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1 פרשת השבוע )Parshat Hashabua( NO.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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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서 연구소 Korean Bible Institute 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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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4(토) / Kislav 28일 Week No 10 (창세기 10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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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מקץ (Miqetz : 후에) ויהי מקץ שנתים ימים ופרעה חלם והנה עמד על-היאר Gen 41:1 창41: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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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41:1 ~ 44: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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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타라( הפטרה ) : 왕상3:15~4:1 : 창세기의 10번째 파르샤트 샤부아는 거의 대부분 하누카명절 중간에 읽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 ‘하프타라’를 하누카와 관련있는 것을 읽는데, 간혹 본 파르샤트 샤부아를 하누카때 읽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때에 읽는 하프타라이다.
이유 : 왕상3:15 “솔로몬이 깨어 보니 꿈이더라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섯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모든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 하였더라”
: 바로가 꿈을 꾸듯이, 솔로몬도 꿈을 꾸었다. 꿈을 꾸었다는 모티브가 같다. 또, ‘깨어 보니’라고 번역된 히브리어가 ‘ויקץ’(Wayaqetz)이다. 즉, 파르샤트 샤부아의 제목인 מקץ(Miqetz)와 동일한 어근의 단어로 시작되고 있는 구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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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해석 및 묵상
▶ 요셉과 다니엘의 공통점
이들은 꿈을 해석한 사람들이다. 고대의 히브리인들에게 꿈은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의 한 수단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부분 성경에 나오는 꿈은, 해몽이 불필요한 의미가 분명한 꿈들이었다. 그래서 성경에는 꿈을 해몽하는 전문가가 있지도 않았고, 또 해몽을 하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예언자들도 해몽과는 관계가 멀었던 사람들이다.
성경에서 해몽을 한 사람은 단 두 명밖에 나오지 않는다. 요셉과 다니엘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해몽을 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살고 있던 그 나라의 꿈 해몽의 전문가들도 풀지 못하는 꿈을 해몽해서 둘 다 높임을 받게 되었다.
유대 전통에서 랍비들이 표현하기를 “꿈은 1/60의 예언이다” 라고 했다. 이는 꿈은 예언에 비해 그 중요도와 의미가 1/60 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어떤 개인에게 드러낼때, 그 사람의 꿈을 이용하지만, 사회와 국가를 위한 뜻을 밝히실때는 선지자 혹은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 예언하시기 때문이다.
▶ 창세기에는 총9개의 꿈이 나온다
① 아브라함의 꿈(창15:12~16) ② 그랄 왕의 꿈(창20:3~7) ③ 야곱의 꿈(창28:12~15) ④ 야곱의 꿈(창31:10~13) ⑤ 라반의 꿈(창31:24) ⑥ 요셉의 꿈(창37:5~11) ⑦ 술 맡은 관원장의 꿈(창40:9~11) ⑧ 떡 맡은 관원장의 꿈(창40:16~17) ⑨ 바로의 꿈(창41:1~8)
: 바로의 꿈 만이 해몽이 필요했던 꿈이었다. 바로의 꿈은 이집트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꿈이었다. 멤피스의 주신 프타의 현현은 숫소인 Apis였고, 또 번성과 잉태,성의 여신인 Isis 여신은 하토르(Hathor)라는 암소로 현현하기 때문이다. 이들 소들은 모두 살진 소들로 묘사된다. 그런데 바짝 마른 암소들이 살진 소들을 잡아먹는 것은 바로에게는 정말 두려운 꿈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 꿈에 나온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도 나일강이 주는 최대의 선물인데, 바짝 마른 이삭들이 이것을 잡아 먹는 다는 것은, 바로에게는 정말 불길한 꿈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더욱 더 이 꿈들을 해몽하고자 했을 것이다.
▶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될수 있었던 배경
요셉은 17세에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와서 13년만인 30세에 애굽의 총리의 자리에 올랐다. 파격적인 인사이다. 이와같은 일이 일어날수 있었는지를 완벽하게 설명할순 없지만, 그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12왕조부터 왕정중심에서 총리 중심 체계로 바뀌기 시작했다. 12왕조에서 가장 번영했던 시기는 5대왕인 Senusret III세 (BCE1878~1839)와 6대왕인 Amenemhat III세(BCE1860~1814)의 통치 때였다. 당시 애굽의 정치 조직은 총리가 거의 장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12왕조 초기 때에는 강력한 왕권이 여전히 존재 했었고, 정치적 상황이 총리가 중요시 여기시 시작할때였다고 충분히 짐작할수 있다. 그리고, 성경에 바로가 요셉에게 주저없이 애굽을 다스릴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으로 봐서 여전히 강력한 왕권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수있다. 그렇다면, 12왕조의 초기왕 중의 하나인 3대왕 Amenemhat II세(BCE1929~1895)라면 강력한 왕권으로 요셉을 단숨에 총리로 임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 12왕조때 새로운 신화 체계를 만들고 있었다. 멤피스가 중심이었던 고왕조와는 다르게 헬리오폴리스(On)의 전통적 신인 Re(태양신)와 테베의 신 Amun(대기의 주관자)을 합쳐서 최고의 신인 Re-Amun을 만들어낸 왕조이다. 요셉을 서둘러서 제사장의 도시 온(헬리오폴리스)의 제사장 보디벨라의 딸과 결혼시키는 것으로 봐서 Re신과 Amun신의 융합의 분위기가 정치적 종교적으로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분위기와 상통한다고 볼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비천한 신분에서 제사장 가문과의 혼인으로 신분상승적 효과도 당시의 사회분위기에서는 충분히 기대할수 있었을 것이다.
세째 : 요셉의 애굽식 이름’사브나바네아’를 통해 당시의 분위기를 엿볼수 있다. 이를 해석하면, ‘생명이라 불리는 자’이다. 바로는 요셉이 Re-Amun신이 애굽을 위해 보냄을 받은자로 여겨졌기에 이와같은 이름을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격적으로 요셉을 총리로 발탁할수 있었을 것이다. ( 이부분에 대한 좀더 자세한 설명은 다음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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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고학 이야기) 요셉의 복장이 어떻게 변했을까?
(1) 창41:14 요셉이 곧 수염을 깍고 그의 옷을 갈아 입고 바로게게 들어가니
왼쪽의 모습이 중기 청동기시대때의 가나안 사람들의 모습이다. Tut Aneh Amun의 묘에서 발견된 나무 조각상이다. 아마도 애굽사람이 만들었을 것이고, 그들의 눈에 비친 가나안 사람의 모습이므로 특히 턱수염이 강조되어 있다. 요셉도 수염이 있었으므로 수염을 깍았을 것이다. 수염이 있는 이유는 가나안땅에서 왔기 때문이기도하겠지만, 오랜 감옥생활로 인해 수염이 있었을 것이다. 오른쪽은 Amenhotep II세때의 Wasrhet의 무덤벽에 있는 프레스코화이다. 바로의 신하에 대해 머리를 깍아주는 그림이다.
(2) 창 41:42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아래의 무덤벽 부조의 그림속에 수종드는자들이 복장을 다 갖춘 다음 마지막으로 목에 금사슬을 걸어주고 있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왼쪽 옆 작은 탁자위에 금 사슬이 비교적 자세하게 모사되어 있다. 아마 요셉도 이 그림과 비슷한 상황과 모습으로 복장을 갖추고 바로를 만났을 것이다.
< 목에 금사슬을 걸고 있는 모습 : Horemheb 의 무덤벽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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