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신년말씀 게시판

2026년 마태복음 제 8 강 메시지_아산UBF

작성자서 아브라함|작성시간26.04.06|조회수38 목록 댓글 0

2026년 마태복음 제 8 강 메시지_아산UBF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

 

말씀 / 마태복음 6 : 1~18

요절 / 마태복음 6 :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에는 경건생활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구제(tzedakah), 기도(tefillah), 금식(taanit)—이 세 가지는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는 유대교인의 핵심 실천으로 여겨졌습니다. 문제는 이 아름다운 경건 실천들이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종교 퍼포먼스로 변질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회당 앞에서 나팔을 불며 구제를 알리고, 거리 모퉁이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였으며, 금식할 때 얼굴을 흉하게 하여 자신의 경건을 과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실천에 대하여 그 안에 있는 위선을 드러내시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를 향한 신앙'으로 인도해주십니다. 우리에게도   하루에 몇 시간 기도하는지 굳이 주변 사람들에게 밝히고 다니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배와 수양회에 자기가 초청한 학생들 숫자를 자기 신앙의 척도인 것처럼 여기며 자랑스러워하는 일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경탄을 이끌어내고 싶어합니다. 이런 신앙생활은 위선이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다 잃어버립니다. 오늘 말씀은 그 유혹을 이기는 길입니다. 

 

Part1. 구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1–4절)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마 6:1)

 1절의 '의(디카이오쉬네, δικαιοσύνη)'는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는 삶 전체, 신앙 실천을 총체적으로 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른 삶의 실천이 '사람에게 보이려는 목적'으로 행해질 때, 이미 상을 받은 것이라고 하십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상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행위만 보지 않으십니다. 행위를 이끄는 동기(motive)를 정확하게 보십니다. 신앙의 외적 실천은 사람들 눈에는 대단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어디로 향하는가 하는 것은 큰 복을 받을 수도 있고 큰 문제를 안을 수도 있는 관건이 됩니다.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 경건과 아버지를 향한 경건은 대단히 중요하고 심각한 이슈입니다. 역사 이래로 이 문제로 인하여 복을 잃은 사람도 많고 이 문제로 인하여 복을 받은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야곱에게로 넘어간 후, 평소 이 여자 저 여자 가나안 여자 만나고 다니는 것을 부모가 근심한다는 것을 보고는 부모가 좋아하는가 싶어서 이스마엘의 후손인 여자를 다시 취하는 에서, 겸손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지만, 타락하고 악령에 시달리는 비참한 신세가 되는 사울 왕, 그 외에도 브닌나, 엘리, 요압 이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나가는 대신 사람과 싸우고 사람에게 나가다가 하나님의 신령한 복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반복해서 하는 말이지만,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이 이것입니다. 같이 신앙생활 하고 같이 목자 생활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 애쓰고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느라 조금 경외심 없고 조금 영적인 모습 약한 사람이 젊어서는 티가 나지 않았습니다. 저마다 뿌린대로 거둡니다. 사람에게 신경쓰고 사람에게 인정 받으며 사람에게서 유익을 얻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열매도 없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복 받는 존재가 되게 해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 상 받으려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사람이 인정해주면 내가 행한 헌신에 대해서 빨리 답이 오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찬사를 보내주면 신속하게 나의 수고가 보상받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사람에게서 인정받고 사람에게 찬사 받고 싶은 욕망은 쉽게 우리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려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인정과 칭찬을 많이 받은 사람은 어릴 때의 관심과 인정과 칭찬을 계속 받고 싶어 사람의 관심을 열망하고 어려서 인정과 칭찬을 받지 못한 사람은 이제라도 사람들로부터 받고 싶어서 애씁니다. 이 욕망을 이겨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런 사람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고 경고 말씀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이겨내지 못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크고 놀라운 상을 잃어버립니다.    

 2절부터 예수님께서 구체적인 사례를 가지고 사람의 상 받으려는 문제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나팔을 불다' 위선적인 구제의 상징입니다. 어떤 연구자들은 당시의 헌금함이 나팔처럼 되어 있어서 헌금 동전이 들어갈 때 큰 소리를 냈다고 합니다. 부자들은 의도적으로 이 소리가 크고 많이 들리게 하였다고 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말씀이 풍자적 표현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나팔 소리는 '나를 보라'는 신호입니다. 나팔 불며 행하는 선행은, 이미 그 보상을 받은 것입니다. 상을 이미 받았다는 것- 'ἀπέχουσιν(아페쿠신)'은 상업 영수증에 쓰이던 표현으로, '완전히 수령하였습니다, 더 이상의 청구권이 없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 행한 구제는 사람에게 알린 것으로 계산이 완전히 종결된다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의 보상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선을 행할 때, 그것이 아버지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사람의 시선을 향한 것인지 명확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3–4)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이것은 자신조차도 의식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사랑의 행위를 말합니다. 진정한 구제는 베풀고 나서 '내가 그 사람에게 이런 것을 해줬다'는 의식이 희미해질 만큼 내색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긍휼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몰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Part 2. 기도: 골방에서 만나는 아버지 (5–15절)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 6:5)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해서는 좀 길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문제 두 가지를 지적하십니다. 

첫 번째는 공개적 과시 기도입니다.(5절) 바리새인들은 회당과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였습니다. 유대인의 기도 장소의 선택과 동기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을 선택하여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대화가 아니라 종교 퍼포먼스였습니다. 기도가 자기 신앙을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도구로 전락했을 때, 그것은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분리된 것입니다. 

둘 째는 중언부언 (7절)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 6:7–8)

 두 번째 잘못된 것은 '중언부언(βατταλογέω, 바탈로게오)'—같은 말을 반복하며 말의 양으로 하나님을 움직이려는 기도입니다. 주문을 외우듯이 많은 말을 하면 하나님이 반응하실 것이라는 의도입니다. 기도를 짧게 하면 섭섭하고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말의 양에 설득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내가 가진 정보를 전달하는 루트가 아니라 하나님과 긴밀한 교제의 통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기도가 아닌 올바른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6절을 보십시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6) 

 '골방(ταμεῖον, 타메이온)'은 곡식이나 귀중품을 저장하는 창고를 가리킵니다. 당시 사람들이 사적이고 은밀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은밀한 공간에서의 기도 하라고 하십니다.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하고, 오직 아버지와의 일대일 관계에 집중하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본질이 '아버지와의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기도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 것인지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9절부터 13절까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 6:9–13)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입니다. 주기도문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삶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여야 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주기도문을 통하여 우리는 올바른 기도를 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실제 생활에서 하나님을 깊이 체험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하며 신앙의 방향과 삶의 내용을 정의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여섯 개의 간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①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인정하고 경배하는 기도

② 나라가 임하시오며 — 하나님의 통치가 이 세상에 임하기를 구하는 기도

③ 뜻이 이루어지이다 —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는 기도

④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 필요를 아버지께 의존하는 신뢰의 기도

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 용서받은 자로서 용서하며 살아가는 기도

⑥ 시험에서 구하시옵소서 — 영적 전쟁 속에서 아버지의 보호를 구하는 기도

 주기도문의 첫 세 간구는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삶의 방향 문제입니다. 우리의 삶이 지향하여야 하는 방향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알려주십니다. 

뒤의 세 간구는 우리에게서 실제적인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 용서, 보호입니다. 이 세 가지를 위하여 기도하여 이 세 가지면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도우심을 체험해 나가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잘 알고 배울 수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 문제와 용서와 보호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체적으로 잘 체험해 나가는 사람은 다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려는 마음이 더욱 생겨나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고자 하는 힘이 생겨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대단히 영적이면서도 대단히 실제적입니다. 

 여기에 앉아있는 여러분들은 그동안 일용할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대학다닐 때 예수님의 초청을 받았지만 누구도 처음부터 예수님을 섬기고자 하거나 하나님을 믿고 살겠다고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장래문제, 취업문제, 대학원 진학, 실험과 학위취득 실제 문제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기도를 통하여 도우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면서 예수님을 통한 구원과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까? 여러분들이 잘한 것 한 가지는 취업 시켜준 사람이나 대학원에 진학시켜 준 사람, 논문을 도와 준 사람보다 하나님께 주목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영접한 것입니다. 

 한편, 우리는 목자로 살겠다고 결단하였지만 변화되지 않은 본성이 많이 드러났습니다. 이기심, 상황윤리, 탐욕, 거짓, 정욕, 분노, 교만의 문제들이 많이 드러났고 지금도 여전히 툭 하면 튀어나옵니다. 이런 우리의 모든 죄를 그리스도께 가지고 나가면 아낌없이 용서하시는 주의 은혜를 입으면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더욱 사랑할 마음을 키워왔습니다. 게다가 용서하기 힘든 사람을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용서하고 참아주려 해보니 더욱 그리스도의 은혜가 무엇인지 그의 용서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자신을 과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문제 많은 사람을 보면서 나라면 저러지 않겠다. 나라면 저렇게 살지 않겠다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더 큰 사고를 저지르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죄와 그 유혹 앞에 나약한지 알고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기도하여 구해 나가야 합니다.
 일용할양식과 용서와 보호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정말 영적이고 정말 실제적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기도하여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귀하게 쓰임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 6:14–15)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후 용서에 관하여 한 번 더 특별 강조하십니다. 용서받은 자는 용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며 드리는 기도는 이미 막힌 기도입니다. 용서가 기도의 통로입니다. 용서하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해서이기 전에, 내 기도의 문을 여는 일이 됩니다. 

 

Part 3. 금식(16–18절)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 6:16)

 유대 전통에서 대속죄일(욤 키푸르)외에도 자발적 금식이 행해졌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 했습니다.(눅 18:12), 금식할 때 얼굴을 일부러 흉하게 하고(ἀφανίζουσιν γὰρ τὰ πρόσωπα αὐτῶν), 사람들이 자신이 금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도록 과시하였습니다. '나는 이렇게 하나님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자기 과시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17–18)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는 것은 일상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이도록, 평범하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특별한 일 없는 것처럼 보이면서, 내면에서는 아버지를 향한 깊은 헌신과 집중이 이루어지는 것이 참된 금식입니다.

 금식의 본질은 집중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하여 음식을 끊는 것입니다. 음식섭취를 중단하는 것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육체의 필요를 채우는 것을 잠시 중단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일상적 욕구를 내려놓고 영적인 굶주림을 인식하는 시간이 금식의 참된 의미입니다. 금식은 아버지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되기에, 오히려 기쁨과 은혜를 수반합니다. 얼마나 오래, 얼마나 힘들게 금식했는지 드러내어 사람들에게 알아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금식을 통하여 자신이 아버지 하나님과 관계를 얼마나 깊게 하였는지가 금식으 목표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람 앞에서 행하는 위선적 경건은 사람의 상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진실되고 참된 경건은 하나님 아버지의 상을 받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아버지의 상은 인간의 상으로 대체할 수 없는 값지고 귀한 상입니다. 영적으로 아직 어리거나 잘 몰라서 하나님의 상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체험하지 못하는 경우는 앞으로 기회가 얼마든지 있겠지만, 본인의 의지와 선택으로 하나님의 상을 거부하고 굳이 사람의 상을 받겠다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작은 것에 집착하느라 비교할 수 없이 큰 상을 버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상이 최고입니다. 하나님의 상을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젊은 날, 사람들의 여러 얕보는 말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도 들었습니다. 저의 아들이 카이스트에 들어간 것을 두고 아들이 왜 공부 잘하는 거냐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논문을 많이 쓰니까, 왜 논문을 많이 쓰냐는 것이었습니다. ‘공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평가, 낮추어 보고 얕잡아 보는 말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반면, 사람들로부터 성실하고 믿음이 간다며 장차 교수가 될 것이라 칭찬 찬사를 오래 받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상은 사람의 상과 다릅니다. 지금 저는 3년 후, 부총장직을 이사장에게 요구할 것입니다. 안 주면 호X대에 가서 요구할 생각입니다. 아마 호X대는 내년에 요구해도 줄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국회의원 공천 받으라는 요청을 여러 번 반복해서 받았습니다. 다 거절했습니다. 충남교육감으로 나서라는 정식 요청도 받았습니다. 분명하게 거절했습니다. 이번에 거절하여도 다음에 또 요청하겠다고 하였는데 저는 앞으로도 거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칭찬을 받고 사람의 찬사를 받는 사람은 백수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멸시 받은 자에게는 복주시는 하나님을 많이 체험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저의 남은 시간과 열정을 모두 주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졌습니다. 제가 캠퍼스에서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하는 것은 얼마든지 하고자 하지만 세상에 나가 세상 사람들의 갈채와 영광 받는 것은 원하지 않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상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상급이 더 크고 위대합니다. 사람의 찬사와 칭찬은 잠시 지나가는 구름 같고 금방 사라지는 아침의 이슬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상을 간구하고 하나님의 상을 받는 삶을 살아나가시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아산UBF

아산UBF

 

아산UBF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