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창작 창고

텅 빈 객석의 진동 : 독타이어드(Dog Tired), 그날의 원주

작성자화랑|작성시간26.06.13|조회수43 목록 댓글 3

추억의 #독타이어드

 

이 날 관객 1도 없었지...
But,
우린 열심히 했다.

  •  

텅 빈 객석의 진동 : 독타이어드(Dog Tired), 그날의 원주

2024년.
원주 단계동 장미공원길 65번지.
여름의 습한 공기가 지면을 낮게 깔리던 밤이었다.
상가 건물 1층에 자리 잡은 클럽 '크림(Cream)'.
보통의 라이브 클럽들이 지하의 눅눅한 공기를 머금고 있는 것과 달리, 이곳은 1층에 위치해 있었다.
유리문을 열면 바로 거리의 소음과 연결될 것 같은 그 개방감이 오히려 묘한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문 앞에는 낡은 이젤 위에 포스터 한 장이 놓여 있었다.

[DOG TIRED - 독 타이어드 / 2024.7.6(토) 9:30pm / 장소: BAR CREAM]

포스터 속의 우리들은 각자의 악기를 들고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컬 나님, 베이스 목이, 드럼 진리, 그리고 우리의 정신적 지주이자 기타리스트인 한규.
사진 속 한규는 트레이드마크인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기타 넥을 움켜쥐고 있었다.
마치 그 기타가 세상의 전부라는 듯이.

"형, 오늘 좀 조용한데요?"

진리가 스네어 드럼을 조율하며 툭 내뱉었다.
나는 클럽 안을 둘러보았다.
공연 시작 10분 전.
하지만 클럽 안에는 바텐더와 사장님, 그리고 우리 넷뿐이었다.
예약 문의 전화가 몇 통 있었다던 사장님의 말은 그저 우리를 독려하기 위한 하얀 거짓말이었을까.
유리문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그림자만 보일 뿐, 누구도 1층의 이 클럽 안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객석은 0명.
'관객 1도 없음'이라는 현실이 시리게 다가왔다.

그때였다. 한규가 앰프에 잭을 꽂으며 지지직거리는 노이즈를 뚫고 환하게 웃었다.

"없으면 어때. 우리끼리 노는 거지. 원래 록은 미친놈들처럼 하는 거야. 아무도 안 볼 때 진짜 모습이 나오는 법이라고."

한규는 항상 그랬다.
관객이 수천명인 부산 벡스코 무대에서도, 단 한 명도 없는 이런 변두리의 작은 바에서도 그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깁슨 기타를 어깨에 메고 가볍게 스트로크를 했다.
'콰앙-' 하고 터져 나오는 묵직한 디스토션 사운드가 빈 클럽의 벽을 타고 흐르다 내 가슴팍에 와서 꽂혔다.

"성은이 형, 목 풀었어? 오늘 우리 제대로 한 번 가보자구. 개처럼 지친 세상, 우리가 소리로 다 깨부숴버리는 거야."

나는 마이크 스탠드를 고쳐 잡았다.
한규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그는 관객의 박수 소리보다 자신의 기타 줄이 내는 진동 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텅 빈 테이블과 의자들이 우리를 비웃는 것 같았지만, 한규의 기타 소리가 들리는 순간 그 빈 공간들은 이내 거대한 에너지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9시 30분 정각. 진리의 스틱이 하이햇을 네 번 때렸다.

'칙, 칙, 칙, 칙!'

곧바로 한규의 리프가 시작되었다.
그의 리프는 마치 굶주린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었다. 목이의 베이스가 그 밑바닥을 탄탄하게 받쳐주었고, 나는 온 힘을 다해 첫 소절을 내뱉었다.

"I don't know what she really want from me"

관객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무대 위를 휘저었다.
한규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과묵하게 기타를 연주했고,
나는 텅 빈 객석을 향해 손을 뻗으며 포효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관객이 가득 찼을 때보다 더 뜨거운 무언가가 몸속에서 끓어올랐다.

1층 클럽의 특징 때문이었을까.
유리창 너머로 길을 가던 행인 몇몇이 걸음을 멈추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저 미친 사람들은 누구인가' 하는 눈빛이었지만, 그들은 이내 한규의 화려한 기타 솔로에 홀린 듯 한참을 서 있다가 제 갈 길을 갔다.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온 세상이 우리의 무대였다.

한규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기타와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지판 위를 날아다닐 때마다, 나는 그가 살아있음을, 그리고 우리가 함께하고 있음을 강렬하게 느꼈다.
'개처럼 지친(Dog Tired)' 인생일지라도,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자유로운 영혼들이었다.

그 공연으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영원히 우리 곁에서 기타를 칠 것 같았던 리더 한규가 세상을 떠났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그가 없는 합주실은 차갑고 정적만이 가득했다.

나는 오늘 책상 앞에 앉아 그날, 2024년 원주 크림에서의 공연 영상을 다시 틀어본다. 영상 속에는 텅 빈 객석을 향해 미친 듯이 연주하는 네 명의 남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기타를 휘두르는 한규가 있다.

영상 속 한규가 말한다.

"야, 오늘 우리 진짜 죽여줬다.
관객들이 이 맛을 몰라서 안 들어온 거야. 지네들 손해지머!!"

영상을 보고 있자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한규야, 네가 말한 대로 우리는 그날 정말 열심히 했어.
관객이 단 한 명도 없었지만, 너는 마치 수만 명의 관중 앞에 선 록스타처럼 빛났지.

1층에 위치해 있어서 밖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던 그 클럽 '크림'.
그곳의 차가운 바닥과 따뜻했던 조명, 그리고 네 기타 앰프에서 뿜어져 나오던 그 열기가 아직도 내 살결에 느껴지는 것만 같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라인업.
하지만 나는 믿는다.
한규는 지금도 그곳에서 가장 멋진 기타를 메고, 관객이 있든 없든 자신의 영혼을 연주하고 있을 것이라고.

우리들의 그룹송 'Dog Tired'의 가사처럼, 우리는 여전히 지치고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네가 남겨준 그날의 열정만큼은 우리 가슴속에 박혀 멈추지 않는 엔진이 되었다.

원주 크림의 그 텅 빈 공간을 가득 채웠던 것은 정적이 아니라, 너와 우리가 나눈 우정이었고 음악을 향한 순수한 갈망이었다.

"한규야, 보고 싶다.
네 기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나는 다시 한번 재생 버튼을 누른다.
2024년 여름, 원주의 밤을 뜨겁게 달구었던 독타이어드의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1층 클럽의 유리문 너머로 보이던 그 밤거리의 풍경과 함께, 우리의 영원한 리더 문한규를 추억한다.

우리는 '독타이어드'였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노래한다.
네가 없는 이곳에서도, 너의 기타 리프는 영원히 계속될 테니까.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그리피스 | 작성시간 26.06.13 먼저 가신 리더님도 본인을 이렇게 기억해주고 추억해주는 동료가 있어서 참 행복한 분이셨을 것 같습니다. 기운 내세요~
  • 작성자무명 | 작성시간 26.06.13 독타이어드의 에너지는 한규 님과 함께 영원히 기억될겁니다.
  • 작성자키라 | 작성시간 26.06.13 슬픔을 뛰어넘는 열정과 우정이 감동적입니다 ㅠㅠ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