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modern age)는 신분사회에서 계약사회로의 전환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배타적, 차별적 신분의 제도 속에서 인간의 권리가 제한받던 것이 당연시되었던 인류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에 바탕한 상호 책임과 권리가 강조되는 계약관계로 사회의 기반이 이동했다는 것은 인류의 문명사에서 무척 큰 의의를 지닙니다.
특히 과거의 이런 신분제를 유지하는데 종교가 오랜 역할을 했었습니다. 권력의 기반(왕권)을 지키는데 '신의 뜻'만큼이나 강력한 권위는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중세시대의 기독교가 바로 그러한 역할을 강하게 감당했습니다.
반면에, 구약성경을 보면 비록 형태는 과거 고대 근동의 종주계약서의 형태를 빌렸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만큼은 당시는 물론 현대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파격적인 "계약(testament)"이 고대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있었습니다.
율법을 바탕으로 하는 토라는 이스라엘에게 요구하는 하나님 나라의 특별한 가치들을 잘 보여주는데 그것은 정의와 공평, 인애와 진실과 같은 것들입니다. 당대에서는 그 개념조차도 거의 존재하지 않던 혁명적인 가치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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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아니라, 신약성경에서는 구약성경에서 나타난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계약의 내용을 더욱 확장하고 완성한 새로운 "계약"이 나타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성자)와 하나님(성부) 사이에 맺은 새로운 언약(히브리서가 말하는 영원한 평화의 언약)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계약은 상호간의 철저한 신뢰와 호의를 바탕으로 하는 "사랑"이 그 근본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 성부와 성자 사이에 맺은 '새 언약'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현대의 계약이 대체적으로 상호간의 불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비교해보면 역시 파격적이고 놀라운 것입니다. 서로를 향한 깊은 신뢰와 호의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 옛 세상의 질서(가치)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질서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언약의 핵심입니다.
성경과 이스라엘, 그리고 교회는 이렇게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보여주었고 실제로 역사 속에서 구현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전통을 이어 받아야 할 현대의 교회들은 가치를 되살리기는 커녕 다시 근대 이전의 세계로 회귀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돈과 권력에 따른 신분제를 인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맹신과 복종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한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과 성취를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받드는 사람들은 사실 성경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뜻을 다시 거꾸로 돌리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인데 본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아니면 알면서도 그러고 있는 더 악한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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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시대를 따르는, 혹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 아닌 처음부터 제시된 하나님의 뜻과 가치를 따르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을 제쳐놓고 자신들의 이익과 탐욕에 따라 기준을 정하고 이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호도하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적그리스도'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입니다.
온전한 성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로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적어도 성도와 교회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권영진 목사(정언향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