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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8:1-40

작성자윤신숙|작성시간11.11.03|조회수16 목록 댓글 0

진리의 왕 예수님
말씀/ 요한복음 18:1-40
요절/ 요한복음 18:37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왕이신 분이 따로 있습니다. 진정한 왕은 진리의 왕 예수님이십니다.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진리의 왕이신 예수님과 진리의 왕을 알아보지 못하는 여러 사람들이 나옵니다. 말씀을 통해서 진리의 왕을 알아보고 그 음성을 듣는 복된 사람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진리의 왕으로부터 풍성한 은혜와 선물을 받는 인생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1. 체포되신 예수님(1-18)
1,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 잡수시던 방을 나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시고 기드론 시내 건너편 겟세마네 동산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이곳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던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가룟유다가 예수님께서 밤에 기도하시는 곳이란 것을 알고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체포당하시고자 이곳에 오셨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예측대로 유다가 로마 군병들과 성전을 지키는 유대 경비병들을 동원하여 등불과 횃불을 밝히고 중무장을 한 채 그리로 왔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배신할 뿐 아니라 예수님을 확실하게 체포할 수 있도록 이날 밤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영원한 파멸의 발걸음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가라사대 내로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저희와 함께 섰더라” 예수님께서는 지금 체포되시면 어떤 고난을 당하실지 이미 아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찾는 자들에게 오히려 “내로라” 하시며 드러내셨습니다.
  6-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 때에 저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 지라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저희가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내로라” 하시자 잡으러 온 자들은 깜짝 놀라 뒷걸음치다가 전부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그들은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손에 무기를 들고 왔으나 크게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오히려 담대하게 “내로라” 하시자 그들은 크게 놀란 것입니다.
예수님은 체포되시는 상황에서 무엇 때문에 이렇게 스스로를 나타내신 것입니까? 9절을 보십시오.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 하였삽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호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의 본이십니다. 체포되셔서 목숨을 잃으시는 때에도 자신을 버리시고 택하신 제자들을 보호하시는 예수님은 진정한 선한 목자이십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이때 칼을 빼어들었습니다.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쳐서 오른쪽 귀를 베어벼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예수님의 길을 알지 못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잔을 말씀하십니다.

12-1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체포되셔서 결박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악한 행악자처럼 체포당하시고 손과 팔이 결박되셨습니다. 유대의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안나스에게로 끌려가셨습니다.
15-18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예수님의 예언대로 닭 울기 전에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진리의 길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멀찍이서 예수님을 따랐지만, 허무하게 계집 종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세 부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팔고 군대를 이끌고 온 유다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을 잡으러 온 군병들입니다. 셋째는 검을 들고 오버액션을 하다가 결정적인 때에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마는 베드로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진리에 의해서 인도함을 받지 못하는 인간 군상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진리를 영접하지 못할 때 유다는 영혼을 팔았습니다. 진리를 알지 못할 때 군병들은 검을 들고도 두려워하다가 자빠지고 맙니다. 진리를 체질화하지 못할 때 베드로는 칼을 빼들고 진리의 길을 훼방하다가 허무하게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가 되고 맙니다. 오늘날 우리가 진리를 알고 진리의 길을 보여주시는 예수님을 아는 것이 시급합니다. 유다가 진리를 배신하게 된 것은 이 땅위에서의 자기 꿈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군병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진리를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길을 방해하다가 나약하게 된 것은 진리를 피상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내가 왕이니라(19-40)

  19절을 보십시오. 안나스는 예수님께 그의 제자들과 그 교훈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이 어떠합니까? 20,2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의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저희가 나의 하던 말을 아느니라” 이들은 야간에 불법 심문을 벌이고 있습니다. 재판에는 증인을 데리고 와야 하는데 증인 없이 재판하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교훈에 대해서 들은 자들이 많고 그들 가운데에서 얼마든지 증인을 세울 수 있음을 지적하여 재판의 불법성을 지적하십니다.

  22-24절을 보십시오. 당당하신 예수님의 지적에 곁에 섰던 하속하나가 예수님을 손으로 쳐가며 위압감을 주고자 했으나 안나스는 가야바에게 예수님을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산헤드린에서 정식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진리에 속하지 않은 자들은 불법적입니다.

  25-27절은 끝내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그 후에 닭이 우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난 앞에서 당당하신 예수님과 달리 베드로는 철저하게 실패하고 맙니다. 고난을 준비하지 못하고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한 그는 자신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가슴아프게 체험하여야 했습니다.
28-32절을 보십시오. 유대인들은 가야바에게로 예수님을 끌고 갔다가 다시 로마총독의 관정으로 예수님을 끌고 갔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면서도 유월절을 깨끗하게 먹겠다고 이방인의 관정 밖에서 예수님을 고소하였습니다. 이들에게 총독 빌라도가 나와서 질문합니다.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그는 유대인들이 사소한 재판까지 자신에게 의로하는 것이 귀찮고 성가시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일 마음으로 이곳에 끌고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사형을 언도 받게 하고자 고소하였음을 빌라도에게 밝힙니다.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병든 자를 고쳐주고 귀신 들린자에게서 귀신을 쫓아 온전케 해주셨습니다. 가는 곳마다 사랑의 복음을 전하셨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에게 가르쳐 주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명과 구원의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며, 기쁨과 영생의 진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만이 하실 수 있는 놀라운 기적들을 보았고 구약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죄인으로 고소당하십니다. 가장 무서운 죽음을 당하시려 이방인에게 끌려 나오셨습니다.

  이는 모두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말씀을 성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에게 사형을 당하게 되면 돌에 맞아 돌아가시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높이 들려야 하리라는 예언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로마인에게 끌려가 고소를 당하심으로써 십자가형을 받으시고 그럼으로써 그리스도에 관한 성령의 예언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에 기록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망의 메시야 이십니다. 그럴지라도 예수님을 시기하고 하나님의 다들 되심을 부인하며 이방인들에게 고소하는 이스라엘의 죄는 무겁기 그지없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빌라도는 결코 눈앞에 와 계신 예수님이 왕 일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질문합니다. 나약하게 체포되어 동족들에 의해서 고소당하는 나약한 전도자의 모습은 결코 왕의 모습이 아닐것이라 생각하며 질문한 것입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예수님은 빌라도가 ‘유대인의 왕’이란 말의 의미를 아는지 반문하십니다. 35절을 보십시오.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빌라도는 예수님을 눈앞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그는 진리를 가장 가까이서 알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진리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성을 하였느냐” 그는 진리를 눈앞에 두고도 진리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예수님이 어떤 왕이신지 설명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왕이십니까?

첫째, 혈과 육으로 이루어지는 세상나라의 왕이 아니십니다. 3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유대인들은 로마총독에게 예수님이 마치 반란을 주도한 반역죄인인 것처럼 죄를 뒤집어 씌웠습니다. 예수님은 혈과 육에 속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예수님은 군사를 모아서 저항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땅위에 세상의 왕국을 세우려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들간에 싸움이 나고 세상에 전쟁이 나는 것은 땅위에서 왕이 되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이 왜 일어났습니까? 먼저 식민지와 해외시장을 차지한 나라들에 대해 식민지와 해외시장을 차지하지 못한 나라들이 그것을 빼앗기 위해서 생겨났습니다. 땅위에서 왕이 되고자 할 때 전쟁이 나고 수많은 생명들이 희생되는 피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날 학교가 학교를 상대로 경쟁하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선생님과 경쟁하고자 하니 올바른 교육이 희생됩니다. 입시결과를 위해서 많은 어린 학생들이 고통스러운 학창시절을 보내야 합니다. 또 교회에서 자기의 헤게모니를 차지하고자 할 때 수많은 상처가 생겨납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 땅위에 힘으로 세워지는 세상나라가 아닙니다.

둘째, 예수님은 진리의 왕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자 빌라도가 되물었습니다.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해주십니다. 37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예수님은 왕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세상적인 왕이 아니라 진리의 왕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왕이시므로 예수님은 진리를 위하여 나신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한 아기의 모습으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것과 말구유에 누우신 것과 나사렛사람이라 칭함을 받으시고 결국은 그 백성들의 미움을 받아 십자가에 죽으시는 이것이 모두 진리에 속한 역사였습니다. 진리는 십가가를 통한 구원과 부활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하는 영광을 버리신 것이 진리이며 그렇게 버림당하고 죽으셨으나 다시 살아 나셔서 최후의 승리를 얻으신 것이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태어나심과 자라나심과 그의 공생애와 모든 가르치심과 죽으심이 그 자체로 온전한 진리가 되십니다.
이러한 진리의 왕 예수님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그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사람의 말, 세상의 말, 내 생각과 이성의 말을 듣지 말고 진리이신 예수님의 소리, 진리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38-40절을 보십시오. 빌라도는 진리의 왕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나 “진리가 무엇이냐” 되물으며 약한 죄인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가볍게 깔보았습니다. 그는 대답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예수님을 무시한 채 유대인들에게 나가 그들과 대화했습니다.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ㅇ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빌라도가 제시한 타협안에 대해서 유대인들의 무리는 도리어 강도였던 바라바를 풀어달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진리를 거절하는 무리들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배우는 바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진리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고 진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따르고 싶은 것이 많을 것입니다. 젊을 때는 놀고 싶은 본성이 있습니다. 사람은 가지고 싶은 욕심이 강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남들이 하는 것과 같이 하고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리의 왕을 따르고 진리 자체를 영접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진리를 따르지 못할 때 뼈아픈 실패와 고통이 있습니다. 역사가들은 빌라도가 권력에서도 밀려나고 말년에 자살하여 삶을 마쳤다고 전합니다. 진리의 왕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은 역사상 가장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학살의 희생자들이 됩니다. 유다는 목매어 죽을 때 몸이 거꾸로 되어 배가 터지고 창자가 흘러나와 죽었습니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진리를 알고 진리를 만나고도 진리의 왕을 영접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 앞에 무서운 심판을 받아야 하는 사실입니다. 진리는 생명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귀하게 알고 진리를 기쁨으로 영접해 들여야 합니다. 진리를 위해서 인생을 투자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진리되신 예수님을 알고 진리의 왕 예수님을 자기 인생의 왕으로 섬기는 자들에게는 영생과 구원이 보장됩니다. 그의 삶은 풍성한 진리의 열매로 가득하게 됩니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모든 해답을 줍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길을 알려줍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진정한 승리를 얻게 합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참 기쁨을 줍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가득한 만족을 줍니다. 진리는 우리를 가장 지혜로운 인생이 되게 합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 진리를 얻으려면 진리의 왕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의 왕 예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진리로서 우리를 섬겨주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진리로서 통치하시기 때문에 무섭거나 어렵거나 괴롭지 않습니다. 진리의 왕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잘 알기를 기도합니다. 진리의 왕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진리의 왕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생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가 진리의 왕 예수님을 내 인생의 왕으로 섬기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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