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호국인물 임상택 육군 소령 선정
유성운2014. 10. 31.
전쟁기념관은 11월의 호국인물로 임상택 육군 소령을 선정했다고 31일 발표했다.
1939년 울산 울주군에서 태어난 임 소령은 1961년 5월 육군보병학교에 입교해 11월 갑종간부 157기로 임관했다. 이후 9사단 30연대 8중대 소대장 등을 역임했다.
1967년에는 백마부대 전투 중대장으로 월남전에 참전해 월맹 정규군 7명을 사살하는 전공을 세웠고 귀국 후에는 3사단(백골부대)에 배속돼 휴전선에 침입한 무장간첩 2명을 사살하는 공적을 세웠다.
중동부 최전선에 위치한 3사단에 무장간첩 침투가 빈번해지자 임 소령은 방책선 보강작업 임무를 위해 1968년 11월 1일 중대원 10명과 함께 부비트랩 설치작업에 나섰다. 작업 도중 중대원 1명이 실수로 인계철선에 걸려있던 수류탄을 건드려 폭발 위기에 놓였다.
임 소령은 수류탄을 뽑아 던지려고 했으나 수류탄이 말뚝에 매여있어 여의치않자 부하들에게 "엎드려!"라고 외친 뒤 자신은 수류탄을 몸으로 덮친해 산화했다. 이 덕분에 당시 함께 있던 10명의 부해들은 생명을 구했다.
정부는 1968년 11월 17일 고인에게 1계급 특진과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으며 소속부대인 백골부대는 사단 사령부에 고인을 기리는 추모동상을 건립했다. 육군보병학교는 2008년 임 소령 순직 40주기를 맞아 교내에 흉상을 세워 고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렸다. 임 소령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 제6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11월 6일 오후 2시에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는 유족과 육군 주요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고인을 추모하는 현양행사가 거행된다.
유성운 기자
우촌 문학관 2006. 11. 3. 09:28
해방후국군 창설시기와 6.25 한국전쟁을 통해서백골 부대란 그 때를 살아온 우리 국민들에게는잘 알려진 이름이다
이 부대가지금의 육군 보병제3사단의 모체이다.
백골부대의 지휘관은 한신 대령으로 후일 대장으로 승진하고 합참의장을 끝으로 예편하였다.
지금도 나에게 육군의 3대 맹장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첫째가 한신대장. 다음이정봉욱소장(인민군
포병 중좌.제3사관학교 초대교장. 논산훈련소장 ) 마지막으로 강원채소장(주 월남 100군수지원사령관초대 대우정밀 사장)이라고 말한다.
백골병단 요원은대부분 부모형제를 북에 두고온 젊은이들로 죽기로 작정하고 싸워김일성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으며, 지금도 최전방 휴전선 철의 삼각지대를지키고 있으며, 3사단사령부 지휘소 앞에는 지금도 보기에 섬뜩한백골 조형물이 남아 있다
나는 어제(11월 1일)군 동기생들과 철원 백골사단을 다녀왔다
38년전에 그곳 휴전선에서 철책보강작업중 부하7명을 살리고 자신은 수류탄을 덥쳐하나의 동상으로 남아있는고 림상택소령과 미망인을 만나보기위하여 모처럼 아내도 동반하고 갔다.
림상택대위의 죽음은강재구 대위의 전철을 밟은듯 하다
강재구 대위는 1965년 처음으로 한국군 전투부대인 맹호사단이 월남으로 파병할 준비로강원도 홍천에서 수류탄 투척훈련중 부하가 실수하여 떨어트린 수류탄을 자신이 안고 죽어 많은 부하를 살렸다.
그 당시 나는 중위로 훈련 통제부에 파견되어 파월준비중인 동기생 이태순 중위와 사관 후보생시절의 구대장을 만나게 되었고 홍천에서 원주로가는 삼거리에서 즉각조치훈련차 이동하는 맹호사단SP(출발점)에서 아기를 업고 길옆에서 서성이던 젊은 여인을 보았고강재구 대위가 죽은 후에야 그녀가 그의 부인임을 알았다.
강재구 대위는 파월전에 순직하여 실전은 경험하지 못했고 세살된 아들 하나를 남겼으며 후일 그 아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희망과는 달리 육군사관학교 입학특전이 있었음에도 서울공대를 지망하였고
임상택 대위는 강재구 대위사건 2년뒤인 1967년에 파월하여 백마사단(제9 보병사단) 30연대 11중대장으로 베트공의 구정 공세시 혁혁한무공을 세우고(월남 전사에 기록되어있음)무사히 귀국하였으나철원 백골사단에서휴전선 철책보강 공사중에 인계철선을 잘못 건드린 부하사병의 실수로 폭발하려는 수류탄을몸으로 덥쳐산화함으로서 작업하던 7명의 부하는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게 되고 림상택 대위는 충무 무공 훈장이 추서되고 소령으로 1계급 특진되었다고 한다.
림상택 대위가 순직할 당시부인은 임신중이었고 후에 딸을 낳았다고 한다.
강재구와 림상택의 순직후 예우에다른 점이 있다면 전자는 한국군이 처음으로 전투부대를 해외로 파병하는 싯점이라 박정희 대통령의 직접적인 관심과 메스컴을 통해국민의 관심을 집중시켰지만, 후자의 경우는단순한 사고로 치부되어 세월이 흘러감에 역사속에 묻혀버린 것이다.
우리 군 동기생들 조차 30여년간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지내왔다
그러다가 6년전,제3사단장으로 부임한 안충준 소장 (국제평화유지군 사령관)이 사단장으로 부임하고 보니 사령부 앞에 비문이나 설명문이 없는동상이있기에무심코 지내다가 어느날 밤 부대 역사일지를통해 그 동상의 내력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안충준 사단장은 이 동상을 너무 오랫동안 손질을 하지 않고 방치한 상태가 안타까워 국방부에 보고하게 되었고,
재향군인회장(이상훈 대장 전 국방부장관)의 도움으로 지난 5월에 동상을 보수하고 그 기념식에 우리 동기회 이태순회장과동기생 추모사업회 이범우회장. 고 림상택 소령미망인 그리고 그의 모교인 부산 해동고등학교 동창회장이참석하게 되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림상택 대위의 부인을 만나볼수있었고 새로 보수한동상의연혁과 비문내용을 보고 미진한 생각이 들어 현지사단 관계참모와 추모사업회에말했다.
림상택 대위가 단순히 1968년에 순직한그 정도의 기록만으로는부족하다.
그의 월남참전 사실이 빠져 아쉽다고 했다.
그 말에 모두들 의아스럽게 여겼다.
그가 정말 월남전에 참전했단 말인가? 내가 설명했다.
1970년 내가 월남전에 참전했을때,우리 백마 30연대 11중대장은
우리 동기생으로서는 1967년도에 제일 먼저 김전국 대위가 했으나
그는 마라리아에 걸려 조기귀국 하였고, 그 후임으로 보직된
황정택 대위는 전사하고, 그 다음에 이 글의 주인공인 림상택 대위가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귀국 했으며 마지막으로 내가 중대장으로
1년간 전투에 임했으니 그때 사실을 알고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추모사업회와 사단장은 동상의비문에 연혁 공적내용등을 확인후 다시 추가하기로 하였고, 정부에신청한그의 새로운 공적비와동상은 전남 광주의 CAC(전투병과교육사령부)에 세웠다. 그리고 이번 림상택 소령의 현지 동상보수와제 36주기 기념식은순직부대인 백골사단에서 거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매년 보병제 3사단에서는 모범 중대장을 선발하여 주고 우리 추모 사업회는 그 중대장에게 림상택 돌격상과 부상으로 금 1백만원을매년 지급 하기로했다
그리고 그의 모교인 부산 해동고등학교와 동창회에서도 이 사업에 적극 동참하기로 약속하였다.
미망인은 지금 대전에 살고있으며 유복녀 외동딸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우리가 고 림상택 소령의 36주기 추모식을 철원 휴전선에서 하던 날 일부 정치인들은 평양 김일성 생가를 방문하고 금수산궁전인가 하는곳에 갔다니 착찹한 마음이다.
군은 누구인가? 군의 존재가치와 목적은 ?
군인에게 주적이나 가상적은없어야 하는가?
이런 상항하에서도 묵묵히 맡겨진 국토방위의 임무를 수행하고 고 림상택 소령의 추모식을 올려주는 사단장 김종하 소장과 백골부대 장병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평생을 혼자서 유복녀 외딸을 훌륭하게 키워주신 미망인 임봉자 여사에게 여생이 복되고 자랑스럽도록 기원 합니다
출처: https://hjy39192173.tistory.com/287 [회덕황씨(지암공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