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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15-31

작성자윤신숙|작성시간11.11.03|조회수30 목록 댓글 0

다른 보혜사

말씀 / 요한복음 14:15-31
요절 / 요한복음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오늘 성경말씀에는 우리에게 나만의 전담 변호사가 오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보혜사’는 변호사, 중보자란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오시는 나의 중보자를 깊이 영접하고 믿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성령의 약속(16-21)

  15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 계명을 주셨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예수님과의 관계와 연관된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축복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옵션의 문제가 아닙니다. 꼭 지켜야 하는 문제입니다. 지킬 만한 것이면 지키지만 못 지킬 것 같으면 지키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성격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지키기 쉬운 것 같지만 이것만큼 지키기 어려운 계명이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기 어려운 것은 우리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기 어려운 것은 낮아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실 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사랑하라 고 하셨습니다. 서로 사랑의 기준은 예수님이신데, 우리는 예수님처럼 낮아지기 어렵고 다른 사람을 내 몸같이 섬겨주기가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서로 사랑하라’ 하시는 계명을 절대적으로 지킬 수 있습니까?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다른 보혜사를 하나님께 구하여 주십니다. 이 다른 보혜사가 제자들과 영원히 함께 있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보혜사 다른 도와주는 분을 우리에게 보내주시도록 하십니다. 그러면 다른 보혜사는 좀 더 자세히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영이신 하나님이십니다. 17절 전반절을 보십시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요한복음에서 “진리”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이십니다. ‘진리의 영’이란 영이신 하나님. 영이신 예수님임을 말해줍니다.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 예수님이시라면 영으로써 우리에게 오시는 하나님이 새로운 보혜사입니다.

  둘째, 우리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7절 후반절을 보십시오.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아브라함의 시대에, 모세의 시대에 하나님은 사람이 감히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시대에 인간의 몸으로 계신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서만 사람들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다음에 오시는 보혜사는 우리 속에 들어와 계십니다.
  이와 같이 새로운 보혜사는 영이신 하나님으로써 우리 속에 내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영으로 내안에 계심으로 인하여 우리에게는 어떤 은혜로운 역사가 일어납니까?

  첫째,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떠나 십자가에 죽으시고 또 부활하신 후에는 승천하시므로 자기들이 홀로 세상에 버려진 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지금 학과공부를 하는 가운데 양을 치는 생활을 하다 보니 혼자서 참 힘에 겹습니다. 여러 일들을 겪다보면 정말 나는 혼자 인 것 같습니다. 세상에 홀로 버려져서 고립무원에 처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보혜사께서 나를 지켜주시고 나를 늘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는 바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시는 바입니다.

  둘째, 우리를 살리십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습니다. 새로운 보혜사를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도 살리십니다. 새로운 보혜사는 우리 안에 계시면서 끊임없이 나를 살리는 일을 하십니다. 우리는 상하기 쉽고 쇠하기 쉽습니다. 상처받기 잘하고 죽을까  두려워합니다. 세상의 권세 잡은 사단과 악한 영들은 늘 우리를 사망으로 몰고 가려 합니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습니다. 새로운 보혜사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끊임없이 우리를 살아나게 하십니다. 새로운 보혜사께서 우리를 항상 안전하게 하나님 안에 거하게 하십니다.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셋째, 계명을 지키게 하십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1절 말씀을 잘 보면 계명을 그냥 지킨다고 되어 있지 않고 계명을 가지고 지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명을 가진다는 것은 계명을 마음속에 잘 간직하는 것을 말합니다. 새로운 보혜사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의 계명을 잘 간직하게 하십니다. 마음에 계명을 잘 간직하고 늘 간직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 계명을 매일 매일 지켜 행하게 됩니다. 본래 말이란 마음의 생각과 인격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며 행동이란 마음의 추구하는 바와 마음의 의지가 겉으로 행해지는 것입니다. 말이나 행동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 되려면 근본 마음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마음이 타락하기 쉽고 욕심에 더럽혀지기 쉽지만, 새로운 보혜사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계명을 지킬 수 있게 해주십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계명을 지키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 사람에게 예수님을 나타내 주십니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예수님은 새로운 보혜사를 우리에게 약속해 주십니다. 새로운 보혜사는 다른 이름으로 “성령”이라 불리십니다. 새로운 보혜사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영으로써 우리들 각자의 속에 거하십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나와 늘 함께 해주시며 나로 하여금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계명을 지키게 하셔서 하나님께 사랑받게 하십니다. 이 약속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이 약속을 따라 우리 안에 와 계시는 성령을 기뻐하고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하겠습니다.

2.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22-31)

  22절을 보십시오. 가룟유다 아닌 다른 유다가 말했습니다.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이 사람은 본래 열심당원이었습니다. 운동권 이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현실의 변화에 대한 갈망이 컸습니다. 그는 다시 한 번 예수님께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에게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나타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상 메시야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라 대답하십니까?
  23,2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에게 많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역사의 비밀과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땅에 오신 메시야이심을 다 가르쳐주셨습니다. 문제는 백성들이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그 말씀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미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그 말씀을 지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메시야이심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말씀을 수없이 듣고도 그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25-27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말씀하신 보혜사의 이름을 말씀하십니다. 그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실 때 제자들에게 어떤 역사와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이루시는 역사는 말씀을 친히 가르쳐 주시고 또 예수님께 들은 말씀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들의 내면에 말씀을 심어 주시고 들은 말씀을 다시 생각나게 하실 때 우리의 내면에 임하는 것은 평안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다릅니다. 세상에서도 우리가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조건적입니다. 지속적이지 못합니다. 돈을 벌어 두었을 때 마음이 평안합니다. 사람들로부터 인기가 있고 인정을 받을 때 마음이 든든합니다. 이런 평안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돈은 있다가 없고 없다가 있습니다. 돈 때문에 얻은 평안은 돈에 따라서 생겼다 사라졌다가 합니다. 사람들의 평가는 때에 따라 바뀝니다. 영웅대접을 하다가도 한순간에 역적으로 몰기도 합니다. 영웅대접 받을 때 평안할지 모르나 역적대우 받으면 원통하고 한을 품게 됩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주시는 평안은 그런 평안과 다릅니다. 조건적이지 않고 일시적이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평안을 맛보며 제자들은 마음에 근심이나 두려움을 내쫓을 수 있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십니다. 부활하신 후에는 다시 승천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것을 슬퍼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예수님은 가시는 대신 이번에는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누구나 시간과 공간에 제한 없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오시는 것을 우리는 기뻐하여야 합니다.
 
  2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미리 말씀하시는 것은 나중에 이러한 모든 역사가 이루어질 때에 믿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30,3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제 십자가에 죽으시는 때가 임박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저주와 심판을 받고 숨을 거두실 때 세상은 마치 세상의 임금인 마귀가 승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을 보고 예수님이 마귀에게 져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처럼 보이고 마귀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한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는 것은 마귀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살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만민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죽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시고 그 뜻에 순종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가 승천하셔서 하늘에 오르십니다.  우리에게 영이신 하나님 성령을 보내어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 모두에게 인격적으로 임하십니다. 우리 모두를 도우십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도우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내면에 거하시며 놀랍고 은혜로운 하나님의 말씀역사 평안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지금 이 시대는 성령의 시대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성령중심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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