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제 13 강 메시지_아산UBF_서디모데목자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말씀: 고린도전서 16:1-24
요절: 16: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고린도전서는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넘어서, 그 믿음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특히 교회와 공동체를 어떻게 섬길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분명히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고린도전서의 마지막 장입니다. 바울은 이 마지막 장을 통하여 신앙이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교회와 공동체를 향한 사랑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향에 대해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예루살렘 성도를 위한 연보, 곧 구제헌금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는 단순히 헌금을 많이 하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기근과 핍박, 박해 가운데 놓여 있는 성도들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살아가는 것이 버거운 상황 속에서, 그들의 삶을 붙들어 주기 위한 사랑의 행동이었습니다.
이 연보는 결코 쉬운 요청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 교회에 대해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들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의식이 강했고, 이방 성도들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거리감이 남아 있었습니다. 복음을 통하여 하나가 되었다고 말은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서로를 다르게 보고 있는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혼란스러웠고,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바울은 바로 그런 상황 속에서 고린도 성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돕자고 말합니다. 관계가 완전히 정리된 뒤에 돕자고 하지 않았고, 마음이 다 맞아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보통 잘 알지 못하는 사람, 마음이 쉽게 가지 않는 사람을 돕는 일을 어려워합니다. ‘굳이? 내가?’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랑을 감정이나 말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실천을 통하여 사랑을 배우게 합니다. 사랑은 이해가 다 된 다음에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 속에서 길러지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연보의 방식까지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라”고 했습니다.
이는 연보를 즉흥적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명한 사람이 왔다고, 분위기에 휩쓸려서 이벤트처럼 몰아서 하는 연보는 쉽게 사람을 의식하는 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고서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순간의 분위기나 외적인 열기에 휩쓸리지 않도록, 매주 지속적으로 연보하라고 가르칩니다. 억지로, 누구 때문에 하지 말고 각 사람이 되는 대로 성의껏 사랑을 실천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바울은 이런 연보를 통하여 교회들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고, 서로 가까워질 것을 기대했습니다. 약하고 힘들 때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을 보며 비난하거나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돕는 것입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우리는 쉽게 지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계산 없이 도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먼저 우리를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자신의 계획을 말합니다. 5절부터 7절을 보십시오. 마게도냐를 지나 고린도에 가게 되면 잠깐 들렸다 가는 방문이 아니라, 겨울을 함께 보내겠다고 합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겠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스쳐 지나가듯 대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머물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관계를 이어가기를 원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만나기 위해 시간을 비워 두고 기다려 준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사랑의 표현입니다. 바울은 말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삶을 내어주는 방식으로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겠다고 말합니다. 고린도 성도들 입장에서는 서운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입니다. ‘왜 우리에게 바로 오지 않는가’라는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편의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 어디에서 일하고 계신지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오순절은 성령 강림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사람들이 예루살렘뿐 아니라 각 지역의 주요 도시들에도 많이 모였습니다. 바울에게 오순절은 단순한 달력상의 날짜가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전할 많은 사람이 모이고, 성령의 역사가 집중되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에베소에 머물기로 결정합니다.
당시 에베소는 영적으로 매우 복잡한 도시였습니다. 우상 숭배가 강했고, 특히 아데미, 곧 아르테미스 신전을 중심으로 한 종교와 경제 구조가 깊이 얽혀 있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자 기존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로 인해 대적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겉으로 보기에는 이 모든 상황이 바울의 사역을 가로막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상황을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반응보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신지를 먼저 보았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대적이 많다’는 사실을 사역이 실패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저항을 성령의 역사가 없어서 생긴 방해로 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실제로 일하고 계시다는 분명한 증거로 받아들였습니다. 그에게 대적은 물러서야 할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문을 열어 두신 자리에 서 있다는 확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편한 길을 택하지 않습니다. 갈등이 적은 곳, 환영받는 곳으로 옮겨가지 않습니다. 힘들고 불편한 자리임을 알면서도,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 두신 곳이라면 그 자리에 머물기로 결정합니다. 이것은 고집이나 오기가 아니라 사랑의 선택입니다. 사랑은 감정에 이끌려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 일하고 계신 자리를 책임지고 지키는 태도입니다.
바울의 사랑은 사역의 방향에서만 드러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분명히 나타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디모데에 대해서도 교회에 당부합니다. 디모데는 연약해 보일 수 있었지만, 주의 일에 힘쓰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교회가 그를 기죽이지 말고, 두려움 없이 사역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합니다.
이는 사역의 성과를 위한 요구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랑의 태도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바울은 아볼로에게 고린도 방문을 권했지만, 아볼로는 지금은 그 방문이 유익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바울은 이를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습니다. 명령에 무조건 따르게 하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의견을 듣고, 그 판단이 합당하다면 수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강압이 아니라, 존중과 합의 위에서 자랍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깨어 있으라, 믿음에 굳게 서라,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권면합니다. 이 말들은 단순히 마음가짐을 좋게 가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매우 현실적인 신앙의 태도를 요구하는 말입니다. 깨어 있으라는 것은 죄에 빠지지 않도록 영적으로 잠들지 말라는 뜻입니다. 신앙이 무너질 때를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조금씩 방심하고, 조금씩 타협하다가 어느새 죄에 익숙해지고, 영적으로 잠들어 버린 상태가 됩니다. 바울은 그런 상태를 경계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에 굳게 서라는 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도 계속 달라집니다. 때로는 그 흐름이 더 합리적으로 보이고, 더 편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흐름 위에 서지 말고, 말씀 위에 서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변화를 인식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변화에 휩쓸려 흘러가 버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믿음에 굳게 선다는 것은, 상황이 바뀌어도 기준을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또 남자답게 강건하라는 말은, 감정을 억누르라는 말도 아니고, 무조건 세게 나가라는 말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신뢰 위에서 책임을 지라는 도전입니다. 해야 할 말을 해야 할 때 하고, 피하고 싶은 자리라도 감당해야 할 때 물러서지 않는 용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한 걸음 내딛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런 태도들에는 반드시 기준과 방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깨어 있음도, 굳게 섬도, 강건함도 방향을 잃으면 쉽게 왜곡됩니다. 깨어 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도 있고, 굳게 선다는 이유로 고집만 남을 수도 있으며, 강건함이 사랑 없는 독단으로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모든 권면 위에 한 가지 방향을 분명히 세웁니다.
오늘 말씀의 요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4절입니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바울은 앞서 말한 모든 권면을 이 한 문장으로 묶습니다. 깨어 있으라, 믿음에 굳게 서라, 남자답게 강건하라—이 모든 말의 방향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합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방향입니다. 깨어 있음도, 굳게 섬도, 강건함도 모두 사랑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빠진 깨어 있음은 사람을 살피는 눈이 아니라, 사람을 감시하는 눈이 되기 쉽습니다. 사랑이 빠진 굳게 섬은 진리를 지키는 태도가 아니라, 고집과 독선으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사랑이 빠진 강건함은 책임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눌러버리는 힘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권면 위에 이 한 문장을 올려놓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그 어떤 신앙적 태도도 쉽게 왜곡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사람을 살리는 힘이어야 합니다. 지친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넘어지는 사람을 다시 붙잡아주는 힘이어야 합니다. 사랑이 빠진 신앙은 오히려 사람을 판단하고, 상처 주고, 밀어내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그런 길로 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이 말씀을 남깁니다. 모든 것을 잘하려고 애쓰는 그 노력 자체보다, 어떤 방향으로 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사랑은 감정적인 호감이 아닙니다. 상황이 다 이해되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감정도 아닙니다. 불편함이 있어도 선택하는 태도이고, 손해처럼 보여도 붙드는 방향이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행하는 결단입니다. 따라서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는 말은 쉬운 말이 아니라, 가장 어려운 신앙의 요청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붙들어야 할 가장 분명한 기준입니다. 우리가 깨어 있으려 애쓰는 이유도, 말씀 위에 서려고 애쓰는 이유도, 강건하게 살려고 애쓰는 이유도 결국은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교회와 성도들 사이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정리합니다. 16절 이후를 보면, 여러 교회와 형제자매들의 문안이 이어집니다. 겉으로 보면 형식적인 인사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안들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고백이었습니다.
각 지역, 각 상황에 흩어져 있었지만, 그들은 서로 다른 공동체가 아니라 한 주님 안에 있는 한 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너희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해 줍니다. 신앙은 혼자 버티는 싸움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서는 여정임을 다시 일깨워 줍니다.
동시에 바울은 매우 분명한 경고도 합니다.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단호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것은 사랑이 흐릿한 태도나 적당한 포용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 사랑의 중심은 분명했습니다. 사랑의 기준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연합과 친밀함도 참된 공동체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나 바울의 마지막 메시지는 저주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와 함께 있다”고 말하며 편지를 마칩니다. 이것은 바울 개인의 애정 표현을 넘어, 예수님 안에서 주어진 사랑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먼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고린도전서 마지막 장은 신앙이 무엇을 아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내는가의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연보를 통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을 보여주었고, 자신의 일정과 선택을 통하여 하나님이 일하시는 자리를 따르는 사랑을 보여주었으며, 동역자를 대하는 태도를 통하여 사람을 살리는 사랑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권면을 한 문장으로 묶습니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가 스스로 사랑하려고 하면 쉽지 않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사람을 품는 것도 어렵고, 손해처럼 느껴지는 선택을 감당하는 것도 버겁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더 노력해서 사랑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데려갑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먼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의 의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다는 사실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거할 때, 우리는 비로소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실천할 방향도 분명해집니다. 연약한 자를 외면하지 않고, 공동체를 향해 마음과 시간을 내며, 동역자를 존중하고, 세상의 흐름이 아니라 말씀 위에 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힘입어 행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우리는 분명한 방향을 배웠습니다. 말씀이 굳게 서고, 각자가 예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신 그 사랑으로 다른 형제자매를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아산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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