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프랑스 요리의 맛은 거칠었다. 이후 프랑스의 지리적으로 다양한 토양과 기후에 의해 생산된 식자재에 고대 로마문화의 요리법을 가미해서 만들어낸 것이 프랑스 요리의 시발점이다. 1553년 르네상스시대를 이끈 대표적인 가문이자 유럽의 가장 큰 부호였던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딸인 카드린 드 메드시스(Catherine de Médicis)가 프랑스의 왕자 앙리2세에게로 출가했다. 이때만 해도 요리의 선진국인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요리방법과 함께 피렌체출신 요리사 및 과자의 일종인 마가종이나 푸딩과 같은 후식 등을 만들 수 있는 식자재 등을 가져오게 됨에 따라 프랑스의 식습관에 형식과 내용면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때부터 손으로 먹던 프랑스인의 식탁 위에 나이프, 포크, 스푼이 등장하고 우아한 테이블 셋팅과 식사매너가 정착되어 프랑스요리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후 루이14세(1638~1715)때 프랑스요리가 사치의 절정에 이르게 되는데 루이14세 때 지금같이 디저트로 식사를 마무리하는 형식이 마련되기도 했다. 루이14세 본인도 한 끼의 식사로 식탁 하나당 8개의 접시에 음식을 차린 8개 식탁의 한 코스를 다 돌면 무려 64개의 접시를 비우는 대식가였다고 한다. 루이14세가 귀족들에게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반역심이 있는 귀족들을 베르사이유 궁전에 같이 살게 했다. 귀족끼리의 잦은 연회로 뜻하지 않게 미식의 탄생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궁전 안에서는 요리 부분별 요리사들이 식성이 까다로운 귀족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된다. 심지어 프랑수아 바텔(Francois Vatel)이라는 시종장은 생선요리가 30분 늦게 나오자 칼로 자기 몸을 찌르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렇게 탄생된 요리들이 상류층과 귀족들을 위한 고급음식인 ‘오트퀴진’의 기틀이 마련된다. 1960년대 본격적으로 등장한 오트퀴진은 경험과 상상을 뛰어넘은 음식의 highend cooking으로 최고급 패션인 오트쿠트르(haute couture)의 요리버전으로 장인의 개성이 담긴 최고급요리를 일컫는다. 프랑스요리의 고급스러움과 화려함 그리고 자존심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음식의 모양, 색 뿐만 아니라 식탁 위의 모든 요소를 한폭의 그림과 같이 예술적 배열을 갖춘다. 맛은 기본이고 절제된 데크와 과학, 예술 그리고 접시안을 디자인하듯 만든 음식이다. 오트퀴진은 90년대 스페인을 거치면서 과학성이 강화된 음식재료 본연의 맛은 유지하되 재료와 조리법의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다양한 변화를 요리에 적용시키는 분자요리(mole culor cuisine)로 발전하게 된다. 오트퀴진 요리의 기본은 좋은 재료, 조리원리의 이해, 기본조리법 습득, 정성이 있다. 프랑스식 오트퀴진 요리는 15개 코스요리에 사전예약을 통해 40명 정도의 손님에 요리사만 100여명이 투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