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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언향 칼럼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작성자권영진 목사|작성시간25.09.22|조회수65 목록 댓글 4

 

교회에서 예배 중에 종종 사용하는 관용구 중에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니다' 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찬양가사에 많이 나오고 기도할 때도 자주 사용합니다. 이에 대해 보통 높은 곳에 좌정한 왕의 근엄하고 웅장한 옥좌를 연상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은혜의 보좌]라는 말은 사실 성경에 나오는 속죄소(법궤를 덮는 덮개)를 말합니다. 속죄소를 영어로 mercy-seat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70인역이 히브리 성경에 나오는 속죄소(캅포레트)를 [죄가 용서 받는 곳]으로 번역한 것에서 기인합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바와 달리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보좌]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온 인간들의 죄를 덮어 주는(히, 카파르) [은혜의 자리]인 것입니다. 그곳에 나아온 사람들은 두려움에 떠는 것이 아니라 [뜻밖의 은혜]에 놀라게 됩니다. 하나님의 왕되심(king-ship)은 권위와 위엄으로 사람들을 찍어 누르는 것이 아니라 기대하지 못한 은혜(헤세드)를 베푸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보좌]는 장엄하고 압도적인 왕의 권의와 위엄을 드러내는 곳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성품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교회 역시 이 땅에서 정죄받고 고통 당하는 약자들과 억울한 이들을 어떤 태도로 대하여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힘 없고 약한 이들을 찍어 누르고 압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과 억울함을 체휼하고 위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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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본문들은 하나님의 음성은 언약궤와 속죄소 사이에서 들려 나오는 것으로 자주 묘사합니다. [하나님의 발등상]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는 언약궤와 [하나님께서 좌정하신 곳]인 속죄소 사이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은 희생의 제물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온 사람들에게 들려지는 사죄의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이는 신약의 히브리서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는(히 4:16) 서술로 인해 더욱 그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결국,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은 그의 백성의 죄(허물)를 덮으시기 위함이요, 종국적으로는 죄로부터의 구원과 회복에 그 목적이 있음을 이미 구약의 성막에 관한 서술 속에서 뚜렷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을 공포와 두려움의 군주처럼 묘사하여 이것으로 사람들을 업박하고 찍어누르려는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미 이 점에서 하나님을 성경과는 상관없는 [이교도의 신]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를 보여주고 있는 곳인지, 폭력과 강압적 권위를 보여주고 있는 곳인지 스스로를 잘 돌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권영진 목사(정언향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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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러피스 | 작성시간 25.09.23 아멘~
  • 답댓글 작성자권영진 목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09.23 오늘도 행복하고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검객 | 작성시간 25.09.30 은혜의 보좌를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권영진 목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09.30 긍휼과 호의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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