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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7일, 호주 멜버른.

작성자화랑|작성시간26.06.07|조회수157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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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7일, 호주 멜버른.
여름의 문턱에 들어선 북반구와 달리, 이곳의 공기는 초겨울의 냉기를 머금고 있었다. 회색빛 하늘 아래, 낡은 레코드 가게 ‘사운드마인(Soundmine)’의 창문에는 희미한 김이 서려 있었다. 가게 주인 리암은 마른 걸레로 LP판 하나하나를 닦으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에 무심하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경제 지표, 정치인의 스캔들… 세상은 언제나처럼 지루한 소음으로 가득했다.

그때, 라디오 DJ의 목소리 톤이 살짝 바뀌었다.

“오늘, 헤비메탈의 역사에 한 획이 그어지는 날입니다. 바로 전설, 블랙 사바스의 새 앨범, 《13》이 호주에서 전 세계 최초로 발매되었습니다! 무려 35년 만에 오지 오스본의 목소리로 돌아온 블랙 사바스입니다!”

리암의 손이 멈췄다. 35년. 그 숫자가 그의 뇌리를 망치처럼 때렸다. 그는 쉰을 바라보는 중년이었고, 그의 인생 절반보다 긴 시간이었다. 라디오에서는 앨범의 첫 트랙 ‘End of the Beginning’이 장중하게 흘러나왔다. 토니 아이오미의 육중하고 악마적인 기타 리프가 가게 안의 먼지 쌓인 공기를 갈랐고, 그 위로 오지 오스본의 음산하고 독특한 목소리가 실렸다. 마치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1970년대 버밍엄의 어느 어두운 지하실에서 울려 퍼지던 그 원초적인 사운드 같았다.

리암은 닦던 LP판을 내려놓고 창밖을 보았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흐르며 바깥 풍경을 왜곡시켰다. 그의 기억도 빗물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1978년, 리암은 열다섯 살이었다. 그의 세상은 온통 블랙 사바스였다. 낡은 턴테이블 위에서 돌아가는 《Never Say Die!》 앨범, 벽에 붙여놓은 밴드 포스터, 기타를 맨 토니 아이오미의 흉내를 내며 빗자루를 휘두르던 밤들. 그에게 블랙 사바스는 단순한 밴드가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위선과 기만에 맞서는 유일한 무기이자, 소외된 소년의 분노를 대변하는 검은 찬송가였다.

그 시절, 그의 곁에는 언제나 줄리안이 있었다. 줄리안은 리암보다 두 살 위였던 동네 형으로, 뛰어난 기타 실력을 가졌다. 그는 닳아빠진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로 토니 아이오미의 리프를 귀신같이 복제해냈다. 둘은 언젠가 블랙 사바스 같은 밴드를 만들어 세상을 뒤흔들 거라고, 술 대신 콜라를 마시며 맹세하곤 했다. 그들의 밴드 이름은 ‘이터널 트랜퀼리티(Eternal Tranquility)’, 영원한 평온이라는 역설적인 이름이었다.

하지만 오리지널 블랙 사바스의 시대는 그들의 맹세가 무색하게 너무 빨리 끝나버렸다. 오지 오스본의 탈퇴 소식은 어린 리암과 줄리안에게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이었다. 그들은 마치 신을 잃은 신도들처럼 한동안 방황했다.

시간은 흘렀다. 리암은 레코드 가게 점원이 되었고, 줄리안은 여전히 기타를 놓지 않았다. 그는 여러 밴드를 전전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블랙 사바스가 있었다.

“리암, 들어봐. 이 리프 어때? 토니 아이오미가 들으면 질투하겠지?”

줄리안은 종종 새벽에 리암의 가게를 찾아와 새로 만든 리프를 들려주곤 했다. 그의 음악은 점점 더 어둡고, 무거워졌다. 순수했던 동경은 어느새 광기에 가까운 집착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는 ‘쿼토니’라는 예명을 쓰기 시작했다. 스웨덴의 블랙 메탈 밴드 바소리의 그 쿼토니였다. 줄리안은 그의 음악적 유산을 자신이 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몰라. 진정한 어둠, 진짜 헤비니스가 뭔지. 내가 보여줄 거야.”

줄리안의 눈은 언제나 불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불꽃은 열정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태우는 파멸의 불꽃에 가까웠다. 그는 ‘레프트레인씨오리(Leftlanetheory)’라는 이름의 1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에 걸쳐 작업한 첫 앨범 《Nocturnal Oblivion》을 완성했다.

“이건 그냥 앨범이 아니야. 내 영혼의 기록이야.”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앨범 CD 45장을 직접 제작해 리암에게 가져왔다. 검은색 재킷에는 알아볼 수 없는 기호들만 새겨져 있었다. 리암은 그의 가게에 앨범을 비치해 주었지만, 팔린 것은 단 세 장뿐이었다. 세상은 줄리안의 광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절망에 빠진 줄리안은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는 리암과의 연락도 끊었다. 그리고 몇 년 후인 2004년 6월, 리암은 신문 한구석에서 그의 소식을 접했다. 줄리안이 자신의 작은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단신이었다. 발견된 날은 6월 7일. 공교롭게도 그가 숭배해 마지않던 바소리의 쿼토니가 같은 날 발견된 것과 똑같았다. 사인은 심장마비. 경찰은 약물이나 타살의 흔적은 없다고 발표했지만, 리암은 알고 있었다. 줄리안은 스스로를 모두 불태워버린 것이라고.

“사장님, 블랙 사바스 신보 들어왔나요?”

한 젊은이의 목소리가 리암을 현실로 돌려놓았다. 그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청년이 카운터 앞에 서 있었다. 검은 밴드 티셔츠에 찢어진 청바지. 꼭 젊은 시절 자신과 줄리안을 보는 것 같았다.

“어, 아직. 배송이 좀 늦는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블랙 사바스의 음악을 들으며, 리암은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35년 만의 귀환. 죽은 줄 알았던 신이 부활한 것이다. 하지만 그 부활을 함께 기뻐해 줄 줄리안은 이제 세상에 없었다. 만약 그가 살아있었다면, 이 앨범을 듣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아마 아이처럼 기뻐하며 당장 기타를 들고 미친 듯이 리프를 쏟아냈을 것이다. 혹은, 자신의 시대는 끝났다며 더욱 깊은 절망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그날 오후, 주문했던 앨범 박스가 도착했다. 리암은 커터칼로 박스를 열었다. 수십 장의 《13》 앨범이 모습을 드러냈다. 불타는 숫자 ‘13’이 새겨진 검은 재킷. 그는 앨범 하나를 집어 비닐을 뜯었다. 그리고 가게의 최고급 턴테이블에 LP를 올렸다. 바늘이 내려앉는 소리와 함께, 릭 루빈이 빚어낸 육중한 사운드가 스피커를 통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가게 문이 열리며 또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나이가 지긋한 남자였다. 희끗희끗한 머리, 깊게 팬 주름. 그는 앨범 재킷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리암에게 말했다.

“젊은 시절이 생각나는군. 이 친구들 음악 들으면서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는데.”

“저도 그랬습니다.”

리암이 짧게 대답했다.

“마크 레일이라는 기타리스트, 알아요? 라이엇의.”

“물론입니다. Thundersteel은 명반이죠.”

“오늘이 그 친구 생일이라더군. 작년에 죽었다지. 안타까운 일이야. 영웅들은 너무 빨리 떠나.”

남자는 앨범 한 장을 사서 가게를 나갔다. 영웅들의 죽음, 그리고 전설의 귀환. 6월 7일이라는 날은 리암에게 너무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마크 레일의 탄생, 쿼토니와 줄리안의 죽음, 그리고 블랙 사바스의 부활. 삶과 죽음, 창조와 소멸이 기묘하게 뒤엉킨 하루였다.

음악은 계속 흘렀다. ‘God Is Dead?’의 가사가 리암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Is God dead?*

리암은 눈을 감았다. 신은 죽었는가? 그의 젊은 시절을 지배했던 신, 블랙 사바스는 죽었다가 35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줄리안이 신처럼 떠받들던 쿼토니는 죽었고, 줄리안 역시 그 뒤를 따랐다. 어쩌면 신은 죽고 사는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어떤 이의 마음속에서 타오르다가, 다른 이의 마음으로 옮겨붙는 불꽃 같은 것일지도.

그때, 가게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잊혀 있던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리암은 홀린 듯 그곳으로 다가갔다. 상자 안에는 줄리안이 남기고 간 것들이 있었다. 팔리지 않은 그의 앨범 《Nocturnal Oblivion》 CD 수십 장, 그리고 그가 밴드 시절 만들었던 데모 테이프 하나. 테이프에는 닳아빠진 글씨로 ‘이터널 트랜퀼리티’라고 적혀 있었다.

리암은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찾아 먼지를 털어내고 테이프를 넣었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앳되지만 열정 넘치는 기타 연주가 흘러나왔다. 블랙 사바스를 어설프게 따라 하던, 하지만 그 누구보다 진심이었던 열일곱 줄리안의 연주였다. 그 뒤로 열다섯 리암의 서툰 베이스 소리도 들려왔다.

리암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줄리안은 죽었지만 그의 음악은, 그의 영혼은 이 작은 플라스틱 조각 안에 살아남아 있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단 45장만 찍어낸 앨범과 단 하나의 데모 테이프 속에 그는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턴테이블 위에서는 블랙 사바스의 마지막 트랙이 흐르고 있었다.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고, 멀리서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소리. 40여 년 전, 그들의 데뷔 앨범 첫 트랙을 그대로 가져온 수미상관의 구성이었다.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

리암은 조심스럽게 줄리안의 앨범 CD 한 장을 꺼내 카운터 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그 옆에 블랙 사바스의 《13》 앨범을 나란히 놓았다. 헤비메탈의 시조새와, 아무도 기억 못 하는 무명의 아티스트. 거대한 전설과 스러져간 광기.

하지만 리암의 눈에는 둘 다 똑같이 위대해 보였다. 누군가는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며 역사가 되고, 누군가는 45장의 앨범만을 남긴 채 잊혀진다. 그러나 음악을 향한 그들의 뜨거웠던 영혼의 무게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창밖의 비가 그치고, 잿빛 구름 사이로 희미한 빛줄기가 새어 나왔다. 리암은 가게 문을 열고 차갑지만 상쾌한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2013년 6월 7일. 누군가에겐 그저 평범한 겨울의 하루였겠지만, 리암에게는 전설의 부활과 친구의 영혼을 동시에 추모하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그의 작은 레코드 가게 안에서,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의 메탈이 함께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영원한 평온이었다.

https://youtu.be/OhhOU5FUPBE?list=RDOhhOU5FUP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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