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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1 : 1-25

작성자윤신숙|작성시간11.11.03|조회수19 목록 댓글 0

나를 더 사랑하느냐

말씀 / 요한복음 21 : 1-25
요절 / 요한복음 21 : 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본문 말씀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러모로 실패한 베드로와 제자들을 먼저 사랑해 주시고 그들과 사랑의 깊은 관계를 회복하시는 것이 나옵니다. 베드로에게 주님의 양들을 돌보는 사도의 직분을 주시는 것이 나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도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성을 견고히 하고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충만히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와서 조반을 먹으라(1-14)

  부활하신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여러 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고, 도마를 제외한 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으며 도마까지 참석한 열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갈릴리 지방 디베랴 바다에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디베랴 바다는 갈릴리 호수입니다. 이곳은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지였습니다.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곳곳에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시고 말씀을 가르치시던 동네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가 다른 일곱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자기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다며 일어났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같이 따라 나섰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세상과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지금은 구별된 모습을 잃었습니다. 이들이 예전 그물을 던지던 디베랴 바다에 배를 띄웠지만 고기들도 이들을 우습게 보았습니다. 하나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사명인이 결코 잃지 말아야 할 것은 부활신앙입니다. 사명인에게 부활신앙이 없으면 가장 불쌍한 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사명인의 삶은 축복된 삶이며, 부르심을 입은 인생은 천사도 흠모하는 영광스러운 인생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믿음이 뒷받침 되지 못하면 사명도 두렵고 사는 것도 두렵습니다. 모든 것이 두렵고 걱정됩니다. 불쌍한 사람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어둠이 물러가고 동이 터 오는 이른 아침이 되었습니다. 바닷가에 한 사람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괴로이 배를 몰고 있는 제자들에게 큰 소리로 물으셨습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제자들은 ‘없나이다.’ 대답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제자들이 이 방향을 따라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 보았더니 갑자기 엄청난 고기떼가 그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너무 많아서 그물을 들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이 상황은 예전에 겪은 것입니다. 이 경험은 예전에 해본 것이었습니다. 시몬이 처음 예수님을 만날 때 예수님께서 주시는 방향을 따라 깊은 데에 그물을 던졌을 때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를 잡았었습니다. 그날 요한과 야고보은 그 광경을 보았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요한이 예수님이신 줄 알아보았습니다. 소리쳤습니다. “주시라” 그러자 베드로가 벗은 웃옷을 걸쳐 입고는 물에 뛰어들어 헤엄을 쳐서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배를 몰고 해변으로 나왔습니다. 제자들이 해변에 도착했을 때 해변에는 어떤 광경이 벌어졌습니까?
  9절을 보십시오. 해변에는 생선 숯불구이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떡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고기 못 잡고 힘들어 하는 제자들의 고기를 잡게 해주시고 그들이 아침에 춥고 허기져 있을 것을 아시고 아침 식사를 준비해놓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잡은 고기도 가져 오라고 하셨습니다.(10절) 베드로가 그물을 끌어 올려서 고기를 세어 보니 153마리나 되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체포되실 때 모두 도망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는 숨어서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까지 해가며 부인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으라 했는데 갈릴리에 와서 고기나 잡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고기를 못잡고 있을 때 고기를 잡게 해주시고 그들을 위하여 사랑의 아침 식사를 준비해놓으셨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아무 말을 못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직접 떡과 생선을 나누어 섬겨주십니다.

  이상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배우는 바가 무엇입니까?

  첫째,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습니다. 돌아가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올 수 없습니다. 돌아가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신화속의 위인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역사와 기록속의 예수님으로 생각해서는 않됩니다.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도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둘째,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전의 예수님의 사랑 그대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실 때나 부활하신 후에나 그 사랑이 변함없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사랑하시고 택하신 제자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인격적인 사랑에 대해서 확신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소망과 영광뿐 아니라 따뜻하고 인격적인 사랑을 변함없이 주시는 분이십니다.

2.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15-25)

  15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사랑이 가득한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질문이 신혼부부간에 오가는 대화로 압니다.
  이 질문은 베드로를 위한 것입니다. 지금 베드로는 모든 면에서 자신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관계가 잘못된 것은 전적으로 베드로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나는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쳐놓고는 정작 예수님께서 심문을 당하실 때 계집 종 앞에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입으로 예수님과의 공식적인 관계를 단절시킨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연약함으로 인해 단절된 사랑의 관계를 다시 세우십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베드로는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나는 버리지 않겠나이다” 큰소리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아신다고 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같은 질문을 다시 하십니다.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 다시 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이것은 베드로의 지난 허물 때문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이제 사랑의 관계를 새롭게 세우는 일도 그와 같이 세 번 정식으로 질문하십니다. 베드로의 실패를 만회시켜 주시고 그와 견고한 사랑의 관계를 다시 세우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베드로는 연약했습니다. 그러나 지극한 사랑으로 그를 다시 세우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책망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랑하시고 그의 허물과 약점에 상관없이 그를 세워주시는 은혜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라도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신다고 대답했을 때 예수님께서 주신 방향은 무엇입니까?
  “내 양을 먹이라” 하셨습니다. 두 번째 베드로가 대답하였을 때에는 “내 양을 치라” 하셨습니다. 세 번째에 다시 “내 양을 먹이라”하셨습니다. 양을 먹이는 것은 단순히 양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양들 중에는 부드러운 풀을 먹어야 하는 양도 있고, 억센 풀도 소화하는 양이 있습니다. 엉뚱한 방향으로 돌아다니는 양도 있습니다. 그런 양들을 다 먹이려면 양들 하나 하나를 관심과 사랑으로 섬세하게 돌보고 보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양들을 먹일 수 있습니다. 또 양을 친다는 것은 양의 잠자리 양의 안전, 양들의 관리 전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다시금 사랑의 관계를 견고하게 하시고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양들을 먹일 것을 명령으로 주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이 말씀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양을 돌보는 근거가 무엇에 있는지 분명히 해주시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의 사도의 직분은 예수님께로 부터입니다. 사람이나 조직의 슬로건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이러한 은혜를 입은 베드로는 베드로전서2:9,10절에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베드로는 이전에는 갈릴리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며 고기나 잡던 어부였습니다. 그는 자기와 자기 가족밖에 모르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불러내어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끝까지 사랑하셔서 그를 위대한 사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말씀을 통해서 그러한 은혜가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사랑하는 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증거합니다. 우리도 전에는 바깥 어두운데 거하던 자들이었습니다. 베드로처럼 자기와 자기 가족밖에 모르던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셨습니다. 십자가도 모르고 부활도 모르던 우리를 빛 가운데로 불러내셨습니다. 우리를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예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자로 이 땅에 불러서 세우셨습니다.

  이러한 삶이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예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사람, 택함받은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이것은 지상의 썩어질 것들이 절대로 넘볼 수 없는 크고 뛰어난 영광입니다. 최고의 축복입니다. 얼마나 영화롭고 얼마나 은혜로운지 하늘의 천사가 그러한 직분을 흠모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부활의 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어두운데 거하던 우리를 불러내어 예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주님의 어린 양들을 먹이게 하신 큰 은혜에 감사합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이런 직분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각자 자기 십자가를 하나님 앞에서 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젊어서 자기 마음대로 다녔습니다. 띠를 띤다는 것은 자유롭게 다니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의 복장특성상 외출할 때 자유로이 활동하기 위해서는 일단 외출에 앞서서 허리에 띠를 매야 했습니다. 베드로는 장차 로마에서 순교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도는 영광과 함께 의무도 따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에 대해서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 십자가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로 끝이 아닙니다. 십자가 뒤에는 예수님께서 얻으신 부활의 영광 하늘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열매로 주어지는 상급과 영생이 풍성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20-25절을 보십시오. 이 기록은 당시 사도 요한은 죽지 않겠다고 하는 소문이 널리 퍼져있어서 사도요한이 해명하는 차원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십자가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예언하시자 마음이 부담스러워 요한은 어떻게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를 영원히 살게 하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와전되어 헛 소문이 나게 되었습니다. 요한도 죽었습니다. 요한도 사는 동안 많은 고난을 감당하며 십자가의 길을 갔습니다. 요한은 오래 고난 받고 노년에는 유배를 가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자기 십자가를 하나님 앞에서 져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저마다 주님께서 주시는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것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피조물과의 관계보다도 예수님과의 관계를 절대적으로 견고히 하느냐는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사랑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사랑합니다. 부모는 자기 자식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보다도 더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물으십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하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어떤 사람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여야 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그 목숨을 십자가에 바쳐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주님은 내 부모의 부모이시기 때문입니다. 내 아내의 창조자이시고 내 남편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내 자녀를 선물로 보내주신 바로 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선물을 선물 보낸 사람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선물 받을 만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원래의 창조자 예수님을 최고로 사랑하여야 합니다. 선물에 눈이 어두워 더 큰 선물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앞으로 선물을 더 이상 못 받을 사람이며 선물 보낸 분을 서운하게 하여 받은 선물을 잃어버리고 슬퍼하게 될 것입니다. 영원하신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이 지혜이며 생명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여 가장 큰 예수님의 은혜와 축복을 풍성히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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