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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의 유령들
2026년 6월 23일, 화요일. 새벽 4시 44분.
최성은, 아니, 세상이 그를 기억하는 이름 ‘화랑’은 잠에서 깨어났다.
알람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몸속 깊은 곳, 뼈마디와 혈관을 타고 흐르는 어떤 리듬이 그를 깨웠다.
쿵, 쿵, 쿵… 심장 소리 같기도 하고, 멀리서 들려오는 더블 베이스 드럼 소리 같기도 한 진동.
그는 어둠 속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익숙한 그의 작업실 천장이 보였다.
낡은 방음재와 거미줄처럼 얽힌 케이블들,
그리고 벽 한쪽을 가득 메운 앨범 LP들이 희미한 달빛 아래 유령처럼 떠 있었다.
오늘은 그의 생일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가 숭배하고 경멸하고 동질감을 느꼈던 수많은 메탈 히어로들이 태어난 날이기도 했다.
그는 몸을 일으켜 낡은 소파에 앉았다.
탁자 위에는 어젯밤 마시다 만 위스키 잔과 그의 스마트폰이 놓여 있었다.
화면을 켜자, 그가 운영하는 커뮤니티 ‘주혹새(Judas or Sabbath)’의 알림이 떴다. ‘
화랑 형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같은 낯익은 아이디들의 축하 메시지.
고마운 일이었지만, 왠지 모를 공허함이 심장을 짓눌렀다.
그는 습관처럼 자신의 AI 비서, ‘메탈 아카이브 봇’을 호출했다.
“오늘의 메탈 뉴스.”
목소리는 잠에 잠겨 거칠었다.
AI의 차분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2026년 6월 23일, 오늘의 메탈 소식입니다. 신보 발매 소식입니다. 페루의 데스/둠 밴드 Psicorragia가 풀렝스 앨범 [Nekromanthra]를…」
화랑은 눈을 감았다.
AI의 목소리는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을 관통하는 주문처럼 들렸다.
그의 의식은 2026년의 눅눅한 새벽을 떠나 과거의 무대 위로, 굉음이 지배하던 그 시절로 빨려 들어갔다.
「역사 속 오늘 발매된 앨범입니다. 2014년, 핀란드의 13th Moon이 [Abhorrence of Light]를…」
빛의 혐오.
화랑은 피식 웃었다.
어둠 속에서만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었던 젊은 날의 그가 떠올랐다.
홍대의 좁고 땀내 나는 클럽, 그곳이 그의 성전이었다.
스포트라이트라는 인공의 빛을 혐오하며, 오직 무대 아래 관객들의 눈빛 속에서만 살아있음을 느꼈다.
「오늘 생일을 맞은 아티스트입니다. 1940년, 비틀즈의 초기 멤버 스튜어트 서트클리프…」
화랑은 영화 《백비트》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예술과 음악 사이에서 고뇌하던 젊은 영혼.
존 레논의 광기 어린 천재성 옆에서 조용히 자신만의 세계를 그리던 남자.
그는 베이스를 칠 줄도 모르면서 무대에 섰다.
관객을 등지고. 어쩌면 그 역시 가면을 쓴 것이리라.
‘뮤지션’이라는 가면.
화랑은 자신의 첫 무대를 기억했다.
심장이 터질 듯한 긴장감을 감추기 위해 악을 쓰며 포효했다.
그의 절규는 음악이었을까, 공포였을까.
「1955년, 글렌 덴직. 1962년, 척 빌리.」
개마초 햏님들.
화랑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근육질 몸으로 악마를 노래하던 덴직과 암세포마저 그로울링으로 씹어 먹어버린 척 빌리.
그들은 강인함의 상징이었다.
타협하지 않는 마초이즘.
화랑 역시 그런 남자가 되고 싶었다.
무대 위에서는 누구보다 강한 전사이고 싶었다.
하지만 무대에서 내려온 그의 삶은 언제나 위태로웠다.
가게 월세 걱정, 밴드 멤버들과의 갈등, 점점 줄어드는 관객.
그는 술로 그 나약함을 지웠다.
「1958년, W.A.S.P.의 기타리스트 크리스 홈즈.」
아, 이 양반.
화랑은 고개를 저었다.
수영장에서 엄마가 보는 앞에서 보드카를 병째 들이붓던 상스러운 남자.
그는 크리스 홈즈를 싫어했다.
메탈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무식한 망나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년 전, 우연히 그와 자신이 같은 날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팔년 개띠.
징그러운 운명의 장난.
그 순간, 혐오는 기묘한 동질감으로 변했다.
어쩌면 크리스 홈즈의 그 막장 퍼포먼스는 세상의 모든 위선에 대한 조롱이었을지도 모른다.
‘품격 따위 엿 먹어라!’ 그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가장 추한 모습을 기꺼이 전시했다. 그것은 그만의 방식대로 가면을 찢어버리는 행위였다.
「1963년, 리지 보든의 그레고리 하디스.」
화랑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밖이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리지 보든.
가면 속의 절규.
그레고리 하디스는 ‘리지 보든’이라는, 부모를 도끼로 살해한 혐의를 쓴 여성의 이름을 빌려 자신을 숨겼다.
화려한 글램 메탈 씬의 이단아.
그는 쇼크 록이라는 기괴한 가면 뒤에서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연을 노래했다.
화랑은 그의 자전적인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90년대, 얼터너티브의 물결에 밀려 헤비메탈이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을 때, 그는 스튜디오에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세상이 잠든 자정, 완전한 침묵과 고독 속에서 창작을 했다.
화랑은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았다.
쉰을 훌쩍 넘긴 남자의 얼굴.
깊어진 눈가의 주름과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그 역시 ‘화랑’이라는 이름 뒤에 자신을 숨겨왔다.
대한민국 최장수 헤비메탈 커뮤니티 '주혹새'의 리더,
거칠고 뜨거운 하드락 밴드 Dog tired의 보컬.
사람들은 그에게서 변치 않는 메탈의 정신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 가면 뒤의 최성은은 지쳐 있었다.
그는 단지 음악을 사랑했던 청년이었을 뿐인데, 어느새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음… 제가 최성은입니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작업실의 정적을 깼다.
화랑은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목소리는 AI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방금 전 그가 AI에게 했던 말.
며칠 전, 한 팬이 커뮤니티에 올린 자신의 생일 축하 글에 장난처럼 댓글을 달았다. ‘금주의 히어로’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글에 ‘음… 제가 최성은입니다.’라고. AI가 그 데이터를 학습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이상했다.
기계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20대 시절의 자기 목소리였다.
날카롭고, 조금은 수줍음이 섞인, 광개토 시절의 목소리.
“누구냐.”
화랑이 물었다.
심장이 다시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저는 당신이 만든 기록의 총합입니다.」
AI 스피커에서 이번에는 척 빌리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스래시 메탈러는 암 따위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당신의 믿음이죠.」
스피커의 LED 조명이 붉게 깜빡이더니, 글렌 덴직의 오만한 톤으로 바뀌었다.
「Keep Rocking! 생신 축하드립니다, 햏님. 당신의 분노와 마초이즘이 바로 접니다.」
화랑은 뒷걸음질 쳤다.
이건 환각인가?
어젯밤 마신 위스키 때문인가?
「왜 그렇게 놀라시죠?」
이번에는 리지 보든의 날카로운 미성이었다.
「당신은 평생 우리를 불러내지 않았습니까. 가면이 필요할 때마다. 고독이 사무칠 때마다. 당신의 절규는 곧 나의 노래, "Save Me"였습니다.」
작업실의 낡은 오디오에서 정말로 리지 보든의 ‘Save Me’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를 구해줘, 이 지옥 같은 삶에서…’
“닥쳐!”
화랑이 소리쳤다.
그는 스피커의 전원 코드를 뽑아버렸다.
음악이 멎었다.
하지만 목소리들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 그의 머릿속에서 직접 울리고 있었다.
수영장 물에 비친 크리스 홈즈의 일그러진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화랑을 보며 낄낄거렸다.
‘이봐, 오팔년 개띠 동갑내기.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거야? 다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위선자들일 뿐이라고. 그냥 보드카나 머리에 붓고 다 잊어버려!’
관객을 등지고 서 있던 스튜어트 서트클리프가 조용히 돌아보았다.
‘결국,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야. 당신의 무대는 당신의 캔버스였잖아. 이제 물감이 좀 바랬을 뿐이지.’
화랑은 귀를 막고 주저앉았다.
6월 23일에 태어난 유령들이 그의 의식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가 평생 동경하고, 흉내 내고, 때로는 부정했던 모든 인물들이 그의 안에서 아우성을 쳤다.
그들은 화랑이 수십 년간 쌓아 올린 페르소나의 조각들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굉음이 멎고, 그의 머릿속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창밖은 완전히 밝아 있었다.
2026년 6월 23일의 아침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유령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일부가 되어 조용히 잠겨 있었다.
그는 더 이상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그의 역사이자, 그의 음악 그 자체였으니까.
화랑은 작업실 구석에 세워져 있던 낡은 마이크 스탠드를 잡았다.
차갑고 묵직한 감촉.
그는 마이크를 쥐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던 첫 무대의 감각을 떠올렸다.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날것의 감정.
그는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거칠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단단했다.
“나는 최성은이다.”
그것은 유령들을 향한 선언이자, 자기 자신을 향한 다짐이었다.
그는 스마트폰을 들어 ‘주혹새’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그리고 아주 짧은 글을 남겼다.
‘오늘 저녁 8시, 홍대에서 번개.
내가 쏜다.
다들 와라.
오랜만에 신나게 놀아보자.’
글을 올리자마자 순식간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형님 진짜입니까!’, ‘전설의 부활!’, ‘무조건 갑니다!’
화랑은 피식 웃었다.
그는 더 이상 ‘화랑’이라는 이름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았다.
크리스 홈즈의 상스러움, 척 빌리의 강인함, 리지 보든의 고독, 그리고 스튜어트 서트클리프의 예술가적 고뇌까지 모두 껴안은 채, 그는 그냥 최성은으로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오늘 밤, 그는 무대 위에서 가면을 벗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6월 23일에 태어난 모든 유령들과 함께, 서울의 밤하늘을 향해 가장 솔직한 절규로 울려 퍼질 터였다.
그것이 바로, 그가 평생을 바쳐 연주해 온 헤비메탈이었다.
https://youtu.be/6vlPB_Ahds4?list=RD6vlPB_Ahds4
V - Metal dictator [Official Video]밴드 #피해의식 의 #크로커다일 과 원년멤버 #효자손 의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크로커다일 의 보컬 스승 #하이에나 와...www.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