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풍경
조 정 래
제3한강교를 벗어나면서부터 고속 버스는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도로변의 전신주가 차츰 빨리 차창으로 다가들어선 물러가곤 하다가 얼마가 지나면서부터는 아예 간격이 없이 잇따라 획획 스쳐가기 시작했다. 50미터 간격으로 서 있는 전신주를 셀 수가 없을 정도로 차가 달릴 때 그 속도는 얼마나 될까를 따질 필요는 없었다. 지겨운 일이었다. 따지고 계산을 한다는 것은 진절머리가 나는 일이었다.
계산과 타산이 거미줄처럼 엉켜서 이루어진 도시. 계산과 타산이 시멘트 역할을 해서 이루어진 거대한 건물인 서울.
거기에서 정확한 계산과 분명한 타산으로 이루어진 규격에 맞는 합격품의 벽돌이 되기 위해서 잠시도 긴장을 풀지 못한 채 바쳐진 노력. 그건 노력이라기보다는 몸부림이며 발버둥이라고 해야 옳았다. 합격품의 벽돌이 되었다 해도 벽돌의 종류는 가지가지였다. 시멘트에 덮이거나 타일이 앉을 자리나 마련해 주는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시멘트 벽돌. 겉으로 드러나서 제 모습을 제대로 나타내고 있는 가마에서 나온 벽돌. 그것도 채색이 다르고 윤기와 치장의 차이에 따라 놓이는 위치가 사뭇 달라지는 것이다. 속보다 겉이 좋고 겉에서도 음지보다는 양지가 나은 것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다갈색의 몸매에 반지르르한 윤기까지 자랑하는 우아한 치장으로 양지에 자리 잡은 군벽돌이다가도 자칫 방심하거나 한눈을 팔아 계산에 착오를 일으키거나 타산에 허점이 생기면 그때는 여지없이 음지의 신세가 되거나 심하면 시멘트 벽돌의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것까지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지만 어느 경우에는 분명 음지에 머물러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멘트 벽돌의 신세는 고사하고 아예 산산조각이 나서 형체도 없는 돌멩이거나 흙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건물에 있는 모래는 자갈이, 자갈은 돌멩이가, 돌멩이는 벽돌이, 벽돌은 또다른 벽돌이 되려고 부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건물은 언제나 깨끗하고 생기 있고 밝아 보여야 할 텐데 그렇지를 못했다. 항시 음산하고 어둠침침하고 시끌덤벙한 채로 난장판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정신을 팔기가 십상인가 하면 이런 틈에 얼렁뚱땅하면…… 하는 계산 착오를 일으키기가 예사였다. 그러면 기다리는 것은 뻔한 것이었다. 다만 그런 가혹한 결과가 오는 것은 시기 문제일 뿐이었다. 이것이 곧 그 난장판의 거대한 건물을 지탱해 가는 힘이었는데 그 힘의 원천은 결국 제 나름대로 완성된 정확한 계산과 분명한 타산에 있었다. 그러므로 결국 그 건물은 언제나 음산하고 어둠침침하고 시끌덤벙할 수밖에 없는 난장판이 되는 것이었다.
그 정확한 계산과 분명한 타산에 열중하다 보면, 아무리 한눈을 팔아도 다갈색 몸매에 번지르르한 윤기를 내는 우아한 치장으로 양지를 지킬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벽돌의 종류에 비례해서 머리가 썩고 몸이 상하게 마련이었다.
그는 그렇게 해서 상한 몸뚱어리를 이끌고 계산과 타산을 떨쳐둔 채 떠나는 참이었다.
그는 차의 속도를 차창에 지나치는 전신주의 빠르기로 헤아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싫었다. 섭씨 52도를 오르내리는 7월 말의 더위인데도 차창은 꼭꼭 닫혀 있었다. 그렇다고 고속 버스 터미널에서 감당할 수 없이 훅훅 끼쳐오던 열기 같은 것은 느낄 수조차 없었다. 앞뒤 창에 나붙어, 버스 속에서는 뒤집혀 보이는 ‘완전 냉방’이란 파란 네 글자가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는 차의 속도를 차창으로 몰려 들어오는 바람의 강도로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으로 거세게 몰려드는 바람을 얼굴에 맞받으며 느끼는, 간이 붕붕 뜨는 것 같은 시원함과 전신으로 퍼져흐르는 스피드의 짜릿짜릿한 맛이 아쉬웠다.
고속 버스의 속력이 얼마인데 차창을 연다는 말이냐. 비행기에 달린 창문이 열기 위해서 만들어진 줄 아느냐. 비행기만큼은 아닐지라도 이것도 엄연히 고속 버스다. 냉방 장치는 누가 돈 싫어서 만들어놓은 줄 아느냐.
이런 상대방을 깔보기 위한 시비조의 유식한 말은 지금의 그에겐 필요가 없었다.
마음이 느긋하도록 장시간 차를 타본 것은 국민학교 6학년의 수학여행 때였다. 두 반뿐인 6학년의 수학 여행이 실시된 것은 그해가 처음이라서 학교 안팎은 떠들씩했었다. 더욱 재미있고 기가 막혔던 것은 수학 여행비의 마련이었다. 여행을 가긴 가야 하겠는데 두 반 백여 명 중에서 여행비를 낼 수 있는 학생이 고작 20여 명에 불과했다. 그것도 전원이 다 가는 경우의 1인당 경비를 부담할 수 있는 숫자가 그랬다. 그러니 20명만 간다고 했을 경우에는 경비 부담이 다섯 배로 늘어나게 마련이었고 그렇게 되면 수학 여행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범학교를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두 담임은 전원이 갈 수 있는 수학 여행의 경비 조달을 위해 여러 가지 궁리를 짜냈다. 그래서 열흘간 벼 베기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그건 전교를 통틀어 농사를 많이 짓는 학부형을 고른 다음, 그들의 벼를 학생들이 베어주고 노임(勞賃)을 받는 것이었다. 우선 사친회의 간부로부터 시작해서 여러 학부형들의 이름이 뽑혀졌다. 그리고 할아버지 교장 선생님과 학생회장의 이름으로 취지 및 협조 의뢰서라는 어려운 제목이 붙은 편지가 마련되었다. 그 편지는 각 학년에 흩어져 있는 학생들에게 전달되었다. 편지를 띄운 사흘째 되는 날부터 오전 수업을 마친 두 반 백여 명의 학생은 허리에 책보를 두르고 손에는 낫을 들고 학교를 나섰던 것이다. 학생들은 두 패로 갈려 일을 했다. 평소에 쇠꼴이라도 베서 낫질이 익숙한 학생은 벼 베기를 했고 나머지는 벼 나르기를 맡았다. 고구마를 푸지게 삶아 내오는 집이 있는가 하면 어느 집에서는 아예 벼 베기를 안 해도 좋다고 했다. 감이고 떡이고 내놓고는 씨름판이나 벌이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열흘로 잡았던 벼 베기는 1주일 만에 끝났고 그리도 조바심 나게 기다려지던 1박 2일의 수학 여행은 사흘을 앞당겨 실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두 반 학생들 중에 한 명도 빠짐없이 떠나게 된 수학 여행. 한 대의 트럭에 백여 명이 쪼그리고 웅크리고 앉아서 꼼짝을 할 수 없게 비좁았지만 마냥 들뜨고 즐겁기만 했다. 할아버지 교장 선생님은 트럭 양 옆과 뒤로 말뚝을 묶어 두 줄로 쳐놓은 굵은 새끼줄을 두 번 세 번 흔들어보면서 “너희들 일어나서는 안 돼. 놀아도 앉아서 놀아야 해. 알겠니?” 다시 다짐을 했고, 학생들은 다 같이 입을 모아 “예에!” 신바람 나게 대답을 했다. “도라꾸 수학 여행이 뭐냐. 도라꾸로라도 넓게나 앉아 갔으면 좋을걸.” 교장 선생님의 나직한 이 말을 들은 학생은 몇 명이 안 됐고,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손을 흔드는 교장 선생님의 눈물이 고인 성싶었던 눈을 또다시 본 것은 그 후 졸업식장에서 였다.
갈대숲이 무성한 울퉁불퉁한 산길을 트럭은 잘도 달렸고 학생들은 지치지도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1학년 때부터 6년 동안 배운 노래를 샅샅이 불러댔다. 눈을 부라린 사천왕과 대웅전의 무지무지하게 큰 부처님이나, 밑이 까마득하게 보이는 변소 등도 신나는 구경거리였지만 역시 신명나는 것은 차타는 재미였다. 엉덩방아를 찧어가며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러대도 거세게 몰려드는 가을 바람은 그 소리를 흔적도 없이 쓸어가 버리고 바람에 질세라 숨을 몰아쉬면서 악착스레 노래를 하면 차도 지지 않겠다는 듯 잘도 달려서 거센 바람을 휘몰아오곤 했었다.
어느 도로보다도 포장이 잘된 고속 도로인 데다 차마저 최신형 설비를 갖춘 덕택으로 지루하리만큼 아무런 흔들림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거기다가 창문까지 꼭꼭 닫혀 있어서 옛날의 그런 기분은 맛보려야 맛볼 수가 없다. 눈만 감아버리면 안락한 소파에 앉아 있는 거나 다름이 없어서 잠을 청하는 데 제격이었다. 그러나 잠을 잘 수도, 자서도 안 될 일이었다.
17년 만의 귀향. 귀향을 겸한 휴양을 떠나는 길인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이번 길은 신경 안정을 위한 휴양처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신경과민으로 인한 신경쇠약으로 유발되기 시작한 여러 가지 병증을 막기 위해 휴양지를 물색해야했다. 17년에 이르는 서울 생활 동안 비원 구경을 해보지 못한 그로서는 여행이 아닌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마땅한 곳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속화되어 버린 명승지나 휴양처는 많았다. 그러나 그 어느 한곳도 가본 경험이 없는 그로서는 역시 타향일밖에 없었다. 더구나 눈에 설익은 그런 곳에서 마음을 붙일 때까지 생리적으로 작용되는 신경 소모를 해야 한다는 것은 신경 안정을 위한 휴양이라는 근본 목적을 그르치는 결과밖에는 안 되는 일이었다. 집에서부터 회사까지 택시로는 몇 분이 걸리고 좌석 버스나 시내 버스의 차이는 몇 분이며 차편은 몇 가지고 신호 대기는 몇 군데에 있고 어느 길에서는 좌회전 금지라는 것 등이 머리에 환했다. 그러나 어쩌다 영등포나 불광동 등 말만 듣던 동네에 가는 경우에는 머리가 어릿어릿해지면서 어느 길이 어느 길인지 구별이 안 된 채로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의 그런 촌놈이 되고 마는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단골 요정의 방 개수, 마담의 과거·취미·기호에서부터 접대부 한 사람 한 사람의 특기·성격·학벌·교양 정도, 심지어 몸매무새와 그 테크닉 정도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그것은 굴지의 무역 회사 엘리트 영업부장으로서 280여 개의 국내외 거래처 주소와 전화 번호, 대표의 이름을 달달 외우는 것처럼 중요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결코 불필요한 것일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어느 업체의 초대를 받아 계집을 옆에 끼게 되는 경우에는 영 묘안이 서지 않아 당황을 하곤 하는 것이었다.
17년 전 ㅁ읍을 떠나 ㅎ시에서 야간 열차를 바꿔타고 서울로 향할 때 그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뜨거웠던지 딱히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서울로 유학을 간다는 것만으로 충분했을 것이고, 초행인 서울에 대한 두려움과 넉넉지 못한 학비 걱정에다 무난히 합격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불안, 이런 것들이 뒤범벅되었을 것이다. 1월의 밤을 달리는 3등 열차는 꽁꽁 얼어 있었지만 그는 추위를 느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추위를 막기 위해 잔뜩 웅크려박고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가 없어서 문 난간에 매달려 매섭고 거친 겨울의 밤바람에 매질을 당하고 있었다. 냉랭한 하늘에 차갑게 반짝이는 별빛과 겹겹으로 쌓인 어둠이 휘몰아쳐 오는 바람에 실려 뭉텅이로 끼얹어지는 것 같은 밤을 기차는 질주했고, 그는 막힌 숨을 추슬러 쉬어가며 바퀴가 철로 이음자리에 부딪히는 소리를 귀에 새기고 있었다. 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냉랭한 빛의 별들은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고, 저 겹으로 쌓인 짙은 어둠은 서울이며, 살을 찢는 이 매섭고 차가운 바람은 서울에 발을 붙이고 사는 동안 겪어야 하는 시련이지만, 레일처럼 곧게 뻗은 내 길을 마련해 두고 목적을 향해서는 이 억세게 달리는 기차처럼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가리라. 그는 난간을 움켜잡은 두 주먹에 더 힘을 주었다.
“될 수 있으면 사모님은 동행 안 하시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사모님이 짐이 되신다면 오히려 신경 자극이 될 우려가 있거든요.”
의사의 말이었다. 그때 아내는 왜 그리 얼굴을 붉혔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그 의사의 표정이 유죄였다. 의사는 말을 마치고 나서도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아내를 지그시 더듬듯 했던 것이다.
“괜히 따라가셔서 성가시게 굴면 안 됩니다. 신경쇠약증에 부인이 보채는 것은 금물이니까요.”
필경 아내는 의사의 눈길에서 이런 말을 읽어냈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피식 웃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사실 지금 생각해도 의사의 짐이 된다는 말의 진의가 무엇이었는지 분명하지가 않았다. 아내가 느낀 그런 뜻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반대일 수도 있었다. 그는 이미 진찰을 받으면서 표나게 성욕 감퇴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을 실토했던 것 이다. 그러니까 부인의 감시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롭게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어보는 것도 치료 방법의 하나라는 뜻일 수도 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남자는 언제 어느 곳에서든 보호 의식을 갖게 마련이라는 평범한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의사의 말이 아니었어도 아내는 동행을 꺼려했을지도 모른다. 난리 통에도 서울을 떠나지 않은 순 토박이인 아내에게서 자연과 어우러진 정서를 기대하는 것은 큰 넌센스였다. 초가 지붕에 핀 박꽃의 여름 밤이라거나, 자지러지는 매미의 울음 소리에 삭아드는 더위라거나, 봇물을 막고 미꾸라지를 잡는 재미라거나, 소쩍새가 목이 타는 보릿고개의 우울 같은 것이 이해될 리가 없었다. 아내는 반딧불을 본 일이 없고, 올챙이도 생물 도감에서 본 것이 고작이라 했다. 그가 서울에 대해서 그러했던 것처럼 아내는 시골이라는 곳에 대해서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느낀 서울의 깡패에 대한 공포는 아내에겐 풀섶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뱀에 대한 공포와 일치하는 것이었고, 5원이 모자라서 20리가 넘는 서울의 길을 터덕거릴 수밖에 없는 반질반질한 인심에 그가 혐오를 느끼는 데 반해 아내는 잔칫날이면 온 동네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얼마나 번잡하고 수선스러운 일이냐는 견해를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 아내를 돈 쓰는 재미까지 곁들이는 피서가 아닌 치료를 위한 휴양지에 동행시키고 싶지 않았다. 혹시 휴양지라고 택한 곳에 관광을 위한 시설이라도 얼마만큼 갖추어져 있다면 또 모른다. 자신에게는 소년기의 알뜰한 추억이 머물러 있는 곳이라 하더라도 아내에겐 생소하고 보잘것없는 시골구석에 지나지 않을 것이었다. 시골 출신이 소박하고 진실하다는 점은 장인이 인정한 무시하지 못할 결혼 조건 중의 하나로, 결혼 생활을 통해서 아내는 자기 아버지의 선견지명에 만족해 하는 터이니까 그로서는 어느 친구처럼 촌놈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걸어서 한 시간이면 일주가 족할 촌구석 ㅁ읍에다 아내를 처박아두고 무료와 권태에 못 견디는 꼴을 도저히 무감각하게 보아넘길 자신이 없었다. 텔레비전 주말 프로에서도 방영하지 않는 3류 영화를 보게 하는 일도 하루 이틀이지 보름이라는 날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아내에게 신경을 쓰다 보면 병은 더 악화가 되고 말 것이었다. 의사의 짐이 된다는 말은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하는 말이라고 그는 해석했다.
“의사의 말대로 전 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 당신 생각은 어떠세요?”
아내는 동행의 의사가 없음을 어디까지나 환자를 위한 의사의 명령에 따르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는 이때 말이란 참으로 묘하고 편리한 도구라는 것을 재인식한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나 혼자 다녀올 테니까 그동안 당신은 집에서 휴양하구려.”
그의 목소리는 퉁명스러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은 아내에게 남자인 남편으로서 무시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의 말에 아내는 분명히 얼굴을 붉혔었다. 짐이 되지 말라는 말을 그렇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얼굴을 붉힌 것이 틀림없는 일인데, 다음 순간 아내는 뭐라고 속말을 뇌까렸을 것인가.
“염려 마세요. 그이는 그게 형편없이 약해요. 아예 기대도 안 하기 때문에 짐이 될 필요도 없답니다.”
아내가 속으로 했을 말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15일간이나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아내는 그리도 태연하게 동행을 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공무 출장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고 아내가 초연한 군자의 도를 지닌 것도 아니다. 모든 여자가 자기들의 남편에 대해서는 그렇듯 아내도 가장 정상적인 여자였다. 만약 결혼 생활 8년을 통해서 보여준 단 한 번의 탈선도 없었던 자신의 단정한 품행을 믿어서였다고 하자. 그러나 그 어느 여자고 그 문제를 통해서 남편을 보는 한 제아무리 단정한 품행이나 모범적인 과거를 가졌다 하더라도 인정을 받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점이 바로 신께서 여자에게 내린 몰염치하고 몰지각하고 지칠 줄 모르는 힘이었다.
결국 그는 여지없이 무시당한 것이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생김새나 돈 때문이 아니라 그것으로 하여 무시를 당할 때 느끼는 치욕감. 그건, 간신히 안아올린 신부를 침대에까지 안아다 눕히지 못하고 중간에서 쓰러져버린 첫날밤의 신랑이 맛봐야 하는 패배감보다 더 쓰고 아픈 것일 수도 있었다.
그 증상이 나타나기는 대략 6개월 전부터였다. 영업부장의 자리에 앉고 나서 발생한 두 번째 이변이었다. 첫 번째 달려든 것이 불면증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 얼마 전부터 위험 신호는 다가들고 있었던 것이다. 의사의 진단이 그 점을 지적 했었다. 그전에는 의식하지도 못했던 자동차의 소음 때문에 사무를 보다가 벌컥벌컥 화를 내기 시작했는가 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다가 그것이 무한정 떨어져내리는 착각에 머리를 감싸잡기도 했다. 바윗돌에 짓눌리는 꿈을 꾸다가 소스라쳐 깨고,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 벨 소리에 그만 숨이 막히는 울화가 치밀기도 했다. 이때 손을 썼더라면 그리 심한 성욕 감퇴 현상까지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의사는 혀를 찼던 것이다.
기계를 무리하게 쓰면 고장이 난다는 너무 평범한 말을 실감했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하긴 잠시도 쉴 사이가 없이 돌려댄 기계였다. 레일을 달리는 기차처럼 그렇게 앞만을 향해서 굳세고 줄기차게 뛰었던 것이다. 정확한 계산과 분명한 타산에 의해 답을 내놓은 다음에는 그것만을 향하여 기차처럼 내달았다. 헤픈 술을 마실 여유가 어디 있으며 외도할 시간이 어디 있었던가. 하루 24시간 중에 깨어 있는 시간은 말할 것 없고 자면서까지 뛰고 있었다. 한 가지 일이 시작되고 나면 그 일이 공인된 흡족한 결과로 끝날 때까지 거의 밤마다 꿈을 꾸었으니 말이다. 단 한때, 아내와의 그 일이 있을 때만은 이 세상 모든 것을 말끔하게 잊어버릴 수가 있었다. 그런데 동년배 중에서 그 누구보다도 빨리 부장의 자리에 올라서 보니 계산과 타산이 범할 수 없었던 유일한 시간, 그가 가장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던 아내와의 시간마저 부장이라는 직함을 얻는 데 박탈당해 버렸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시끄러워.”
그는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비벼끄다가 멈칫 놀랐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자신을 타일렀다.
차장은 천안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승객에게 알리는 동시에 명소 소개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밉지 않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듯 하는 차장의 목소리는 오히려 여행의 즐거움을 더 하거나 기분 전환을 위해서 다른 승객들에게는 필요한 것 일수도 있었다. 그런데 자신은 짜증을 내는 것이다. 그는 이 사실에 또 짜증이 나는 것이다. 왜 이따위로 병신스러워졌는지 도무지 기분이 나빠 견딜 수가 없었다.
신경성 노이로제, 신경과민에 의한 신경쇠약. 도대체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다. 그놈의 병명부터가 구역질이 났다. 딱 잘라서 맹장이면 맹장이고 그 흔해빠진 고혈압이면 고혈압이지 노이로제는 뭐고 신경쇠약은 또 뭐 말라빠진 것이냐. 맹장이면 찢어내면 그만이고 고혈압이면 정구를 치든 등산을 하든 딱딱 규정이 날 게 아닌가. 이건 도무지 어떻게 된 병이 약도 신통한 것이 없는 데다 무작정 안정이다 휴양이다 해대니 이 무슨 벼락맞을 놈의 병이 이런 병이 있을 것인가. 일은 산더미로 쌓이고 이사(理事)까지는 우선 미뤄두더라도 해외 지점장 자리가 1∼2년 내에 떨어질 판인데 어느 세월에 글쎄 안정을 하고 휴양을 다녀. 빌어먹을 놈의 병이 걸리려면 한 5년만 있다가 걸려도 좋잖은가 말이다. 그때쯤이면 휴양 아니라 평생 놀아도 될 만큼은 벌 텐데. 그때는 의사 말대로 문화병답게 대접도 해주고 인텔리병으로 어련히 잘 모셔드릴까 봐서 방정맞게 이렇게 일찍 찾아드느냔 말이다.
그는 또 열이 오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병에 매달리는 것부터가 노이로제고 신경쇠약이 아니냐고 다시 자신을 타일렀다.
그는 의식적으로 고향 생각을 하며 옛 기억을 더듬기 위해 눈을 감았다.
기철이 그 녀석은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항시 숙제를 안 해와 종아리를 맞던, 시오리가 넘는 학골에서 다니던 기철이. 손가락 마디가 다른 애들보다 두 배는 굵고 흉터가 많던 손. 꼭 솔가지처럼 뻣뻣한 그 손으로 어쩌면 그리도 글씨를 못 쓰던고. 소수점이 찍히는 나눗셈을 못해 그렇게 쥐어박히면서도 녀석은 울지도 않고 연상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낑낑대기만 했었다. 그런데 기철이 녀석이 광을 낼 때가 있었잖았나. 수학 여행 때문에 벼 베기를 할 때였다. 녀석은 낫자루를 잡은 손에 퉤퉤 침을 두어 번 뱉고 나서 허리를 굽히면 논 한 마지기 벼를 다 베고 나서야 허리를 펐었지. 낫을 든 녀석의 오른손은 어찌나 빨리 움직이던지 벼 포기 사이에서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고 베어진 벼는 무슨 살아있는 물건처럼 곧추섰다간 녀석의 왼팔에 눕고 눕고 하지 않았던가. 낫질을 잘한다는 아이들 서너 명이 기철이 하나를 당하지 못했으니까. 선생님은 처음으로 기철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거듭했고 이상하게도 기철이는 손등으로 눈물을 쓱쓱 문지르며 울었던 것이다. 그 후부터 아이들은 기철이에게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기철이는 기를 쓰며 그런 아이들을 붙들어 학급에서 누구도 당해내지 못하는 그 뛰어난 씨름 솜씨로 사정없이 메다꽂는 것이었다. 머슴이란 별명이 붙은 것은 벼 베기를 유별나게 잘한 때문도 있었지만 수학 여행에서 끼니때마다 다른 아이들보다 두 배 이상, 그릇 위로 솟는 양이 더 많은 일꾼들의 밥그릇 모양을 해가지고도 게눈감추듯 해버리면서부터 였다. 그 녀석이 머슴이란 별명을 그리도 싫어 했던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졸업이 가까울 무렵이었다. 숙제도 곧잘 해주고 산수 문제 풀이도 거들어주곤 했던 그에게 녀석이 제 집에 놀러 가기를 졸랐던 것이다. 4월은 신학기고 졸업식은 대개 3월 중순에 했던 그때 녀석의 집을 찾아간 것이 3월 초순이었다. 기철이가 내놓은 점심은 고구마 세 개였다. 농사짓는 집이 다 그렇듯 기철이네 방 윗목에도 고구마를 넣어둔 싸리발이 둘러쳐져 있었다. 그 싸리발 속에는 겨울 내내 먹고 남은 못생긴 고구마들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뭐, 촌이라서 먹을 만한 게 있어야지. 농사철도 아니고.”
기철이는 이런 말을 하며 고구마를 권했다. 이런 기철이의 말에서 그는 어른을 느꼈고, 수학 여행에서 그리도 많은 밥을 먹던 기철이를 떠올렸다.
고구마는 단물이 지르르 흐르는 게 입 안에서 저절로 녹아들었다. 그렇게 맛있는 고구마는 처음이었다. 몹시 신기해 하는 그에게 온돌에서 삼동을 지낸 고구마는 다 그리 맛있다며 기철이는 예사롭게 말을 받아넘겼다.
헤어지면서 중학교는 안 가느냐고 묻자, 머슴 아들이 중학교는 무슨 중학교냐고 아버지를 따라 머슴살이를 해야 된다며 기철이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것이 기철이와 마지막이었다. 기철이는 졸업식 날 학교에 나오지 않고 말았다.
그는 서울 생활에서도 노상에 펄쳐놓은 고구마를 볼 때는 기철이를 생각했고 으레 그의 마지막 모습이 선하게 떠오르곤 했던 것이다.
이번 길에 그는 학골의 기철이를 꼭 만나보리라 다짐을 했다.
정분이는 애를 몇이나 낳았을까. 지금쯤 많이 늙었으리라. 한 반에 다섯 개의 분단이 있었고 한 분단에 계집애들은 둘씩이었지. 분단장부터 뽑고 애들을 나눌 때 얼마나 몸이 달았던가. 2분단장인 자신의 분단으로 정분이가 오게 되기를 애타게 바라면서도 애들 눈이 무서워 표를 낼 수가 없었다. 한 아이씩 차례로 자리를 잡아갈 때마다 책상 속에 넣은 두 주먹을 자꾸만 틀어쥐다가 끝내는 떨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정분이가 선생님 명령대로 2분단에 오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휴우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훔치고 나서 손바닥을 보니 핏기가 가신 두 손바닥에는 각기 네 개의 손톱자국이 파였고 끈끈하게 땀까지 배어 있었다. 정분이는 예쁜 얼굴이었다. 언제나 말이 없었다. 이마를 반쯤 덮고 귓불이 보일락말락하는 단발머리는 한번도 흐트러지는 때가 없었다. 그런 정분이가 좋았다. 몹시 더운 날 사회 시간이었다. 아이들에게 연대를 외우게 한 선생님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책상은 분단별로 놓여 있었는데 한 분단에는 2인용 책상이 다섯 개였다. 그중 네 개는 두 개씩 옆구리를 맞붙여서 다시 등을 맞대도록 놓여 있었다. 그러니 네 개의 책상은 등과 옆구리가 맞붙어 큰 상 모양이 되었고 여덟 명은 서로 맞바라보고 앉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분단장의 책상은 그 끝에 붙어 있어서 한 분단의 앉음새는 마치 ㄷ자형의 회의장 좌석 배치와 같았다. 분단장의 옆에는 그 분단에서 성적이 제일 나쁜 아이가 앉고 부분단장의 옆에는 그 다음의 아이, 이렇게 해서 한 분단의 분단장 자리로부터 맨 끝에 놓인 두 책상의 네 명은 거의 비슷한 성적의 아이들이 앉게 되어 있었다. 정분이의 자리는 분단장인 자신의 오른쪽으로, 2분단에서 5등이라는 표시였다. 그는 연대를 외우다가 싫증이 나서 한눈을 팔았다. 정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정분이는 눈을 꼭 감고 열심히 입을 달싹거리고 있었다. 슬슬 눈길을 놀리던 그는, 햐아 저게 뭐야, 눈을 크게 떴다. 배꼽이었다. 검은 물을 들인 정분이의 풀기 잘 선 삼베 치마의 앞 터진 부분이 들린 사이로 배꼽이 들여다보이고 있었다. 야 저것 봐라, 신난다. 그는 고개까지 쑥 빼가지고 배꼽 구경에 정신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분이를 훔쳐보았다. 여전히 연대 외우기에 열심이었다. 퍼뜩, 정분이의 맞은 편에 앉은 부분단장 경철이놈이 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들었다. 그건 싫었다. 그래서 책상 밑으로 정분이의 다리를 톡톡 건드.렸다. 정분이가 번쩍 눈을 떴다. 그는 낮게 그러나 빠르게 속삭였다. “배꼽 보여.”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분이는 후닥닥 앞을 거머잡더니만 책상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팔에 가려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머리칼에 가려 보일 듯 말 듯한 귓불은 평소와는 달리 새빨갛게 물이 들어 있었다. 그 후로 정분이는 표나게 쌀쌀해졌다. 공부 시간에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청소 시간이나 복도 같은 데서 마주치면 싹 얼굴을 돌려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모르는 체해 버리지 못한 것을. 그리고 그런 정분이가 야속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가을 운동회가 되었다. 달리기에 1등을 한 그는 상으로 받은 공책 세 권을 모두 정분이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정분이는 쌀쌀하게 획 돌아서 버렸다. 그는 그 공책을 모두 갈기갈기 찢어 변소에 처넣어버렸다. 그리고 졸업을 해버렸고, 그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정분이가 시집을 갔다는 말을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ㅁ읍에 잠깐 들렀을 때 정분이는 애엄마가 되어 있었다. 애를 업고 가는 낭자 머리의 정분이를 먼발치에서 본 그는 공책을 갈기갈기 찢었던 자신을 생각하며 자꾸만 쿡쿡대고 웃었던 것이다.
큰아들놈을 국민학교에 넣어놓고 며칠이 지나 제 짝이라며 계집아이를 집에 데려왔을 때 그는 정분이를 떠올리고나서 웃었던 것이다.
용천골에 있던 그 넓은 저수지. 여름이면 개헤엄을 치다 지치면 발가벗은 채로 밭둑에 몸을 찰싹 붙이며 기어서 습격하던 참외밭. 그 딸기코 할아버지는 정말 놀랄 만큼 귀가 밝았었다.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다가도 자기네들이 가까이만 가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러댔던 것이다. 딸기코 할아버지는 진즉 세상을 떠났으리라.
그는 스르르 잠이 들다가 눈을 떴다.
차장은 5분 후면 종착역에 도착할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옛날 같았으면 다섯 시간이 걸리고 완행 열차의 경우 연착이라도 하면 여섯 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했던 거리였다. 17년이란 세월을 새삼스럽게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ㅎ시에서부터 ㅁ읍까지의 백여 리는 택시를 타기로 했다.
택시는 고속 버스 터미널에서 쉽게 탈 수 있었다.
“ㅁ 읍으로 갑시다.”
말을 일러놓고 한참이 지나도 차는 움직일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고속 버스의 냉방 시설 덕택에 그는 두 배 이상의 더위를 마셔 대고 있는 참이었다.
“이 차 고장이오?”
그의 목소리 에는 짜증이 묻어났다.
“잠깐만 봐주십쇼. 이 앞자리에 같은 방향 손님을 곧 모시고 올 겁니다.”
운전사는 뒤는 돌아보지도 않고 연상 앞만 살피며 이렇게 내갈겼다.
“……”
그는 택시에서 내렸다. 건방진 자식 같으니라구.
“손님, 손님 왜 그러십니까. 떠납니다.”
.운전사는 황급히 쫓아와서 곧 소매를 붙들 기세였다. 그는 운전사의 눈을 똑바로 쏘아봤다.
“이런 꼴 당하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란 말이오!”
“예?”
그는 옆 택시로 오르며 외치듯 했다.
“ㅁ읍으로 갑시다.”
발동을 걸고 있던 택시는 그가 자리를 바로잡기도 전에 움직였다.
자리를 비워서 가느니보다 합승을 시키는 것이 나쁠 것은 없었다. 그런데 합승이 운전사 자기네들의 당연한 권리처럼 승객의 의사는 아예 묵살해 버리고 설치는 데는 질색이었다. 그것도 바쁜 출근 시간에 손님을 실을 때까지 서너 번씩 정거를 해대는 무례를 당하면서까지 태연하기란 여간한 수양을 쌓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방금의 일만 해도 그렇다. 미리 양해를 구했으면 또 모른다. 당연히 합승을 해야 되는 것처럼 건방지게 구는 꼴도 꼴이었지만 다른 사람은 손님을 태우지도 못하고 있는데 제놈만 돈을 곱으로 벌겠다는 그 시커먼 속이 도대체 얄미운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다 접어두고 여기까지 서울의 그 악습이 전염되어 있다는 사실에 딱 정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는 몇 번이고 심호흡을 했다. 흰구름을 머리에 가볍게 이고 있는 산이며 짙푸른 벼가 들어선 논이 오래 눈에 익은 풍경으로 느껴지고 차창으로 몰려드는 바람에서 싱싱한 흙내음을 역력히 맡을 수 있었다. 그는 곧 기분이 개운해졌다.
“아스팔트가 깔렸군요?”
그는 안 해도 그만인 말을 운전사에게 던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휴양지를 여기로 정한 것은 십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는 40여 분 만에 ㅁ읍에 도착했다.:
택시가 먼지를 일으키며 떠나버린 다음에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햇볕 아래 그대로 서 있었다. 분명 ㅁ읍 역전이었다. 그때도 이랬던가. 그는 굳이 ㅅ읍에 있었던 이모 집을 가고 올 때 드나들던 예전의 역전을 생각해 내려 하고 있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일본식 건물인 역사(驛舍)와 양철 지붕인 왼편의 창고와 역전 광장 등 옛모습 그대로였다. 역사나 창고는 훨씬 더 헐어 보였고, 역전 광장은 이런데서 어떻게 변사 영화를 상영할 수 있었나 싶도록 좁아 보였다.
그는 고향 ㅁ읍에 첫발을 디디면서 뭔가 허전한 실망을 하고 있었다. 너무 허술해 보이고 너무 초라해 보이고 너무 가난해 보이는 보습. 세월의 흐름에는 아랑곳없이 너무 변하지 않은 모습에서 친근감을 느끼기보다 적막감이나 쓸쓸함이 엄습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너무 갑작스러운 변화 앞에서 당황하거나 거리감을 느끼는 것과는 또다른 감정. 옛 동산을 찾아갔을 때 어린 날 매달렸던 나무가 아름드리로 커 있고, 그때 냈던 생채기도 늙은 등걸에서 커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는 그 길로 옛 국민학교를 들러볼까 하다가 머무를 곳부터 정하기로 했다.
시간은 오후 1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읍사무소나 경찰서 등이 자리잡은, 그래도 읍내 중심가라는 곳에서 여괸을 잡을 것인지 아니면 예전에 살던 동네로 갈 것인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것은 진즉 차 속에서 정해 둘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우선 햇볕을 피할 곳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목도 축여야 했다.
그는 두리번거리다가 제과점을 찾아냈다. 제과점으로 들어서며 그는 빙그레 웃었다. 참 어색한 글씨로 쓴 제과점의 이름은 ‘서울 뉴욕 제과점’이었던 것이다.
“어서 오세요. 이리 앉으세요.”
졸다가 깬 듯한 아가씨가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헤프게 웃고 있었다. 홈이 파인 거친 시멘트 바닥에 놓인 서너 개의 헐어빠진 탁자와 비닐 커버가 찢어진 의자가 흩어진 듯 놓여 있는 실내는 무척 무더웠다.
“더운데 어서 앉으세요.”
아가씨의 두 번째의 권유에도 선뜻 자리를 잡고 앉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뭐 시원한 거 있겠나?”
그는 말을 해놓고 언짢은 기분이 되었다. ‘있나’가 아니라 ‘있겠나’로 자신은 분명 부정의문문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 다음의 말이나 그 속에 숨겨진 뜻은 뻔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그런 어처구니없는 오만이 싫었다.
“그럼요. 사이다, 빙수, 아이스케키, 얼마든지 있어요.”
아가씨는 한달음에 말을 하고는 저쪽으로 갔다. 그는 자신에게서 느낀 언짢은 기분을 떼치기라도 하듯 가방을 탁자에 소리 나게 놓고 의자를 끌어당겼다.
“여겄어요, 부채. 뭘 드시 겠어요?”
“부채?”
그는 눈에 익은 여배우가 웃고 있는 타원형 부채를 집어들며 반문했다. 부채 ―? 그 생소한 기분과 거리감,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더위, 정말 시골에 와 있다는 실감, 이런 것들이 부채를 보는 순간 밀려들었다.
“선풍기라도 없나?”
그는 부채를 서너 번 흔들어보다가 물었다.
“그 비싼 선풍기 사놓고 장사하다가 밥 굶게요? 빨리 찬 걸 드세요.”
“그래?”
그는 또 기분이 언짢아졌다. “선풍기라도 없나?” 이런 말을 아무렇게나 해대는 자신이 싫었다. 에어컨은 아니더라도 하는 뜻이 숨겨진 말. 아가씨의 그런 대꾸만 아니었어도 그는 자신의 말을 굳이 되씹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여름에 부채를 잊어버리고 살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 기억조차 없다. 그 기억조차 없는 세월 동안에 잊어버린 흙 내음 실은 바람. 그 바람을 잊어버리면서 불면증의 잠자리는 마련된 것인지도 모르고 그래서 찾은 땅에서 정작 그걸 수용할 수 없어 다시 병인(病因)에 끌려가는 것인가.
“뭐가 있댔지?”
“사이다, 빙수, 아이스케키요.”
“아이스케키? 어디, 그걸 먹어 보자.”
“몇 개나 디려요?”
“한 두서너 개 줘보렴.”
아이스케키? 얼음과자―. 그의 속에서는 아이스케키라는 말에 곡이 붙은 얼음과자라는 말이 잇따랐다. 나무통을 걸머지고 다니면서 아이스케키, 얼음과자를 번갈아 가며 외쳐대던 장사들. 장사마다 그 곡조는 다 달랐고, 한참 듣다 보면 아새끼, 어른과자가 되기도 했다. 장터에 서커스단이 들어왔던 어느 해 여름 밤. 하루 종일 졸라대서 받아낸 돈을 주먹에 꽁꽁 말아쥐고 몇 놈이 장터로 내달았다. 서커스단의 나팔 소리는 왜 그리 신명이 나는지 모른다. 장터에 다다라보니 너무 일찍 와서 표를 팔지 않았다.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날은 덥고 목은 마른데 아이스케키, 얼음과자를 외치는 소리가 더 목을 타게 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아이들 모두가 딱 한 개씩만 사먹기로 의견을 모았다. 막대기에 낀 긴 아이스케이크. 달고 시원하고 가끔 팥알이 씹히기도 하는 그것은 먹어도 먹어도 한이 없었다. 딱 하나가 세 번 되풀이되고 나니 돈은 반으로 줄어 있었다. 야단이었다. 그 신바람 나고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공중 그네뛰기, 외발 자전거타기 같은 구경을 못하게 되고 만 것이다. 이때 누군가가 희한한 꾀를 생각해 냈다. 표 받는 뒤쪽으로 돌아가면 경계가 허술하니까 천막을 들추고 슬쩍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들키면 어쩌느냐, 서커스단 사람들은 무지막지해시 잡히기만 하면 다리가 부러진다더라는 등 반대 의견도 니왔지만 실리 (實利)를 위해서는 으레 그러는 것처럼 그때도 그런 의견은 재고의 여지도 없이 묵살되었고, 그런 말을 꺼낸 아이는 병신 취급을 당해 야코가 팩 죽어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모두는 의기양양하게 나머지 돈으로 그 맛있는 아이스케이크를 다 사먹어버렸다. 마지막 아이스케이크의 막대기까지 쪽쪽 빨다가 그럼 누가 제일 먼저 천막을 들추고 들어갈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입에 올랐다. 그 말을 꺼낸 아이에게 모두의 시선은 쏠렸고 그 아이는 발뺌을 했다. 서로 먼저 들
어가라고 미루면서 시간이 갔고 드높은 서커스단의 천막 속에서는 나팔 소리, 북소리와 함께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시작을 하는 모양이었다. 결국 가위 바위보로 결정을 하기로 했다. 제일 먼저 진 아이가 맨 앞에 서고 끝까지 이긴 아이가 맨 뒤에 서기로 차례를 정했다. 그의 차례는 끝에서 두 번짼가 그랬다. 결국 한군데를 골라 천막을 들췄다. 생각보다 쉽게 천막은 들춰졌고 맨 앞에 선 아이가 쑥 들어갔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다음 아이가 또 들어갔다. 가슴에서 방망이질은 여전했지만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도 쑥 몸을 디밀어 고개를 드는 순간 덥석 뒷덜미를 틀어잡는 우악스러운 손이 있었다. 먼저 들어간 아이들도 붙들려 있었다. 어깨가 떡 벌어진 사내에게 불이 번쩍번쩍 튀는 알밤을 사정없이 얻어먹고 볼기짝을 차이고 해서 쫓겨났다. 그런데 모두는 그렇게 맞으면서 훔쳐본 공중 그네타기에 대해서 서로 우김 질을 하며 볼기짝과 머리들을 문질렀던 것이다.
“요즘도 곡마단 들어오나?”
아이스케이크가 담긴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아가씨에게 물었다.
“싸카쓰요? 가끔 들어와요. 저어, 아저씨 서울서 오셨지요?”
그는 여전히 헤프게 웃고 있는 아가씨를 올려다봤다.
“왜?”
“서울 좋지요?”
그는 눈길을 탁자로 옮겼다. 예상했던 물음에 기대하고 있는 만큼의 답변을 해줘야 하는 그런 도식적인 권태를 여기서까지 겪고 싶지 않았다. 그런 권태에는 너무 익숙해지다 못해 넌덜머리가 난 다음이었다. 계장이 새 양복을 입고 와서 어떠냐고 물을 때부터 시작해서 과장의 와이셔츠, 차장과 부장의 구두며 혜어스타일을 거쳐 이제 전무 이상 사장의 넥타이며 늘어처진 배에 대한 예찬론을 펴야 하는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배가 자꾸 나와서 큰일이란 말야. 혈압은 자꾸 높아가는데.” 이때, “그것 참 큰일났군요.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대꾸를 했다간 볼장 다 본다. “아 얼마나 품위가 있고 믿음직스러워 보입니까. 사장님께서는 골프를 하시기 때문에 더 이상 살이 찌시지도 않겠지만 더구
나 고혈압의 염려는 아예 없습니다. 운동을 하면서 오른 살은 고혈압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요.” 저게 멧돼지지 어디 품위가 있고 믿음이 있어 보이느냐. 골프도 운동이라더냐. 굳이 이렇게 자신을 힐난할 것까지는 없었다. 그렇게 되
면 권태에다가 초라하고 비굴한 자신의 꼴까지 봐야 하는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저 기대하는 대답을 기대 이상으로 해주기 위한 만반의 태세를 갖추면 되고, 그러기에 급급하다 보면 사실 그런 힐난의 여유는 있을 수가 없었다. 영
업 실적 현황을 차트에 나타난 이상으로 파악하는 것은 물론 그런 데까지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까 오늘처럼 휴양을 전제한 귀향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제발 이 아가씨까지 부담스럽게 느끼고
싶지가 않았다.
그는 아이스케이크를 들다 말고 도로 놓아버렸다. 아이스케이크에 끼워진 막대기에 푸릇푸릇한 물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건 자세히 보지 않아도 물기 묻은 나무에 곰팡이가 피었던 자리였다. 입에 대기도 전에 비위가 상했다.
“아이스크림 없나? 해태라든가…….”
“아이스크림요? 해태요?”
아가씨는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자꾸 더워지고 있었다.
“아이스케키 싫으세요? 빙수 드시겠어요?”
“빙수? 그래, 그걸 먹어볼까?”
“이건 어떡하구요. 녹기 시작하는데…….”
아가씨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우그러진 양은 접시에 놓인 세 개의 아이스케이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염려 말어, 돈은 내지. 더 녹기 전에 아가씨라도 먹겠어?”
“미안해서 어떻게…….”
이러면서 아가씨의 손은 벌써 접시를 들고 있었다.
그는 뜨거운 햇볕을 내다보며 심한 갈증을 느꼈다. 시원한 물에 목욕을 하고 푹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 소리쳤다.
“아가씨 그만둬, 그만둬!”
그는 서울역 염천교 근방에서 언젠가 본 기억이 있는 리어카 빙수 장수가 떠올랐다. 그 빙수 장수는 채칼 같은 것에 젖은 수건으로 덮은 얼음덩이를 열심히 문질러댔다. 그러고는 병에 담긴 빨간색 노란색 물감을 찍찍 뿌려댔던 것이다. 그 빙수 장수처럼 아가씨는 노란 수건으로 덮은 얼음 덩이를 열심히 문질러대고 있는 참이었다.
“왜 그러세요?”
“저어, 다른 시원한 게 없을까?”
“사이다가 있어요. 그렇지만 얼음을 다 갈았는데요?”
“돈은 낼 테니까 염려 말어. 사이다 차갑지?”
그는 웬일인지 이번에는 아가씨가 먹으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염려 마세요. 꽁꽁 얼었어요.”
아가씨가 쟁반에 받쳐들고 온 사이다병과 컵을 탁자에 놓았고 그는 난색이 된 얼굴로 그걸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복사이다? 칠성사이다는 없나 보지?”
그는 중얼거리듯 하고 있었다.
“아, 거 라디오에서 선전하는 사이다 말이죠? 비싸서 못갖다 놔요. 사먹는 사람이 없어요. 이 오복사이다도 얼마나 맛있는데요. 한 컵 마셔보세요.”
아가씨는 컵에 사이다를 따랐다.
“비싸?”
“네에, 운반비가 있대나 봐요. 이것보다 배가 비싸요. 더운데 어서 드세요.”
사뭇 친절해진 듯싶은 아가씨의 말을 들으며 그는 그랬던가 생각하고 떫게 웃었다. 영업부장의 체면이 우습게 됐다는 느낌에서였다.
그는 사이다를 한 모금 마시다 말고 캑캑거렸다. 사이다는 목을 넘어가면서 지독스럽게 코를 쏘아대며 이상한 냄새를 뿜었던 것이다.
“이 사이다까지 전부 얼마냐?”
“괜히 미안하게 시키기만 해놓고…….”
이렇게 중얼거리며 머뭇거리는 아가씨는 정말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언뜻 그 얼굴에서 뭔가 마음이 환해지는 듯싶은 반가움을 찾았다. 그건 얼마 전 역전 광장에서 느꼈던 허전한 실망을 메워주는 것 같았다.
“나 바쁜데, 전부 얼마지?”
“전부 배액……삼십 원요.”
아가씨는 고개를 숙인 채 들릴락말락한 목소리였다.
그는 백 원짜리 한 장과 50원짜리 한 장을 탁자에 놓고 돌아섰다.
“이런 시골에 와서 서울 것만 찾으면 어떻게 해요. 괜히 미안해 죽겠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아가씨의 원망스러워하는 목소리였다.
그는 멈칫 그 자리에 섰다. 그렇구나, 아가씨 네 말이 맞다.
그는 우울한 마음으로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 속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는 불볕 속을 터벅이고 걸으며 아직 거처를 정하지도 못하고 목도 축이지 못한 것을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그는 중국 무협영화의 포스터가 붙은 새로 생긴 극장 앞을 지나면서 거처를 예전에 살던 동네로 정하기로 했다. 여관에 들면 번잡스러워 안정이 안 될 것 같았고 또 오랜만에 고향엘 찾아온 의의도 없는 일이라 싶었다.
그가 문중(門中)의 아저씨뻘이 되는 집에 여장을 푼 것은 오후 2시가 넘어서였다. 갓 퍼올린 샘물에 목욕을 하고, 쌀과 함께 과서 만든 닭죽을 땀을 뻘뻘 흘려가며 그릇 반이나 먹은 다음 대청마루에 돗자리를 깔고 잠이 들면서 거처를 여기로 정한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은 것은 두어 시간 자고 난 다음부터였다.
잠을 깨고 보니 문중의 아저씨뻘 되는 사람들에서부터 형제뻘이 된다는 사람들이 20여 명이나 모여앉아 있었다. 그는 미처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소개를 받아야 했고 그때 마다 넙죽넙죽 큰절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사람을 소개하는 데는 자신의 선친과의 연고로부터 장황하게 펼쳐졌다. 그리고 으레 그들은 절 받을 자세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동작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은 축들도 그렇지, 형뻘이든 아우뻘이든 악수나 하고 말 일이지 소개가 끝나면 ‘보십시다’ 하면서 큰절을 하고 덤비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20여 명 중에 대여섯 사람을 빼놓고는 도무지 기억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마에 땀이 내배도록 큰절을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사람들이 영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알지도 못하는 선친의 옛날이야기가 나오고 곁들여 문중의 이야기가 펄쳐지기도 하며 종잡을 수 없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그저 건성으로 ‘예, 예’ 대답을 할 뿐 재미도 흥미도 느낄 수가 없었다. 자세를 흩뜨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이야기를 막을 수도 없고, 그는 바작바작 땀을 흘렸다. 이런 경우를 좀 수월하게 넘기라고 있을지도 모를 담배까지 피울 수 없고 보니 그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야기는 그 자신에게로 옮겨져 아이들의 성별, 나이, 학교, 성적 등 세세한 가족 상황에서부터, 크게 출세했다는 소문은 진즉 듣고 있었는데,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는 전제로 시작된 직장 형편까지, 그것도 무역 회사가 하는 일이며 회사의 규모, 자신의 직책 순위까지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묻는 말에 일일이 대답을 해야 되는 고역을
치르다가 뜻하지 않은 곤경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젊은 축에서 “그 형님의 회사에 취직 좀 시켜달라”는 말이 느닷없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너도나도 하며 덤벼들었고 어른들은 “암, 서로 돕고 살아야지.” “그렇고말고. 잘된 사람이 끌어줘야 하는 법이지.” “그렇지, 그래야 문중이 번창하고 선영에 떳떳하지.” “보게나, 거 최씨네 문중. 서로 이끌어주고 받쳐주고 하니까 눈 깜짝할 사이에 어떻게 됐나 말야.” 이런 식으로 공격의 화살이 그에게로 돌려지는가 했더니 “문중 돕는 게 제 돕는 게지.” “문중 외면해 잘되는 놈 보았나.” 이렇게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쳤던 것이다. 그는 좀더 생각해 보자고 어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어둠살이 퍼지기 시작해서야 자리를 떴다. 그러면서 저녁을 먹고 다시 오겠다는 말들을 남겼던 것이다.
그는 샘물을 퍼올려서 두레박째로 좍좍 물을 끼얹었다.
목욕을 마친 그는 곧 집을 나섰다. 저녁 준비가 다 됐는데 어딜 가느냐고 아저씨가 팔을 붙들었다. 급한 회사 일 때문에 나가봐야 되겠다고 얼버무렸다. 그러면서 그는 불쑥 돈을 내밀었다.
“아까 너무 더운 김에 회사 일도 잊어버렸고 아저씨께 드릴 선물 사는 것도 잊어버렸군요. 담배라도 사 피우세요.”
“아, 뭐 이리 많은 돈을 글쎄. 관두라니까.”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늦기 전에 일찍 들어와야 해. 밤길이 서툴 테니까.”
그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바삐 대문을 나섰다.
큰길로 나서고 보니 막상 갈 곳이 없었다. 시계를 보았다. 8시 반이 조금 넘어 있었다.
귓가에서 앵하는 소리가 났다.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모기였다.
그는 읍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예전에 살던 집이나 돌아볼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보나마나 더 헐어 있겠지 하는 생각이 사뭇 강하게 작용했다.
정분이를 만나볼까. 집을 모른다. 또 만난다고 한들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싱겁다. 그 배꼽― 그는 가만히 웃었다. 이제 와서 만나도 그렇게 쌀쌀할까. 궁금하다. 그는 황급히 길가로 비켜섰다. 헐어빠진 택시가 급하게 옆을 스쳐 지나갔다. 흙먼지가 뿌옇게 일었다.
“아 여태 아스팔트도 안 돼 있어.”
그는 투덜대며 팔을 두어 번 휘젓다가 코를 막았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읍사무소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시계를 보았다. 아직 9시도 안 되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갈 곳이 없었다. 골똘히 생각하던 끝에 국민학교가 떠올랐다.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천천히 걷기로 했다. 학교로 가는 길은 자연스럽게 발길이 닿았다. 중국 사람이 하던 단팥죽집도, 펑 화약을 터뜨리던 사진관도 예전 그대로였다. 학교는 정문의 위치가 변해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한눈에 많이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인구 팽창의 증거였다. 단층 목조뿐이던 것이 콘크리트 5층 건물을 우측으로 거느린 대신 그만큼 좁아진 운동장에는 열댓 명의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그는 목조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배웠던 교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두워서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그는 되돌아서서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에게로 발길을 돌렸다. 운동장가로 둘러선 플라타너스는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큰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얘들아, 너희들 이 학교에 다니니?”
“예, 왜 그래요?”
두어 아이가 그를 쳐다보았다.
“너희들 혹시 김…… 김…….”
이럴 수가 있나. 6학년 때 담임 선생 이름이 까맣게 생각이 나지 않았다.
“누굴 찾는 데요?”
아이들 몇몇이 가까이 왔다.
“가만있거라. 김……, 김 뭐더라. 그래, 김성범이다. 김성범 선생님 이 학교에 계시냐?”
그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김성 범? 아뇨.”
한 아이의 대답은 너무 간단했다. 그는 그만 맥이 풀렸다. 그럼 혹시나 해서 2반 담임 선생의 이름을 생각해 내려 했지만 허사였다. 얼굴은 선하게 떠오르는데 이름은 성(姓)부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면서 옛 기억을 더듬다가 그는 돌아섰다.
이런 때 국민학교 동창이라도 만났으면 싶었다. 집 아는 아이들을 더듬어보았다. 서너 명이 되었다. 다시 학교에서 가까운 집을 꼽아 보았다. 포목상을 하던, 곧잘 쇠고기 장조림을 싸오던 병수? 이름이 확실하지 않다. 찾아가 보니 포목상은 그대로인데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두 집을 더 들러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하나는 ㅎ시에서 사업을 한다고 했고 하나는 부재중이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지만 다시 들르겠다고 하고는 돌아섰다. 지금 당장이라면 몰라도 내일 다시 만난다는 것은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왠지 자꾸 귀찮고 번거롭다는 생각이 앞서기만 했다.
다시 읍사무소 앞에 돌아와서 시계를 보니 9시 40분쯤이 되어 있었다. 앞으로 11시까지, 답답하고 미칠 일이었다. 원 이렇게도 시간 보낼 곳이 없단 말인가. 그만 짜증이 났다. 여관에 들어가 잠이나 잘까 생각했지만 곧 머리를 저었
다. 이 후텁지근한 날씨에 보나마나 손바닥만 한 방에 누워서……, 겁부터 났다.
그는 가게를 향해 후적후적 걸어갔다. 부채를 샀다. 그것도 서너 가지 종류를 다 한 번씩 부쳐보고 그중 모양도 예쁘고 바람이 잘 나는 것으로 골랐다. 어떤 일에든 정신을 팔아 시간을 쉽게 보내야 했다.
부채를 흔들며 학교 쪽의 반대편 길로 발길을 옮겼다. 얼마를 걸어가다가 그는 멈춰섰다. 술집이 눈에 띄었다.
“제기 랄…….”
그는 간판을 보며 중얼거렸다. 뭔가 병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싶었다. 라스베가스, 꼴사나운 일이었다.
어느 신문에선가 외래어 범람 상태를 통계 조사하면서 존슨 대통령이 방한하는 때를 계기로 어느 시골 한약방에서 ‘존슨 한약방’이라 개칭 했다며 통탄해 마지않고 있었다. 그가 그 기사를 읽다 말고 “삿갓 쓰고 자전거 타는군” 했더니,
“아냐 아빠, 두루마기에 맘보 바지라는 거야.” 느닷없는 큰 녀석의 정정 항의를 받았던 것이다. 그는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지만 큰 녀석의 말도 맞는 말이고, 하여튼 구미 떨어지는 짓들이었다. 큰 녀석, 겁 없이 따라나서다가 제 어머니에게 호되게 쥐어박히고 후퇴를 했었지. 그 녀석을 데려왔더라면 한결 나았을 텐데.
술집으로 들어섰다. 어둠침침한 불빛에 더운 기운이 확 끼쳐왔다. 그 속을 남 뭔가 하는 청년의 저 푸른 초원 어쩌고 하는 노래와 커다란 선풍기가 덜덜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그 우악스러운 선풍기 바람을 피해 자리를 잡았다. 곧 한 아가씨가 맥주 두 병과 컵을 받쳐들고 와서 옆자리에 앉았다.
“이건 오복맥주 아닌가?”
“맞아요. 오비맥주예요. 우린 크라운은 안 써요.”
아가씨는 동문서 답을 하고 있었다.
“아저씨 서울서 오셨지요?”
“그걸 어떻게 아나?”
이거 맹랑하다 하며 그는 되물었다.
“냄새가 그래요. 직업인걸요.”
“직업? 남 행선지 알아내는 직업인가?”
“어서 술이나 드세요. 담배가 은하수 아네요 오.”
왜 그리 둔하냐는 말투였다. 그는 맥주를 들이켜며 차라리 이걸 데리고 하릇밤 자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허긴 그렇군. 아가씬 집이 여긴가?”
“미쳤어요? 이런 촌구석. 이래봬도 수도꼭지 빨고 컸단 말이에요.”
“허, 아가씨도 화장실 위치가 뒤바뀌었군.”
“예? 무슨 말예요, 그건.”
“입이 너무 거칠단 말야.”
“어머 별꼴. 남이야?”
“좀 순진하게 굴어봐. 서골 술집답게 말야.”
“여기 색시감 구하려 오셨어요? 별걸 다 트집이셔. 빨리 드시고 나 한잔 주세요.”
아가씨는 담배를 쑥 빼가더니 칙 성냥을 그어댔다.
“여봐요, 지배인. 이 아가씨 끌어가!”
그는 소리를 질러놓고 술잔을 들이켰다.
아가씨가 콧방귀를 뀌고 일어선 것과 한 사내가 달려온 것과는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손님 .”
“아마 그 아가씨가 더위를 먹은 모양이야.”
그는 11시가 다 되어 술집에서 나왔다. 술기운으로 속까지 더워쳐 갑절의 더위를 느끼는 그는 휴양 한번 잘한다고 투덜대며 비틀거렸다.
“왜 이리 늦었나. 서울 얘기 듣겠다고들 몰려와선 기다리다 못해 돌아들 갔구먼.”
그런데도 모깃불 옆의 멍석에는 대여섯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대로 누웠으면 꼭 좋겠는데 그는 멍석에 앉아야 했고 또 정좌한 낯선 두 노인네 앞에서 솟구치는 트림을 눌러가며 큰절을 올려야 했다.
바가지에 담아 내온 옥수수를 서너 알 빼서 질겅거리다가 뱉어내고 말았다. 술 때문이겠지, 술 때문일 거야. 그는 자꾸 늘어지는 어깨에 힘을 주며 건성 대답을 하다가는 신경질적으로 팔을 내둘러 목덜미며 손등을 후려때렸다. 그렇다고 모기가 잡힐 리가 없었다.
그는 변소를 가는 체하고 일어나 뒤란으로 돌아갔다. 또 두레박째로 물을 끼얹었다. 그리고 되는대로 쪽마루에 나가 누웠다. 그는 숨을 씩씩거리며 여보, 여보를 되풀이하다가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를 잤는지 모른다. 눈을 떠보니 아저씨가 서 있었다.
“여기서 자면 어떻게 하나. 안으로 들어가세.”
방에 잠자리를 잡았으나 턱없이 무더운 데다 얼굴이고 팔다리가 따끔거리고 가려워서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쪽마루에서 자다가 모기에게 물려도 많이 물린 모양이었다. 벅벅 긁어대고 부채질을 하고 하면서 뒤척이다가 마루로 나오고 말았다. 불면증, 미치는 병이었다. 모깃불도 다 사위어지고 은하가 기울어 흐르고 있었다. 대청마루에 누웠다가 모기에 쫓겨 방으로 들어왔다. 더위에 못 견디어 또 마루로 나갔다. 몇 차례 이러다 보니 날이 밝아오는 기미였고, 그는 어떻게 해서 마루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는 배가 아파 잠이 깼다. 아직도 이른 아침이었다. 변소로 내달았다. 내려붓는 설사였다. 급한 김에 앉긴 했는데 한숨을 돌리고 나니 변소는 말이 아니었다. 뒤틀린 판자 사이로 밖이 내다보이고, 어어…… 엉덩이에 곧 닿을 것처럼 차오른 똥하며, 허연 구더기가 똥에는 말할 것도 없고 발을 딛고 있는 판자에까지 꾸물거리며 기어다니고 있지 않은가. 맙소사, 배는 쥐어뜯는 것처럼 아픈데 아무리 힘을 줘도 항문은 오그라들기만 하고 구더기는 곧 발로 기어오르고, 그는 배를 움켜잡은 채 변소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술을 마신데다 찬물을 끼얹은 탓이라 싶었다.
아침밥은 한 숟가락을 뜨다가 그만두었다. 아저씨는 시골 솜씨라서 찬이 마땅찮아서 그러느냐고 진정으로 염려를 해주었다. 그는 술 때문이라고 변명을 하며 자리를 떴다.
옷을 입고 나오다가 조카뻘 되는 애들이 자신이 받았던 상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내팽개쳐진 듯 애들의 발치에 놓여 있는 밥그릇에는 쌀알이 눈에 띄지 않는 보리밥이 담겨 있었다. 보리가 드문드문하던 자신의 밥그릇을 생각하며 자신이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러자 배가 더 아파지는 것 같아서 뛰듯이 대문을 나섰다.
약을 사먹은 다음 그는 곧 택시를 잡았다. 수학 여행을 갔었던 절에 가려는 참이었다. 가봐서 마음에 들면 거처를 옮길 심산이었다.
그는 얼마를 가다가 차를 세우게 했다. 도저히 더 견딜 수가 없었다.
밭으로 뛰어들어 바지를 내리고 앉자마자 좌악 설사였다. 그는 한참을 끙끙대다가 자신이 목화밭 속에 앉아 있는 것을 깨달았다. 좀 늦긴 했지만 아직도 따먹을 만한 송이는 얼마든지 있었다. 밀이나 보리 서리에는 비할 수 없지만 목화송이 맛도 또다른 별미였던 것이다. 그는 껍질이 진초록인 조그만 송이를 골라 따서 껍질을 벗겼다. 입에 넣고 몇 번 씹다가 퉤퉤 뱉어버렸다. 픽픽 물이 터져나오는 게 무슨 맛이랄까.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른 송이를 따서 씹었다. 마찬가지였다. 담배를 피워물고 끙끙 힘주기에 정신을 쏟았다.
그는 창문을 붙들고 견디다가 못해 운전사를 불렀다.
“여보시오, 좀 천천히 달립시다. 이거 원 엉덩이가 아파서 살겠소?”
“손님 참 속 편하십니다. 대변까지 보시고 60마일밖에 안논 차를 더 천천히 몰으라면 우린 풀 먹고 살란 말입니까?”
맞는 말이었다. 그는 할말이 없었다.
그는 한참 있다가 입을 열었다.
“트럭은 이렇게 뛰지 않지요? 같은 속도라도 말이오.”
“뭐라구요? 아마 서울서는 그럴지도 모르죠. 서울은 워낙 유행이 잘 바뀌니까 트럭에 사람을 태우게 만들고 택시에 짐을 싣도록 만드는 모양이죠?”
운전사는 말을 해놓고 오래도록 킬킬거리며 웃었다. 저런 망할 자식 같으니라구. 그는 또 대변이 급해지는 것을 느끼며 분명 차 요동이 심해졌음을 깨닫고 있었다.
절 입구의 무성한 녹음은 성하(盛夏)의 나래를 정적을 들러리 삼아 드리우고 있었다. 숲은 언제나 제 색깔을 닮은 바람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는 팔을 내뻗으며 몇 번이고 심호흡을 했다. 잘 왔다 싶었다. 절에 들어서기 전에 개울가에서 신발을 벗었다. 그 시원함이 전신을 저리게 했다. 그는 더없이 상쾌한 기분으로 절로 들어섰다. 주지승을 만나 얼마간 묵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기로 했다.
대응전의 큰 부처도 사천왕도 예전 그대로였다. 사진을 찍었던 탑에는 이끼가 더 낀 듯싶었고 백여 명이 한꺼번에 자고도 남았던 큰방은 문이 열린 채 아무도 없었다. 경내(境內)를 다 둘러보고 나서 홈대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고 있는데 인기척이 들렸다.
“어서 오십 시오, 나무관세음보살…….”
스님이 합장을 했다. 그도 고개를 숙였다. 나이로 보나 승복에서 느껴지는 것으로 보나 주지승임을 알 수 있었다.
“주지 스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마침 뵈오려던 참이었는데……· 혹시 며칠 머무를 수 있을는지요?”
“글쎄올시다. 방이야 많지만 산중 음식이 입에 맞을는지요. 자, 그늘로 드십시다.”
스님은 점심을 먹어보라고 했다. 그는 들깨를 갈아서 만든 도라지나물이 있느냐 물었고, 스님은 도라지나물은 우리 중들의 상식(常食)이 아니냐고 했다. 이런 말을 하고 나자 시장기가 몰렸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부터 두 끼를 설친 것이었다.
점심은 보리밥에 열무김치와 고사리나물 외에 또 한 가지 나물이 간장 종지를 가운데로 하고 놓여 있었다. 고사리나 물은 향긋한 들깨 국물에 어우러져 입맛을 돋우었다. 그는 밥 한 그릇을 거의 다 먹어치웠다.
그는 개울에서 발가숭이로 목욕을 했다. 무릎을 조금 넘는 깊이밖에 안 되는 물에 그는 머리를 마구 텀벙거리며 물장구를 치기까지 했다. 그 시원함이 몸에 쌓인 찌꺼기를 싹싹 쓸어가는 것처럼 상쾌한 기분이었다. 그는 서너 번을 더 머리를 박고 텀벙거리다가 으스스 떨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게 바짝 오그라들어 있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옷을 벗어둔 바위로 뛰어올랐다.
“아 추워!”
자신도 모르게 외친 소리였다.
그는 종각 아래 그늘에 누웠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산사의 고요 속에 사양(斜陽)이 비치고 있었다.
그는 주지승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11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어둠으로 가득한 적막 속에 풀벌레 울음 소리만 끊길 듯 이어지고 이어지고 했다. 그는 벌써 서너 차례 돌아눕기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천친히 숫자를 세었다. 백이 되었다. 다시 거꾸로 세기 시작했다. 처음보다는 더 천천히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내뿜을 때 한 단위의 숫자를 세었다. 숨쉬기만 거북해진 채 마지막 ‘하아나’로 더 이상 셀 숫자가 없게 되었다. 아내를 생각해 본다. 이마, 입술, 귀…… 차츰 더듬어 내려간다. 배꼽, 애 셋을 낳고 나서 완연해져 버린 아랫배의 터진 살갗, 불두덩…… 발톱. 더 이상 더듬을 게 없다. 이렇게 한 가지가 끝나버릴 때마다 돌아눕기를 되풀이한 그는 언제부턴가 벌레 소리에 매달리고 있었다. 신음 소리, 병실 복도, 누렇게 뜬 얼굴들, 굴러가는 침대, 붕대를 친친 감은 환자, 거기 매달려 흔들리는 링거병, 시체실 송장, 제트기, 폭음, 피, 아우성, 공동 묘지, 이슬비, 도깨비…… 그는 눈을 번쩍 떴다. 어둠뿐이었다. 등에 식은땀이 났다. 그는 일어나 앉았다. 라이터를 찾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서너 모금을 빨다가 시계를 집어들었다. 연기를 빨아들이며 그 불빛에 시계를 가져다 댔다. 1시 45분.
“저놈의 것들은 잠도 안 자나, 원.”
그는 짜증스럽게 시계를 던지듯 해버렸다.
그는 다시 자리에 누웠으나 소용이 없었다. 불면증, 미치는 병이다. 잠을 자야 할 시간에 잠을 못 자는 병. 그는 낮에 잔 것을 몇 번이나 후회하며 뒤척 였다.
다시 숫자를 세고, 아내와 아이들을 차례로 생각하고, 자신의 앞으로 전망을 점쳐보고 그러다가 벌레 소리에 짜증이 나고……, 그는 마구 소리를 지르며 버둥거렸다. 눈을 떴다. 아무것도 없었다. 가위에 눌린 것이었다. 무엇인지 모른다. 짐승도 사람도 아닌 무지무지하게 큰 것이 목을 조르며 짓눌렀던 것이다. 시커먼 색이었다. 귀를 모았다. 아무데서도 벌레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상하다. 무엇이었을까. 시커먼 색이었다. 무지무지하게 큰 시커먼 색 이었다.
그는 얼마를 더 뒤척이고 또 두 번인가 가위에 눌려서 버둥거리다가 눈을 떴다. 역시 시커먼 색의 무지무지하게 큰, 짐승도 사람도 아닌 것이 목을 조여왔다.
전신이 식은땀으로 젖었다. 몸이 으슬으슬 추워지며 무섬증이 몰려들었다. 그건 흡사 연기처럼 퍼져서 어둠을 타고 전신을 휘감아왔다. 분명 눈은 뜨고 있는데도 가위에 눌리는 것처럼 그렇게 무서워지면서 숨이 답답해 오는 것이다. 그는 몸을 바짝 웅크렸다. 마음과는 달리 담배로 손을 뻗칠 수가 없었다.
목탁 소리가 울린 것은 이때였다. 그 목탁 소리를 듣자 살았다는 기분이 퍼뜩 들며 무섬증이 싹 가시었다. 동시에 짓눌리는 압박감도 없어졌다. 가슴이 확 터지면서 숨결이 가벼워졌다.
어찌된 일인가. 순간 그의 머리를 때리는 것이 있었다. 고요, 깊이나 넓이를 헤아릴 수 없는 그것. 겹겹으로 쌓인 산중의 어둠 속에 웅크린 고요, 그것이었다.
그는 4시 12분인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축 늘어진 몸을 누인 채 목탁 소리를 들으며 가물가물 잠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7시쯤 눈을 떴다. 머리가 띵하며 눈은 모래라도 한줌 넣은 것처럼 꺼칠거렸다.
숭늉을 한 대접 마신 것으로 아침을 때웠다.
그는 밥값과 숙박료를 어떻게 지불하나 고심했다. 한참 끙끙대다가 묘안이 떠올랐다. 법당에 시주를 하는 것이다.
그는 이 생각을 해내고는 무슨 희한한 사실이나 발견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시주라는 것은 이런 난처한 경우까지를 고려한 참으로 혜안적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는 시주함에 5백 원짜리 네 장을 넣었다. 그리고 스님과 작별을 하고는 쫓기듯 절을 나섰다.
“될 수 있는 대로 조용한 곳이 좋습니다. 소음은 노이로제엔 금물입니다. 발병 원인 중의 하나니까요. 신경 자극을 가중시켜요.”
모르는 말이다. 아무리 의사라도 이런 병을 앓아보지 않았으면 무슨 소용인가. 뜨거운 물에 들어앉았다가 갑자기 얼음물 속으로 들어가 보지. 이열치열(以熱治熱)이란 말은 괜히 있나.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며 괜히 화가 치밀고 있었다.
그는 아저씨 집에 도착해서 곧 짐을 챙겼다.
“허허, 무슨 소리야. 얼마 만에 한 걸음인데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고 가다니 될 법한 소린가.”
아저씨는 하루만이라도 더 묵으라고 만류를 했다. 그는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댔다.
그는 역전에서 택시를 타기 전에 ‘서울 뉴욕 제과점’으로 들어섰다.
“어머, 아저씨 어서 오세요.”
그날 그 아가씨가 반색을 했다.
“나 아이스케키 다섯 개만 줘.”
“예? 다섯 개나요? 또 돈만 버리실려구요?”
“걱정 마라, 다 먹고 말 테니까.”
아가씨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돌아섰다.
그는 다섯 개의 아이스케이크를 차례로 우적우적 씹어서 다 먹어치웠다. 그리고 돈 백 원을 놓고 황급히 그곳을 나왔다. 뒤에서 “아저씨이 50원 받아가세요” 하는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지만 그는 어지러움으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앞에 보이는 택시를 향해 전진하듯 걸어갔다.
ㅎ시에서 고속 버스를 타고 나서 그는 비로소 안정감을 느꼈다. 의자를 뒤로 눕혀 몸을 부린 그는 몸이 푹 잠기는 것 같은 아늑한 기분이 아내와 한창 깨가 쏟아지던 때에 그 일을 마친 다음 전신에 퍼져오던 그 노골노골한 아늑함에 싸이는 것 같았다.
배가 뒤틀리는 아픔에 그가 잠을 깬 것은 고속 버스가 수원에 가까워지고 있을 때였다. 배는 부글부글 끓으면서 쥐어짜는가 하면 아래로는 곧 쏟아질 것만 같이 급했다. 그놈의 아이스케키, 그놈의 아이스케키……, 그는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었다. 콧등이며 이마에 땀이 맺혔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잠시 후에 경부고속도로의 마지막 톨게이트를 통과하시 겠습니다. 이 지점으로부터 목적지 서울 터미널까지는 약 20분이 소요될 예정 입니다.”
차장의 이런 안내말을 들으며 그의 머리는 급회전을 하고 있었다. 와르르 무너져내리던 23층 빌딩, 물결처럼 흔들리던 육교, 전화 벨 소리, 9시에 멈춰진 광화문의 전자 시계, 사장의 씩씩거리는 숨소리, 긴급 간부 회의, 무중력 상태의 분위기, 희번덕거리는 눈동자, 알몸뚱이 아내의 애처로워하는 표정과 그 눈길, 수출 상품 불합격 반송 통보, 예순두 번째 돌아온 정종잔, 그럴수록 밝아지는 정신, 술자리가 끝나기 전까지 받아내야 하는 계약 확답, 드높아지는 웃음 소리, 서울, 서울, 서울·…… 그는 머리를 감싸잡았다. 아무리 설사가 급해도 차라리 차가 멈춰주기를 그는 바라고 있었다.
번쩍 고개를 들었다. 눈을 창 밖으로 옮겼다. 전신주가 빠르게 스쳐가고 있었다. 결국 고속 버스는 그렇게 맹렬한 속력으로 서울을 향하여 돌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197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