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를 아는가
심 상 대
바다. 한 잔의 소주와 같은 바다였다.
눈두덩에서 짓까부는 햇살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커튼을 걷어내자 차창 밖으로 바다가 보였다. 바람에 출렁이는 파르스름한 겨울 바다였다. 아아, 묵호로구나. 기지개를 켰다. 으으으음. 하품.
서울을 벗어나 이 질척한 고장으로 잠겨 들고 있다는 안도감이 다시 눈시울을 맞대게 했다. 밤새 뒤척이다가 몽유병자처럼 거리에 나섰고, 새벽차에 올랐다. 종내 잠을 이루지 못해 신문만 뒤적이다가, 버스가 대관령 정상에 올라서자 용케도 잠이 들었다. 웬일일까? 찢겨 흩어지는 산안개 사이로 바다의 존재를 확인했던 탓일까? 그래서 한 잔의 소주를 연상했던 탓일까?
내게 있어서 동해 바다는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술, 한 잔의 소주를 연상케 했다. 어느 때엔, 유리잔 벽에서 이랑 지어 흘러내리는 소주 특유의 근기를 느껴 메스껍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것은, 단숨에 들이켜고 싶은 고혹적 인 빛깔이었다. 파르스름한 바다. 그 바다가 있는 곳. 묵호.
그렇다. 묵호는 술과 바람의 도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서둘러 독한 술로 몸을 적시고, 방파제 끝에 웅크리고 앉아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토악질을 하고, 그러고는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부두의 적탄장*에서 날아오르는 탄분*처럼 휘날려, 어떤 이는 바다로, 어떤 이는 멀고 낯선 고장으로, 그리고 어떤 이는 울렁울렁하고 니글니글한 지구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멀리 무덤 속으로 떠나갔다. 가끔은 돌아오는 이도 있었다. 플라타너스 낙엽을 밟고 서서 시내버스를 기다리다가, 아파트 베란다에 나서서 망연히 하늘을 쳐다보다가, 문득 무언가 서러움이 북받쳐 오르면, 그들은 이 도시를 기억해냈다. 바다가 그리워지거나, 흠씬 술에 젖고 싶어지거나, 엉엉 울고 싶어지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허둥지둥 이 술과 바람의 도시를 찾아 나서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언제나 묵호는, 묵호가 아니라 바다는, 저고리 옷고름을 풀어 헤쳐 둥글고 커다란 젖가슴을 꺼내주었다. 그 젖가슴 사이에 얼굴을 묻고 도리질하며 울다가 보면, 바다는 부드럽게 출렁이는 젖가슴으로 돌아온 탕아*의 야윈 볼을 투덕투덕 다독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얘야, 떠나거라. 어서 떠나거라, 얘야. 바다에는 아무것도 없단다. 자아, 어서 인간의 바다로 떠나거라. 인간의 바다에 멀기*가 인다.
출렁, 하며 버스는 곧장 터미널로 들어섰다.
이곳에 오면 영문도 없이 히죽히죽 웃음이 나온다. 허어…… 처. 나는 삐어져 나오는 웃음을 다잡아 깨물며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팔짱을 끼고 택시 앞뚜껑 위에 올라앉아 있는 김의 얼굴이 보였다. 버스에서 내리자 바람이 뺨을 후려쳤다. 나는 코트의 깃을 세우고 택시로 뛰어갔다.
“웬일이야?”
시동을 걸며 김이 말했다.
“이 짜아식, 결혼식은 여기서 해야 할 거 아냐 임마…… 가보지 못해 미안해, 응?……신부는 잘 계시고?”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신부는 잘 있느냐고? 나는 그냥, 으음, 하고 눈웃음만 지어 보였다. 택시는 돌개바람을 짓밟으며 세차게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도로 가운데 있는 꽃밭의 양끝과 택시를 꼭짓점으로 하여 무수한 삼각형을 그렸다. 말라 꼬부라진 금잔화와 맨드라미 줄기는 왕왕거리는 바람에 날려, 그만 그만, 하듯이 흔들렸다.
김이 다시 물었다.
“너, 얼마만이야?”
“거의 일 년 됐지.”
“신혼살림 어때?”
“좋지 뭐. ……장사는 잘되나?”
“말도 마라. 요즘엔 입금도 안 된다.”
김은 내게 담배를 권했다.
“우리 마누라는 벌써 지독한 바가지쟁이가 돼서 날마다 앵앵거리고, 손님은 없고. 그렇지 않아도 오늘 아침엔 한바탕 했다.”
“뭐 요즘은 그런 철 아냐?”
“그래. 여름이 끝나면 손님보다 택시가 더 많아. 저 봐. 빈 차.”
터미널에 몰려 있던 택시였다. 빈 차들은 화풀이라도 하듯 속력을 내 우리 곁을 지나쳐 갔다.
“딥따 인상을 쓰면서 세숫대야를 걷어찼더니…… 우리 딸내미도 놀래서 그 잘하던 돈타령도 안 하고…….”
나는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김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차츰 마음이 가라앉아 가는 것을 느꼈다. 무엇이든 대수로울 것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런 곳. 산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곳. 묵호.
그것을 재삼 확인하듯이 택시는 파출소 앞 차선에 그대로 멈춰 섰다.
“야! 이 순경!”
김이 소리를 질렀다. 파출소와 중국집 건물 사이의 빈터에서 전경과 배드민턴을 하던 이 순경이 고개를 돌렸다. 이 순경은 카운트하던 다른 한 명의 전경에게 배드민턴 채를 건네주고는 차도로 겅중겅중 뛰어왔다.
내 손을 잡으며 이 순경이 소리를 질렀다.
“웬일이야? 내일 출근 안 해?”
그의 방한 파카에 달린 털모자가 휘익 바람에 날렸다.
“엉? 웬일이야?”
“으응, 휴갈 냈어. 넌 일요일에 웬일이냐?”
“당직.”
“백모님은 잘 계시고? 아들 낳았다며.”
“누가 그래?”
이 순경의 목소리는 퍽퍽 수박 터지는 소리 같았다. 이와 나는 팔촌지간이 다.
“어머니가 그러시데. 백모님이 전활 하셨더라고.”
“야아, 빠르다 빨라. 벌써 서울까지 작은댁 숙모님도 건강하시지?”
“응, 그래.”
“넌 어때? 빨리 낳아야지.”
어머니가 우리 집 사정은 얘기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씁쓸한 웃음이 송곳니에 걸렸다. 김은 택시를 천천히 전진시키며 이 순경에게 말했다.
“야, 저녁에 술 한잔 하자. 이 자식도 오고 했으니.”
“그래. 이따가 집으로 전화해.”
이 순경은 손을 터는 장난스러운 경례를 붙이며 차에셔 물러났다.
역시 술이구나. 술. 나는 침을 삼켰다.
“어디 갈 데 있나?”
“아니.”
“그럼?”
“붉은 언덕에나 가지 뭐.”
택시는 벌써 붉은 언덕으로 통하는 구도로에 들어서고 있었다. 움푹 팬 물구덩이 앞에서 속력을 줄였을 때 내가 물었다.
“걔들 일요일에도 나와 있나?”
“있겠지 뭐. 거기 아니면 어디 갈 데 있나. 당구장 다닐 나이도 아니고.”
“술이냐?”
“술은, 대낮부터. 한판 붙었겠지.”
김의 말대로 붉은 언덕에 있는 토건업 사무실에서는 화투판이 한창이었다. 시청 공무원 정, 해운 회사 사원 김, 광고사 주인 이, 양화점 주인 정, 신문 지국장 강, 농협 지소에 다니는 안, 철물점 주인 김, 토목 기사 최, 그리고 사무실 주인인 홍, 이렇게 아홉이었다. 왝왝 소리를 지르며 악수를 하고, 웬일이야? 이 자식 장가가더니 말랐네? 눈이 침침하지, 응? 나도 그랬어 히히, 하는 떠들썩한 인사가 끝나자 그들은 다시 화투판에 머리를 박았다.
화투판에서 물러난 셋이 난롯가에 둘러앉았다. 토목 기사 최는 내게 의자를 내주며 저는 구석에 놓여 있던 책 묶음을 들고 와 깔고 앉았다. 무쇠 난로 안으로 조개탄을 집어넣으며 내가 물었다.
“무슨 책이야?”
“왜, 볼래?”
“뭔데 그렇게 많아?”
“우리 시장님 자서전이야. 입찰하는 업체마다 이백 권씩 할당!”
“꽁짜?”
“우리 시장님이 총 맞았나? 꽁짜로 책을 주게. 막 떼맡기는 판에.”
“뭔데?”
돌아가며 담뱃불을 붙여주던 해운 회사 사원 김이 내게 말했다.
“육이오 체험기래. 피의 능선에서 신참 소위가 어떻게 짱박혔다가 살아났는지, 그거. 야, 조개탄 많이 넣지 마. 거덜 난다. 저기, 저 기레빠시* 넣어라.”
김은 내가 들고 있는 집게를 빼앗았다. 철물점 주인 김이 욕설을 내지르며 화투장을 메어쳤다. 화투장은 툭 튀어 아스타일* 바닥에 떨어졌다. 뒤집어 보니 술이었다. 그것도 지독한 오월 난초 열끗.
해운 회사 사원 김과 내가 술을 사러 나갔다. 붉은 언덕의 풍경은 여전했다. 어린 시절, 연탄을 사러 오르내리던 언덕이었다. 연탄을 사러 몰려든 아낙네들의 아우성과 기계 소리가 요란하던 곳이었다. 이젠 연탄 공장은 아니지만 그 건물도 그대로였고, 판자벽의 고물상도 여전했다. 포장이 되어 붉은 진흙이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가파른 길 양편엔 아직도 낮고 낡은 집들이 처마를 맞대고 있었다. 예전의 묵호는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흥청거렸다. 산꼭대기까지 다닥다닥 판잣집이 지어졌고, 아랫도리를 드러낸 아이들은 오징어 다리를 물고 뛰어다녔다. 그리고 붉은 언덕은 오징어 손수레가 흘린 바닷물로 언제나 질퍽했다. 그때가 참다운 묵호였다.
가까운 바다에서도 풍성한 어획고를 올렸고, 밤이면 오징어배의 불빛으로 묵호의 바다는 유월의 꽃밭처럼 현란했다. 아낙네들은 오만가지 사투리로 욕설을 해대며 오징어 가랑이에 겨릅대*를 끼웠고, 아이들은 수없이 끊어지는 백 열전구를 사러 산등성이를 오르내렸다.
비린내. 묵호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한 오징어와 조미 공장에서 흘러나온 오징어 다리를 먹어야 했다. 지독하게도 물고기를 먹어대던 시절이었다. 어느 집 빨랫줄에나 한 축*이 넘거나 두 축에서 조금 빠지는 오징어가 만국기처럼 열려 있었고, 집집에서 피워 올린 꽁치 비늘 타는 냄새가 묵호의 하늘을 뒤덮었다. 후미진 구석마다 쌓여 있던 생선 내장의 악취. 비 온 다음 날의 시뻘겋게 상한 오징어. 건조장 바닥에서 떨고 있던 개. 양동이로 머리를 후려치며 싸우던 공동 수도의 아낙네들. 욕설과 부패. 묵호의 모든 것이 그랬다.
뱃사람들은 수협 공판장 담 아래에 산짜꾸틀을 깔고 앉아 물이 삔* 오징어를 화덕에 올려놓고 술을 마셔댔다. 오징어가 다 구워지기도 전에 그들은 성급하게 취했고, 십구공탄* 불꽃 위에서 오징어가 다 구워졌을 때 그들은 이미 미쳐 있었다.
―야아, 돌아왔군! 돌아왔어! 여보게나 조심하게나. 산다는 것이 호랑이 아가리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네. 부디 산다는 것을 조심하게나.
항구로 돌아와서도 배의 요동을 잊지 못하는 그릇된 평형감각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사람들은 마구 술을 마셔댔다.
―내래 무서운 기 기거이 아니야. 기놈의 멀미! 뎡(情)의 멀미! 기놈의 뎡이 뭔디. 니보라우, 님다는 디금 워데 있음마?
삼팔따라지*의 술주정에, 바가지에 담긴 아침밥을 먹던 아낙네들은 모두 배를 내밀고 웃었다. 푸른 대양은 어판장 난간으로 밀려들고, 늙은 실향민은 이북 사투리로 울어대고, 그리고 갈매기는 바다 위의 구토물을 향해 송곳처럼 쑤셔 박혔다.
그때는 정말 먹고살기에 바쁜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하여 많은 것을 저당 잡혀야 했다. 까무잡잡하고 왜소한 전당포 주인은 더 많은 것을 요구했지만,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지구는 울렁거렸고, 그리고 거꾸로 돌아가고 있었다.
화투판이 포커판으로 바뀔 때까지 난롯가에선 소주 아홉 병을 비웠다. 누가 비디오 가게를 차렸고, 누가 풍수지리 철학관을 열었고, 누가 몽땅 털어먹었고, 누구 마누라가 제왕절개 수술로 딸을 낳았고, 누가 누구 돈을 떼어먹었고, 누가 레지와 자다가 장모의 습격을 받았다는 얘기를 나는 오징어를 씹으며 들었다.
카드를 모두어 인중에 붙이며 사무실 주인 홍이 나를 돌아보고 히히댔다.
“야, 임마, 너 그 아줌마 소식 알아? 네 녀석 때문에 이혼한 그 유부녀 말야, 임마. 넌 가정파괴범이야, 가정파괴범. 이 짜식, 웃음이 나와? 그런데 그 아줌마 새로 하나 엮었더라.”
“누굴?”
“해군 하사. 새파래. 응. 그 아줌마 젊은 남자가 좋았던 모양이야, 응? 이 짜식!”
다시 포커판으로 돌아앉으며 홍이 말했다.
“그 아줌마 딸도 벌써 대학생이야.”
“그래? 벌써 그렇게 됐나.”
“야, 임마. 딸까지 어쩔 생각은 말어. 걘 내가 잘 돌보고 있으니까, 응? 이 짜식!”
왕왕거리는 바람 소리가 연통으로 전해져 왔다. 내가 술판을 둘러보며 물었다.
“박 선장은?”
“나갔을걸?”
“안 나갔어. 아침에 봤는데 낼이나 모레쯤 나간다더라. 바다엔 바람이 보통이 아니더라야.”
“그럼 어디서 또 빨고 있겠구나.”
누군가 말하고 누군가 대답하고 누군가 또 말했다.
“왜?”
토목 기사 최가 붉어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니, 안 보여서.”
최는 의미 있는 웃음을 내게 던졌다.
술판은 월급 얘기로 이어졌다. 월급쟁이와 장사꾼이 반반이라 월수입에 대한 견해는 만만치 않게 불똥을 튀겼다. 삶의 질을 봉급 액수로 산출하는 기막힌 인생 방정식이 여기에도 있었다. 얘기는 월급에 이어 새로 교체된 레지와 호스티스로 옮겨 갔다. 그녀들이 모두 발가벗겨졌고, 그리고 하나하나의 성감대가 낱낱이 폭로되었다.
중학생이 된 우리는 크게 맞춘 교복 소매를 펄럭이며 낄낄거리고 뛰어다녔다. 목욕탕 지붕에 기어올라가 여탕의 뜨거운 김을 구경하거나, 암자주색 커튼이 드리워진 카바레 안을 기웃거리거나, 그 커튼을 들치고 광란의 향연을 들여다보았다. 바닷바람에 바랜 황동빛 구레나룻을 기른 이방인 수부*들이 히히덕거리고, 상한 멸치젓 냄새를 풍기는 댄서들이 앳된 수부의 허구리*를 줴지를 때면, 우리는 찔끔찔끔 오줌을 지리기도 했다. 우리는 단팥죽집 구석에 앉아서 카네기 다방의 얼굴마담을 한없이 그리워했다. 우리 중에서 카네기다방의 얼굴마담이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소문을 의심하는 녀석은 하나도 없었다. 송판 냄새가 물씬물씬 풍기는 제재소 담벽 아래 숨어 우리는 오래도록 다방 입구를 살폈다. 그러나 그녀는 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다방 뒤편 얼음 공장에서 피워내는 드라이아이스의 희디흰 기체만이 뭉실뭉실 솟아올랐다.
우리는 또 이런 소문도 알고 있었다.
양화점 뒤편의 창녀촌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젊은 어부가 자기에게 임질*을 옮긴 창녀의 그곳에 오징어낚시를 집어넣고 도망질을 했던 것이다. 온갖 방법이 다 소용없었다. 여러 개의 날카로운 바늘이 두 겹의 원을 그리며 매달린 오징어낚시는 점점 더 그녀의 몸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급기야 포주는 올챙이배를 휘두르며 거리에 나서서, 그 낚시를 껴내주는 사람에게는 돈과 하룻밤 동안 그녀를 진상하겠다는 조건의 포고를 돌렸다. 우리는 잠자는 공주의 성문 앞에 다다른 왕자처럼 저마다 나름대로의 묘안을 제시하며 가슴 설레어 했다. 숱한 사람의 도전에도 그 낚시는 애처로운 그녀의 몸속으로 점점 깊이 들어가기만 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우리는 중학교 2학년 교실 벽에 등을 붙이고 서서, 낚시에 걸린 공주의 그곳을 걱정하였다.
그러나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는 들었다. 수많은 도전자 가운데 드디어 옹골찬 기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포주에게, 방 안에는 자신과 그녀만 남고 모두 나가야 하며, 도마와 식칼과 무 한 개를 달라는, 「전설의 고향」에나 나옴 직한 주문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우선 무를 작은 직육면체 토막으로 자르고 그 무 토막을 하나씩 하나씩 그녀의 몸속에 집어넣어, 낚시의 바늘 끝을 무 토막으로 감싼 다음 쉽게 그녀를 구출했다는 얘기였다. 우리는 모두 정말 교묘한 방법이라고 감탄해 마지않았고, 그 사나이의 기지에 감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끓어오르는 질투심에 밥맛을 잃었다.
봉숭아 모종이 풋내를 풍기며 무럭무럭 자라고, 우리가 교실에 앉아 연필을 깎고 있을 때에도, 꽃밭 둘레에 거꾸로 박힌 빈 술병의 숫자는 늘어나기만 했다. 술꾼들은 여전히 값싸고 독한 슬에 몸을 적시며 식민 통치와, 전쟁과, 독재와, 분단과, 빨갱이를 얘기했고, 저마다 잃어버린 사람들을 생각하며 콧물을 쥐어짰다. 그러다가도 폭죽같이 터져 오르는 울분을 주체하지 못해 주먹을 쳐들며, 보잘것없는 희망을 막소주에 헹구어 간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혁명이나 쿠데타와는 상관도 없는 아내를 두들겨 패고, 역사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자식들의 볼에 거친 수염을 비비며 주정을 늘어놓았다. 분단과 유신에 아무 책임도 없는 아이들은 아버지가 깔고 앉은 숙제장을 엉덩이 밑에서 빼내려고 애를 썼다. 모든 사람이 술독에 처박혀 있었다. 하루살이 떼였다. 하루살이의 천지였다. 이 항구도시에서 멀미를 느끼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설명 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횟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자 바람은 자고 공기는 더욱 싸늘해졌다. 다섯이 떨어져 나가 다섯이 되었다가, 찻집에 올라가 이 순경과 택시기사 김이 어울려 일곱이 되었다. 삼 층 찻집 구석 자리에 앉아 어두워진 항만을 내려다보며 우리는 다시 얘기판에 녹아들었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를 얘기하고, 물이 새는 연탄보일러를 얘기했다. 첫날밤에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겠다고 졸라대는 나이 어린 신부를 두들겨 패줬다는 얘기와, 순결을 바쳤기 때문에 결혼해야겠다고 떼를 썼다는 아내와, 그런 건 씹던 껌처럼 버리라고 소리치더라는 큰처남을 얘기하고, 어느 찻집의 누구는 살짝 다리를 절어서 별미라는 정보를 교환하고, 외박하고 들어갔더니 망치를 든 마누라가 농 문짝을 열어젖히며 튀어나오더라는 얘기를 하고, 돌아가며 망치에 맞은 머리의 상처를 만져보았다.
택시 기사 김이 빠져서 룸살롱에 들어갔을 때는 여섯이었다. 나는 꽤 취해 있었다. 얘기는 거의 시청 공무원 정과 광고사 주인 이가 했다.
“저 자식은 왜 장가 안 가는 거야? 너 올해 몇이야? 서른하나 아냐.”
이가 해운 회사 사원 김을 가리키며 떫은 표정을 지었다.
“쟨, 그 있잖아. 마유미. 개 아님 안 간대.”
정이 대신 대답했다.
“뭐? 마유미? 야, 임마. 너도 폭발하고 싶냐?”
“아마 걔 땜에 장가 못 가는 놈 많을걸.”
이 순경이 허리를 젖히며 말했고, 그 틈에 농협 지소에 다니는 안이 끼어들었다.
“그래. 그건 그렇고, 그때 느낀 건데. 참 이상하더구만, 사람들이 전부 걔한테 동정을 보내는 거 말이야. 걔 땜에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죽었는데도 사람들이 다 동정을 보내더라 이거야. 걔가 진짜 하치아 마유미라는 일본 여자였다면 아마 모두 난리였을걸.”
“그러니 뭐야. 그게 끈끈한 피라 이거지? 물보다 피가 진하다 이 얘기 아니야.”
“그렇지! 그러니 내 말은, 언젠가는 통일이 될 거라 이 말이야.”
안은 팔을 휘저어 크게 제스처를 썼다.
“언제?”
김이 끼어들었고, 그러자 이가 머리를 흔들며 떠들어댔다.
“야야야. 시끄럽다마. 이제 능라도경기장에서 결혼식하고 금강산으로 신혼여행 가기는 다 틀리삐따. 마아 내는, 딸이 둘이다 딸이 둘. 아이그 그놈의 아들.”
이의 사설을 정이 받았다.
“조오타! 모란봉극장에서 피로연 하고, 해 저문 대동강에 놀잇배를 띄우고, 노랑 저고리에 빨강 치마를 입은 어리고 보들보들한 신부가 따라주는 술로 목을 축이고, 그리고 밤이 되면 신부의 방덩이를 처얼썩, 처얼썩, 때리며 노래를 한다.”
“무슨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
정이 노래를 시작했다. 두만강 푸른 물에…… 그때 술이 들어왔고, 뒤따라 여자들이 들어왔다. 여자는 저마다 사내의 품에 안기어 술을 따르고 사내의 볼에 입을 맞췄다. 이번에는 이가 노래를 불렀다. 원통해 불러봐아도…… 거품 아래 잠긴 술은 이가 시리도록 차가웠다. 금방 딸꾹질이 튀어나왔다. 정이 여자의 사타구니에 얼굴을 처박고 말했다.
“자긴 성감대가 어디야, 응?”
여자는 간지러워 버둥대면서 깔깔거렸다.
“어디야? 말하면 놔줄게, 응?”
그러자 여자는 몸을 뻬려고 정의 머리를 밀치며 말했다.
“콧구멍!”
“콧구멍?”
정은 고개를 번쩍 들더니 손가락으로 여자의 콧구멍을 콕콕 찌르며, 요기? 요기? 하고 낄낄거렸다.
내 몫의 여자는 미웠다. 삐쩍 마르고 눈초리가 찢어진, 분대장 타입의 작고 늙은 여자였다. 나는 손을 넣어 그녀의 허벅지를 만지기는 했지만 그 메마른 감촉에 짜증이 났다. 살롱 주인 김이 박 선장을 데리고 룸으로 들어왔다. 박 선장은 대뜸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간다며?”
내가 물었다.
“응, 내일.”
“부두에 한번 나가볼까?”
“너? 그래. 한 열두 시쯤 나와. 해장 한잔 하자. 알지? 선착장. 그 기름 탱크 뒤에.”
박 선장에게 제 잔을 권하며 안이 물었다.
“내일 나가? 그럼 이게 산다이구나.”
“말 마라. 산다이는 수십 번도 더 했다. 젠장. 선주는 기름 썩는다고 야단이지, 선원들은 시꼬미 썩는다고 야단이지, 바람은 불지, 파도는 치지.”
‘산다이’ 는 출항 직전의 주연(酒宴)이고, ‘시꼬미’ 는 대개 선원들이 항해 중에 먹을 부식을 말한다.
이의 여자가 노래를 불렀다. 산이 높아 못 오시나 물이 깊어 못 오시나……나는 거품이 인 술잔에서 출렁이는 바다를 연상했고, 쌉쌀한 바다 냄새를 맡았다.
바다 한가운데서 보는 바다는 색다른 것이었다. 고광도의 집어등* 아래에서 바라보는 밤바다는 한층 더 그랬다. 오징어 채낚기 조업선이 등등이 불을 밝히고, 그 불빛에 드러난 심해의 때깔은 잉크를 쏟아 넣어 잘 버무린 찹쌀풀 같은 감청색이었다. 이물*을 치는 격랑에 몸을 버티며, 풀어주고 또 서둘러 감아올리는 낚싯줄 끝에서 느껴지던 그 묵지근한 무게. 수면 위로 솟아오르던 다시맛빛 광택의 오징어. 바다를 뒤덮는 곱식*이 군단의 비상. 배를 삼킬 듯이 몰려오던 거대한 물마루. 사위*를 둥글게 뒤덮은 오징어배의 불빛. 물질을 할 때면 방창 천장에 매달려 일렁거리던 봇돌.* 그리고 갑판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마시던 한 사발의 소주.
우리는 흥청망청 술을 마셨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막힌 방법.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아니면 아무 때나 술 마시고 노래하고. 술판이 끝나고 여관에 들어서서야 나는 놓쳤던 정신의 끄나풀을 붙잡을 수 있었다. 가운데 부분은 영영 사라지고 내 손에 잡힌 그것은, 여관 입구에 들어선 자신과 박 선장과 제각기 끼고 있는 여자였다.
침대에 누우며 여자가 말했다.
“취했죠? 많이…… 빨리 하고 갈래요, 네?”
나는 그녀의 깡마른 가슴 위로 올라갔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스타킹 속에 넣어뒀던 지폐를 꺼내 움켜쥐었다. 나는 모른 체했다. 여자는 애를 썼지만 나는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술에 취했고, 그 여자가 싫었다. 그러나 여자는 정말 바쁜 모양이었다. 이리저리 끙끙대다가는 내 턱을 잡아 흔들었다.
“이봐요, 아저씨, 이봐요.”
역할을 바꿔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부끄러웠다. 술에 취해 어쩔 수 없다는 듯 풀썩 쓰러져 버렸다. 여자는 짜증 섞인 욕설을 낮게 내뱉었다.
“어유, 개새끼……”
나는 부끄럽기는 했지만 화카 치밀었다. 별떡 일어나 여자의 뺨을 후려치고, 침대 머리맡에 꽂혀 있던 간이등을 뽑아 힘껏 내던졌다. 나는 다시 한 번 여자를 후려지고는 털썩 무너졌다. 형광등이 팟, 하고 불을 밝히고, 여자가 황급히 옷을 주워 입는 소리가 들렸다. 분을 이기지 못해 씩씩거리며 다급하게 팬티를 들이 끼느라 여자는 넘어질듯 휘청거렸다. 여자가 쾅! 하고 세찬 문소리를 내며 나갔다. 옆방의 샤워 소리에 묻어 오토바이 마후라* 터지는 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려왔다
눈물.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아이처럼 입을 벌리고 어허허허, 하고 울면서 나는 내 눈물의 따뜻함을 느꼈고, 그리고 내부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을 들었다.
―왜 울어, 왜?
다급한 여자의 발소리에 이어 방문이 왈칵 열렸다.
“야! 너 돈 도로 달라고 하지 마. 너 분명히 할라다 못 했어!”
마른 억새꽃 같은 목소리였다. 먼지가 풀썩 일었다.
나는 따뜻한 눈물에 이마를 비비며, 여보…… 하고 불러보았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와 교성을 들으며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잠에서 깨어난 것은 열 시도 지난 늦은 아침이었다. 회사로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끈거리는 골머리가 모든 것을 다 귀찮게 했다. 전화를 하는 대신 욕실에 가서 쇳내 나는 물을 들이켜고 다시 침대에 누됐다. 사무실과 엘리베이터, 동료와 상사의 얼굴이 재빨리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그리고 나는 조금 무서워졌다. 모두가 제 자리로 돌아간 월요일 아침은 새로 다린 와이셔츠처럼 말끔할 것이다. 모든 것은 근엄한 표정으로 넘치는 의욕을 과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엉망진창이었다. 술. 술을 마셔야 했다.
연료 탱크를 돌아 선착장에 들어서자 항만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멘트 사일로⁕ 군함, 조선소와 어판장, 항만청 청사, 세관의 테니스 코트, 매춘부들의 아파트, 그리고 멀리 등대와 긴 방파제가 보였고, 선착장에 정박한 어선들이 보였다. 항구의 하늘은 잿빛이었다. 바람은 없었으나 파도는 심하게 굽이치며 뱃전과 방파제에 부딪혔다. 일렁이는 어선과 어선 사이에 고양이 시체 하나가 떠 있었다. 껍질이 벗겨진 몸통에는 피멍이 들어 있었고, 그 피멍 든 살덩이가 파도를 타고 넘실거렸다.
박 선장은 날뛰는 뱃전에서 선착장으로 뛰어내렸다. 부석부석한 내 얼굴을 보며 그는 씩 웃었다.
“이제 일어났구나, 이 짜식!”
목소리는 파도 소리에 묻어 날렸다.
“파도가 너무 심 한데…….”
박 선장이 건네주는 담배를 받으며 내가 말했다.
“중바다까지 나가면 괜찮아지겠지. 임검이 끝날 때까지 어디 가 한잔 하자. 우리 배는 아직 멀었어.”
외국 화물선으로 연결된 송탄*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 위로 탄가루가 피어올랐다. 생선 상자를 뜯어 피운 모닥불에서는 생선 비늘 다는 냄새가 났고, 아이를 업은 새댁은 콩콩거리며 깨끔질*을 했다.
바다로 나가는 뱃사람들에게는, 무사히 다녀오세요, 라는 인사를 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안녕히 가세요, 라는 작별의 인사는 있을지언정, 무사히 다녀오라는 기약의 인사는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바다란 평생을 싸워야 할 강한 쌕이기도 했지만, 또한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고향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나가는 길에 무사히 돌아오라는 불경스러운 말을 금하는 것 이다.
갑판에 나서서 검색을 받고 있는 어부들의 전송은 말없이 계속됐다.
“마누란 왜 안 나와?”
“나오지 말랬어. 추워 빠진데. 어젯밤엔 너랑 잤다고 했지.”
그러며 그는 웃었다. 명 태 내장을 넣고 끓인 배춧국에 소주를 마시며 박 선장과 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디로 가?”
내가 물었다.
“동지나해. 제주도 근방에 어장이 형성되면 그까지만 가도 되지만, 아마 동지나해까지 내려가야 할 거야.”
“요즘엔 대화태 쪽으로 안 가나?”
“옛날 얘기 하지 마. 거긴 씨가 말랐어. 이젠 갈 수도 없고. 근간엔 제주도 해협이나 흑산도 앞바다에서 가끔 잡히고 했는데, 이젠 거기도 종쳤어.”
“그래? 우리가 갔을 때가 아마 대화태 끝물이었지.”
“아아…… 그때! 참, 너도?”
우리는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배를 탔었다. 지금보다 더 추웠고 바람도 어지간히 심했다.
배춧국을 들이켜며 내가 다시 물었다.
“애가 이제 몇 살이야?”
“네 살.”
“많이 컸겠구나.”
“응. 많이 컸어. 그런데 넌 앨 안 낳아?”
“뭘, 아직.”
나는 더러운 유리창 밖으로 멀리 바다를 바라보았다. 방파제 끝에서 부서지는 파도의 손짓과, 검은 바위를 어루만지며 제 품으로 물러나는 너울*이 눈을 채웠다. 술이 들어가자 나는 막연한 자유를 느꼈다.
“어디로 가?”
헤어지면서 박 선장이 내게 물었다.
“그냥.”
나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딸꾹질하듯 그렇게 대답했다. 박 선장은 선착장 쪽으로 뛰어갔다. 오징어 건조용 말뚝이 촘촘히 박혀 있는 해안에 나는 오래오래 서 있었다. 항구를 빠져나가는 어선이 보였다. 세 척으로 구성된 조업 선단이 긴 슈푸르*를 끌며 떠나가고 있었다.
아이. 넌 앨 안 낳아? 결혼 넉 달 만의 이혼. 아내와 나의 상거*를 메워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가 없었던 탓일까?
아이가 있었더라면? 아버지가 며느리의 밥상을 밀치지 않았을까? 장인이 막내딸을 되돌려 보냈을까? 유신 시대를 고위 관료로 지냈고, 지금도 반공단체장인 장인이 사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월북자 가족이라는 멍에 때문에 평생을 건어물 창고에 묻혀서 살았던 아버지가 사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내가 자신의 그 턱없는 짜증과 스노비즘,* 그리고 끝내 남편을 굴복시키려 드는 숫된* 고집을 버렸을까? 그런 아내의 얼굴에서 값싼 창녀의 앙탈을 연상하던 내 생각은 변했을까?
아내는 정말 힘든 여자였다. 감기에 걸린 아이처럼 짜증을 달고 살았고, 무한한 아량과 관용으로 저를 위안해주기만을 요구했다. 잠자리에서도 그랬다. 그녀는 섹스를 여자가 남자에게 베푸는 특전인 양 여겼다. 그것은 누구의 독점물일 수도, 팔고 사는 상품일 수도 없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아내는 듣지 않았다. 아내는 막무가내로 나의 굴복과 투항만을 요구했다. 화를 내도 소용없고 비켜서도 도리가 없었다. 아내는 때와 장소를 가릴 줄도 몰랐다. 아내는 온 식구를 자신의 시종으로 부리고만 싶어 하는 철부지 공주였다. 발산하지 못한 울분과 원한으로 무덤같이 무덤덤한 우리 집안에 그녀는 불시에 뛰어든 어스럭송아지*였다. 좀 더 의젓해. 의연한 여자. 자신을 허물어뜨리지 않는 여자. 무슨 이유야? 제발 좀. 그 짜증! 급기야는 끝이 났다. 결혼 얘기가 오갈 때부터 얼음장같이 싸늘하던 사돈 간의 관계는 아내의 짜증이라는 쐐기에 여지없이 갈라지고 말았다. 아내가 집을 나간 다음 날 어머니는 사가*에 전화를 했고, 장인은 빨갱이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사가의 그런 몰지각한 처사에 가만있을 아버지가 아니었다. 갈라진 얼음덩이 위에 마주 서서 두 분은 싸늘한 비방과, 멸시와, 이념 투쟁을, 이를 갈며 주고받았다. 얼음보다 차가운 그 무엇이었다. 어정쩡한 나는, 그 갈라진 얼음덩이 사이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에 불과했다.
나와 아내의 이혼. 그것도 이데올로기의 상충 탓일까? 웃음이 나왔다.
그래. 언젠가 세계인들은 인류의 역사를 탐구하기 위해 코리아로 몰려올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을 파헤칠 것이다. 이 땅에는 참으로 많은 20세기의 쓰레기가 산적 해 있다. 패총(貝塚).⁕ 20세기의 패총. 인류는 20세기가 될 때까지 모아두었던 모든 쓰레기를 이 땅에 버렸다. 실천 불가능한 무슨 주의, 무슨 사상, 그리고 채 실험도 거치지 않은 잡다한 이념들이 이 땅에 쏟아졌다. 삽과 솔을 들고 이 패총으로 몰려온 미래의 세계인들은 그들의 사상과 질곡의 역사를 이 땅에서 발굴할 것이다. 화석화된 선조의 이데올로기를 지층마다에서 발견할 것이다. 부드러운 솔로 그 이데올로기의 표면을 털어내며 그들은 선조의 다양하고 폭넓은 사고의 흔적을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바다를 향해 곧게 뻗어 나간 곶의 끝에는 여전히 그 여관이 있었다. 횟집과 여관을 겸한 그 건물을 바라보며 나는 전신으로 펴져나가는 진한 숫내를 맡았다.
전화번호를 다 돌리고 나서도 조금은 망설였다. 그러나 신호가 떨어지자 나는 담담해졌다. 전화를 받은 것은 어린아이였다. 네 살. 아이는 엄마를 불렀고,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연희?”
“누구세요?”
“나. 어제 왔어.”
“들었어.”
“그래?”
수화기 저편에서 아이가 뭐라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그인?”
“출항했어.”
“어제는?”
“응, 술이 취해서 함께 잤지 뭐.”
“좋아하네, 좋아해. ……배 나갔어?”
연희는 다시 한 번 남편의 출항을 물었다. 나는 가만히 숨을 들이마셨다.
“응, 세 척 다.”
“지금 어디야?”
“그 근처.”
“저녁에 만나. 얘 재워놓고. 그럼 그동안 뭐 할 거야?”
“한잔 하고 자지 뭐.”
“그래 그럼. 어두워지면 갈게. 근데 웬일이야?”
“그냥…… 보고 싶어서.”
“피!”
전화는 저쪽에서 먼저 끊었다. 송수화기를 내려놓자 등짝을 후려치는 파도 소리가 있었다. 높이 치솟은 물거품은 내 발끝까지 부스러기를 튀겨 보냈다. 파도 소리는 턱밑이 시큼하도록 강한 성욕을 불러일으켰다. 횟집이 즐비한 포구에 들어섰다. 선배가 장사를 하는 횟집에 가서 점심을 대신해 술과 매운탕을 시켰다.
사람들은 이 흉어*의 해안에서도 끊임없이 술을 마시고 싸움박질하고 있었다. 나는 유리창을 통해 그 싸움 장면을 무성 영화처럼 지켜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둘러서 있었다. 그들 틈에서 빠져나온 중년 사내가 한 아낙네를 뒤돌아보며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아낙네도 지지 않았다. 뭐라고 악다구니를 썼다. 사내는 다시 몸을 돌려 투우처럼 머리를 앞세우고 아낙네에게로 달려들었다. 악에 받친 아낙네가 치마를 훌떡 걷어 올렸다.
늘 그랬다. 사람들은 부패해가는 묵호의 악취에 발악이라도 하듯 싸움을 했다. 그들에게는 다른 고장 사람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원시의 포악성이 있었다. 그들은 잠자는 본능을 휘둘러 깨워 미친 듯이 달라붙었다. 나갔다가 들어온 선배는 그들이 싸우는 이유를 심드렁하게 말했다.
“심심해서 그러지 뭐.”
그러면서 나를 밖으로 끌었다.
“결혼식 집에나 가자. 볼 만할 테니까. 내가 오늘 그 집 사진사야.”
선배는 사진기를 메고 있었다.
포구의 앞마당이자 공동 작업장이기도 한 백사장 한가운데 굿상이 차려져 있었다. 망자의 영혼결혼식*이었다. 결혼식은 망자의 넋을 건져 올리는 넋건지기굿으로부터 시작됐다. 백사장을 가로질러 방파제 끝에 올라간 양중이*는 망자의 가족들이 통곡하는 가운데 넋전*이 담긴 주발과 닭을 바다에 던졌다. 이어서 무당각시는 골매기* 서낭대*를 던지며 높고 구슬폰 목소리로 초혼*을 했다.
아―에 오―오 아―에
동해광년왕 남해광니왕
서해광덕왕 북해광택왕
사해용왕님 영가태평 강신하되*,
일체 하회동심 하옵소서 .
아―에 어 ―어
어허이 어허이 어허이
양중이는 빠른 장단에 맞춰 염불을 외고, 차려둔 굿상 위의 밥과 반찬, 떡과 술을 바다에 내던졌다. 무당각시는 서낭기를 들고 한동안 춤을 췄다. 마침내 바다에 던졌던 닭이 헤엄쳐 나왔다. 양중이는 기쁜 듯 달려들어 수중에서 돌아온 망자의 혼을 끌어올렸다.
“누구예요?”
내가 선배에게 물었다.
“몇 달 전 풍랑에 머구리배뚜가 뒤집혔는데 시체 하나를 못 건졌거든. 그 자식, 배를 안 타는 놈인데 장가갈 밑천 만든다고 나가더니만.”
두 손을 겨드랑이에 끼고 둘러선 아낙네들이 수군거렸다.
“신부는 어디 처년데?”
“저 아랫동네. 삼 년 전에 병으로 죽은 처년데, 궁합이 좋대.”
“그런데 아무도 안 왔네? 신부 집에선.”
“신부 부모가 너무 가슴이 아파 올 수 없다고 전화를 하더래.”
지금은 횟집이 잔뜩 들어섰지만, 시가지와 떨어진 이 포구는 오래된. 토착 어민촌이다. 그래서 예전엔 이곳에서 심심찮게 별신굿*이 있었다. 백사장을 내려다보는 산 언덕 소나무숲 언저리에 아직도 신당이 서 있었다.
굿판은 망자의 집으로 옮겨졌다. 각양각색의 종이꽃과 용선*으로 장식한 굿당에는 제물과 신랑 신부의 신위*와 사진, 신랑 신부의 지푸라기 인형이 있었고 넋자리*도 깔려 있었다. 무당각시들은 마당 한가운데에서 격렬한 몸짓으로 춤을 추었다. 마당에 가득 몰려든 구경꾼들 때문에 잔치는 산 사람의 혼례 못지않게 흥청거렸고 진지했다. 선배는 열심히 셔터를 늘러댔다.
무당각시의 춤이 그치자 유교식 전통 혼례가 치러졌다. 마당에 차려진 대례상 양편에 남자가 신랑 인형, 여자가 신부 인형을 들고 섰고, 양중이가 홀기*를 부르기 시작했다. 양중이와 무당각시들은 설명도 하고 잔소리도 해가며 혼례식의 즐거움을 살리기 위해 애썼다.
나는 굿마당을 나와 여관으로 갔다. 형형색색의 색등에 둘러싸여 허우적대는 꿈에서 놓여난 것은 연희가 나를 흔들어 깨워서였다. 어지럽던 꿈의 조각들은 어두워진 창밖으로 황망히 달아났다.
연희는 뜨거웠다. 그녀는 잘 익은 능금빛 속살을 열고 무섭게 달려들었다. 나는 신명 난 그녀를 받쳐주며 허겁지겁 북채를 놀리는 신출내기 화랑이*에 불과했다.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는 뱀장어의 요동 찬 몸짓이 있었고, 작두날을 디디는 아찔함도 있었다. 연희의 푸닥거리가 끝나자 고요한 방 안으로 목 좋은 무당각시의 용선가가 아련히 들려왔다. 다시 백사장으로 옮겨진 수망굿*판은 밤새도록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생선회와 소주를 시켰다. 탁자 위에 술상이 다 차려지자 연희가 욕실에서 나왔다. 파르스름한 눈언저리와 도톰한 입술, 붉게 달아오른 뺨. 그녀를 만나면 언제나 거짓말을 하고 싶어진다. 연희에게는, 진실만으로는 차지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조바심치게 하는, 그런 아름다움이 있다. 친구의 아내. 끝날 것 같지 않은 공부에 매달린 내 쪽보다는 수산초급대학을 마치고 쉽게 선장 자리를 따낸 남편 쪽이 살아가기에 편했을 것이다. 나로서도 결혼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동정이었지만 그녀는 처녀가 아니었다.
그러나 잊지는 못했다. 첫사랑이었기 때문일까? 그런 것이 남자의 동정이라는 것일까? 길을 가다가도 문득 그녀인 것만 같아 달려가 보던 시절이 있었다. 뽀송뽀송한 소녀의 살결을 잊지 못해서일까? 그 솜털의 감촉을 잊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이미 죄악의 시큼하고 단 맛에 탐닉해 있었기 때문일까?
“웬일이야?·…… 한 일 년 됐지?”
연희가 말했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콰르르, 욕조에서 빠져나가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장가 잘 갔다고 소문났더라. 신부가 이쁘던데.”
“어디서?”
“금숙이 집에 있더라.”
금숙이는 토목 기사 최의 아내다. 최는 내 결혼식 날 사진을 찍었다. 나는 담배 연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헤어진 아내를 생각했다.
―왜 헤어졌다고 생각하는 거야? 살아 있으면 또 만날 수도 있잖아.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만나고 하는 것이 살아가는 건데.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야.
“왜 그래?”
“아니, 그냥. 속이 너무 쓰려. 종일 밥을 안 먹었거든.”
나는 정말 속이 쓰렸다. 도취의 시간은 그 뒤에 오는 복통의 시간에 비해 형편없이 짧았다. 소리는 나를 다그치고 있었다.
―애정이라는 건 때에 따라 맹목적이고 본능적이어야 해. 그게 더 숭고할 때도 있단 말이야. 특히 부부 관계에 있어서는. 문제가 있으면 답도 있어. 어렵든 쉽든. 모든 문제는 반드시 답을 가지고 있으니까. 답, 답을 찾아.
나는 횟장*이 묻은 나무젓가락으로 탁자 위에 자꾸자꾸 태극 무늬를 그렸다. 흰 탁자는 태극무늬로 가득 찼다. 눈물이 나왔다. 우리가 밖으로 나온 것은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파도는 잠잠했다. 산 쪽에서 바람이 불어 왔다.
“춥지?”
연희가 내게 말했다.
“……”
스카프가 휘날렸다. 연희는 꽃무늬 스카프로 머리를 여미고 있었다. 스카프에 그려진 커다란 꽃이 활짝 피어났다. 그녀의 머리는 사라지고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한 송이 꽃이 그녀의 몸에서 피어난 것 같았다.
“언제 또 올 거야?”
“몰라.”
“피!”
그녀가 어둠 저편으로 한 송이 커다란 꽃무늬 스카프를 감추며 사라졌을 때, 내 앞에는 새로운 바다가 놓여 있었다. 구르는 돌처럼 저항할 줄 모르고 언제까지나 이 해변에 어정쩡히 서 있을 수는 없었다. 힘껏 뿌리쳐 보지도 못하고 이대로 쓰레기 더미에 파묻혀 버릴 수는 없었다. 문득 죽음을 생각했다. 웃음이 나왔다.
구토가 일었다. 내장을 뒤집으며 치밀어 오르는 복통의 밑바닥에서 울컥, 오물이 쏟아져 나왔다. 다시, 또다시. 그리고 소리가 있었다. 떠나가라고, 떠나가라고, 답을 찾아 인간의 바다로 떠나가라고,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의 속삭임 같은, 바다의 소리가 있었다. 북으로 치뻗어 올라가는 산맥의 한끝에 웅크리고 앉아 나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여보, 돌아와…….”
장고와 징, 꽹과리 스리가 어둠을 헤치고 들려왔다. 바리데기*가 세 아들을 어르며 사랑가를 부르고 있었다.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어허둥둥 내 사랑이야
오늘에야 두 망자가 극락으로 가시는데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맑고 풍부한 무당각시의 목청이 바다 위로 곱게 넘나들며 어둠을 어르었다. 가냘프고 애조 띤 미성(美聲)이었다.
『세계의 문학』 55호(1990년 봄); 『묵호를 아는가」 (생각의 나무 2006)
심상대(沈相大)
1960년 강릉시 옥계면에서 태어나 동해시에서 성장했으며,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에서 수학했다.
1990년 『세계의 문학』 봄호에 「묘사총」 「묵호를 아는가」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심미적 이야기꾼’ 으로 불리는 그는 정교한 언어 감각으로 활기차고 야성적 인 생명의 숨결을 들려준다.
소설집 『묵호를 아는가』 『떨림』 『명옥헌』 『망월』 『심미주의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