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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중구 옛모습

8. 인천미두취인소(米豆取引所)

작성자천심|작성시간13.01.22|조회수288 목록 댓글 0

 

8. 인천미두취인소(米豆取引所)

 

 

 

  현 제일은행 인천지점에서 남쪽으로 몇 걸음을 내려가면 경기매일신문사가 50년대 말  에 사옥으로 신축한 7층 빌딩이 있다. 이 건물이 서기까지 그 자리에 있던 건물이 인천미두취인소의 사옥이다.

  개항이 되자 일인들은 오랜 세월을 두고 노려 왔던 우리나라의 쌀을 마음대로 실어 내기 시작했다. 한없이 늘어나는 유출을 막기 위해 방곡령(防穀令․1889~1893)까지 내리기도 했으나 헛수고였다. 그러자 그들은 청일전쟁을 끝낸 1896년에 가격 조절과 집화(集貨)편익을 위해 일본 지계에 인천미두취인소를 설립했다. 취인이란 거래를 뜻하는 일본말이고 우리는 미두장이라고 불렀다. 1915년 무렵부터 세계 대전으로 호황을 누리게 된 일본에서 미가의 변동이 심하여 완전히 투기장으로 변했다. 얼마 안 되는 한국 사람이 떼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전국에서 몰려든 대소 지주들이 큰 손의 농간으로 10여년 동안에 민족 자본을 고스란히 털어 넣었다. 이것이 인천에서 벌어진 미두장 난리였다.

  이 사옥은 절정기였던 1919년에 피눈물로 얼룩진 땅 문서가 세운 그들에게는 황금탑이 고 우리에게는 백골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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