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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글 소개

삶이 있는 동안 희망은 있다/한동일 신부

작성자정조앤|작성시간16.02.17|조회수985 목록 댓글 0


한동일 신부는 광주가톨릭대학교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한 뒤 2000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신부가 돼라’. 소년이 수업을 듣고 있는데 대뜸 까만 칠판에 글씨가 나타났다. ‘신부가 되라고? 나더러?’ 소년은 눈을 씻고 다시 칠판을 봤다.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린 메시지였다. 소년의 부모님은 특정 종교가 없었고 본인도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다. 세례를 받은 뒤 빵을 준다는 친구의 꾐에 예비신학교를 다녔던 소년에게는 정말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날부터 소년의 눈빛은 달라졌다. 훗날, 사제 서품을 받은 한동일 신부(45세)는 종교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


한 신부는 ‘신부가 돼라’는 칠판의 글씨를 본 날을 “하느님의 배달사고 아니었을까요?”라며 피식 웃었다. 그는 ‘성격은 까다롭기가 말도 못했고, 부모님의 무능함을 탓하며 가난을 원망했고, 심지어 장애를 갖고 태어난 누나까지 부끄럽게 여겼던’ 어린 시절 자신의 철없던 모습을 회상했다.


“1989년 신학교에 입학한 이후 십여 년이 지난 2000년 1월 28일에 마침내  사제 서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부적응과 방황의 끝에 받게 된 서품이라 무척 특별하게 다가왔지요.”


그는 사제 서품을 받은 날로부터 딱 1년이 지난 2001년 1월 28일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을 떠났다. 그 후 로마의 교황청립 라테란대학교에서 교회법 석사학위를 마치고, 동대학원에서 교회법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공부를 마친 한 신부는 한국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다가 또다시 유학생활로 방향을 바꿨다. 왜 한국에서 평범한 사제로서 살아가는 것 대신 로마에서의 힘들고 긴 공부를 택했을까. 그는 “알 수 없는 어떤 ‘열정의 힘’이 나를 계속 채찍질했다”며, 그 힘이 한국인이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가고자 하는 마음을 먹게 만들었단다.


그의 도전은 두 가지였다. 하나, ‘교회 법률용어 사전’을 제대로 완역하는 것. 둘, 그 어렵다는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자신의 논문을 쓰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해외 석학의 논문을 번역하는 작업을 낮춰서 보는 경향이 있어요. 학문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충분한 자료가 확보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일본은 국가적 차원에서 전문 번역가들이 해외 석학들의 논문 자료를 번역하도록 장려했지요. 은수자(隱修者)처럼 세속을 떠나 꾸준히 작업해온 사전 번역은 이제 오역들을 수정해서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두 번째 목표,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Rota Romana)의 변호사가 되는 것은 지난한 인고의 길이었다. 이 곳 사법연수원에서는 한 해에 열 명 이내의 변호사만 배출하며, 입학부터 호락호락하지 않고 졸업은 더더욱 힘들다. 졸업과 동시에 치러지는 변호사 시험은 평생 단 두 번의 기회만이 주어진다. 낯선 땅에서 10년을 꼬박  치열하게 공부한 그는 드디어 변호사 시험을 치렀다.


“시험은 문제만 이백 쪽에 달해요. 시간도 열두 시간이나 되지요. 재판 기록을 읽고 라틴어 판결문을 쓰는 시험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졸업하고 곧장 응시했던 첫 시험에서는 여지없이 ‘찬란한 실패’를 경험했다. 하지만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죽기 살기로 1년을 더 공부하고 다시 치른 두 번째 시험의 결과는 달랐다. 한 신부는 비로소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 자격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로타 로마나는 우리나라에는 낯선 곳이에요. 전 세계 천주교회의 민형사상 소송과 행정소원에 대한 통상적 재판권을 행사하는 곳이 바로 바티칸의 대법원이지요. 유럽의 많은 천주교 국가들에서는 교회의 판결과 국가 법원의 판결을 동일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단순히 ‘교회재판소’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 신부에게 변호사로서 하고 있는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물었다. 그는 대답하기 전에 잠시 기다려보라며 ‘금고에 고이 모셔둔’ 변호사 자격증을 꺼내왔다. 멋쩍게 웃으며 내민 자격증이 그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실 유럽의 경우 국가만큼이나 교황청이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렇다보니 엄청난 ‘외교의 장’이기도 한데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영역이지요. 제 궁극적인 바람은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우리나라가 외교적으로 무언가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거예요. 아직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진 것은 아니지만 차차 더 또렷한 목표를 세워보려고 해요.” 


지금은 한국과 로마를 격월로 오가며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로서 크고 작은 소송들을 처리하고 있다. 각 교회 단체들이나 그곳에 속한 노동자들의 갈등도 있지만 대부분은 혼인 문제에 대한 것들이다. 막 걸음마를 뗀 변호사라서 인상적인 재판이 아직은 없었다며 말을 아꼈다.


그는 변호사가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유럽인들에게도 어렵다는 ‘라틴어’로 진행되는 점이 특히 힘들었다고 들려준다.


“동사 하나의 변화가 160여 개에 달하기도 해서 ‘라틴어의 동사 변화법’은 벼락치기가 불가능해요. 어려운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체계적인 공부법과 사고의 확장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라틴어의 숨은 매력이지요.”


한 신부는 이 체험을 바탕으로 2010년부터 서강대에서 라틴어 강의도 병행하고 있다. 이 강의에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모여든다. 배워도 실생활에는 별 이익이 없고 난해하기 그지없는데도 학생들이 이렇게 몰려드는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학생들은 제 강의를 ‘라틴어’가 아닌 ‘종합인문 수업’이라고 생각해요. 가르칠 때 라틴어라는 언어에만 집중하지 않고, 그와 더불어 역사, 문화, 법, 법 위에 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을 총체적으로 다루거든요. 그리고 가난한 환경에서 힘들게 공부하며 실패의 긴 터널을 지나온 저의 이야기들을 틈틈이 들려주는 편인데, 거기서 많은 학생들이 위로받고 용기를 얻어가는 것 같습니다.”


또 “라틴어나 영미, 유럽어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 학생들도 많다. 그때마다 라틴어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예전에 익혔던 영어 단어를 떠올려보라고 말해준다.

잠시 머뭇거리던 한 신부는 끝으로 학생들에게 전할 당부를 잊지 않는다.


“사실 젊은 시절 자살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습니다. 더 이상 못 버티겠다 싶어 마포대교에 갈까 고민했지요. 하지만 키케로의 말처럼 ‘Dum vita est, spes est(삶이 있는 동안 희망은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살아있는 동안 희망이 있다는 말이지요. 우리 학생들에게도 꼭 이 말을 해줘요. 세상에서 가장 큰 승리는 ‘살아남는 것’이라고. 시대를 초월해서도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진리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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