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8일 주일메시지
물을 포도주로
말씀 / 요한복음 2 : 1-22
요절 / 요한복음 2 : 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한복음에서 저자 요한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1장에서 증거 한 후에 예수님께서 근본 하나님다우신 능력과 권세를 가지셨음을 2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2장 말씀은 예수님의 첫 사역, 첫 표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표적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증언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알게 해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깊이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1. 가나 혼인잔치(1-11)
1,2절을 보십시오. 갈릴리 가나에서 혼인잔치가 있었습니다. 이곳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과 제자들이 초청을 받았습니다. 혼인잔치는 중요합니다. 혼인잔치는 흥겹습니다. 혼인잔치는 기쁩니다. 우리는 지난 1월에 혼인잔치를 본 적 있습니다. 세상에! 결혼식장에서도 신랑신부가 눈만 마주치면 배시시 웃다니! 혼인식다웠습니다. 기쁘고 행복한 혼인다웠습니다. 결혼은 그런 것입니다. 같이 있고 싶고 바라보고 싶고, 그렇게 하면 행복한 것입니다. 이런 신랑 신부를 축하하는 자리요 함께 기뻐하는 것이 혼인잔치입니다. 혼인잔치야 말로 모든 것을 잊고 즐거워하며 축하하는 기쁨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혼인을 경사로 여깁니다.
요한복음 왜 예수님의 첫 사역지를 혼인잔치로 기록한 것일까요? 요한복음은 왜 예수님의 첫 표적이 혼인잔치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요? 혼인잔치가 예수님을 잘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혼인잔치가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잘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혼인잔치가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나에게 오신 예수님을 알게 하는데 매우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는 생활이 혼인잔치와 같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이 혼인잔치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3절 전반절을 보십시오. 중요한 기쁨의 잔치에서 예상치 못한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한글성경에는 포도주가 모자랐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영어 성경에 보면 “the wine was gone”(NIV성경) 또는 “they have no wine”(KJV성경)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포도주가 조금 부족했다는 것이 아니라 아예 똑 떨어진 것입니다. 더 이상 포도주가 없습니다.
유대혼인잔치에서 포도주는 아주 중요합니다. 잔치도중에 포도주가 다 소모되었을 경우 혼인잔치를 완전히 망치는 것은 물론이고 법적 소송까지 당했습니다. 혼인잔치와 같이 중요한 행사를 준비하며 혼주는 얼마나 철저히 준비했겠습니까? 일생 최대 경사를 성공적으로 치루고자 만반의 준비를 했을 것입니다. 예상외의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볼 때 사람이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하지만 예측 못한 상황이 늘 우리들 곁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사람들이 준비한 포도주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목마른 우리의 목을 축여주고 갈증을 해소하는 세상의 우물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준비한 포도주가 고갈되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세상의 우물물은 다시 또 다시 목마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포도주가 동이 난 심각한 상황 앞에서 누가 이 난관을 타개하고자 했습니까? 3절 후반절을 보십시오.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사람들이 난감한 상황 앞에서 허둥대고 있을 때 이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가지고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였습니다. 마리아도 초대되어 온 손님 중 하나였습니다. 마리아는 잔치집의 심각한 문제를 보고 방관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가 잔치집의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 주인의식을 가지는 근거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기대였습니다. 마리아는 이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가면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로 나오는 것 이것을 ‘기도’라고 합니다. 어떤 문제이든지 예수님께로 가지고 나올 때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이런 믿음 있는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이 어떠합니까?
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마리아의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의외입니다. 냉정하게 거절하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말씀이 무엇에 포인트를 두고 있는지 분별해서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No 라고 대답한 것이 아니라, 때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해보면, 때가 이르면 해결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이는 아직 때가 이르지 못한 것일 뿐 때가 되면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5절을 보십시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반드시 역사하실 것을 굳게 믿고 예수님의 때를 준비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마리아는 믿는 일을 계속해서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기도한 후 더욱 믿음에 견고해져서 믿음의 역사를 준비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6,7절을 보십시오. 드디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광을 얻으실 수 있는 때가 이르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손님들이 손 씻는 물을 담는 돌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가득 채우도록 방향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깨끗하게 하는 일에 아주 집착 했습니다. 그들은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으면 더러운 죄도 함께 삼키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따라서 혼인잔치와 같이 많은 손님이 오는 날은 손님들이 식사하기 전 손 씻을 수 있도록 많은 물항아리들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크고 많은 물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도록 하셨습니다. 하인들은 지금 난처한 상황에 빠진 잔치 집에서 다들 예민해져 있는데 이해가 되지 않은 불합리한 방향에 순종해야 하는 큰 부담을 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기도하고 믿음으로 준비한 가운데에서 하인들도 순종하여 물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하인들은 물을 채우되 아구까지 가득 차도록 100퍼센트 순종하였습니다. 물을 다 채운 그들이 이제 한숨을 돌릴까 하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방향이 나왔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포도주가 시급한 연회장에게 물을 왜 갖다 줍니까? 그러나 하인들은 처음에도 순종, 나중에도 순종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포도주 문제는 일시에 해결되었습니다. 혼인잔치에는 최상급 포도주를 보고 이 맛을 인하여 감탄하는 사람과 칭찬 받는 사람 그리고 포도주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생겨났습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배우는 바가 무엇입니까? 처음 표적을 통해서 나타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혼인잔치와 같은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혼인잔치이십니다. 혼인잔치는 신랑과 신부가 하나가 되기로 약속하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이를 확증하고 축복을 받는 자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난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와 천국잔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혼인잔치이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기쁨과 축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것은 사람이 기술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물은 물입니다. 물이 그대로 포도주가 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변화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맹물이 제아무리 맛이 없을지라도 예수님께서 역사하시면 변하여 기쁨을 주는 최상급 포도주가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맹물같이 부족한 사람일 지라도 예수님께서 바꿔 주시면 절박한 혼인집에 가져온 최상급 포도주처럼 귀하고 값진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기쁨없는 이 세상에 생명의 포도주를 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근본 이 세상은 기쁨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참 행복도 없습니다. 이 세상은 포도주가 다 소진된 잔치집과 같습니다. 기쁘고 행복하고자 하나, 결핍과 빈곤으로 인하여 주인은 난감하고 손님은 화가 나고 연회장은 난처하며, 하인들은 몸둘 바를 모릅니다. 이런 우리의 인생을 천국 잔치에 들어가게 하시고 천국의 혼인잔치 흥겨움과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하도록 최상급 포도주를 부어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만에 부활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생명의 포도주를 부어주십니다. 천국 혼인잔치에서는 기쁨과 행복의 포도주가 흘러 넘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부활로 인함입니다.
우리의 삶은 참 빨리 흘러갑니다. 어릴 때 예쁘고 귀엽다고 부비고 만지고 안고 다니던 아이들이 어느 새 부모보다 더 커졌습니다. 지나온 세월마다 고난과 수고를 뿌려놓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없습니다. 나의 힘에 겨운 수고를 누가 알겠습니까? 나의 고달픔을 누가 위로해주겠습니까! 우리는 소모되고 결핍되는 우리 존재와 우리 삶의 한 가운데로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최상급 포도주, 천상의 기쁨, 하나님 나라의 행복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것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반복해서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하는 것을 통해서 예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이 처음 표적을 통해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2. 성전을 깨끗케 하신 예수님(12-22)
12,1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명절에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리며 명절을 보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셔서 성전에 도착하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참담한 모습을 보셔야 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거룩한 성전 안에는 기도하는 소리 대신 짐승들의 시끄러운 소리와 장사치들의 호객하는 소리가 가득했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먼 곳에서 직접 끌고 오기가 불편했으므로 예루살렘에 와서 제물로 드릴 짐승을 사서 드릴 필요가 있긴 했습니다. 또 헌금도 유대의 옛 화폐로만 받았기 때문에 당시에 통용되던 로마화폐를 환전할 필요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제사장들이 장사치를 끌어 들인 것입니다. 주의 종이 백성들의 제사를 이용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것도 부도덕 할 뿐 아니라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크게 분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그 짐승들을 성전에서 내쫓으셨습니다.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고 상을 엎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책망하시고 분노하시는 것입니까?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나님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이러한 분노는 하나님을 사랑하되 열심히 사랑한데서 나온 것입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향해 말합니다.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그들은 독특하고 열정적인 예수님을 향해서 메시야로서의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임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커다란 표적을 보여 주실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에 예수님께 메시야로서의 표적을 보여 주기를 요구하였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로도 담을 수 없는 분이십니다. 성전은 죄를 지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법과 제도를 세워 놓은 곳입니다. 성전에서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를 씻고 하나님 앞에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을 뵙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정한 죄씻는 절차를 성전에서 행하게 하셨습니다. 그런 절차를 거쳐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건물로써의 성전은 불완전합니다. 진정한 성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죄를 사함받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우리는 두려움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마음껏 기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시는 진정한 성전이십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제자들도 알지 못했습니다. 46년 동안에 걸쳐서 지은 성전을 허물고 3일 만에 다시 짓는가?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후에야 기억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모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는 사건들입니다. 첫 번째 표적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결과로 우리에게 부어지게 될 은혜를 보여주신 것이라면 두 번째는 하나님 아버지께 담대히 나갈 수 있게 하시는 길이시며 양들의 문이 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언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단한 우리의 삶을 채우시는 진정한 포도주 생명의 포도주, 기쁨과 행복의 포도주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가 두려움 없이 담대히 하나님께 나갈 수 있게 해주시는 우리의 그리스도 이십니다.
또 오늘 말씀은 여러 가지 ‘비움’이 나타납니다.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비었습니다. 그 이전에 유대인들은 자신을 정결하게 하겠다고 열심히 손을 씻으며 돌항아리의 물을 비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비우셨습니다. 성전에 가득한 탐욕, 성전에 자리한 장사치들을 내쫓으셔서 사람들의 욕심을 비우셨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다양한 ‘채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혼인잔치에 포도주를 채워주셨습니다. 혼인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채우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때를 기다리며 믿음, 신뢰를 채웠습니다. 하인들 역시 항아리에 물을 채우며 예수님께 대한 신뢰와 순도높은 믿음의 순종도 함께 채웠습니다. 그러나 유대 제사장들은 성전에 탐욕을 채우고 있었고, 예수님을 향해서는 불신과 의심을 채웠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생활과 우리의 인생에 무엇을 채우고 또 무엇을 비울 것인지 깊이 생각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탐욕과 위선적인 마음과 불신과 의심이 있다면 빨리 비우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대신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채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향한 신뢰와 예수님을 향한 소망을 채워야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을 예수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믿음의 실천으로 채워야 합니다. 우리는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채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과 순종을 채우는 우리에게 천상의 기쁨, 하나님나라의 행복, 영원한 생명으로 가득 채워 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