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일
어제(6/19일) 멕시코와 펼친 월드컵 축구 1:0 패를 슬퍼 설까? 지난밤부터 거친 비가 내렸다.
그 비는 아침까지 이어졌고 수영장 다녀오는 도로도 질퍽거리게 했다.
오늘 김해헌혈센터 안내 봉사활동을 위해 찾았다.
비 탓인지 헌혈자들 방문이 뜸했다.
아는듯한 헌혈자도 다녀갔다. 그는 19년 3월30일에 헌혈 300회로 내가 직접 글을 작성했던 지운용 헌혈자(https://lks3349.tistory.com/2779) 이었다.
오늘 헌혈 425회를 마치고 가며 주차증을 끊어가며 이름을 보고 알게 되었다. 그도 나를 알아보았다.
워낙 많은 헌혈자를 만나보다 보니 내가 기사를 쓴 헌혈자도 안면이 있는 듯하고 빨리 기억을 해낼 수가 없었다. 조금은 미안했지만, 나이 칠십 넘어 기억을 빨리해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헌혈자들 한 명 두 명 지나가며 60대로 보이는 남성 헌혈자가 헌혈을 마치고 적십자 포장지를 들고 휴게실에 앉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는 헌혈 50회 금장의 헌혈자 김창국 님이었다.
난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은 장(헌혈 30회), 금장(헌혈 50회), 명예장(헌혈 100회) 중에 오늘 헌혈 몇 번째 하셨어요?’ 그는 나를 보고 말을 했다.
‘헌혈 50회 했어요. 이렇게 하면서 헌혈80까지 할 수 있을까요?’ 했다.
‘아니요. 현재는 만 69세까지 할 수 있습니다. 금장 받으신 거 축하드립니다.’
‘그럼 몇 회 안 남았네요. 80까지 하려고 했는데~’ 하며 약간 상기된 듯 보였다.
헌혈자 김창국 님은 63세로 김해 내동에 거주하는 김해 토박이라고 했다.
20대 젊은 나이에 마산터미널 부근에서 친구들과 놀며 배가 고파 빵과 음료수를 준다는 말에 헌혈 버스에 올라 친구들과 헌혈을 처음 하며 직장도 없었고 돈도 없었던 때라 그때 먹은 빵 맛을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고교졸업 후 무직인 상태에 부모님 눈치 보이고 밖으로 돌며 혈기왕성했던 젊은 시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배를 굶은 탓에 헌혈 버스에 오른듯했다.
직장생활 하며 결혼도 하고 바빠 못하던 헌혈을 이곳 김해 헌혈센터를 찾으며 꾸준히 다시 찾았고 아들 둘도 낳아 기르며 성인이 된 아들들도 아버지를 따라 큰아들 헌혈 30회, 작은아들 헌혈 24~5회를 하며 자랑스럽게 헌혈 가족이 되었다고 첫 헌혈 당시를 회상했다.
현재 전혈만 50회, ‘혈장을 해도 되나요?’ 묻던 김창국 헌혈자는 혈장은 자주와야 하고 주삿바늘이 아파 전혈을 고집한다고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그래도 꿋꿋하게 나를 따라 아들들까지 헌혈하니 기분 좋고 혈액검사까지 해주니 너무 좋다.’고 말하며 ‘건강하게 헌혈 만기까지 전혈이든 혈장이든 할 것이라고 소감을 말해주었다.
김창국 헌혈자님 감사합니다.
오후에 멈춘 비에도 김해헌혈센터는 온종일 헌혈자들이 뜸했다, 내일은 맑으므로 많은 헌혈자가 방문해주길 바랄 뿐이다.
오늘도 이렇게 헌혈자도 만나고 주차권을 확인하며 헌혈 안내 봉사활동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