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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로운 이야기

리듬을 배우는 시간

작성자리나|작성시간26.06.09|조회수25 목록 댓글 1

리듬을 배우는 시간

몸은 마음보다 먼저 안다.

속도가 떨어졌다는 것을. 숫자 하나가 어긋났다는 것을. 문장 끝이 미묘하게 비틀렸다는 것을

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화면의 글씨는 물결처럼 흐른다. 오래된 흠집처럼 빛을 찢는 난시,

세계를 조금씩 어긋나게 겹쳐놓는 짝눈. 어제 저녁, 어둠 속에서 보낸 문자의 번호 끝자리가 미끄러졌다.

그것을 모른 채 잠들었다.

초등학교 삼 학년 때의 밤이 떠오른다. 지는것을 유난히 싫어하던 나는 시험을 치른다면 삼 일 밤을 곧 잘 새우곤 했다.

그 습관은 성실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같이 걷고 있다. 늘 반듯하게 펴진 종이 같은 삶을 스스로에게 강요했다.

그 아이가 아직 내 안에 살고 있다.

명절 인사 드리러 사제관을 찾았다. 벽돌 건물을 두리번거리며, 주님께 대한 심통을 들킨 것 같았다.

그분들께 무심한 척하는 일그러진 자화상이었다.

유리문 너머 면담장 안에는 신부님과 수녀님이 계셨지만, 몸은 이미 텅 빈 그릇처럼 기울어 있었다.

기다릴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하루 종일 정기검진으로 MRI, 펫 시티, 골수검사를 하며 검사실을 오갔기 때문이다.

문 앞에 떡과 사과 상자를 내려놓고 문자를 보내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다음날, 문자가 엉뚱한 번호로 발송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황당함 너머로, 낮은 목소리가 고개를 들었다.

또 틀렸네. 예전 같지 않네.

겨우 용기를 내어 다시 문자를 보냈다.

신부님의 전화가 왔다. 관계는 숫자 하나에 끊어질 만큼 유약하지 않았다. 이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정말 많은 용기와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약속을 줄이며, 오직 소중한 것에만 집중한다. 못 지킬 수도 있다고,

내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먼저 고백한다. 체력이 좋은 날도 있지만, 속절없이 떨어지는 날도 있다.

이제 그 출렁임을 '실패'라 부르지 않고 '리듬'이라 부르기로 했다.

어긋난 것은 다시 맞추면 된다. 느리고, 어설프고, 자꾸 틀리는 것이 아직도 낯설다.

요즘 그런 나를 조금씩 알아간다. 평생 '잘하는 나'만 사랑하며 살았다.

제는 틀린 줄 알고도 다시 고쳐 쓰는 나, 천천히 걷는 나, 잠시 쉬어 가는 나를 배워 가고 있다.

아둘람 굴로 찾아 든 이들이 있었다.

 

빚지고, 쫓기고, 마음이 괴로운 자들. 다윗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사무1. 22,2).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를 붙들며 버텨낸 자리였다. 어쩌면 지금 그 굴 어귀 어디쯤 서 있는지 모른다.

조금 흐릿한 화면을 바라보며, 돋보기를 다시 고쳐 쓰고, 방금 고친 문장을 읽는다.

속도는 잃었지만, 오늘도 삶은 리듬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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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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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백민환 | 작성시간 26.06.10
    "검사 받으시느라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치셨을 텐데, 그 안에서 이런 깊은 영성과 삶의 리듬을 찾아내시는 모습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아둘람 굴 어귀에서 잠시 숨을 고르시며, 무엇보다 건강 먼저 잘 챙기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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