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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Grey Sigh – 피로의 색, 인간의 잔열

작성자화랑|작성시간26.06.03|조회수53 목록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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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Grey Sigh – 피로의 색, 인간의 잔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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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시작은 그 블로그 포스트였다.

"Do you wanna read my post?"

한밤중, 스마트폰 액정을 무심코 쓸어내리던 서윤의 엄지손가락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간 알림에 멈췄다. 팔로우하지도 않는, ‘Sickman’이라는 기괴한 아이디의 블로그였다. 평소라면 스팸으로 치부하고 넘겼을 테지만, 그 문장은 이상하게도 뇌리에 박혔다. 마치 서윤, 바로 그녀에게만 보내는 은밀한 초대장처럼 느껴졌다. 홀린 듯 알림을 눌렀다.

화면 가득 검은 배경이 펼쳐지고, 하얀 글씨들이 비석처럼 떠 있었다. 내용은 기이했다. 누군가의 일상을 훔쳐보는 듯한 집요한 묘사, 사랑인지 저주인지 분간할 수 없는 감정의 배설, 그리고 세상에 대한 깊은 환멸이 뒤섞여 있었다. 문장들은 거칠고 날것이었지만, 그 안에는 서윤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을 꿰뚫어 보는 듯한 섬뜩한 통찰력이 있었다. 마치 자신의 일기장을 훔쳐본 누군가가 단어만 바꿔 써놓은 것 같았다.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서윤은 그날 밤, Sickman의 모든 포스트를 읽었다. 그의 글은 짙은 회색의 안개처럼 서윤의 정신을 잠식해 들어왔다.

며칠 뒤, 두 번째 초대가 도착했다. 이번엔 사운드클라우드 링크였다.

"Do you wanna hear my song?"

망설였다. 하지만 이미 그의 글에 중독된 서윤은 링크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헤드폰을 끼자, 귀를 파고드는 것은 불협화음의 기타 리프와 신경질적인 드럼 비트였다. 그리고 그 위로, 긁히는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사는 블로그의 글처럼 혼란스러웠지만, 후렴구는 집요하게 반복되었다.

*Deep grey sigh, Baby Deep grey sigh…*

그의 한숨 소리가 서윤의 귓가에 내려앉는 것 같았다. 노래는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었다. 그것은 고통의 기록이었고, 절망의 비명이었다. 서윤은 노래를 들으며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이 노래는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가 내쉬는 짙은 회색의 한숨은, 바로 서윤 자신의 것이기도 했다.

세 번째 초대는 더욱 노골적이었다.

"Do you wanna see my face?"

메시지와 함께 첨부된 것은 흐릿한 사진 한 장. 어두운 방 안, 창문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찍은 듯한 남자의 셀카였다. 얼굴의 절반은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지만, 드러난 한쪽 눈은 광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눈은 모니터 너머의 서윤을 정확히 응시하고 있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서윤은 본능적으로 스마트폰을 뒤집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마치 그 눈이 액정을 뚫고 자신을 계속 지켜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공포와 함께 기묘한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이 남자는 누구일까. 왜 나에게 이러는 걸까.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초대가 도착했을 때, 서윤은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음을 직감했다.

"Do you wanna kiss my love?"

메시지에는 주소 하나가 적혀 있었다. 낡은 아파트 단지. 서윤이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온라인상의 관심이 아니었다. 그는 서윤의 현실에 침투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서윤의 세상은 짙은 회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그의 노래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Deep grey sigh…*

그 한숨 소리는 이제 서윤의 숨결에 섞여 나왔다. 창밖을 볼 때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고,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Sickman은 더 이상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지만, 그의 침묵은 더 큰 공포가 되어 서윤을 옥죄었다. 그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혹시 저 어둠 속에서 나를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서윤은 미쳐가고 있었다. 친구들은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을 걱정했지만,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얼굴도 모르는 남자의 글과 노래에 홀려, 그의 존재가 내 삶을 잠식하고 있다고. 모두가 그녀를 미친 사람 취급할 게 뻔했다.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서윤은 문득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을 끝낼 방법은 단 하나뿐이라는 것을. 그를 직접 만나는 것이다. 그의 실체를 확인하고, 이 지긋지긋한 관계를 끝내야 했다. 서윤은 결심했다. 그의 마지막 초대에 응하기로.

메모해 두었던 주소로 향하는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해가 저물고 도시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시간, 낡은 아파트 단지는 음산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녹슨 철문을 밀고 들어서자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 그가 알려준 호수, 404호 앞에 섰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심호흡을 한 서윤이 떨리는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똑. 똑.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한번, 조금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 그 순간, 문이 힘없이 ‘끼익’ 소리를 내며 살짝 열렸다. 잠겨 있지 않았던 것이다. 서윤은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예상보다 더 어둡고 처참했다. 불은 꺼져 있었고, 창문은 두꺼운 암막 커튼으로 가려져 한 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악취가 진동했다. 썩은 음식물 냄새와 약품 냄새,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릿한 냄새가 뒤섞여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서윤은 스마트폰 플래시를 켰다.

빛이 닿는 곳마다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벽에는 온통 서윤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웃고 있는 사진, 무표정한 사진, 친구와 이야기하는 사진… 모두 서윤이 SNS에 올렸던 사진들이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서윤 자신도 찍힌 줄 몰랐던 사진들이 있었다. 카페에 앉아 있는 모습,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 집으로 들어가는 뒷모습까지.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서윤을 스토킹하고 있었던 것이다.

"I don't wanna see you in pain."

등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윤은 비명을 지르며 돌아섰다.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Sickman. 그의 블로그 프로필 사진에서 봤던, 광적으로 빛나던 바로 그 눈이었다. 그는 앙상하게 마른 몸에 낡은 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그 눈만은 섬뜩한 생기로 가득했다.

“네가 고통스러워하는 걸 원치 않아.”

그가 한 걸음 다가오며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그의 노래처럼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I don't wanna sigh no more."

“이제 더는 한숨 쉬게 하고 싶지 않아. 네 모든 고통은 내가 가져갈게. 내가 대신 아파해 줄게.”

그의 말은 위로가 아닌, 소름 끼치는 저주처럼 들렸다. 서윤은 뒷걸음질 쳤지만, 등 뒤로 차가운 벽이 느껴졌다. 막다른 길이었다.

“왜… 왜 나한테 이런 짓을 하는 거예요?”

서윤이 겨우 목소리를 쥐어짰다. 남자는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I don't wanna see you in hell. I don't wanna cry no more."

“여긴 지옥이야. 이 세상은. 넌 울 자격이 없어. 넌 너무 순수하니까. 내가 대신 울어줄게. 내가 대신 이 지옥을 살아줄게.”

그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눈물은 슬픔이 아닌, 뒤틀린 희열처럼 보였다. 그는 서윤을 자신의 구원자로, 혹은 자신과 함께 지옥으로 끌고 들어갈 제물로 여기고 있었다.

남자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의 말들은 더 이상 문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장 난 레코드처럼 같은 단어를 반복하는 소음이었다.

"Sick man, Sick man, Sick man, Sick man dying…"

그는 자신을 ‘병든 남자’라 칭하며,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의 병은 육체의 병이 아니었다. 세상을 향한 증오와 자기혐오로 들끓는 영혼의 병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병을 서윤에게 전염시키려 하고 있었다. 서윤의 순수함으로 자신의 더러운 영혼을 정화하고, 그녀를 자신과 똑같은 존재로 만들려는 것이다.

“다가오지 마!”

서윤이 소리쳤다. 하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왔다. 그의 손이 서윤의 뺨을 향해 뻗어왔다. 그 순간, 서윤의 눈에 현관문 옆에 놓인 낡은 소화기가 들어왔다. 생존 본능이 이성을 압도했다. 서윤은 남자를 밀치고 소화기를 향해 몸을 날렸다. 묵직한 쇳덩이를 간신히 들어 올린 서윤은, 다시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를 향해 그것을 휘둘렀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남자가 쓰러졌다. 그의 머리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와 더러운 바닥을 적셨다. 서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남자는 미동도 없었다. 죽었을까? 아니, 아직 희미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서윤은 소화기를 떨어뜨리고 미친 듯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차가운 밤공기가 폐를 찢을 듯 파고들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환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 다다라서야 서윤은 걸음을 멈추고 주저앉아 흐느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며칠 뒤,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남자는 병원에서 의식을 되찾았지만, 서윤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그저 혼자 넘어져 다쳤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단순 사고로 사건을 종결했다.

그 소식은 서윤에게 안도감이 아닌, 더 큰 공포를 안겨주었다. 그는 왜 자신을 신고하지 않았을까? 복수를 계획하는 걸까? 아니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불안감에 휩싸여 있던 어느 날 밤, 서윤의 스마트폰이 다시 울렸다. 모르는 번호로 온 문자 메시지였다.

"I don't want your love. I'm so tired."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였다.

"I don't need your love. I'm dogtired."

그는 더 이상 서윤의 사랑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지쳤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은 해방의 선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깊은 나락으로 함께 떨어지자는, 마지막 초대장이었다. 그의 사랑은 거절당했을 때, 증오와 파괴로 변질되는 종류의 것이었다. 이제 그는 서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서윤을 파괴하고 싶어 했다. 자신처럼 만들고 싶어 했다.

서윤은 휴대폰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액정이 산산조각 났다. 하지만 부서진 액정 너머로, 그의 마지막 메시지가 희미하게 보이는 듯했다.

*Deep grey sigh…*
*Baby Deep grey sigh…*

그의 한숨은 이제 서윤의 영혼에 새겨진 낙인이 되었다. 그것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서윤은 창밖을 보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맞은편 건물의 그림자 속에서 희미한 담배 불빛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 불빛이 자신을 향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꺼져가는 것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거기 있을 것이다. 서윤이 내쉬는 모든 숨, 모든 한숨 속에서, 그는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서윤의 삶은 이제 끝없는 짙은 회색의 공포,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https://youtu.be/VauXbTaNric

Deep grey sighProvided to YouTube by FLUXUSDeep grey sigh · Dog TiredRaw Sound℗ Dog Tired, under license to 3PMReleased on: 2023-10-17Composer: Moon HangyuLyricist: Choi S...www.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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