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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1-27

작성자윤신숙|작성시간11.11.03|조회수38 목록 댓글 0

내안에 거하라

말씀 / 요한복음 15:1-27
요절 / 요한복음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포도나무 우리는 가지 하나님은 농부로 비유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도나무 가지에 많은 열매가 맺힐 수 있도록 많은 일을 하십니다. 가지된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한번 뿐인 우리의 인생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비밀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 각 사람이 저마다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로 가득한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참 포도나무 예수님(1-17)

  1,2절 말씀을 보시시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오늘 말씀은 유명한 포도나무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참 포도나무에  비유하십니다. 비유에서 하나님은 농부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포도나무를 심으신 것은 포도나무에 달린 가지로부터 많은 열매를 얻기 위함입니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는 좋은 포도열매가 맺힐 수 있도록 거름 주시고 포도나무를 상하게 하는 벌레들을 잡아 주십니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는 좋은 열매가 맺힐 가지와 그렇지 못한 가지를 살피십니다. 열매 맺힐 가지를 남기고 다른 가지들을 잘라내 주십니다.    나무로부터 공급되는 양분이 열매 맺는 가지로 잘 들어가서 그 가지에 맛있고 좋은 포도열매가 풍성하게 맺도록 하십니다.

  여기에서 깨끗케 하시는 것이란 모임 전체로 볼 때는, 인본주의의 죄, 육신과 쾌락주의 죄를 가지고 회개치 않는 자들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 개인의 신앙으로 본다면 우리 안에 열매 맺지 못하게 하는 나쁜 습관, 그릇된 사고방식, 비뚤어진 마음중심을 회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제자들은 은혜 입은 가지들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 의해서 이미 깨끗하게 된 가지들입니다. 깨끗하게 된 가지들이 할 일은 앞으로도 쭉 참 포도나무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계속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열매가 저절로 열립니다. 참 포도나무에는 생명력이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참 포도나무 우리 주 예수님은 풍성하고 무한한 생명력을 그 가지들에게 공급하여 주십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절로 열매를 맺듯 우리들도 예수님 안에 계속 있기만 하면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가지는 예수님께 잘 붙어 있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면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가지가 포도나무와 잘 연결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첫째, 가지는 일방적인 은혜로 포도나무에 붙어 있게 되었습니다. 좋은 가지인가 잘라낼 가지인가 판별하는 것은 전적으로 농부의 판단입니다. 제자들은 버려지지 아니하고 깨끗하게 되어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깨끗하게 된 가지가 되었습니까? 다시 3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제자들이 깨끗하게 된 가지가 되게 한 것은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의 능력과 은혜로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16절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니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시고 세우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를 참 포도나무 예수님께 붙어 있게 하신 것은 예수님의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둘째, 가지는 계속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가지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은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느냐 잘리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나뭇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어야 살아 있습니다. 떨어지면 꼬챙이에 불과합니다. 생명력 잃은 마른 꼬챙이는 불을 지피고 불을 피우는 데에 쓰여 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4절을 보십시오.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7절 전반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마음에 잘 받는 것이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참 포도나무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예수님의 계명입니다.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은 “서로 사랑하라”하신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일을 할 때 참 포도나무 예수님께 붙어 있게 됩니다. 반대로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참 포도나무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여야 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은 사랑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내 가까이 있는 사람, 내가 잘 아는 사람, 그래서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정말 예수님을 아프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로마를 몰아내주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자기들의 세속적인 소망을 이루어주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자기 양들을 빼앗아간다고 시기하며 미워했습니다. 결국 이방인들에게 넘겨 참혹하게 죽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자기 꿈을 좇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앞에서 자기들끼리 늘 주도권 다툼을 벌였으며 서로 사랑하지 않고 서로 견제하고 시기하며 질투했습니다. 이기적이었고 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그중에는 예수님을 파는 자가 있었습니다. 또 기도하라고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다가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인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가까운 자들은 이렇게 하나같이 사랑할만한 꼬투리가 없었습니다. 사랑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서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하신 것과 같이 사랑하기 어려운 형제를 서로 사랑하면 예수님안에 거하는 자가 됩니다. 그러면 참 포도나무 예수님께 붙어 있는 가지가 될 때 어떤 결과가 있습니까?

  첫째,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열매 맺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마지막 날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었는가 결산하십니다. 우리는 열매 맺어야 합니다. 열매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내면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성령의 변화된 내면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내면에 맺는 성령의 열매가 크게 9가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우리는 외적으로 전도의 열매, 제자양성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다니엘서12:3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진리의 말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큰 인생의 열매입니다. 이 모든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크게 축복하십니다. 이 모든 열매는 우리가 참 포도나무 예수님께 붙어 있을 때 주시는 것들입니다.

  둘째, 우리의 기도를 다 이루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또 16절 후반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참 포도나무 예수님께 붙어 있는다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며 포도나무 예수님께 붙어 있기만 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다 받게 됩니다.   

셋째,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8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우리가 스스로 혼자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죄의 열매나 맺으며 살고 인생의 쓴 뿌리만 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참 포도나무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고 상처를 주는 자가 아니라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고 들며 나며 하나님의 복을 전하는 복의 근원이 됩니다. 참 포도나무 예수님께 붙어 있을 때 그렇게 됩니다.

넷째,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됩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며 참 포도나무 예수님께 붙어 있을 때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됩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해 주십니다(14:21). 예수님의 계명을 행하며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예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달아 그 은혜가 심령에 충만하고 가득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예수님의 사랑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해 주시는 자가 됩니다.

  다섯째,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나의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역사 이래로 수많은 왕들은 자기의 권력을 이용하여 인생의 기쁨을 맛보고자 했습니다. 각종 금은보화를 모으고, 온갖 맛있는 음식을 먹고 최고로 멋진 옷을 해 입었습니다. 마음에 원하는 모든 여자를 왕비로 후궁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에 그들이 원하는 기쁨은 얻을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영화로운 솔로몬 왕이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이렇게 돈으로도 얻지 못하고 인간의 사랑과 쾌락으로도 얻지 못하는 그 기쁨이 참 포도나무 예수님께 붙어 있을 때 우리에게 가득하게 됩니다. 진정한 인생의 기쁨을 예수님께서 주십니다. 기쁨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여섯째, 예수님께서 친구로 삼아 주십니다. 13-15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 하실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따라서 우리도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사랑을 하면 이것은 가장 큰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참 포도나무 예수님께 붙어서 예수님의 하라 하신 사랑을 행하는 사람을 예수님께서 이제는 친구라고 하십니다. 고대의 노예는 주인이 하는 명령에 대해서 그 이유, 동기, 목적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순종만 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안에 거하는 자, 참 포도나무 예수님께 붙어 있는 가지는 노예가 아닙니다. 종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친구로 삼아 주십니다. 모든 역사의 계획과 원칙들을 다 알려 주십니다. 역사의 동역자로 삼아 주십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은 그냥 불러보신 것이 아닙니다. 속박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은 우리의 삶이 풍성한 열매로 가득하게 축복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며 마음껏 하나님께 구하고 또 구한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풍성하게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동안 만나는 수많은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랑을 배우고 사랑으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고 행복하게 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거하면서 참 포도나무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서 우리가 열매로 가득하되 특별히 사랑의 열매가 가득한 인생이 되게 하심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사랑으로 가득해지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은 참 포도나무 예수님께 붙어 있습니까? 그동안은 어떤 포도나무에 붙어 있었습니까? 참 포도나무에 견고하게 붙어 있기를 기도합니다.


2. 세상의 미움(18-27)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열매를 맺으며 사는데, 이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핍박하는 자들과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소속이 틀리기 때문입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은 세상에 속한 자들입니다. 세상에 속한 것은 곧 사단에 속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께 속하였습니다. 영생에 속하였습니다. 세상에 속한 자들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그 미움으로 예수님께 속한 자를 미워합니다. 세상의 미움을 받을 때 우리는 낙심하기 쉽습니다. 사랑하며 사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나? 사랑의 사도가 되었는데 왜 나를 미워하나? 그것은 세상과 하나님, 심판과 영생, 저주와 축복으로 서로 소속이 틀리기 때문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미움 받으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미워한 자들이 그 제자들을 미워하고 핍박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핍박과 미움을 당할 때에 주님께서 당하신 핍박을 함께 당하는 것임을 알고 이를 감당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21-25절을 보십시오. 핍박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몰라서 예수님을 핍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무지해서 그랬다고 핑계 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충분히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기 싫어하고 자기유익을 구하고자 하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싫어하고 예수 믿는 자들도 함께 핍박한 것입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핍박당할 때 우리는 무슨 말을 할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 때 보혜사 성령께서 고난당하고 핍박당하는 자들을 도우십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낸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 보혜사 성령께서는 고난과 핍박 중에서 오히려 예수님을 증거 하실 것입니다. 또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증거하는 담대한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가 열매 맺습니다. 인생은 열매싸움입니다. 누가 더 많은 열매를 맺는가?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는 사람은 지혜롭습니다.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꼭 붙어 있으면 저절로 열매를 맺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께 꼭 붙어 있는 가지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예수님께 꼭 붙어서 사랑의 열매, 풍성한 최고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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