앤더슨, 로벤 포드, 크리스토퍼 쏜.
그들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의 소리들이 리오의 귓가를 맴돌았다.
그는 이 라디오가 특정 인물들의 삶의 시작과 끝, 그리고 결정적 순간의 ‘소리’를 붙잡아두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12월 16일은 그 주파수가 가장 강하게 증폭되는 날이었다.
그때, 라디오에서 모든 소음이 멎더니, 맑고 서정적인 기타 선율과 함께 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버지의 유산은 단순한 계획이었네.
아들과 아내를 위한 삶, 땅과 함께 일하는 삶...”*
댄 포겔버그의 ‘Leader of the Band’.
리오는 이 노래를 잘 알았다.
포크 음악의 음유시인.
그의 목소리는 따뜻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쓸쓸했다.
노래가 끝나자, 라디오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완전한 침묵.
마치 한 영혼의 마지막 숨결이 방송을 타고 전해진 듯했다.
리오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뉴스를 통해 댄 포겔버그가 바로 어제, 12월 16일에 자신의 집에서 전립선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향년 56세.
리오는 비로소 모든 것을 이해했다.
이 라디오는 단순한 시간 여행 기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12월 16일이라는 날에 얽힌 음악가들의 영혼이 잠시 머물다 가는 정거장이었다.
탄생의 첫 울음, 열정의 첫 연주, 사랑의 세레나데, 그리고 마지막 숨결까지. 모든 소리가 이 주파수 안에 기록되어 있었다.
에필로그
리오의 레코드 가게는 이제 마을의 명물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시간의 주파수를 듣는 남자’라고 불렀다.
그는 더 이상 과거의 소리에 집착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수많은 영혼의 목소리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지미 헨드릭스의 혁명적인 기타 리프, 빌리 폴의 애절한 사랑 노래, 실베스터가 이끌었던 디스코의 황홀경, 그리고 댄 포겔버그의 서정적인 마지막 노래까지.
그 모든 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음악은 죽지 않는다.
다만 다른 주파수로 옮겨가 계속해서 연주될 뿐이다.
오늘도 12월 16일이다.
리오는 가게 문을 닫고 낡은 라디오 앞에 앉는다.
다이얼을 돌리자, 익숙한 잡음과 함께 새로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것은 미래의 어느 12월 16일,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한 아이의 울음소리일지도 모른다.
그 아이가 훗날 어떤 음악으로 세상을 위로하게 될지, 리오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확신한다.
그 아이의 음악 또한 언젠가 이 라디오의 주파수를 타고 시간을 건너, 누군가의 영혼에 가닿으리라는 것을.
그렇게 음악의 역사는, 12월의 주파수 속에서 영원히 흐를 것이다.
https://youtu.be/e5Pit2WJ6dI?list=RDe5Pit2WJ6dI
Dan Fogelberg - Rhythm Of The Rain (Official Video)The official video for “Rhythm Of The Rain" performed by Dan Fogelberg Listen to Dan Fogelberg: https://danfogelberg.lnk.to/listenID Follow Dan Fogelberg: ...www.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