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메탈 누아르: Altered State 058
2026년 6월 12일. 서울의 하늘은 거대한 강철 지붕처럼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금방이라도 먹구름 사이로 날카로운 쇳가루 비가 쏟아질 듯한 습한 공기. 서른 살의 프리랜서 작가 한이수는 낡은 오피스텔 창틀에 맺힌 검은 물방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모니터의 푸른 빛만이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는 유일한 생동감이었다.
블래버마우스(Blabbermouth) 메인 페이지에는 믿기 힘든 속보가 떠 있었다.
[RIP: Ozzy Osbourne (1948 - 2026) - The Prince of Darkness has left the building.]
"결국 오지도 갔네..."
이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헤비메탈의 대부가 세상을 떠난 날, 공교롭게도 세상은 수많은 메탈 신보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책상 위 포스트잇에 적힌 리스트들—*Vanden Plas, Nuclear Tomb, Malist, Defiled*—은 마치 거대한 별의 죽음을 기리는 폭죽 리스트처럼 보였다.
이수는 소니 헤드폰을 눌러 썼다. 오늘 그녀가 선택한 첫 곡은 **Vanden Plas**의 신보였다. 정교한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선율이 귀를 파고들었지만, 그녀의 신경은 자꾸만 다른 곳으로 곤두섰다. 오늘, 6월 12일은 1985년 메가데스(Megadeth)의 데이브 머스테인이 분노를 담아 《Killing Is My Business... and Business Is Good!》을 세상에 내놓았던 바로 그날이기도 했다.
그때, 정적을 깨고 메일 알람이 울렸다.
발신인: 0.5.8 <anonymous@protonmail.com>
제목: [0.5.8 - Altered State]
메일에는 짧은 위도와 경도 좌표(37.499368, 126.991042)와 사진 한 장이 첨부되어 있었다. 사진 속에는 낡은 기타 케이스, 오늘 발매된 **Defiled**의 새 CD, 그리고 그 위에 흩뿌려진 선명한 핏자국과 피 묻은 피크가 놓여 있었다.
"이건 단순한 스팸이 아니야."
좌표는 낙원상가 인근의 폐건물을 가리키고 있었다. 최근 콘(Korn)의 베이시스트 라 디아즈의 악기 도난 사건이 낙원상가 뒷골목에서 해결되었다는 뉴스가 뇌리를 스쳤다. 이수는 홀린 듯 검은 가죽 재킷을 걸쳤다. 가방 안에는 오늘 발매된 Cornucopia의 카세트테이프를 챙겼다. 스래시 메탈의 직선적인 리듬이 그녀의 심박수를 재촉하고 있었다.
낙원상가의 뒷골목은 습기로 가득했다. 낡은 악기점들 사이로 비릿한 금속 냄새와 기름때 냄새가 섞여 났다. 좌표가 가리킨 건물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어둡고 축축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불길한 기운이 발목을 잡았다.
지하 깊숙한 곳에서 희미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Malist의 블랙 메탈이었다. 처절하고 차가운 스크리밍이 콘크리트 벽을 타고 흐르며 고막을 긁어댔다. 이수는 숨을 죽이고 철문을 밀었다.
문 안쪽, 먼지 쌓인 앰프들과 케이블이 뒤엉킨 공간 한가운데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벤 엘러가 머신 헤드 투어에서나 쓸 법한 정교한 잭슨 기타를 무릎에 올린 채 줄을 고르고 있었다.
"왔네, 이수 씨."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강렬한 카리스마, 차가운 눈매. 그녀는 한때 홍대 인디 메탈 씬에서 '천재 기타리스트'로 불렸으나, 5년 전 모종의 사건 이후 종적을 감췄던 '레나'였다.
"당신이 보낸 건가요? 이 피 묻은 사진과 메일들."
레나는 대답 대신 낡은 턴테이블 위에 **Infected**의 《House on Haunted Hill》 엘피를 올렸다. 기괴한 호러 메탈의 서곡이 지하 공간을 가득 채웠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지? 오지가 죽었고, 머스테인이 복수를 시작했던 날이야. 그리고... 내가 이 씬에서 사회적으로 살해당했던 날이기도 하지."
레나는 이수에게 낡은 일기장 하나를 내밀었다. 표지에는 '레나의 일기 2018 - 2023'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걸 읽어봐. 그리고 기록해줘. 소설이든, 폭로 기사든 상관없어. 당신은 글을 쓰는 사람이잖아. 비명을 기록하는 사람."
이수는 떨리는 손으로 일기장을 넘겼다. 그 안에는 메탈 씬의 화려한 조명 뒤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들이 빼곡했다. 권력 있는 프로듀서들의 성착취, 대형 밴드 멤버들의 약물 오남용과 신인 뮤지션들에 대한 가혹 행위, 그리고 그것을 '메탈의 정신'이라는 미명 하에 묵인해온 업계의 카르텔.
Dehumanize EP 제목처럼 일기장은 네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었다.
- 비극(Tragicus): 꿈을 품고 상경한 소녀의 기타가 부서지던 날.
- 기쁨(Laetitia): 첫 무대의 희열이 약물로 오염되던 순간.
- 분노(Ira):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고 침묵을 강요받았던 밤.
- 자비(Misericordia): 스스로를 파괴하며 얻어낸 마지막 복수의 기회.
"왜 하필 저죠?"
이수가 물었다.
레나가 기타 피크를 만지며 나직하게 답했다.
"당신은 메가데스의 《Mechanix》를 들으며 그 속도의 분노를 이해하는 사람이니까. 메탈리카보다 더 빠르게, 더 날카롭게 세상의 급소를 찌르고 싶어 했던 머스테인의 결핍을 아는 사람이니까."
레나의 손가락이 기타 줄을 튕겼다.
Nuclear Tomb의 프로그레시브한 데스 메탈 사운드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었다. 복잡하고 난해한 리듬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그 선율은, 마치 이수가 써내려가야 할 진실의 궤적 같았다.
"이 일기장에 적힌 사람들은 지금도 이 도시의 높은 곳에서 음악을 논하고 있어. 오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척하며 SNS에 애도 글을 올리고 있겠지. 하지만 그들의 손은 이미 피로 물들어 있어."
레나는 구석에 놓인 기타 케이스를 열었다. 그 안에는 일기장에 적힌 이름들이 새겨진 탄환들과 낡은 녹음기들이 가득했다. 이것은 단순한 음악적 재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Altered State(변형된 상태)', 즉 일상적인 자아를 버리고 복수의 화신이 된 자의 선전포고였다.
이수는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창밖의 비는 이제 폭우로 변해 낙원상가의 낡은 지붕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녀는 노트북을 켜고 책상 위에 레나의 일기장과 오늘 수집한 신보들을 펼쳐놓았다.
헤드폰에서는 메가데스의 《Mechanix》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거칠고 날카로운 트레몰로 피킹, 심장을 두드리는 더블 베이스 드럼의 폭격. 이수는 그 속도감에 몸을 맡겼다. 그녀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2026년 6월 12일.
세상의 모든 소음이 멈춘 날, 나는 가장 낮은 곳의 비명을 기록하기로 했다.]
첫 문장을 적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그것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었다. 잊혀진 여성 뮤지션들을 위한 진혼곡이자, 금속의 외피를 쓴 추악한 괴물들을 단죄하는 격문이었다.
이수는 일기장의 내용을 바탕으로 인물들을 재구성했다. 거물급 프로듀서 'K', 씬의 대부로 추앙받던 기타리스트 'M'. 그들이 저지른 'Business'를 그녀만의 방식으로 되갚아줄 차례였다.
밤이 깊어갈수록 이수의 글은 점점 더 서늘한 빛을 띠었다. Red Mesa의 스토너 메탈처럼 묵직한 서사가 쌓였고, Defiled의 데스 메탈처럼 잔혹한 진실들이 문장 사이사이에 박혔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펜이라는 이름의 잭슨 기타를 든 메탈러였고, 단어라는 이름의 탄환을 장전한 저격수였다.
새벽 4시. 마지막 문장을 마침표로 찍었을 때, 이수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았다. 퀭한 눈 아래로 흐르는 묘한 생기. 그것은 파괴 뒤에 오는 창조의 희열이었다.
다음 날 아침, 서울의 하늘은 어제보다 맑았지만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다. 메탈 커뮤니티와 뉴스 사회면은 발칵 뒤집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작가 'Altered State 058'이 올린 연재 소설 [서울 메탈 누아르] 때문이었다.
소설 속 사건들은 너무나 구체적이었고, 등장인물들의 특징은 실존 인물들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경악했고, 누군가는 공포에 떨었으며, 누군가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듯 환호했다.
낙원상가 지하, 레나는 짐을 챙겨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스마트폰으로 이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기록은 끝났습니다. 이제 당신의 차례군요.]
레나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기타 케이스를 닫았다. 그녀의 등 뒤로 1985년의 머스테인이 남긴 명언이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Killing Is My Business... and Business Is Good!"
이수는 다시 헤드폰을 썼다. 오늘은 오지의 부고 기사 대신,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인터넷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수는 새 앨범 리스트 밑에 짧게 덧붙였다.
*Han Isu - The Recording of Screams (Ongoing)*
비명은 더 이상 지하에 갇혀 있지 않았다. 그것은 증폭기를 타고, 광섬유를 타고, 사람들의 심장을 향해 가장 무거운 디스토션과 함께 퍼져나가고 있었다. 2026년 6월 12일, 서울의 금속성 비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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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gadeth - Mechanix [Original 1985 Studio Recording]The audio in this video was ripped from an original 1985 studio rec...www.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