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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學의 場

단을 쌓고 제물을 드렸는가?

작성자月悟|작성시간10.09.17|조회수389 목록 댓글 1

요즘 필자는 신학석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지도교수와의 '재미난 논쟁(이하, 재논)'에 불이 붙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아브라함이나 이삭 그리고 야곱이 단을 쌓고 재물을 드렸는가? 아니면 드리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재논은 사실 '文字的해석'과 '慣用的 해석'이라는 성경해석상의 충돌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필자의 이러한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에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이와 관련된 재미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예컨대 필자가 물리학과에 재학중일 때 물리학과 교수와도 이러한 재논을 벌인적이 있었는데 이 때에도, 성경에는 '회당에서 예배드린다'는 기록이 한번도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물리학교수(모 교회 장로)는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주장이었고, 필자는 회당에서는 예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쓰지 않은 것이라며 서로 맞선 적이 있었다. 사실 다들 잘 알겠지만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린다'는 표현은 요12:20; 행8:27; 24:11 등에서 확인할 수 있으나, 성경 어디에서든 회당에서 예배드렸다는 기록은 단 한 곳도 없다. 

 

이에 필자는 예배는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드리고 유대인들은 결코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 예배를 드린 적이 없어서 이러한 표현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라는 주장이었고, 반대로 그 교수는 그것이 아니라 회당에서의 예배는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았다는 주장으로 맞선 재논이었다. 물리학 교수와 재논이 급기야 언성이 높아지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성경에 대한 문자적 해석을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사람들이 말하는 관용적 해석을 따라서 이해해야 하는가?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또 재연된 것이다. 다음을 읽고 여러분들도 판단해 보기를 바란다.

 

현재 개혁신학연구원 3년 선배이며, 또 계약신학대학원 교수인 강정주선생으로부터 필자는 논문지도를 받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 필자의 논문을 읽고나서 지도교수는 수정을 제안하므로 재논이 벌어진 내용이다.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란에서 부름을 받고 가나안 땅에 도착하였을 때의 일이다.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이 가나안 땅을 주시리라는 약속을 받고 아브라함은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편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라는 창12:7-9의 기록을 통해서, 과연 아브라함이 단만을 쌓은 것인가 아니면 제물도 드렸는가 하는 문제로 재논이 벌어졌던 것이다.

 

교수는 어찌 단만을 쌓고 제물을 드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고, 필자는 성경에 단을 쌓고 제물을 드렸다는 기록이 없는 것은 제물제사를 위해 단을 쌓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재논이 벌어진 것이다. 그 교수 역시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기록되지 않은 것이고, 필자는 단을 쌓는 것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므로 제물제사를 드리기 위해 단을 쌓은 것과는 별도로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계속해서 들어보도록 하자. 창13:3-4에서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기록과 또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는 창13:18과 또 이삭의 경우에도 브엘세바에서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네 자손을 번성케 하시리라는 약속을 받자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는 창26:25의 기록이 나타난다.

 

야곱의 경우에는 약간 다르게 하나님께서 친히 그로 하여금 벧엘로 올라가 단을 쌓으라고 명하셨다. 그리고 야곱이 이에 순종하여 단을 쌓았다는 기록이다. 곧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러 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거기서 나타나셨음이더라"라는 창35:1-7의 기록상에서 우리는 야곱이 단을 쌓았다는 기록을 대하게 된다.

 

이상의 글을 읽고 과연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은 단만을 쌓은 것인지 아니면 단을 쌓고 재물도 드린 것인지 참으로 아포리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이해한다면 크게 어려움이 없을 것이나, 문제는 사람들의 상식 곧 관용적 이해라는 틀로 인해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제물을 드리라 하신 때도 실제로 있었다. 곧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3년된 암소와 3년된 암염소와 3년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는 창15:9과 또 그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창22장의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이미 언급했던 기록들 곧 창12:8; 13:4, 18; 26:25; 35:1-7의 경우에서, 제물을 드렸다는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기록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반응으로 오로지 단만을 쌓았던 것인지 논란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난제 곧 아포리아를 만날 때 여러분들은 어떤 결정을 따르는지 궁금하다. 어쨌든 제물을 드렸다는 입장을 먼저 들어보도록 하자.

 

WBC주석 고든 웬함의 말이다. '아브람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고지된 후에 그가 맨 처음 한 행위는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했던 것처럼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린 것이었다...그러나 야콥, 카수토, 그리고 베스터만은 제사가 여기에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때 제사는 드려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아브람은 자신이 땅에 대한 약속을 믿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단을 쌓음으로써 장차 그 땅이 후손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확신을 상징적으로 증명했다는 것이다. 아브람이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는 이러한 주장은 노아의 예와 창22장(이삭번제시, 필자주)에 비추어 볼 때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단을 쌓는 것과 제사를 드리는 것은 모두 약속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예배의 필수적인 요소였다. 단을 쌓는 것만이 언급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증거와 족장들의 응답으로서 제사보다 더 오랫동안 종속했기 때문일 것이다'(고든 웬함, '창세기1-15'박영호역(서울:솔로몬출판사, 2001), p. 496).

 

이러한 입장에 동조하는 사람들로 필자의 확인한 바에 따르면, 위 웬함을 비롯해 칼빈, 야코부스, 코헨 등이 있으며, 한국인으로는 이병규, 강병도, 손석태, 김효성 등이 단을 쌓고 번제를 드린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야콥, 카수토, 베스터만, 하밀톤, 브루지만 등은 단 쌓은 의미를 중요시하여 희생제물을 드리지 않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에 반해 문자적인 해석에 충실하여 제단 쌓은 것은 말하지만 제사를 언급하지 않는 경우는 박윤선, 데렉 키드너, 앨런 로스등이 있다.

 

그러면 이들 열조들이 단을 쌓고 희생제물은 드리지 않았다는 하밀톤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 '순례자 아브람은 건축자 아브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탑이나 도시를 건축하고자 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의 계획은 오직 제단이다. 이것은 열조들에게서 종종 나타났던 활동이다(창12:8; 13:18; 22:9; 26:25; 33:20; 35:7). 그러나 우리는 열조들이 창22:9를 제외하고는 그들 중에 어느 누구도 희생제물을 바쳤다는 것을 결코 듣지 못했다. 제단을 쌓는 이 구절들 중에서 두개 곧 창12:8; 26:25은 하나님의 이름에 호소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었다.'(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1-17', (Michigan:Grand Rapids, 1990)). 그리고 데렉 키드너는 '아브람의 행동은 말하자면 약속의 땅 중심부에 깃발을 세우고 야훼의 칙령이 사방 어느 곳에나 뻗는다고 선언한 것이었다'(데렉 키드너, '창세기'한정건역(서울:기독교문서선교회, 1994), p. 156).

 

물론 필자 역시 하밀톤과 입장은 같지만, 이스라엘 열조가 단을 쌓은 사실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곧 필자는 출17:15-16에서 율법을 받기 전 그러니까 모세가 시내산에 도착하기 전에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단을 쌓았다는 기록을 통해, 아브라함이나 이삭 그리고 야곱이 단을 쌓는 행위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징표로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이해했다. 곧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는 출17:15,16에서 단을 쌓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곧 여호와께서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는 약속의 말씀에, 모세는 단을 쌓고 '여호와의 깃발'로 그 단을 칭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창12:8에서 아브람이 단을 쌓았을 때(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는 말씀을 들었다)나, 13:18에서 단을 쌓게 된 것도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 하나님께서 나셔서 가나안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시리라는 말씀과 또한 아브람의 자손을 티끌같게 하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난 이후였다. 그리고 창26:25에서 이삭이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된 것 역시 이삭에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시리라는 말씀을 듣고 난 이후에 행해진 것이었다. 따라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심지어는 모세가 단을 쌓았다는 기록으로 성경기록에도 없는 제물을 드렸다고 유추하는 것 역시 성경의 자증을 거부하는 것이라 하겠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알고 성경대로 행한다고 하는 자들이 많다. 이러한 말들을 자주 지껄여 대는 자들이야 말로, 성경대로 믿지 않고, 성경대로 알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성경대로 행하지도 않는 자들이라 보면 결코 틀리지 않을 것이다. 거짓은 언제나 진리를 앞세워 가장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여러분들도 '羊頭狗肉'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있을 것이다. 양의 머리를 걸어두고 개고기를 파는 못된 인간들이 바로 오늘 타락한 교회의 저질스런 행태이다.

 

이러한 행태가 한국 교회내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이유는 성경을 해석하는 목사들의 자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식하고 굳세지 못한 자들의 자의적인 성경해석의 병폐는 어제 오늘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교회 역사를 보면 그 당시 교회가 타락하고 부패하는 이유는, 자질이 부족한 자들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서 성경을 자의적으로 논단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제멋대로 전횡하는 것에서 발생하는 병폐였던 것이다. 오늘날도 무식하고 굳세지 못한 목사들이 한국교회를 다 망쳐 놓았다. 이들의 해석이 한국 교회내에 횡행하는 한 한국교회는 결코 정화될 수 없을 것이다.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알려면, 성경을 문자적-역사적 해석에 기초하여 차례대로 깨우쳐 가야 한다. 성경 구절 일부만을 읽어 놓고 제 하고 싶은 말을 해대는 식의 설교가 한국교회의 타락의 원흉이다. 또한 문제는 성경강해를 하면서도 문자적-역사적 해석이 아닌 영해나 알레고리로 풀어가거나 또는 윤리도덕적 해석으로 몰아가는 것 역시 잘못된 해석이다. 성경대로 믿고 알고 싶거든 성경을 문자적 역사적 해석에 기초하여 읽어 가면 된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은 사실을 제각기 유추하여 자의적으로 성경을 論斷하는 것은 이후 하나님의 징벌을 남겨두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은 성경대로 알고 믿는 자들이라 떠벌리는 자들을 항상 주의하기 바란다. 왜냐하면 양두구육일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 역시 이러한 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또한 염두에 두고 항상 성경의 문자적-역사적 해석에 기초를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대로 아브라함과 이삭이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이나, 또한 야곱이 하나님의 명을 받고 단을 쌓고 엘벧엘이라 칭한 것이나 또 모세가 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라 했던 것을 깊이 생각하고 그 의미를 따져 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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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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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daum su | 작성시간 10.12.10 예 저는 통상적으로 단을 쌓으면 제사드리는 것으로 알고 배웠읍니다. 그리고 그것이 신약에 예배로 이해 되어 왔으며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말씀처럼 회당에서는 예배드렸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렸다는 말씀이 성경에 기록 되어 있읍니다. 그리고 오늘날 예배의 형식이 너무나 다양한것도 한번 생각해 보고요 이 문제를 더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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