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는 인상적인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이는 겉으로 보이는 형태를 의미하는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신실하고 정결해 보이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며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악하다'와 '음란하다'는 말은 구약성경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는 어휘들입니다.
구약에서 '악한 이스라엘'이란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고 세속(당시에는 가나안)의 질서를 따라 사는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에게 '악하다'라고 하는 것은 바리새인들이 겉으로는 율법을 신실하게 지키고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세속(당시는 로마제국)의 명예와 수고의 대가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음란한 이스라엘'이란 주로 호세아서에서 발견되는 모티브인데 이는 주로 남편되신 하나님과 아내 된 이스라엘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말입니다. 이때 '음란'은 성적인 범죄가 아니라 본래 남편 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이방신을 따라가는 이스라엘을 지칭할 때 사용된 말입니다. 따라서 마태복음에서 바리새인들에게 '음란하다'라고 하는 것은 바리새인들이 단순히 성적으로 타락했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어그러져 하나님의 뜻이 아닌 세속의 가치를 따르는 자들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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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요나의 불충분한 메시지를 통해서도 회개한 니느웨와는 달리 요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분명한 예수님의 메시지를 듣고서도 회개하지 않는 바리새인들을 향한 질책이 됩니다. 이를 쉽게 말하면 예수님께서 "너희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표적을 보여줘도 믿지 않을거야. 왜냐하면 너희는 이미 세상의 것들을 좋아하고 세상의 질서와 가치를 따라살고 있으며 하나님을 찾을 생각도 하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요나의 표적의 의미를 설명해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그래서 뭐?' 라고 반문하는 우리 자신입니다. 그럼 우리도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과 별 다를바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실제의 (처참한)모습을 돌아보지 않고 눈에 보이고 자신들을 만족시킬 '표적'만을 구하는 사람이 혹시 나는 아닌지 깊이 성찰해 볼 일입니다.
권영진 목사(정언향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