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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주혹새에서 온 편지

작성자화랑|작성시간26.06.19|조회수37 목록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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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주혹새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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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의 들뜬 공기가 신촌 밤거리를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연인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웃음꽃을 피웠고, 상점마다 흘러나오는 달콤한 사랑 노래가 그들을 축복했다. 하지만 그 소란스러운 거리, 낡은 상가 건물의 2층으로 향하는 좁고 가파른 계단은 마치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입구처럼 고요했다. 계단을 오를수록 세상의 소음은 멀어지고, 쿵, 쿵, 심장을 때리는 묵직한 베이스음과 날카롭게 공간을 가르는 기타 리프가 발밑에서부터 진동해왔다.

그곳엔 '주혹새'가 있었다.

주다스 프리스트 혹은 블랙 새버스. 누군가는 그 이름을 두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했지만, 우리에겐 성지였다. 닳아빠진 가죽 재킷과 빛바랜 밴드 티셔츠가 우리의 교복이었고, 맥주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우리의 기도문이었으며, 스피커를 찢을 듯 울려 퍼지는 헤비메탈이 우리의 찬가였다.

나는 그날도 바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주머니 속 초콜릿은 건네줄 주인을 잃은 채 미지근하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주혹새의 마지막 날. 폐업 소식은 갑작스러웠지만, 어쩌면 모두가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대는 변했고, 우리의 음악은 점점 더 구석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사장님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소음과도 작별이네."

그 말에 누구도 대꾸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들어섰다. 캐나다에서 온 데이빗. Woods of Ypres의 리더이자, 한때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씬에 잠시 머물렀던 이방인. 그는 몇 년 전 한국을 떠났지만, 어떻게 마지막 날인 걸 알고 찾아왔는지 의문이었다.

"Hey, man."

그는 내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수줍음 많던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긴 머리카락이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었지만, 선한 눈매는 여전했다. 우리는 말없이 맥주잔을 부딪쳤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우리의 침묵을 어색하지 않게 채워주었다.

"마지막이라니, 믿을 수가 없네."

데이빗이 겨우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음악에 묻혀 겨우 들릴 듯 말 듯 했다.

"그러게. 이제 어디서 이런 음악을 듣지."

"여기서 내 음악을 처음 틀었을 때가 기억나. 다들 '이게 뭐냐'는 표정이었는데."

그가 피식 웃었다. 그랬다. 그의 밴드 음악은 블랙 메탈의 공격성과 둠 메탈의 장중함이 뒤섞인, 당시 우리에게도 낯선 사운드였다. 그는 신청곡을 적는 냅킨에 서툰 한글로 '우즈 오브 이프레스'라고 적어 내밀며,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속삭였었다.

'Heavy! Heavy! Heavy!'

그의 눈은 순수한 열정으로 불타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킬 듯한, 가장 무겁고 진실한 소리를 갈망하는 눈빛. 나는 그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네크라미쓰 애들이랑 여기서 참이슬 병나발 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데이빗은 아련한 표정으로 바 안을 둘러보았다. 벽에 덕지덕지 붙은 밴드 포스터, 누군가 새겨놓은 낙서, 담배 연기에 그을린 천장까지. 모든 것이 그의 기억 속에, 그리고 나의 기억 속에 박제된 풍경이었다. 우리는 그날 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저 주혹새의 마지막을 함께 지켰다. 마지막 손님이 떠나고, 사장님이 스피커의 전원을 내렸을 때, 세상이 끝나는 듯한 정적이 찾아왔다.

"갈게. 언젠가 캐나다에 오면 연락해. 내 음악, 더 '헤비'해졌다고."

그는 내 어깨를 툭 치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것이 내가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약 10개월이 흘렀다. 2011년 12월 22일. 크리스마스를 코앞에 둔 겨울밤이었다. 주혹새가 사라진 신촌 거리는 여전히 낯설었다. 나는 무의미하게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외신 메탈 뉴스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Woods of Ypres의 프론트맨, David Gold, 교통사고로 사망.'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향년 31세. 크리스마스를 3일 앞둔 12월 21일의 사고였다. 손이 떨려 스크롤을 내릴 수 없었다. 모니터 화면 속, 활짝 웃고 있는 그의 흑백 사진이 흐릿하게 번져갔다. 주혹새에서의 마지막 밤, 더 헤비해졌다며 웃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의 새 앨범은 발매를 앞두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가장 '헤비'한 외침을 세상에 남기지 못하고 떠나버린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한동안 메탈을 듣지 못했다. 모든 헤비한 사운드가 그의 부재를 상기시켰다. 주혹새의 마지막 날, 그가 내게 건넸던 말이 저주처럼 뇌리를 맴돌았다.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이 희미해질 무렵, 나는 낡은 상자 속에서 주혹새의 마지막 날 받아온 코스터(컵 받침)를 발견했다. 그 뒷면에는 데이빗이 남긴 작은 글씨가 있었다.

'To my brother in Heavy Metal. See you on the other side.'

그는 알고 있었을까. 어쩌면 그는 언제나 세상의 반대편, 죽음의 그림자를 노래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오늘, 6월 19일은 그의 생일이다.
나는 주혹새가 있던 낡은 상가 건물 앞에 섰다. 2층은 텅 빈 채로 시간이 멈춰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환청처럼, 좁은 계단을 타고 묵직한 베이스음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꺼내 그의 마지막 앨범, 유작이 되어버린 'Woods 5'를 재생했다. 처절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그가 원했던 '헤비'한 사운드가 텅 빈 신촌의 밤거리에 낮게 울려 퍼졌다.

"Happy birthday, David."

음악이 흐르는 동안, 나는 2층의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그곳, 주혹새의 창가에 희미하게 그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수줍게 웃으며, 맥주잔을 든 채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그리고 그의 입모양이 선명하게 보였다.

'Heavy! Heavy! Heavy!'

그래, 데이빗. 너의 음악은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헤비할 거야.
주혹새는 사라졌고 너는 떠났지만, 너와 내가 사랑했던 그 무거운 소리들은 여기 남아 우리를 위로하고 있으니. 나는 스피커의 볼륨을 조금 더 높였다. 그의 음악이, 우리의 음악이, 사라진 성지를 위한 진혼곡처럼 밤 속으로 깊이 스며들었다. 2층의 불 꺼진 창문 너머, 우리의 시간이 영원히 잠들어 있었다.

https://youtu.be/5dfb0579INc?list=RD5dfb0579INc

Woods of Ypres - The Northern ColdThe official music video for Woods of Ypres' 2007 song "The Norther...www.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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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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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sinister | 작성시간 26.06.20 신촌의 밤, 그 뜨거웠던 우리들의 '주혹새'....
  • 작성자영혼의 폭풍 | 작성시간 26.06.21 ne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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