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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 : 20-50

작성자윤신숙|작성시간11.11.03|조회수35 목록 댓글 0

한알의 밀

말씀 / 요한복음 12 : 20-50
요절 / 요한복음 12 :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옛날에 어떤 사람이 어릴 적에 살았던 고향집을 방문했답니다. 그 사람이 고향집으로 들어서는 길에서 개울가에 심은 호두나무 다섯 그루가 아주 크게 자라서 주렁주렁 호두열매를 맺으며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사람이 집에 들어서면서 문득 다락방에 자기가 가지고 놀다가 숨겨놓은 호두가 생각나서 다락방에 올라가보니 역시 호두알들을 찾았는데, 그 속은 말라 비틀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같은 호두알인데, 땅에 심겨져 싹을 내고 아름드리나무로 성장하여 많은 열매를 맺는 호두알도 있고, 또 데굴데굴 방구석에 굴러다니다가 썩고 말라비틀어진 호두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세상에 데굴데굴 굴러다니다가 썩고 말라비틀어지는 인생일 수 있고, 또 아름드리 거목으로 자라나 많은 열매를 맺는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어떻게 하여야 아름드리 거목으로 자라 많은 열매를 맺는 인생이 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의 밀알의 진리를 영접하고 배워서 우리 모두가 주렁주렁 열매 맺는 거목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한 알의 밀이 죽으면(20-26)

  20절과 21절을 보십시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는 온 유대뿐 아니라 먼 이방 나라에서 유월절을 지키러 온 유대인들로 가득했습니다. 그 중에는 이방인들도 있었습니다. 말씀에는 헬라인들 몇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스하면 떠오르는 것이 민주주의와 철학입니다. 로마인들은 어떻게 하면 더 강한 군대를 만들어서 식민지를 개척하고 식민지로부터 재물과 곡식과 노예를 수집하여 부와 사치를 누릴 것인가 고민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행복이란 무엇인가? 절대 선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고 찾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연구했고 자연의 절대불변의 법칙을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사람이 가진 이성을 동원하여 인생의 진리, 삶의 본질을 깨닫고자 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이런 것을 알고 찾고자 했습니다. 한계에 부딪치는 것이 많았습니다. 이들에게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이었습니다. 몸이 죽은 후 영혼은 어떻게 되는지, 몸을 잃어버린 영혼은 영원히 어두운 밤하늘을 떠돌아야 하는지 경험과 이성으로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구원과 구원의 주 메시야를 믿고 기다리는 히브리인들의 유대교에 대해서 여러 그리스인들이 관심을 가졌습니다. 유월절을 지키러 온 이 사람들은 관심의 차원을 넘어서 유대교에 깊이 동참한 헬라인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이들이 예루살렘에서 아주 놀랍고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린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풀리지 않는 죽음의 문제를 예수님께 해결 받고 싶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먼저 빌립에게 청하고 빌립은 안드레와 상의한 후에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을 주십니다. 23,2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께서 헬라인들의 방문을 받으시고 주신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첫째,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실 때가 왔습니다. 23절 말씀에 기록된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를 말합니다. 헬라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죽으시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불합리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마굿간에 나시고 메시야이시면서 가난한 나사렛의 떠도는 전도자의 모습이 불합리였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을 가지시고도 자기민족을 구원하지 않는 것이 불합리였습니다. 더 나아가 아무런 죄가 없으신데 가장 비참한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서 참혹하게 죽으시는 것이 불합리한 것이었습니다.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성을 초월하는 위대한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이성으로써 알 수 없고 체험할 수 없는 진정한 승리로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가장 위대한 승리, 진정한 승리, 참된 영광을 얻으십니다. 이제 그 때가 왔음을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 이것이 겉으로 보기에 이성적인 납득이 어려운 일입니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돈 중심으로 살지 않는 것! 명품사고 성형수술도 하고 피부미용도 하며 자기를 가꾸고 뽐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나, 남들 다하는 게임, 남들 다하는 연애 마음껏 하지 못하면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따져볼 때 손해 보는 일입니다. 왜 그런 것을 다 누리지 못하나요? 해야 한다는 이유가 아주 매우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승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있음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이유에 집착합니다. . 십자가를 통해서 진정한 영광,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습니다.

  둘째, 죽어서 열매 맺는 비밀은 만물에 깃든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밀알의 비유를 통해서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헬라인들은 자연만물에서 만고불변의 진리를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이들이 수학을 통해서 증명하고 법칙을 찾은 것은 그런 노력의 일환입니다. 예수님께서 밀알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헬라인들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쉽게 이해하고 영접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헬라인들은 자연법칙에 대해서는 아주 쉽게 수긍하고 잘 받아들였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밀알 속에는 배와 배젖이 있습니다. 여기서 배는 자라나서 식물로 성장하는 것이고 배젖은 그 양분이 되는 것입니다. 밀알이 죽는 다는 것은 배젖이 배의 양분으로 완전히 분해되는 것을 말합니다. 배는 배젖이 분해되어 제공하는 양분을 먹고 자라나서 뿌리가 나고 잎이 나고 줄기가 나고 열매를 맺는데 4개월이 지나 80-120개의 밀알을 열매로 맺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서 죽음으로써 4개월 후 약100개의 밀알이 되는 것은 수학적으로 백배의 성장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그 100여개의 밀알을 그대로 다시 심어서 결실하고 이것을 반복해 나가면 기하급수적으로 열매는 늘어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인생들이 영생과 하나님나라의 복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영생의 열매로 맺는 한 알의 밀알이 되십니다. 
  아담 한사람의 죄로 인하여 이 땅에 죄와 사망이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한 사람의 순종하심과 죽으심으로 구원과 영생의 풍성한 열매가 온 누리에 가득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은 이러한 구원과 생명의 풍성한 열매를 위한 것입니다.

  셋째, 우리도 이 진리를 따르면 복이 있습니다. 25,26절을 보십시오. 밀알의 진리는 예수님께만 적용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인생에도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예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자신의 이기적인 소원과 욕망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럴 때 결코 죽지 않습니다. 오히려 얻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 최후의 승리를 얻습니다.
  인본주의는 단 한 점도 자기를 죽이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에 대해서 터치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자기를 결코 죽이지 않는 밀알에서 아무런 열매가 없듯이 자기를 죽일 줄 모르는 인생은 결국 아무런 인생의 열매가 없습니다. 오히려 땅에 떨어져 썩지 않고 그대로 있는 밀알을 날아가는 새가 날름 삼켜버립니다. 자기를 비우지 못하는 인생을 마귀가 삼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배운 대로 자신을 비우고 자신을 한 알의 밀알처럼 온전히 썪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100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오랜 신앙경력이 있어야 열매 맺는 것이 아닙니다. 큰 직분이나 타이틀을 가져야 맺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를 죽이는 사람이 열매를 맺습니다. 어린 사람이건 나이든 사람이건, 초신자이건 장로이건 죽이는 사람은 열매를 얻습니다.

27,28a절을 보십시오.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밀알의 진리를 가르쳐 주신 예수님께서 육체에 매여 죽기를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어떻게 십자가를 지셨는가? 가르쳐주시고 보여주시고자 하십니다. 죽어야 열매맺는다. 죽으면 다시 산다 말로만 가르치는 것은 감동과 영향력이 약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깊이 이해하시는 분이십니다. 육체에 매여서 죽기를 두려워하는 우리들에게 예수님도 죽기를 부담스러워하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고통했음을 보여주시고 다만, 그러한 한계를 기도로서 극복하셨음을 보여주십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고통하시면서도 하나님의 힘을 힘입어서 십자가를 감당하셨으니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서 하면 어려운 십자가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5:7-9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님도 고난속에서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예수님도 육체에 계실 때에는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셔서 십자가를 감당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연단을 통해서 순종을 잘 배워나가면 됩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 주신 기도를 배우면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를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28절 후반절을 보십시오.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십자가를 감당하시고자 하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직접 하늘로부터 음성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30-3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 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세상을 뒤덮은 죄와 사망의 어둠의 세력들은 그 힘을 잃고 쫓겨나게 됩니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이 모든 인류를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승리의 십자가요, 영광스러운 십자가입니다.

2.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34-50)

  34절을 보십시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왜 죽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영원히 산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죽는다고 하니 이게 무슨 말이냐고 반문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구절만 믿고자 합니다. 성경 곳곳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음을 당하신다는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자 합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원하는 메시야만을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어떻게 도우십니까?

35,3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유대인들은 자꾸만 안 믿는 쪽으로 가고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든지 예수님을 부인하고자 합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을 어둠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안믿으려고 하는 마음, 고집스러운 마음, 불신하려는 방향을 고치는 것입니다.

37-4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오래도록 유대인들을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끝내 회개하지 않으려고 작정하는 자들, 예수님을 믿지 않으려고 작정하며 배척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입을 수 없게끔 하셨습니다.

42,43절을 보십시오. 또 어떤 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믿으면서도 이를 드러내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땅위에 가진 것이 많고 이루어 놓은 것이 많은 자들로써 사람들에게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하는 자들이었습니다.

44,4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지극히 경외한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배척하고 믿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것은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46-5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어둠에 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구원을 주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저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지 않는 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주신 말씀이 마지막 날에 예수님을 배척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영생이며 이 영생의 말씀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한 알의 밀은 작습니다. 그러나 그 생명력과 가능성은 놀랍습니다. 죽으면 그 가능성과 생명력은 놀라운 열매로 나타납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도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죽지 못하면 한 알 그대로 일 뿐입니다. 죽으면 100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 모두가 열매맺는 인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00배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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