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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 너머의 교신: 소돔과 카린, 그리고 5월의 메탈 연대기
1. 재회, 껍데기가 사라진 자리
2026년 5월 1일, 창원의 오후는 비현실적일 만큼 눈부셨다. 사무실 창틀에 반사된 햇빛이 눈을 찔러왔지만, 나는 그 통증조차 일종의 해방감으로 받아들였다. 보스턴 출신의 테크니컬 브루털 데스 메탈 밴드, 고래토리(Goratory)의 최신작 *Rice on Suede*가 이어폰 너머로 고막을 짓이기고 있었다. 변태적인 가사와 상반되는 그들의 정교하고 빡센 연주는 지금 내 복잡한 심경을 대변하는 듯했다.
카린이 탄 열차는 5시 30분 도착이다. 나는 사장의 눈총을 뒤로하고 조금 일찍 사무실을 나섰다. 14년 전, 인천 하숙 시절 내 품에 안기던 열 살 꼬마가 이제 스물네 살의 숙녀가 되어 나를 찾아온다니. 세월은 데스 메탈의 블래스트 비트보다도 빠르게 흘러가 버렸다.
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은 어제 저녁 남편이 저지른 '학살'의 잔해로 어지러웠다. 남편은 내가 아끼던 CD들을 내다 버렸다. 레드 제플린이나 오지 오스본을 즐기던 그였기에, 선혈이 낭자하고 장기가 적출된 내 데스 메탈 음반들의 재킷은 참을 수 없는 혐오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 CD들을 버려서 정작 상처받은 사람은 나야."라고 말하며 등을 돌리던 그의 야윈 뒷모습. 치매로 입원하신 시어머니의 해바라기 무늬 잠옷과 내 음반의 고어한 재킷 사이에서 그는 아마도 거대한 균열을 느꼈으리라.
나는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아니, 비난할 수 없었다. 나 역시 반년 전 회사 동료와 나누었던 그 묘한 기류, "이제 그만 만나자"고 말했을 때 돌아온 "흑심 없었다"는 차가운 대답이 주는 불쾌한 자존심의 상처를 안고 있었으니까.
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푸른색 가방 속 장롱 깊숙이 숨겨두었던 '알맹이'들을 떠올렸다. 남편이 버린 것은 단지 종이 껍데기와 플라스틱 케이스뿐이었다. 나는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알맹이(CD 본체)들만 따로 빼내 보관해두었다. 껍데기는 사라졌지만, 본질은 지켜냈다. 그것이 지금 내가 미소 지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였다.
역사 내 커피숍에 앉아 카니발 콥스(Cannibal Corpse)의 CD를 플레이어에 넣었다. 껍데기 없는 알맹이가 처연하게 돌아가며 맹렬한 소리를 내뱉기 시작할 때, 개찰구 너머로 한 여자가 걸어왔다. 14년 전의 그 눈매를 간직한, 그러나 몰라보게 성숙해진 카린이었다.
"언니!"
카린의 외침에 나는 이어폰을 뺐다. 우리의 재회는 그렇게 5월의 뜨거운 공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2. 5월 1일, 메탈의 성소에서
그날 저녁, 남편이 병간호로 자리를 비운 집안은 오로지 우리 두 사람의 차지였다. 와인 잔을 기울이며 카린은 내 작은 방, 케이스 없이 알맹이만 쌓여 있는 CD 더미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언니, 이게 다 뭐야? 진짜로 알맹이만 남았네?"
"응. 껍데기는 세상의 눈치를 보느라 버려졌지만, 음악은 죽지 않았거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컴퓨터 앞에 앉아 'Encyclopaedia Metallum(The Metal Archives)' 페이지를 열었다. 오늘은 2026년 5월 1일. 메탈헤드들에게 이 사이트는 성경이자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역사서였다.
"언니, 오늘 발매되는 신보들 좀 봐요. 장난 아닌데요?"
카린이 마우스를 휘저으며 목록을 읽어 내려갔다.
"네크로피아(Necropia)의 *Our Kingdom Befouled*... 와, 드디어 풀렝스가 나왔네. 임모탈 폼(Immortal Form)의 EP도 있고. 언니가 좋아하는 비세라 크라운(Viscera Crown)의 *Extreme Groove Brutality*도 오늘이에요!"
나는 화면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림슨 스틸(Crimson Steel)의 *Show No Fear*도 기대작이지. 5월 1일은 항상 뭔가 쏟아지는 날이야. 2019년엔 노르덴(Norden)의 명반이 나왔었고, 작년엔 코브라 티츠(Cobra Tits) 싱글도 있었잖아."
카린은 맥주 캔을 따며 뉴스 탭을 클릭했다. "근데 언니, 슬픈 소식도 많아요. 필 캠벨(Phil Campbell) 아저씨 기사가 아직도 상단에 있네. 모터헤드의 그 거친 기타 톤을 이제 라이브로 못 듣는다니..."
"로스 더 보스(Ross the Boss)도 지난달에 갔지. 마노워 시절의 그 당당함이 그립네. 나이젤 더럼(Nigel Durham)까지... 전설들이 하나둘씩 별이 되고 있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죽음과 상실은 데스 메탈의 단골 소재지만, 현실의 죽음은 언제나 차갑고 무겁다. 하지만 메탈의 세계는 그 죽음 위에서 다시 피어난다.
"언니! 이것 봐요! 네버모어(Nevermore)가 재결성했대요! 제프 루미스가 돌아왔어! 이스탄불 공연 영상 떴는데 장난 아니에요."
카린의 목소리가 다시 활기를 띠었다. 우리는 유튜브를 뒤져 네버모어의 재결성 공연 영상을 찾아냈다. 90년대 메탈의 자존심이 2026년의 기술과 만나 폭발하고 있었다.
"배틀 비스트(Battle Beast) 보컬 교체 소식도 있네. 노라 루히모가 나가고 마리나 라 토라카가 들어왔구나. 언니, 이 보컬 톤 어때요? 전 노라가 더 좋긴 한데."
"글쎄, 변화는 메탈의 숙명이지. 엑셉트(Accept)도 드러머가 임시로 바뀌었다는데, '특별 게스트'가 누굴지 궁금하네. 러쉬(Rush)가 아니카 닐레스랑 투어 도는 것도 그렇고. 결국 음악은 사람을 바꿔가며 계속 흐르는 거야. 우리 삶처럼."
3. 껍데기를 벗고 본질로
밤이 깊어갈수록 우리의 대화는 더 깊은 곳으로 침잠했다. 카린은 24살의 불안함을 털어놓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빠들이 떠난 빈집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남겨진 채 느꼈던 그 막막함. 그 막막함을 채워준 것이 큰오빠가 남기고 간 LP들이었다고 했다.
"언니, 나 오늘 창원역에서 언니를 딱 봤을 때 무슨 생각 했는지 알아요? 언니는 여전히 예쁘고 세련됐지만, 뭔가... 자기만의 방 속에 갇힌 알맹이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 CD들처럼요."
나는 와인을 들이켰다. 카린의 통찰은 날카로웠다.
"맞아. 난 지금 껍데기를 다 뺏긴 채 살고 있어. 남편이 버린 건 단순한 CD 케이스가 아니었을 거야. 내가 숨겨둔 욕망, 내가 끝내 포기하지 못한 나의 본질이었겠지. 그걸 버림으로써 그는 나를 '평범한 아내'라는 케이스에 가두고 싶었을 거야."
나는 화면을 넘겨 메가데스(Megadeth)의 고별 투어 소식을 보여주었다.
"봐, 데이브 머스테인도 결국 고별 투어를 하잖아. 영원할 것 같은 전설들도 끝을 선언해. 하지만 그들이 남긴 리프는 사라지지 않지. 내 인생도 지금 고별 투어 중인지 모르겠어. '누군가의 아내', '착한 며느리'라는 역할과의 고별 투어."
카린이 내 손을 잡았다. "언니, 트위스티드 시스터(Twisted Sister) 투어 소식 봤죠? 디 스나이더가 아파서 세바스찬 바흐가 대신 설지도 모른다는 루머요. 인생이 계획대로 안 돼도 어떻게든 무대는 계속되잖아요. 언니의 무대도 그래요."
우리는 함께 웃었다. 2026년 5월 1일의 메탈 뉴스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생존 보고서였고,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변치 않는 소음의 연대기였다.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이 마침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는 뉴스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컴퓨터를 껐다. 거실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지만, 아까와는 다른 종류의 정적이었다.
"카린아, 내일은 같이 병원에 가보자. 시어머니께 인사도 드리고...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레코드 샵에 들러서 오늘 나온 신보들, '껍데기'까지 온전한 새 제품으로 사자. 이제 숨기지 않을 거야."
카린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창밖으로 창원의 밤바다가 보였다. 관람차는 멈춰 있었지만, 바닷물은 끊임없이 출렁이며 해안을 때리고 있었다. 마치 데스 메탈의 더블 베이스 드럼 소리처럼.
껍데기는 버려질 수 있고, 라인업은 바뀔 수 있으며, 투어는 취소될 수도 있다. 하지만 5월 1일의 메탈사(史)가 증명하듯, 기록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 장롱 속의 알맹이들처럼, 그리고 내 눈앞의 카린처럼, 진심은 언제나 가장 깊은 곳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우리는 카니발 콥스의 음악을 다시 크게 틀었다. 벽이 울리고 바닥이 떨렸다. 남편이 돌아오면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만의 'Extreme Groove Brutality'가 이 집안의 유일한 질서였으니까.
2026년 5월의 첫날은 그렇게, 가장 격렬한 소음 속에서 가장 평온한 위로를 건네며 저물어가고 있었다.
니키1 like. "화랑 - Sodom(If you are a false, don't entry)"www.youtube.com
https://youtu.be/7Vn29IEzJ7Q?si=qRHcwGOXxAIiKDKx
니키1 like. "화랑 - Metal is forever!!!"www.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